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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년 전 이달

N년 전 이달 : 10월

과거 작품의 재발견과 ‘역주행’이 빈번해진 시대, “N년 전 이달”은 N년 전 이달에 발매된 고전, 수작, 그리고 문제작들을 되짚어본다.
2026년 10월 ‘N년 전 이달’에는 14년 전 가인, 11년 전 러블리즈에 대한 평이 수록되었다.

과거 작품의 재발견과 ‘역주행’이 빈번해진 시대, “N년 전 이달”은 N년 전 이달에 발매된 고전, 수작, 그리고 문제작들을 되짚어본다.
2026년 10월 ‘N년 전 이달’에는 14년 전 가인, 11년 전 러블리즈에 대한 평이 수록되었다.

14년 전 10월

Talk About S.
로엔 엔터테인먼트
2012년 10월 5일

퀴비: ‘팜므 파탈’. 남성을 파멸에 이르게 하는 치명적인 매력의 여성. 19세기 낭만주의 시대에 부상한 이 전형은 한편으로는 남성의 입장에서 형상화된 신화적 관념이기도 하지만, 여성의 관점에서는 금기를 깨고 성별 위계를 뒤엎는 전복적 인물상이다. 고전적인 팜므 파탈 캐릭터는 케이팝의 여성관이 업데이트된 2010년대 중반 이후 케이팝에서 거의 자취를 감췄지만, 한때 (특히 2000년대 초중반 ‘디바’ 융성기) 여성 솔로 댄스 가수들이 본격 출사표를 던질 때 빈번하게 동원되는 콘셉트였다. 박지윤 ‘성인식’, 이효리 ’10 Minutes’, 아이비 ‘A-Ha’, 서인영 ‘너를 원해’ 등이 대표적인 예시다.
2012년 발매된 가인의 두 번째 EP “Talk About S.”는 이러한 팜므 파탈의 계보도 위에 놓이면서도, 그를 신랄하게 비트는 변혁적인 작품이다. 앨범 재킷부터 상징적이다. 섹스의 테마를 암시하는 제목 “Talk About S”는 도발적인 레드도 쨍한 핫 핑크도 아닌 벚꽃 빛깔의 연분홍색으로 쓰여 있다. 시공간적 배경은 어스름한 밤이나 번쩍이는 클럽이 아닌 아침 볕이 드는 침대 위다. 노골적이면서도 음습함을 말끔히 걷어낸 이미지는 팜므 파탈을 비추는 묵은 도식을 상쾌하게 깨부순다.
앨범을 재생하면 이러한 주제 의식이 더욱 선명히 펼쳐진다. 트랙의 흐름은 팜므 파탈의 “매력”보다도 “치명적”임과 그가 촉발하는 (남성의) “파멸”에 방점을 찍는다. 앨범 속에서 가인은 상대에게 여지를 남기면서도 매몰차게 구애를 뿌리치고(‘그녀를 만나’), “스친 시선 한 번에” 섣부른 사랑을 절절하게 노래하다가도 돌연 “금방 싫증 나는 애”인 나를 잡아보라며 신나게 도망가는(‘시선’ – ‘Catch Me If You Can’), 어설픈 남자들을 따돌리는 짓궂은 장난꾼이다. 이효리 역시 ’10 Mintues’에서 “순진한 내숭에 속아 우는 남자들”에 조소를 날린 바 있지만, 이효리가 보여주었던 (예능에서의 시원시원한 모습과도 맞물린) 쿨한 태도와 비교했을 때 가인의 캐릭터는 훨씬 변덕스러운 심술꾸러기다. (재밌게도 이를 가장 잘 드러내는 곡 중 하나가 차후 이효리가 가인에게 선물한 ‘Black & White’다. 이효리는 “섬세한 표현력과 BLACK & WHITE의 매력이 공존하는 여가수에 가인이 가장 적합하여 이 노래를 꼭 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효리가 “사실은 순정이 가득하고 뒤에서 눈물짓는 신파 세계의 팜므 파탈에 돌이킬 수 없는 종지부를 찍어냈”던 인물이라면(미묘의 멜론-서울신문 “K-POP 명곡 100” 선정의 변에서 인용), 가인은 유혹에서 농간으로 신세대 팜프 파탈의 관점을 한 차례 더 뒤집은 인물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오프닝 넘버 ‘팅커벨’은 이러한 캐릭터를 응축한 최고의 트랙으로, 청자를 파멸의 소용돌이 속으로 성큼 잡아끄는 역할을 한다. ‘팅커벨’의 세션 편성과 전개는 카오스 그 자체다. 미니멀하면서도 기타 샘플과 더블 트래킹 보컬을 하드-패닝 시킨 스테레오 사운드 디자인이 청각을 교란하는 인트로와 1절 벌스, 매캐한 질감의 전자 기타가 도입되는 첫 후렴에 이어 예측불허의 변박이 폭발하는 간주, 본격적으로 무질서한 사운드 소스들(포르르 날아가는 플룻, 희미한 기타 플럭, 삑사리 같은 브라스 등)이 배경에 난입하는 2절, 깡통 소리 같은 스네어가 마구 널뛰는 2절 후렴구, 드럼 세션이 우당탕탕 무너지는 3절 벌스, 라틴 풍 선율을 연주하는 어쿠스틱 피아노와 동일 음을 사정없이 두드리는 전자 피아노가 평행하는 3절 후렴구… 3분에 걸쳐 여러 소리가 배회하고 충돌하고 붕괴하는데, 이러한 혼돈 속에서 가인은 태연자약하게 청자에게 자신을 탐닉할 것을 명한다. 아웃트로에 이르러서는 후렴구에 추임새처럼 들어서 있던 (흔히 성적인 심상으로 연결되는) 헐떡거림이 한층 거세고 날카롭게 변모하고, 이는 이전까의 멜로디와 옥타브를 달리해 극-저음과 극-가성을 연극적으로 오가는 가창과 맞물려 위압적인 느낌마저 안긴다. 이처럼 은밀하게 밤을 잔뜩 어지르고 아침에 홀연히 떠나가는 팅커벨의 농간은 달콤하기보다 차라리 공포스럽다.
‘팅커벨’이 파멸의 무도였다면, 타이틀곡인 ‘피어나’는 그 위에서 움트는 환희의 찬가다. 훵키한 기타와 피아노가 긴장감이 감도는 단조로 전희를 펼치다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백업 코러스가 가미된 화사한 장조로 만개하는 곡의 전개는 새로운 감각에 눈을 뜨는 여성의 서사를 아름답게 펼쳐낸다. 아이유의 ‘좋은 날’ 같은 곡에서도 이미 보여준 바 있는 방식이지만, 이는 ‘피어나’가 품은 대담한 내러티브와 결합하며 더욱 큰 파괴력을 지닌다. 흥미롭게도 ‘피어나’는 (가사와 가창의 섬세한 표현법은 차치하고) 내러티브만 놓고 보면 언뜻 팜므 파탈에게 매혹된 남성의 이야기처럼도 보인다. 대표적으로 괜한 앙탈을 부리고(“이렇게 좋을 건 뭐니 / 날 갖고 뭘 했던 거니”), 사랑에 눈이 멀고(“시선 따윈 알게 뭐니 / 수군대는 쟨 또 뭐니”), 그러다가도 상대방의 속내에 이따금씩 의심을 품는(“좋을까 뭘까 좋을까 넌 / fake한 걸까 넌”) 대목들이 그러하다. 이는 결국 이 곡이 “성적 주도권을 완전히 탈취”했다는 방증처럼 읽힌다(김도헌의 멜론-서울신문 “K-POP 명곡 100” 선정의 변의 표현을 활용함). 김이나 작사가, 황수아 감독 등 여성 창작자들이 주도한 ‘피어나’는 여성의 시선에서 성 경험을 바라보며, “남성의 관점에서 형상화된 신화적 관념”에 거리를 둔 채 단지 “금기를 깨고 성별 위계를 뒤엎는” 존재로서 신세대적 팜므 파탈의 초상을 그렸다.
그리고 이를 살아 움직이게 만든 것은 바로 가인이라는 퍼포머다. 그는 ‘Abracadabra’에서 ‘시건방춤’의 센터와 하이라이트 독무 파트를 맡는 등 막내임에도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성인돌’이라는 수식어를 이끌어낸 핵심 멤버였고, 또한 MBC 〈우리 결혼했어요〉의 ‘아담 커플’로 친근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던 인물이다. 그의 시그니처와도 같았던 두꺼운 스모키 화장은 원숙함과 미숙함을 동시에 품고 있었고, 원색적인 앙고라 니트와 핫팬츠-가터벨트의 믹스매치 같은 스타일링 역시 그러했다. 황수아 감독은 아이돌로지와의 인터뷰에서“(‘피어나’ 뮤직비디오가) ‘폭력적이지 않게 찍혔다’고 하셨지만, 더 섬세하게 들어가면 폭력적이었을 수도 있다. 그것들이 가인이라는 아티스트가 아니었다면 폭력적으로 끝났을 수도 있다”, “가인이라는 캐릭터, 고유의 그 존재 자체가 갖고 있는 느낌이 (‘피어나’ 같은 곡을) 가능하게 만든다”고 언급한 바 있기도 하다.
시대 변화에 따라 자연스레 케이팝에서 팜므 파탈 캐릭터 자체를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지만, 고전의 구습을 혁파하며 팜므 파탈의 이미지와 내러티브를 갱신했던 가인의 진취성은 지금 보아도 형형하게 빛난다. 몇 년 전 본격적으로 솔로 컴백 준비를 시작했다고 예고한 그의 귀환이 더욱 기다려지는 이유다. 

11년 전 10월

Lovelyz8
울림 엔터테인먼트
2015년 10월 1일

예미: 새하얀 교복을 입은 해사한 얼굴의 청순 소녀 아이돌이 할 수 있는 음악에는 무엇이 있을까? 우리가 가장 처음 떠올리는 음악은 S.E.S.와 핑클, 초창기 소녀시대와 에이핑크로 대표되는, 사랑을 고백하거나 누군가를 응원하는, 따뜻한 질감의 뉴 질 스윙 혹은 발랄한 분위기의 댄스 팝이다. 하지만 모두 알다시피, 이것만으로 2010년대 중반 이후 등장한 청순 계열 걸그룹들의 복잡다단한 음악과 정서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청순, 혹은 소녀의 영역이 지금처럼 확장되는 과정에 놓인 중요한 작품이 러블리즈의 대표작 “Lovelyz8”이다.
촘촘한 코드 워크와 신스 사운드 위에 발랄한 멜로디 라인을 곱고 풋풋한 목소리로 부르는 타이틀곡 ‘Ah-Choo’의 소녀스러움은 이전 시대 청순 아이돌 강수지를 만들어낸 프로듀서 윤상의 이력을 확실히 연상시킨다. 재채기라는 디테일한 표현이 섬세한 사운드 디자인과 맞물려 소녀스러움을 극대화한 반면, 이전 타이틀곡 ‘Candy Jelly Love’, ‘안녕’에 비해 강하고 직선적인 신스음은 곡에 전례없는 에너지를 보강하며 러블리즈에게 본격적인 전자음악 그룹으로서의 가능성을 부여했다. 수록곡 중 허밍어반스테레오 특유의 프로그래밍이 돋보이는 ‘예쁜 여자가 되는 법’, 제이윤이 주조한 정교한 신스 사운드가 하모니와 맞물리는 ‘Hug Me’는 윤상으로 대표되는 ‘섬세한 전자음악’이 청순 걸그룹에게 꼭 맞는 옷이 될 수 있음을 보다 확장하여 입증한다. 한편 ‘Ah-Choo’의 마지막 후렴 직전 브릿지에서 나타나는 마이너 멜로디로의 급격한 전조는 이 곡에서 가장 ‘윤상’적인 대목인 동시에 짝사랑의 서글픔을 강렬하게 드러낸다. 러블리즈는 커리어 내내 이러한 비극적 정서를 레퍼토리에 적극적으로 포섭했는데, 이러한 경향을 대표하는 곡이 ‘작별하나’다. 이별의 장면을 섬세하게 묘사하는 이 발라드는 정갈한 목소리로 너무 무겁지 않게 감정선을 전달하는 멤버들의 역량이 러블리즈 식 서정성을 구축했음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를 종합하면, 우리는 신디사이저를 주 재료로 삼아 세심하게 가공된 사운드 위에 낭랑한 목소리로 짝사랑을 심도 있게 노래하며 울고 웃는 소녀의 모습으로 러블리즈라는 그룹을 그려볼 수 있다. 러블리즈의 아이덴티티 구축 과정은 청순이라는 컨벤션이 다채로운 변주를 통해 깊이 있는 심상을 표현하고 그룹의 개성을 부여할 수 있는 좋은 재료가 될 수 있음을 입증하였는데, 이 과정이 청순 계열 걸그룹이 늘어나던 시대상과 맞물리며 케이팝이 표현하는 소녀의 얼굴과 음악에 다면성을 부여하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이제는 소녀의 얼굴로 표현하는, 함부로 단정할 수 없는 음악과 정서가 케이팝이 언제든지 꺼내쓸 수 있는 레거시가 되었음을 기억하며 “Lovelyz8”을 들어보길 권한다.

미묘: “윤상의 팬이라면 그의 팀인 OnePiece가 단 한 곡에만 참여한 이 음반의 ‘앞면’이 마치 ‘윤상 송북 vol. 2’처럼 들려 더욱 반가울지도 모르겠다. ‘뒷면’이라고는 했으나 ‘새콤달콤’, ‘라푼젤’ 등은 산뜻한 기조로 일관하면서 전작보다 통일성 있고 완결미 있는 ‘걸그룹 음반’을 이룬다. 그 사이에서 ‘예쁜 여자가 되는 법’은 허밍어반스테레오의 가장 익숙한 이미지를 선택했다는 점이 조금은 일차원적으로 느껴질 순 있으나 ‘앞면’의 어른스러운 반짝임과 ‘뒷면’의 풋풋함을 매끄럽게 연결하는 다리가 돼준다. 세세한 곳에서 아쉬움이 없는 음반은 아니지만, 무엇보다 기존의 메리트를 유지하면서 러블리즈의 진일보를 위한 딜레마를 작품 내에서 해결하고자 하는 시도를 긍정하고 싶다.” (“러블리즈 – Lovelyz8 (2015)” 리뷰 中 일부 발췌)

김윤하: “타이틀곡이자 앨범에서 유일하게 윤상(원피스)의 입김이 닿은 곡인 ‘Ah-Choo’는 그 대표격인 곡이다. 이 곡에 단번에 마음을 빼앗기는 건 결코 쉽지 않은 미션이지만, 원인이 궁금할 정도로 뚝뚝 끊기는 곡의 구성을 받아들이고 나면 물의 정령을 청각화한 듯한 도입부와 “너/는/내/맘/모/르/지/Ah/Choo”의 음절 사이사이에 묻힌 물음표, “나는 그 말이 참 싫다”며 갑자기 서늘하게 표정을 바꾸는 브리지의 크리피함까지 곡의 모든 것이 사랑스러워진다.” (“1st Listen : 2015년 10월 초순” 中 일부 발췌)

블럭: “앨범은 다행히도 시종일관 청량함 속 어두운 구석을 조금씩 내비치는 모습을 하고 있다. 보컬을 차치하면 더욱 이야기할 것이 많은데, 워낙 예쁜 톤을 잘 유지하고 있는 데다가 과한 현악기 활용보다는 다양하게 신스를 운용하는 등, 전반적으로 질감에 많은 신경을 쓴 듯하다. 상대적으로 일렉트로팝보다는 전자음악 자체에 가까운 쪽. 여러모로 러블리즈만의 방향이 조금씩 나오는 것 같고, 수많은 ‘소녀들’ 사이에서도 뚜렷한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다.” (“1st Listen : 2015년 10월 초순” 中 일부 발췌)

돌돌말링: “뮤직비디오는 이제까지의 활동곡들처럼 가상의 실내 공간에서 의문의 귀여운 짓을 하는 소녀들을 포착한다. 이전 곡들보다는 후렴에서 의도적으로 팡 터뜨리는 멜로디다. (“A-choo!”와 함께 공기 중에 퍼지는 저 윤상 입자들!) 다만 일부러 과한 전개를 지양하는 듯하는 작법 자체도 러블리즈의 한 컬러라 그런지, ‘A-Choo’도 멜로디의 드라마틱함은 별개로 곡 전반의 사운드가 파트마다 양감의 균형을 고르려고 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1st Listen : 2015년 10월 초순” 中 일부 발췌) 

유제상: “타이틀곡 ‘Ah-Choo’는 윤상도(度)가 너무 높아 오히려 받아 들이기 힘들다. 오해가 생길까 봐 미리 적자면, 평자는 윤상의 대단한 팬으로 특히 “Cliché”(2000)의 경우 인생 최고의 음반 중 하나로 생각하고 있다. 레인보우블랙의 ‘Cha Cha’의 경우도 그렇고 이 곡도 좋은 멜로디의 진행으로 되어 있으나, 90년대적인 곡 흐름(특정 부분의 일시적 멈춤으로 긴장감을 준다든지 하는 것들)으로 인해 듣는 이에게 대단히 낡은 느낌을 전해준다.” (“1st Listen : 2015년 10월 초순” 中 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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