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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thly : 2021년 10월 – 앨범

2021년 10월 아이돌팝 발매작 중 정규앨범을 중심으로 주목할 만한 앨범을 다룬다. 에스파, 우즈, 엔플라잉, 픽시, 엔하이픈, CL, 전소미 등.

2021년 10월 아이돌팝 발매작 중 정규앨범을 중심으로 주목할 만한 앨범을 다룬다. 에스파, WOODZ, 엔플라잉, 픽시, 엔하이픈, CL, 전소미 등.

Savage
SM 엔터테인먼트
2021년 10월 5일
놓치기 아까운 음반

스큅: 한 마디로 SM의 온고지신이다. 낯선 콘셉트를 관철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던 'Black Mamba'와 'Next Level'이 음악적인 면에서 새로움을 제시하기보다는 "고전 SMP식 근본 없는 선언의 태도"("결산 2020: ①올해의 신인 7선" 中)를 이관하는 데에 주력했다면, 첫 앨범 "Savage"에 이르러서는 음악적인 도약이 분명하게 감지된다. 차갑고 날카로운 금속성의 사운드와 둔탁한 타격감으로 귓가를 이지러뜨리는 'Savage'와 'ICONIC'은 소위 '하이퍼팝'의 맵시를 케이팝의 문법에 맞게 구현해내고, 'I’ll Make You Cry'는 SM이 천상지희 더 그레이스 이후로 오래간 묻어두었던 파괴적인 걸그룹 상을 극한으로 밀어붙인다. 샤우팅으로 세계관의 포석을 까는 인트로 트랙 'aenergy'와 몽환적이면서도 긴장을 완전히 이완시키지 않는 아웃트로 트랙 '자각몽' 역시 제 기능을 다 하고 있고, 단선적인 내러티브의 신나는 댄스곡 'YEPPI YEPPI'는 난해하게 여겨질 수 있는 사뭇 비장한 앨범 가운데 완충장치를 마련한다. 일전의 'Next Level'의 히트로 에스파는 이미 궤도에 올라선 셈이나, SM의 음악적 야심이 보다 본격적으로 실체를 드러낸 데뷔 EP를 통해 결코 부인할 수 없는 독보적인 입지를 획득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H.O.T.의 '열맞춰!', 동방신기의 'Rising Sun' 등으로 대표되는 고전 SMP를 2021년의 재료로 구현해낸 타이틀곡 'Savage'를 들으면서는 보아 이후로 20년 만에 여성 아티스트에게 정통 SMP의 혁신가 역할이 부여되었다는 데에 모종의 쾌감도 느끼게 된다. 에스파를 통해 이루어질 SM의 '오래된 미래'의 혁신을 더욱 기대해본다. 여담으로, SM의 또 다른 혁신의 장이라 할 수 있는 iScreaM 프로젝트에서 "Savage" 수록곡들의 리믹스 역시 꼭 만나보고 싶다.

심댱: 지난 5월 대중의 알 수 없는 관심 망에 포착된 신인, 에스파에게 주어진 미션은 윤곽이 채 드러나지 않은 세계관을 ('Next Level'의 흥행과는 별개로) 얼마나 흥미롭게 제공할지였을 것이다. 자신만의 클래식, 이른바 '오래된 미래'를 구현하는 SM식 작법은 2021년의 에스파에게도 적용하여 이들의 미션을 너끈히 달성한다.
소녀시대와 샤이니 등 멤버들의 이름이나 (보컬이나 랩이 아닌) 포지션을 유영진 스타일로 엮어내는 인트로 트랙 'aenergy'로 에스파의 포지션과 조금은 "거칠고 사나워"진 모습을 예상할 수 있다. 에스파가 약간은 신경질적인 짜증과 아무렇지 않은 듯한 허세가 교차하는 'Savage'로 메인 빌런인 블랙맘바를 해치우고 나면, 세계관에서 파생된 이들의 표정들을 확인할 수 있다. 에스파는 있지와 (신한은행 프로젝트 크루) 팀 패스파인더가 공유하는 당찬 MZ세대를 노래하기도 하고('YEPPI YEPPI'), 환멸만 남은 관계로 인해 차가워진 얼굴('I’ll Make You Cry')은 물론 매끄러운 멜로디와 포부를 능숙하게 섞어내는 여유로움을('ICONIC') 가지고 있다. 에스파의 다양한 표정을 목격하느라 얼얼해진 귀를 느슨하게 풀어주는 아웃트로이자 레드벨벳의 아련한 정서를 이어가는 '자각몽'에 조금 더 주목해본다. 아직 레퍼토리가 부족하지만, 적어도 'Forever (약속)'보다는 이들의 세계관과 역량 모두 어색함 없이 커버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메타버스'는 에스파 세계관 사전 속 '환각 퀘스트'와 다를 바 없으며, 진짜는 'KWANGYA'라는 배경으로 뚝심 있게 밀어붙이는 프로덕션이라고 본다. SMP라는 정형화된 양식과 세계관이 여성 아티스트에게 적용될 때 어떤 시너지가 날지 더 두고 봐야 알겠지만, 'KWANGYA'가 마냥 허황된 공간이 아님에 의심을 살짝 누그러뜨리기에 충분한 앨범이라 할 수 있겠다.

ONLY LOVERS LEFT
위에화 엔터테인먼트 코리아
2021년 10월 5일

스큅: 힙합 기반의 곡으로 활동하던 그룹 유니크 출신으로 '루이지'란 랩 네임을 사용하며 〈쇼미더머니 5〉에 도전장을 내밀던 이력을 가지고 있지만, 의외로 WOODZ의 음악에서는 일관적으로 록의 영향이 묻어나고 있다. "ONLY LOVERS LEFT" 역시 마찬가지다. 재밌는 점은 록을 차용하는 아이돌팝의 통상 문법과 달리 그것이 그다지 위악적이거나 반항적인 태도로도, 전형적인 ‘청춘’ 이미지의 발현으로도 소화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록을 특정한 심상을 나타내기 위한 도구로 동원한다기보다 자기 나름의 언어로 체화해내 구사하고 있다는 인상인데, 비극적인 사랑의 기승전결 서사를 로킹하게 극화시키기보다 짐짓 무게 잡지 않고 유희적으로 흘려보내고 있다는 점에서 그것이 가장 도드라진다. 뮤직비디오가 피폐하리만치 처연한 감성을 그리고 있음에도 가뿐하고 미끈한 감각이 더 돋보이는 타이틀곡 'Waiting'의 미묘한 온도 차가 흥미롭다.

TURBULANCE
FNC 엔터테인먼트
2021년 10월 6일

하루살이: 'Sober'는 나른하고 몽롱한 듯하지만, 기저에는 드럼이 들끓고 있다. 명쾌했던 'Moonshot'과 달리 진행감이 어지러이 맴돌다 꿈결처럼 흩어진다. '옥탑방' - '봄이 부시게'와 비슷한 구도로도 보이는데, 삶에는 반짝이는 찰나보다 갈피 잃은 마음이 흔하기에 곱씹어 듣게 된다. '피었습니다.'는 'Autumn Dream', 'Starlight' 등의 곡들과 같이 나란한 관계의 장단조를 혼용하며 이들이 꾸준히 추구하는 위로의 정서를 관통한다. 동시에 어쿠스틱 기타를 메인으로 내세워 기존 곡과 동어 반복을 피한다. 불가피한 시간의 흐름과 변화를 강한 장조 진행으로 끝맺어 가사의 역설적 표현을 강화하고 결말을 눈물에서 건져낸다. 일렉 기타가 날카롭게 자기주장을 펼치는 'Video Therapy'는 쫀쫀한 베이스 슬랩에 스크래치 샘플과 랩이 속도감 있게 질주한다. 감상자를 노래의 구성원으로 끌어들이며 앨범은 방향을 되찾고 다시 'Moonshot'을 향해 비행한다. 이로써 "TURBULENCE"는 "Man on the Moon"의 에필로그인 동시에 프롤로그가 된다.

Fairyforest : Temptation
올라트 엔터테인먼트
2021년 10월 7일

스큅: 픽시의 데뷔 싱글 평에서 "드림캐쳐의 데뷔 초기 방향성을 블랙핑크와 에버글로우의 방법론으로 풀어낸 듯 보"인다는 코멘트를 남긴 바 있다. 그러나 지난 앨범 "Fairy forest : Bravery" 때부터 엿보이는 상기한 세 그룹과의 확고한 차별점이 있다면, 픽시가 사실상 보이그룹 ‘후까시’의 정석을 구현하고 있다는 점이겠다. 더블 타이틀곡 'Addicted'와 'Bewitched'의 단호하게 내리찍는 리듬과 디스토션이 한껏 걸린 사운드는 소위 '딥 다크' 보이그룹에서 주로 찾아볼 수 있던 종류의 박력을 주조해내고, 힘이 바짝 들어간 퍼포먼스도 그를 충직하게 뒷받침한다. 심지어 팬송 격의 처연한 발라드 트랙마저 무게감 있는 통속성을 내재하고 있다.
멤버 구성은 흡사 에버글로우의 보컬과 드림캐쳐의 랩을 합쳐놓은 양 얇은 하이톤의 보컬과 두터운 저음역의 랩이 뒤섞인 모양새다. 타이틀곡에서는 이들이 균형을 이루기보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날뛰도록 방생해놓은 듯 보이는데, 여기서 비롯되는 덜컹거림은 호러 이미지의 주축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곡의 응집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자리해 양날의 검과도 같다. 파트 간 단차가 크지 않게 디자인되어 말쑥한 매무새를 자랑하는 수록곡 'Moonlight'에 주목하며 이 그룹의 미래에 기대를 더욱 걸어본다.

DIMENSION : DILEMMA
빌리프랩
2021년 10월 12일

마노: 이모(emo)한 향취가 한껏 느껴지던 전작에 비해 조금은 가벼워진 듯한 인상의 첫 정규 앨범. 두터운 베이스 라인이 곡을 주도해가는 ‘Tamed-Dashed’를 위시하여 길지 않은 러닝타임 내내 적절한 완급 조절로 여러 장르를 오가는 솜씨가 상당하다. 와중에 잊지 않았다는 듯이 ‘Blockbuster’나 (인트로의 기타 리프가 너바나를 연상시키는) ‘Attention, please!’와 같은 로킹한 곡을 배치한 점에서 이모 감성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의지(?)가 읽히기도. 한편 타이틀곡도 그렇고 앨범 전반에서 일관된 계절감이 감지되는데, 실제 발매 시기와는 상당한 간극이 있어 그 점이 못내 아쉽게 느껴지기도 한다. 마지막 트랙이 ‘Outro’가 아닌 ‘Interlude’라고 되어있는 것으로 보아 어김없이 리패키지를 발매할 예정인 것으로 생각되는데, 리패키지 발매작 혹은 후속 발매작을 통해 어떤 음악적 세계관을 더해갈 것인지 궁금해진다.

심댱: 3개의 버전, 그리고 여러 가지 설정들 사이에 자신의 위치를 가늠하는 엔하이픈이 그리스 신화의 설정을 빌려 치열하게 고민하는 순간을 그렸다. 스킬라와 카리브디스라는 두 괴물 사이를 건너야 하는 오디세우스처럼, 진퇴양난의 순간에 놓인 이들의 고민은 케이팝 아이돌을 수행하는 사람으로서 자못 현실적이다. 꿈만 같던 데뷔 이후 이어지는 아이돌의 일상에 길이 들지, 아니면 평범한 나날로 돌아가야만 할지. 그러나 이들은 그런 고민을 뒤로 한 채 "일단 뛰어" 본다. 이 질주는 경쾌한 기타 리프와 보컬에 강하게 입한 리버브 효과를 만나 화자가 품은 뜨거운 고민을 한결 식혀준다. 한편 이들은 저년차 케이팝 아티스트에게서 일종의 공식과 같은 청량 콘셉트를 소화했는데, 깨끗한 미성 위주의 보컬 라인에 어우러지는 청량함은 다소 과도한 콘텍스트에 짓눌려 보였던 멤버들을 도드라져 보이게 했다.
전보다 가벼운 톤이라 해도 이들의 장대한 스토리는 수록곡을 통해 쉴 틈 없이 선보인다. 타이틀 곡의 칠(chill)한 분위기를 이어가는 'Upper Side Dreamin’'은 광란의 카니발-화려한 아이돌 생활-에서 소년이 느꼈을 오묘한 감정을 생각해보게 하면서도, 세계관을 한시도 잊지 말라는 넛지(nudge)로 기능한다. 그 밖의 수록곡은 세계관 더미를 가로지르는 소년의 내면을 조명한다. "근자감"처럼 보일지라도 "Screen 안속 세계에서만큼" "boss"가 되겠다는 패기('모 아니면 도', 'Blockbuster'), 그리고 청자에게 밀착하며 스토리의 몰입도를 높이는 로맨스('몰랐어'와 'Attention, please!')가 바로 그것이다. 종으로 횡으로 흩어지는 소년의 질주를 정리하는 'Interlude: Question'은 전작과 다른 표기가 눈에 띄는데, 무수한 선택지를 앞에 둔 이들의 고민이 쉽게 끝나지 않을 거라는 의미부여를 더하면 나름대로 납득할 수 있다.
다만 수록곡 중 가장 부드러운 '몰랐어'가 리스트 상에 가장 이질감이 느껴지는 트랙이었다. 전작 'BORDER' 시리즈와의 연관성도, 청자(팬덤)와의 강한 밀착도 좋지만 강렬하게 내리꽂는 트랙 사이에서 몰입을 흩뜨려 놓아 아쉬웠다.
엔하이픈의 세계관은 비현실적인 설정이 더해져도 현실적으로 들리는 독특한 구석이 있다. 데뷔 전후의 감정을 관찰하거나("BORDER" 시리즈) 꿈에 대해 고민하는 등("DIMESION") 아티스트 앞에 놓인 현실을 기반으로 스토리를 구축하기 때문일 테다. 그렇기에 이들의 이야기가 처음에는 복잡하게 들릴지라도, 이에 길이 든다면 '익숙한 낯섦'을 조우할 수 있다. 소년의 성장기라는 '익숙한' 바탕 아래 이들의 고민을 '낯설게' 비추는 "차원"의 문 앞에서, 너무 오래 머뭇거리지 않기를 바란다. "정답이 아니라 해도" 꿈에 함빡 젖은 얼굴로 "그냥 뛰어"드는 소년들의 시기는 당신을 기다려줄 정도로 길지 않으니 말이다.

ALPHA
Very Cherry
2021년 10월 20일

스큅: 그의 +인스타그램 시그니처 표기법+ 속에 공백기 중의 날짜가 새겨진 곡들을 순차적으로 발매했던 "사랑의 이름으로"가 허심탄회한 일기장의 형식을 빌어 묵은 세월의 짐을 정리하는 프로젝트였다면, +시그니처 표기법+을 벗은 "ALPHA"는 사색을 딛고 바깥세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굳건한 결의를 보여준다. 앨범에서는 전 수록곡에 걸쳐 진하게 발자국을 찍는 듯 대찬 타격감이 돋보이는데, 그것이 비장하면서도 과중하지 않게, 그리고 힘 있으면서도 기복 없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 괄목할 만하다. 앨범과 함께 공개된 라이브 퍼포먼스 비디오는 일찍이 글로벌 청중의 호응을 끌어냈던 "나쁜 기집애"의 온전한 귀환을 알리고 있다.
리드 싱글 'Tie a Cherry'는 앨범의 곧은 방향성을 가장 잘 표상한다. 혀로 체리 꼭지를 묶을 수 있으면 키스를 잘한다는 속설에서 착안된 가사에는 다양한 '입맞춤' 아래 결과물을 내놓던 그가 홀로서기를 이뤄내는 여정이 녹아들어 있다. "Been around long enough to know what I like / 내 모습만 믿어 오직 Me Myself and I"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자존의 어구들은 한 옥타브를 거의 벗어나지 않는 단단한 중저음역 안을 이리저리 유영하며 오롯한 CL만의 구역을 선포한다. 또한 CL의 상징 과일 격의 '체리'를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다 선언하는 것은 오랜 성찰 끝에 얻어낸 자아의 화합을 암시하기도 한다. 이채린으로서 삶의 길이와 CL로서 삶의 길이가 동등해진 시점 두 자아의 결합을 그려냈다는 앨범의 정중앙에서 "Ms. Cherry"라는 새로운 자아는 그렇게 싹튼다. '나쁜 기집애', 'Hello Bitches' 시기 'CL'의 발산적인 에너지 속에 "사랑의 이름으로"에서 내비친 '이채린'이라는 코어를 채워넣은 것에서 "Ms. Cherry"가 탄생한 것이 아닐까.
앨범에서 도드라지는 또 다른 곡은 본래 2NE1 버전을 준비하던 곡으로 알려진 'Let It'으로, 데이식스의 작곡 파트너이기도 한 홍지상의 투박한 가요 감성과 영어를 최소한으로 사용한 CL의 작사가 내로라하는 해외 작곡진의 참여로 매끈한 글로벌 팝을 지향한 트랙들 사이에서 시리게 반짝인다. 급작스럽게 기약 없는 이별을 고해야 했던 2NE1의 마지막 곡 '안녕' 이후 4년 만에 "걱정하지 마 흘러가면 돼"라는 씩씩한 미소를 마주할 수 있게 되어 반가울 따름이다. 마지막 후렴에 삽입된 박봄의 목소리와 짧게 공개된 3인 버전의 데모를 들어 보면 철저히 네 멤버의 앙상블을 위해 디자인된 곡임이 느껴져 조심스레 2NE1의 재결합에 대한 기대를 품게 되기도 한다.
무지 노트와 같은 비교적 단출한 사운드 편성을 채워나가던 "사랑의 이름으로"의 꿋꿋한 필압(筆壓)은 드넓은 무대를 가르는 "ALPHA"의 거센 발구름이 되었다. 그리고 그의 발걸음은 그저 "ALPHA", 즉 이제 막 시작일 뿐이다. 더욱 단단해진 자아를 바탕으로 거침없는 모험을 단행해갈 이채린을, CL을, Ms. Cherry를 지지한다.

조은재: 날이 갈수록 잘 벼려지고 있는 날카로운 펀치라인은 그 어떤 형식에도 구애받지 않고 트랙 위를 자유롭게 유영한다. 여기서 형식이란 언어적 문법과 음악적 작법을 모두 아우른다. 단순히 멀티링구얼로서 여러가지 언어를 능숙히 사용하는 것 이상으로, 메시지를 직관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가장 알맞은 언어를 배치해냄과 동시에 길지 않은 적당한 길이로 재단하여 곡과 리드미컬하게 달라붙게 한다. 그리하여 그는 무엇을 말하고 노래하든 어색함이 없고 자연스럽다. 묵직한 비트 위에 쨍하게 던져지는 랩이 시그니쳐였던 것과 달리 "ALPHA"의 타이틀곡 'Tie a Cherry'는 감성적이다 못해 다소 처연하기까지 한 멜로디 위로 다소 비장하기까지 한 성찰적인 가사가 흐른다. 여러모로 CL의 디스코그라피에 있어 포인트가 될만한 싱글인데, 이런 곡이 '체리 온 탑'처럼 앨범 안에서도 한 가운데에 배치되어 있는 것 또한 인상적이다.

XOXO
더블랙레이블
2021년 10월 29일

마노: 새로운 싱글인 ‘XOXO’를 타이틀로 내세워 지금까지 발매해온 싱글컷 트랙을 모아놓고 약간의 신곡을 추가하여 발매한 첫 정규 앨범. 타이틀곡 ‘XOXO’는 그간 전소미가 꾸준히 연기해온 하이틴 콘텍스트의 연장선상에 있는 곡인데, 뻔한 캐릭터를 뻔하지 않고 능청스럽게 소화하곤 했던 발군의 연기력이 곡과 큰 시너지를 일으키지 못하는 점이 아쉽게 다가온다. 기존의 싱글 컷 트랙을 어떻게든 유기성 있게 엮어보려고 노력한 점도 눈에 띄지만 결국은 ‘싱글 컬렉션’에 그치고 말았다는 인상. 케이팝보다는 팝에 더 가까워 보이는 ‘Anymore’와 자작곡 ‘Watermelon’이 인상이 흐릿한 앨범의 만듦새에 그나마 약간의 숨구멍을 틔우며 일말의 가능성을 엿보이게 한다. 이미 했던 이야기이긴 하지만, “아티스트에게 있어 이런 캐릭터가 얼마나 더 유효할 수 있을지도 앞으로 고민”하는 것이 앞으로의 숙제가 되리라는 생각이 다시금 든다.

조은재: 'BIRTHDAY'와 'DUMB DUMB'이 갖고 있던 생동감을 기대했던 사람에게 'XOXO'는 왠지 차분해지는 트랙으로 느껴질 수 있겠다. 후렴에 울리는 합창은 성긴 밀도로 퍼져나가 가사가 갖고 있는 장력을 살리지 못한다. 다소 의외의 무드로 등장한 타이틀곡에 비해 전체적인 앨범은 대체로 이전 싱글의 결을 유지하고 있는데, 특히 자작곡 'Watermelon'의 멜로딕한 진행이 전소미의 음색에 알맞게 들어맞아 있는 것이 안정적으로 들린다. 앨범에서는 신곡의 앞뒤로 이전 싱글을 배치했는데, 전소미가 케이팝과 팝 각각의 영역에서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부분들을 충분히 부각하는 구성으로 앨범으로서의 완성도뿐만 아니라 전소미의 첫 번째 작품으로서의 의미도 상당함을 보여준다.

By Editor

idology.kr 에디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