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25일 블루스퀘어 삼성카드홀에서 러블리즈의 쇼케이스가 열렸다. 기자 쇼케이스와 브이앱으로 중계된 일반 쇼케이스로 나뉘어 진행되었는데, 아이돌로지는 기자 쇼케이스에 참석했다. 원피스(OnePiece)의 작곡가 윤상의 사회로, 토크를 중심으로 하여 진행되었다. 새 미니앨범 “A New Trilogy”를 소개하고, 프롤로그 필름과 ‘Destiny’의 뮤직비디오 상영, ‘책갈피’와 ‘Destiny’의 라이브 무대가 있었다.
성숙 삼부작
‘새로운 삼부작’이란 뜻의 제목 “A New Trilogy”에 관한 언급은 ‘성숙’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대에게’를 번외작으로 간주한 듯) ‘Candy Jelly Love’, ‘안녕’, ‘Ah-Choo’의 세 곡이 앞선 삼부작으로 묶인다면 그 주제의식은 몽상하는 소녀라 할 수 있다. (풍류건달이 비유한 ‘기다리는 소녀’ 역시 그 정적인 성격에서 착안한 것으로 보인다.) 행동보다는 감정과 사고에 집중하면서, 은근하게 비치는 비극적 암시가 내포돼 있었다. 그래서 달콤한 맛을 노래하지만 사실은 쓴 것을 먹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위화감 속에, 그저 낙관적인 몽상이 더욱 두드러졌던 것이다.
그에 비해 ‘Destiny’가 담고 있는 내용은 낙관이 깨진, 보다 절박한 마음에서 출발한다. 꿈결 같지만은 않은 현실과 사랑의 아픔을 이해하기 시작한 내용은 이날 윤상이 언급한 ‘성숙’의 표현으로 보인다. 향후 새로운 삼부작이 어떤 내용들로 채워질지를 미리 알 수는 없지만, 이제는 쓴맛의 존재를 알고 이를 염두에 둔 인물상이 표현될 것임을 상정할 수 있다.
Destiny
이미 당일 0시에 뮤직비디오와 음원이 공개된 상태였기에 곡이 낯설지는 않았다. 자연히, 개인용 감상 장비와 현장 사운드의 차이에 주목하게 되었다. 이날 기자 쇼케이스 사운드는 보컬이 잘 들리지 않는 아쉬움을 남겼는데, 작은 볼륨임에도 무대 앞쪽으로 나왔을 때 아주 짧은 하울링이 발생한 것으로 보아 콘솔에서 실시간으로 음량을 조절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뮤직비디오 음원과 반주의 경우 적절한 밸런스가 잡혀 있어, 라이브 보컬을 제외하면 원곡의 의도를 큰 음량으로 즐길 수 있는 환경이었다고 판단된다.
특히, 맹렬하게 날뛰는 베이스의 움직임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은 플러스 요인이었다. 이는 러블리즈의 전작들에서 베이스가 절제된 듯 들리던 것과는 사뭇 다른 감상을 안겼다. 수시로 곡의 흐름을 끊어가던 ‘아츄’와 비교해 구조적인 기복이 적어 많은 이들이 ‘90년대풍’이라 지적하기도 하지만, 비트에 집중할 경우 지속적인 흐름이 중요한 곡임을 알 수 있다. 굵은 선을 그리며 위협적으로 움직이는 베이스는 그 자체로, 곡의 내용적 모티프인 천체의 움직임처럼 끝없이 거대하게 돌아가는 것이다. 특정한 지점에서 폭발하기보다, 무겁게 이어지는 비트가 보다 세밀한 변화를 통해 완급을 조절하는 방식이다. 윤상의 아이돌 작곡이 지나치게 과거회귀적이라 느끼는 이가 있다면, 이런 부분에서 윤상의 21세기 커리어를 느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특성이 뮤직비디오를 통해 감상할 때는 다소 묻히는 점도 없지 않다. 곡 자체도 공간이 꽉 차 있는 데다, 비디오도 시각적인 의미의 레이어가 많아 감상자의 신경이 분산되기 때문이다. 현장에서도 뮤직비디오 상영과 실제 무대는 사뭇 다른 인상을 주었는데, 퍼포먼스가 중심이 되는 무대에서는 안무가 음악의 동세를 잘 표현해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천체도의 움직임 같은 안무
안무는 러블리즈의 과거 곡들에 비해 다소 격한 동작들이 포함되었다. 이는 가요적 멜로디나 격정적인 분위기와 함께 ‘여자친구를 의식한 것이 아닌가’하는 짐작을 낳기도 한 부분이다. 뮤직비디오에서는 (특히 브리지의 마지막 부분을 보라) 억제된 감정의 표현과 병행되어 균형을 잡아내지만, 무대에서는 어쩌면 현장 특유의 들뜬 공기로 인해 분위기의 조절이 쉽지만은 않을지 모를 부분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기자 쇼케이스는 차분한 분위기였기에 지나친 흥분이 일어나는 일은 없었는데, 향후 러블리즈의 무대를 지켜볼 때 얼마나 무대가 격하게 느껴지는지가 관람 포인트 중 하나일 수도 있겠다.
당일 현장 무대에서 두드러진 것은 대형의 이동과 회전하는 안무들이었다. 특히 턴 동작은 지금까지 아이돌 씬에서 많이 있었지만, 발레 동작을 연상시키는 페미닌한 턴이 갖는 효용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때론 그 ‘여성미’가 과장되기도 하고, 발레의 기호와 여성미가 도식적으로 조합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해야겠다. 대형의 변화를 중심으로 한 ‘Destiny’의 안무는 각 멤버들 역시 회전 중심의 동작을 곁들이곤 하는데, 이를 통해 대형의 이동에 가속도가 붙는 듯한 동세를 강화하면서 큰 곡선을 그리게 된다. 또한 자전과 공전이라는 곡 내용의 모티프도 함께 형상화한다. 콘셉트에 직결돼 있기에 얼마나 일반화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묵직해진 사운드와 어울려 맹렬한 분위기 속의 페미닌한 움직임을 표현하는 안무는 아이돌에서 ‘여성적’인 동작과 동선의 활용에 있어 작은 진일보를 보였다고 해도 좋겠다.
‘윤상의 페르소나’
기자 질문 세션에서는 알려진 대로 윤상을 향한 질문이 큰 비중을 차지해, 그가 농담처럼 ‘러블리즈의 아홉 번째 멤버’로 멤버들 옆에 나란히 서 보이기도 했다. 기자의 질문에서도 등장한 ‘윤상의 페르소나’라는 워딩은 사실 러블리즈의 경우에 맞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페르소나는 대리인으로서의 현신을 의미하며, 피노키오를 제페트 영감의 페르소나라고 부르진 않기 때문이다. 보도된 것처럼 윤상은 러블리즈의 “상큼함을 성숙미로 덮는다”는 것은 기우에 불과하다고 일축하며 ‘철이 들지 않음’이 자신뿐 아니라 원피스 멤버들이 공유하고 있는 것이라 발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윤상의 (정서적, 육체적) 나이가 관건이 되는 것은, 그래서 기자들도 이 부분에 집중한 것은, 결국 ‘윤상의 페르소나’라는 프레임 안에서의 일이다. 어쩌면 러블리즈와 윤상의 파트너십에서 향후 중요한 과제가 되는 것은, 차라리 ‘윤상의 제자’나 ‘윤상의 인형’이 될지언정 강수지 또는 ‘윤상의 페르소나’와 거리를 두는 스탠스는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윤상이 멤버들에게 새 앨범 활동의 각오를 물으며 “Show me what you got”라고 발언한 것과, 케이의 “새로운 상징의 앨범성, 아니 새로운 앨범의 상징성” 발언이 기억에 남는 쇼케이스였다. ‘Destiny’와 “A New Trilogy”를 통한 러블리즈의 훌륭한 활동, 그리고 그에 대해 많은 곳에서 이뤄질 보다 깊은 비평적 접근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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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replies on “리포트 : 러블리즈 “A New Trilogy” 쇼케이스”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예쁘게 잘 부탁드립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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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