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녀에게 가장 어울리는 배경은 뭘까? 적어도 인류 멸망의 폐허와 좀비들은 아닌 것 같았다. 트와이스의 ‘Ooh-Ahh하게’는 처음부터 이렇게 비상식적이었다. 폐허와 좀비, 그리고 난데없는 미소녀들은 누가 봐도 이상하게 느낄 만한 조합이었다. 하지만 이것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더욱 이상한 일이었다.
사실 상식적이라면 파스텔톤의 예쁜 배경에 예쁜 아이들을 놓는 것이다. 하지만, 폐허 속에 놓인 침대에서 나연이 벌떡 일어나는 순간 좀비고 폐허고 모든 것은 의미 없는 일이 된다. 트와이스 멤버들은 눈부시고 나머지는 모조리 배경이 된다. 사람은 전경과 배경을 동시에 지각할 수 없다. 에셔의 그림 〈Two Birds (1938)〉에서처럼 흰 새를 보려고 하면 파랑새가 보이지 않고, 파랑새를 보려고 하면 흰 새가 사라진다. 좀비와 폐허를 보려는 순간 미소녀들은 배경이 된다. 어느 미친 사람이 좀비 따위를 보려고 쯔위를 배경으로 던져 놓을 것인가. 이것이 미소녀가 지닌 힘이다. 미소녀는 자신 이외의 모든 것을 배경으로 녹여 버린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무리한 설정이라도 미소녀라면 아무 의문 없이 흘려보낼 수 있다. 인류 최후의 미소녀들인데 좀비의 정체가 ‘덕후’의 은유라면 또 어떻겠는가. 주변을 돌아봐도 폐허와 좀비뿐이니 트와이스에 ‘덕통사고’를 당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다. 트와이스는 무리 지어 따라오는 좀비들을 줄 세운다. “내가 좀 잘나가서 피곤하지만 한 번은 사랑에 빠지고 싶으니 날 Ooh-Ahh하게 해줄 사람을 기다려 볼래.” 대부분의 아이돌이 근거도 없이 덕후들에게 사랑한다고 이야기하지만, 이번엔 그것이 역전되었다. 기분이 묘하긴 해도 미소녀가 하는 말은 진리이고 우리는 미소녀 앞에선 모두 하찮은 존재다. 우리는 한 마리 좀비일 뿐이고 현실은 시궁창이지만, 트와이스가 그렇게 이야기한다면 도전해 볼 만하지 않은가.
‘현시창’은 ‘Cheer Up’에서도 이어진다. 미소녀들의 파티에 뻘쭘하게 들어와 있는 덕후, 트와이스 멤버들은 모두 그를 귀찮아 하고 싫어한다. 이때 덕후는 궁극의 아이템 ‘덕후 안경’을 꺼낸다. 안경을 통해 바라본 트와이스는 “내가 귀찮아해도 사실은 안 그런 거 알지? 실망하지 말고 조르지 마. 힘내서 더 다가오라고” 한다. 덕후 안경을 통하면 트와이스는 ‘츤츤’대는 츤데레일 뿐이다. 덕후 안경을 통해 바라본 다양한 콘셉트의 트와이스 멤버들, 그리고 그들의 메시지는 덕후 판타지 그 자체이다. 하지만 덕후 안경을 다시 벗자 드러나는 현실은, 미소녀는 어설픈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리얼충’이고 덕후에겐 관심조차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트와이스는 현실 위에 놓인 판타지이다. “미소녀가 덕후에게 관심 따위 줄 리 없어”라는 비관적인, 그리고 다분히 현실적인 생각은 ‘덕후 안경’을 쓰면서 순식간에 사라진다. 미소녀란 닿을 수 없는 먼 곳에 있는 것이지만, 소녀들 스스로가 “힘내! 지금 다가가면 인기 만점의 미소녀를 네 것으로 만들 수 있어! 넌 진짜 사나이(real men)야!”라는 메시지를 계속 보내준다면, 갖고 싶다는 마음이 들만도 하다.
덕후 안경을 쓰면 트와이스의 시큰둥하고 짜증 섞인 시선은 사실은 ‘나에게 더 다가오라’는 신호일 뿐이다. “여자의 No는 Yes”라고 하지 않는가? 그런 의미에서 이 뮤직비디오는 판타지를 위태롭고 극단적인 지점까지 몰아붙인다. 2분 55초 지점에서 겁에 질려 움츠리는 나연에게 다가가는 카메라, 그리고 그 장면에 붙는 가사 “지금처럼 조금만 더 다가와”는 소름이 돋을 정도이다. 이렇게 대비되는 화면과 메시지에서 어째서 아무도 위화감을 느끼지 않는 것일까? 결국 우리는 다시 처음의 의문으로 돌아간다.
트와이스의 설정은 매우 비상식적이고 어이없지만, 그것이 촘촘하게 짜여져 분명한 메시지를 제시한다. 이상하게 느껴질 만한 디테일은 트와이스의 미모에 묻혀 드러나지 않는다. 게다가 노래가 제시하는 메시지는 너무나 통속적인 나머지 우리에게 이상하다고 느껴지지도 않는다.
‘Cheer Up’ 뮤직비디오의 엔딩 부분에 감독은 덕후 안경을 벗는 장면을 굳이 넣었다. 판타지가 일시에 사라지면 어떻게 되는가? 그것은 허무함이기도 하고, 일종의 조롱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덕후 안경은 너무 벗기 싫은 아이템이다. 미인 앞에서는 누구나 바보가 된다. 사나의 “샤샤샤”가 화제라는 소식을 들었다.
- 결산 2016 : ④ 베스트 뮤직비디오 - 2017-03-09
- 결산 2016 : ③ 신인 음반 베스트 10 - 2017-02-21
- 1st Listen : 2016년 11월 하순 - 2016-12-14
7 replies on “트와이스 – 미소녀의 힘”
아이돌에 대한 고정관념과 오덕후 빠순이 팬덤에 대한 무한 긍정으로 점철된 편향적인 글이네요
그냥 난 트와이스 싫다고 하면 될껄..
https://twitter.com/banguman1234/status/631355436877246464 네 편견 잘 봤고요
저번의 여자친구 때처럼 이번에도 러블리즈의 반응이 신통찮아서, 트와이스는 음원차트 1위를 석권하고 있어서 심통이 나셨나요? 트와이스의 잘못이 아닌데말이죠
“저번 여자친구 때” 일은 모르지만 이번 기사만 놓고 봤을 때 트와이스의 잘못이라는 말은 어디에도 없는데요. 유의미한 비판을 무조건적인 매도로 몰고나면 속은 시원하겠지만 그 외엔 아무것도 좋아지지 않는답니다
트와이스 팬인데요, 전혀 트와이스가 싫어서 쓴글이 아닌 것 처럼 보이는데요? 저도 가사내에서 여자의 no는 yes 이다 라던가 용기를 내서 real man이 되라고 했던 점은 불편하고 위험하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전작 우아하게나 이번곡이나 가사내용이 수동적인 여성화자 입장에서 이야기하고 있어서 아쉬워요.
잘 봤습니다. 글을 읽고 뮤비를 보니까 확실히 이해가 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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