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멜리사 존슨(Melissa Johnson)이 운영하는 케이팝 걸그룹 중심의 분석 비평 블로그인 “the mind reels”에 게재된 2015년 7월 29일자 기사 “The Long Arm of Product Placement”를 번역한 것이다.
레드벨벳의 ‘Ice Cream Cake’ 뮤직비디오는 배스킨 라빈스 아이스크림 콘, 선대, 캬라멜 카푸치노 블라스트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삽입해 광고라기보다는 미학적 선택인 것처럼 보일 정도였지만, SM 엔터테인먼트(이하 ‘SM’)의 PPL 삽입이 늘 그렇지는 않다. 훨씬 부자연스럽거나 어색하게 이뤄지는 경우가 흔하다. 상품은 비디오 속에서 과도한 시간과 공간을 차지하며 종종 단독 샷까지 등장한다. 소녀시대의 ‘I Got A Boy’나 태티서의 ‘Twinkle’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걸 드 프로방스(Girl de Provence) 향수를 보라. 혹은 어마어마한 역할을 부여받기도 한다. 동방신기의 ‘이것만은 알고 가’에서 아이폰과 페이스타임이 플롯의 중심 소품으로 사용되는 것을 보라. 그 결과는 곡에 딸린 뮤직비디오보다는 차라리 CF처럼 느껴질 때가 있을 정도인데, 샤이니의 ‘Your Number’ 뮤직비디오의 일부는 SM의 엔터테인먼트 몰인 SMTOWN@코엑스 아트리움을 샤이니보다 더 전면에 내세우기도 하는 것이다.
SM은 종종 헛발질을 저지른다는 이미지로 인식될 때가 있어 케이팝 업계에 대한 비판의 중심이 되기도 하지만, 이 회사의 치졸한 PPL의 역사는 이와는 별 관계가 없다. 그보다는 PPL이 워낙 어려운 일이라 해야겠다. 좋은 PPL은 비디오의 내용과는 무관한 상품을 끼워 넣을 자리를, 만드는 게 아니라 ‘찾아내야’ 하는 일이어서, 그 자체로 문턱이 높은 작업이다. 일이 더 복잡한 것은, 뮤직비디오 속에는 단순히 기획사 하나의 단위를 넘어서서 다양한 주체들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상품 브랜드, 팬들, 때론 그룹 역시 각자 별도의 관심사를 가진다. 성공적인 PPL이란 그저 상품이 좋아 보이게 신경 쓰는 것만이 아니라, 이 모든 주체들의 관심사를 만족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모두가 만족하는 그 완벽한 균형을 찾는 일은 거의 불가능한데, 우선 팬들과 브랜드의 관심사가 끝없이 상충하기 때문이다. 팬들은 자신의 아이돌이 더 인기를 얻고 가시성을 확보하는 일에 관심을 갖는다면, 브랜드는 이런 방향으로 제작된 뮤직비디오를 통해 그룹을 홍보해주는 데에 관심을 갖진 않는다. 반대로, 그들이 기획사에 돈을 지불하는 것은 자신들의 브랜드를 홍보하고, 그룹이 이미 갖고 있는 인기를 활용해 판매를 촉진하거나 상품에 대한 관심도를 올리기 위함이다. 어떤 브랜드가 범아시아, 혹은 전 세계를 타깃으로 한다면, 케이팝 뮤직비디오의 노출 가능성은 더없이 완벽한 선택이다. 타이항공과 실라바디 풀 스파 리조트라는 두 외국 브랜드가 태국에서 촬영된 소녀시대의 ‘Party’ 뮤직비디오를 기회로 삼은 것도 그래서이다.
비디오 초반에는 소녀시대가 출연하는 타이항공 미니 CF가 등장하고, 실라바디 풀 스파 리조트는 비디오 전체의 메인 로케이션으로 활용된다. 유치한 형태의 PPL이 되었지만 두 브랜드에게 있어서는 현명한 사업적 판단이 되었다. 세계적으로 무시 못 할 팬덤을 거느리고 신곡이 나올 때마다 국제 미디어의 관심을 받는 그룹의 뮤직비디오에 등장한다는 것은 전 세계 수백만 명이 이를 보게 된다는 뜻이다. 케이팝 비디오들이 얼마나 빨리 조회 수를 쌓아 올리는지 감안하면, 그것도 1주일도 채 안 돼서 말이다. 이에 더해, gif를 만들거나 다양한 소셜 미디어를 통해 스크린샷을 공유하는 등 케이팝 팬덤 특유의 활동 방식으로 인해, 이 브랜드는 소녀시대의 뮤직비디오에 등장한 것만으로 전통적인 마케팅 기법의 효과를 넘어서는 노출효과를 누리게 된다.
바꿔 말해, 팬과 브랜드 양측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해결책이 없다면, 기획사들은 필요에 의해서든 욕심에 의해서든 팬이나 예술성보다는 브랜드를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식의 거래는 앞으로 더 자주 일어날 수밖에 없다. 브랜드 입장에서는 케이팝의 영향력을 이용해 폭넓은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손쉽게 이윤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인기 있는 그룹의 뮤직비디오 속 시간을 살 수 있는 돈만 있으면 되니 말이다. 알아서 버즈를 일으켜줄 수 있을 만큼 활동적인 국제 팬덤이 있는 그룹이라면 더욱 좋을 것이다. 제시카가 떠나고 열애 ‘스캔들’을 겪은 이후 처음 컴백하는 이번 소녀시대처럼 말이다.
어색한 PPL의 재앙이 계속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PPL이 반드시 ‘훌륭’하거나 비디오에 잘 녹아들 필요조차 그다지 없는 모양이다. 상품이 그저 긍정적으로 비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은 문턱이 낮은 일이다. 주인공인 아이돌 그룹 역시 안전하고 검증된 콘셉트만 유지하면 될 일이다. 흥미롭진 않겠지만, 적어도 상품은 좋아 보일 테니.
번역 : 미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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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reply on “꼬리가 긴 PPL : 케이팝이 CF가 될 때”
갑자기 엑소의 ’12월의 기적’ 뮤직비디오의, 팬 입장에서 봐도 참 조악스럽기 짝이 없던 PPL이 떠오르네요. 오죽하면 팬덤 내에서는 안그래도 극악한 상술로 악명이 높았던 N 화장품 브랜드의 패키지가 화면에 등장하는걸 보고, 엑소가 차인건 저 화장품 세트 때문(….)이라는 웃지 못할 우스개소리가 흥했으니 말이죠. 그에 비하면, 엑소더스 티저 ‘카이’편의 S사 핸드폰과 CALL ME BABY의 헤드폰 PPL은 비교적 자연스러워 보일 정도….물론 상대적으로, 라는 전제가 붙어야 하겠습니다만. 결론은 슴 그르지 마여….구만회….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