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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내외로 여러 복잡스러운 미시적 상황과 결성 7주년을 맞이한 거시적 상황까지 고려했을 때 “Queendom”은 그룹의 존속 여부를 판가름할 수도 있는 아주 중요한 시험대와 다름없었다. 무엇 하나 확신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Queendom’이 좋은 성적을 이뤄낸 것에는 ‘음파음파’를 연상시키는 청량한 멜로디와 듣기 편한 탑라인, 직관적인 파트 구조 등의 이지-리스닝적 요소를 포함한, 아주 치밀하고 디테일하게 짜인 제작 과정의 공이 크다.
그중 하나는 곡 길이인데, 가장 이상적인 리드 싱글의 러닝타임(3분)을 칼같이 지켰다. 발매 전 선공개하며 화제가 됐던 ‘라띠라뚜빠빠비라’ 파트 등 중독성 있는 구간을 반복해서 후크송으로서의 위치를 점할 수도 있었지만, 그 파트를 딱 2번만 삽입하여 절제의 미학을 지켰다. 또한 비트의 무게감(베이스)을 크게 덜어내고 가벼운 터치감(트레블)을 강조하면서 여러 번 들어도 쉽게 질리지 않고 귀에 착 감기게 만든 프로듀싱 방향을 엿볼 수 있다.
곡의 프로듀싱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 함께하며 완벽해진 멤버들 간의 보컬 밸런스 역시 퀄리티에 큰 축을 담당하고 있다. 중심을 잡는 슬기의 딴딴한 보컬, 조이의 상징적이고 독보적인 음색, 능수능란하게 파트를 넘나드는 아이린의 존재감, 적재적소에 딱 들어맞는 톡톡 튀는 예리의 목소리 등 빈틈없는 멤버들의 보컬 합과 함께 나 돌아왔노라 당당하게 선언하는 ‘레드벨벳’ 웬디의 속 시원한 보컬을 들을 수 있는 것은 분명한 축복일 것이다.
한편 그룹의 커리어를 돌아보는 컴백 프로모션 ‘Queens Archive’나 팬들에게 건네는 듯한 따스한 가삿말 등이 향수를 자극하고 애틋한 멜로디를 강조하는 듯하다. 하지만 지금이야말로 “Climax”라고, 어떠한 시련에도 강하고 아름답게 빛날 수 있다는 임파워링 주제를 외치는 멤버들의 소리에는 아주 뚜렷한 확신 역시 담겨있다. ‘Queendom’은 레드벨벳 앞에 펼쳐질 끝나지 않는 새로운 막을 위한, 강렬하고 또 보드라운 행진가다.
레드벨벳은 타이틀 곡뿐만 아니라 수록곡 역시 알차게 구성하는 원조 ‘수록곡 맛집’으로 유명한 만큼 한 곡씩 음미하면서 앨범을 즐길 때 그 진가가 드러난다. ‘Pose’는 높낮이 없는 찬트, 당당한 애티튜드가 f(x)를 연상케 하는 곡으로, 곡의 주제와 당돌한 캐릭터성이 잘 어울리는 예리와 ‘Taste’ 이후 오랜만에 랩 파트를 맡은 웬디의 활약이 돋보인다. 이번 앨범의 베스트로 뽑고 싶은 ‘Knock On Wood’는 묘하게 뒤틀린 박자의 신디사이저가 으스스한 동화 분위기를 조성하고, 당돌하면서 수줍은 화자나 ‘Cool World’의 오즈(Oz) 키워드 등이 등장하며 정규 1집 “The Red”의 향수를 일깨우는 반가운 트랙이다. (“Give me give me some love-luck”과 같은 귀여운 레퍼런스도 재밌는 요소 중 하나이다)
이어지는 ‘Better Be’는 ‘Velvet’ 콘셉트에 가까운, 베이스 & 비트 중심의 드라이한 튠을 선보인다. ‘In & Out’ 속 화자의 집착적인 태도와 유사한 가사 내용 역시 재밌는 포인트다. 그 반대로 ‘Pushin’ N Pullin”에서는 “Rookie”나 “Russian Roulette” 속 사랑에 서투른 화자가 이제는 상대의 불안함을 모두 이해하고 안아주는, 시간이 흘러 성숙해진 태도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리고 ‘다시, 여름’은 지금까지 함께 한 추억을 되새기며(아카이빙) 감사한 마음과 다시 만날 날에 대한 소망을 전하는 훌륭한 마무리 역할을 수행한다.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은 후렴구에서 베이스 근음과 겹치는 킥 비트 음량이 갑자기 커져 마지막을 장식하는 여운과 감동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작가의 의도일 수도 있겠지만 이 정도는 믹싱 단계에서 잡아냈어야 하지 않나 싶다.
이번 앨범이 유독 레드벨벳의 일대기를 기록하고 회상하는 것처럼 느껴졌던 이유는 (아카이브 영상이나 중간중간 과거 앨범들의 레퍼런스도 있겠지만) 지난 공백기 동안 멤버들의 솔로 앨범을 거쳐오면서 무심코 인지하지 못했던, 레드벨벳으로서의 멤버들만이 보여주는 특유의 디테일한 음성적 요소를 고스란히 구현해냈기 때문이다. 특히 툭 내뱉는 듯 코러스를 넣는 방식, 백보컬이 들어가는 위치와 목소리의 톤처럼 사소하지만 오직 그룹에서만 느낄 수 있는 짜릿한 화음의 조화는 레드벨벳의 특출난 강점 중 하나다. 대표적으로 ‘Pushin’ N Pullin”에서 조이가 조이답게, 예리가 예리답게 자신의 목소리를 사용해서 다른 멤버들의 보컬을 받쳐주는 모습은 미처 생각지 못한 깊은 노스탤지어를 느끼게 한다.
“Queendom”은 그룹이 변화의 기로 앞에 선 중요한 시점에서 대중적 성공과 음악적 성과까지 거두며 레드벨벳이라는 브랜드의 정체성과 가치를 회복하고 더 나아가 새로운 청사진까지 제시해준 의미 깊은 앨범이다. 쉽게 넘보지 못할 여왕들의 고유한 영역을 선언한, 그야말로 퀸덤의 이름에 걸맞은 이들의 모습을 하루빨리 더 만나보고 싶은 바람이 가득하다.
글: 비눈물
좋아하는 것을 듣고 끄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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