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아이돌팝 발매작 중 정규앨범을 중심으로 주목할 만한 앨범을 다룬다. (여자)아이들, 스트레이키즈, 레드벨벳, 하이라이트, 크래비티, 오마이걸, NCT 드림 등.
예미: 많은 일을 지나온 뒤 내놓은 첫 정규 앨범의 제목이 "I NEVER DIE"라는 것은 일종의 결의로 읽혔다. 본작은 그 결의를 팀이 본래 가지고 있던 돌파력과 버무려 동시대적으로 풀어낸 결과물이다. 타이틀곡 'TOMBOY'는 앨범의 메시지와 목적을 한 곡에 압축했다. 완급 조절 없이 달리는 록 사운드와 이에서 파생된 이미지, "미친 연"부터 '삐-' 소리까지 동원한 거친 가사, 전 멤버의 힘 있는 목소리가 자기 존재 입증이라는 한 방향을 향한다.
이후 트랙은 다양한 스타일로 연애의 한 사이클을 그려낸다. 소연이 만든 '말리지 마', 'VILLAIN DIES'가 강렬한 이미지와 극적인 설정으로 픽션을 그리던 그의 특기를 연상케 한다면, 민니와 우기가 주도한 네 곡은 '현실 연애'의 여러 단면을 포착했다. 여러 멤버의 송라이팅 참여가 앨범의 결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 한편, 다채로운 곡 스타일이 한 여성 화자의 여러 발화 방식으로 해석되도록 여지를 남겨 앨범으로서의 연결성을 확보했다. 'LIAR'로 러브 스토리가 끝난 뒤, 'MY BAG'은 노래를 부르는 멤버들로 시선을 옮긴다. 싸이퍼 형식을 각 멤버의 캐릭터를 부각하기 위해 사용했는데, 소연과 함께 "five diamonds"의 매력을 되짚는 것이 흥미롭다.
결의로 시작하여 우여곡절을 거쳐 동료에 대한 자부심으로 끝나는 앨범의 구성은 단단한 자아를 강조한 제목을 상기시킨다. 제목이 현실이 된 이유는, "I NEVER DIE"의 자기 확신이 (여자)아이들과 청자 모두에게 간절히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예미: 'MIROH', '神메뉴', 'Back Door', '소리꾼' 등을 거쳐 "치기"와 "객기", 이에 더해진 콘셉추얼함은 스트레이키즈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되었다. 그 이상의 변주가 필요해진 시점에 발매된 "ODDINARY"는 경력에 따라 자연스레 나타나는 능숙함이 돋보이는 앨범이다. 타이틀곡 'MANIAC'은 발산으로 일관하던 전작들에 비해 비교적 유연한 무드를 보여주는데, 그룹 특유의 강한 에너지는 여전하지만 완급조절을 시도할 만큼의 여유가 생긴 것이 인상적이었다. 수록곡들은 그간 스트레이키즈가 선보인 여러 종류의 매력적인 곡들을 모아 놓은 듯하다. '땡'이 '토끼와 거북이' 류의 너털웃음 나는 유머코드를 보여준다면, 'Lonely St.'와 '피어난다'는 각각 청춘의 고난과 위로를 다룬 여러 곡을 연상케 한다. 사운드와 주제 의식 모두 이전까지 해오던 영역에서 그리 많이 벗어나지 않은 "ODDINARY"가 생각보다 큰 변화를 꾀한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깔끔하게 정돈'된 무언가를 선보인다는 것이 팀의 그간 모습과 거리가 먼 덕목이어서다. 활동 영역 확장을 앞두고 팀의 강점을 잘 추려낸 작품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앞으로 이들의 미래를 밝게 점쳐보게 된다.
비눈물: 'Feel My Rhythm'을 두고 클래식과 케이팝을 가장 영리하게 접목해낸 성과나 봄의 우아한 계절감 등을 주로 떠올리겠지만, 여기서는 조이가 도입부에 읊조린 "Red Velvet"에 대해 먼저 언급하고 싶다. 그룹 이름을 타이틀곡에 인용하는 일은 케이팝에서 꽤 흔한 일이나, 흥미롭게도 레드벨벳은 여태껏 가사에 "레드벨벳"이라는 단어를 단 한번도 사용한 적이 없었다. 이는 레드벨벳이라는 그룹의 외부 정체성이 내부의 음악관에 직접 접촉한 최초의 사례로, "견고한 아카이브를 통해 독자적으로 구축한 레드벨벳만의 영역"에 대한 당당한 공개 선언이기도 하다. SMCU 속 드넓은 '광야'가 그 존재감을 서서히 뻗치고 있음에도 꿋꿋히 오리지널리티를 지켜내겠다는 의지를 'Red Velvet' 한 마디에 담은 것이다.
'Feel My Rhythm'은 G선상의 아리아를 샘플링하며 이를 인트로에 잠시 등장시키거나 한 프레이즈를 잘게 쪼개 리믹스의 재료로 활용하는 보편적인 방식을 사용하지만, 동시에 과감하게 가장 유명한 구간을 통째로 후렴구에 삽입하기도 한다. 이는 선율의 익숙함에 기대는 편리한 기획일 수도 있으나 되려 곡의 존재감이 묻혀버리는 리스크 역시 간과할 수 없다. 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레드벨벳은 층층이 쌓아 올린 목소리의 조화와 조합(unison)을 활용하여 어느 한쪽도 넘치지 않도록 절묘한 균형을 맞춘다. 유니즌은 모두가 함께 가창하여 어느 누구의 목소리도 아닌 고유한 음색을 만들면서 동시에 선두에 나서는 개인이 특정되도록 미세하게 조정하는 작업으로, 데뷔 이래 꾸준히 이어져 2019년 "The ReVe Festival"부터 특히 강조되어온 레드벨벳의 장기이자 특징 중 하나로 꼽힌다. 이는 그룹 내 결속을 다지는 장치이면서 동시에 계속되는 변화 속에서도 레드벨벳만의 색채를 지킬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새로움과 독창성을 빠짐없이 챙기고자 하는 타이틀곡의 의도는 앨범으로도 이어진다. 수록곡 전반이 레드벨벳의 보컬적 강점이 가장 잘 드러나는 R&B 장르를 담고 있다는 점이나 'Rainbow Halo'와 'Beg For Me'에서 웬디와 조이가 랩을 맡으며 멤버 간 주력 파트를 스왑하는 등의 요소는 다섯 번째 EP "RBB"을 떠올리게 한다. ('RBB'의 뮤직비디오에서 명화(名畫)를 오마주했다는 점에서 'Feel My Rhythm'과 공통점을 갖기도 한다) 동시에 'BAMBOLEO'는 그룹 최초로 AOR (혹은 'K-시티팝') 사운드를 도입하여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또한 알 수 없는 인생의 무작위성을 달콤한 초콜릿 박스로 비유한 'Good, Bad, Ugly'는 부드러운 멜로디와 산뜻한 하모니를 통해 중간 템포와 감정의 속도를 조절하는 역할을 착실히 수행한다. 그 덕분에 그룹 특유의 잔혹동화를 그리는 'In My Dreams'의 극적인 보컬 퍼포먼스가 짙은 애절함을 온전히 전달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꼭 앨범 외부의 맥락과 연관짓지 않아도 이번 앨범은 그 자체로 듣기만 해도 즐거운 음악적 순간들로 가득 차있다. 첫 후렴 이후 "예고 없이 등장"하여 짜릿함을 안겨주는 신스 사운드처럼 음악과 가사가 동기화되는 순간이 돋보이는 'Feel My Rhythm', 조이의 애드립 끝을 얇게 흐리면서 툭 떨구는 낙차감을 통해 얼핏 빛났다 사라지는 무지개-사랑의 순간을 묘사한 'Rainbow Halo'처럼 곡에 새겨진 작은 디테일 하나하나가 앨범의 퀄리티를 한 단계 더 강화한다. 또한 'Beg For Me'에서 모든 상황을 통제하는 포식자의 울음소리('Ah-whoo')가 처음 울려 퍼질 때의 희열, 동일하게 동화풍을 그리는 "Rookie" 앨범 내 수록곡 'Happily Ever After'가 유쾌하게 동화를 배신하는 것과 반대로 "Happily forever after"를 언급하면서 꿈과 현실의 괴리감을 강조하는 'In My Dreams'의 달콤씁쓸함 역시 차곡차곡 쌓인 그룹의 레거시를 주춧돌로 삼아 더욱 더 화려하게 펼쳐질 축제의 여정을 기대하게 해준다.
마노: 팀명을 변경한 후로는 처음 발매하는 풀 렝스 앨범. 타이틀곡 'DAYDREAM'을 위시하여 (아마도 가장 업템포에 소란스러운 'Don't Leave'를 제외하고) 대체로 성숙하고 차분한 무드의 수록곡으로 적지 않은 볼륨을 꽉 채웠다. 활동 10년차를 넘긴 남성 아이돌에게 기대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모아놓은 듯한 인상인데, 이들이 본래 지닌 이미지와 썩 잘 어울리는 한편 어쩌면 팀의 또 다른 가능성을 닫아버리는 것은 아닌지 다소 저어되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특히 타이틀곡이 전작 '불어온다'와 큰 변별점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지나치게 안전함을 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싶어 다소 아쉬워지는 부분. 멤버 이기광이 다수의 곡('밤안개', 'Don't Leave', 'PLAY', '될 대로 되라고 해', 'Classic')에 참여하였고 손동운 역시 한 곡('시선')을 보탰는데, 일정한 무드를 유지하되 장르적으로는 나름의 다채로움을 꾀하였으나 메시지적인 부분에 있어 지나칠 정도로 일관된 것이 약간 권태롭게 들리기도 한다. 큰 모험을 감행하는 대신 본인들의 미덕을 지키는 선에서 최대한의 시도를 하고 있다는 인상인데, 그 중 어른스러운 매력이 돋보이는 'Seven Wonders'가 가장 귀를 잡아 끌었다. '팝'적이기 보다는 '가요'적으로 무척 잘 만든 앨범인데, 앞으로의 활동에서 팀 컬러를 지켜나가며 동시에 한 끗의 변별점을 만들어가는 것이 최대의 관건이 되겠다.
조은재: 정규 1집이 "The Awakening: Written In The Stars(이하 "PART 1")"과 "LIBERTY : IN OUR COSMOS(이하 "PART 2")"로 나뉘어 있는데, 앨범의 타이틀곡과 수록곡들이 서로 정반대의 콘셉트로 흐른다. 강렬한 레드와 무채색 위주로 연출되었던 'Gas Pedal'의 무게감이 부담스러울세라 'Celebrate', 'Grand Prix', 'Divin''과 같은 청량감 넘치는 정석적인 댄스 팝을 넣었던 "PART 1"과 반대로, "PART 2"는 청량감을 강조한 타이틀곡 'Adrenaline' 뒤로 비트감과 갱 보컬이 특징적인 'POW!', 'BOPPIN'', 'Chandelier'가 연달아 등장한다. 균형을 맞추려는 시도였는지는 모르겠으나, "PART 1"의 'Intro : New Horizon'부터 "PART 2"의 'Outro : In Our Cosmos'까지가 하나의 완성작임을 감안하고 감상했을 때 트랙 간 유기성이 잘 느껴지는 구조는 아닌 듯하다. 다만 "PART 1"의 마지막 트랙 'GO GO'의 어쿠스틱 기타 사운드를 "PART 2"의 첫 트랙 'Adrenaline'이 두근거리는 베이스 인트로로 받는 지점 정도가 미미하게나마 드라마틱한 연속성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앨범으로서의 완성도보다는 개별 트랙에서 '정규 1집 다운' 면모를 꽤 찾아볼 수 있는데, "PART 1"의 'VENI VIDI VICI'나 "PART 2"의 '좋아하나봐'와 같은 곡에서 준수한 퀄리티의 곡을 무리 없이 잘 소화해내는 이들의 저력을 발견해낼 수 있다. 두 장의 EP였거나 한 장의 정규 앨범과 리패키지로 발매했다면 앨범 구성상의 단점이 조금 보완되었을까 싶지만, 어수선한 구성을 멤버들의 퍼포먼스를 통해 최소한의 개연성을 형성하는 방식으로 보완하고 있어 아쉬움보다는 진척에 좀 더 주목해볼 법한 앨범이기도 하다.
마노: 약 2년 만에 발매하는 사상 두 번째 풀 렝스 앨범. 타이틀곡('Real Love')이 여타 활동곡에 비해 상당히 수수한 인상인데, 앨범의 전체적인 밸런스를 생각하면 적절한 안배였다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다소 아쉬워지기도 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후 이어지는 트랙들이 이 아쉬움을 어느 정도 해갈시켜주기도 한다. 템포 체인지로 매력적인 변화구를 던지는 'Drip', 팀 특유의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Eden', 하드코어하게 몰아치며 'Vogue'("THE FIFTH SEASON" 수록)를 상기시키는 'Replay', 미니멀한 구성이 돋보이는 'Kiss & Fix', 신나는 레트로 팝 넘버 'Blink' 등 '오마이걸이라는 팀이 할 수 있는 모든 것'과 '오마이걸이라는 팀에게 기대되는 모든 것'을 다 시도했다는 느낌을 준다. 첫 풀 렝스 앨범 "THE FIFTH SEASON"에서 보였던 다소 아쉬운 만듦새를 대폭 개선한 듯한 부분도 감지되는데, 'B612'("PINK OCEAN" 수록)의 연장선상에 있는 듯한 팬송 격의 'Dear Rose'와 발라드 넘버 '항해'로 적절한 쿨다운을 주어 앨범이 완전히 잘 봉합된 듯 느껴지게 만든 점이 특히 그러하다. 마무리가 좋았던 만큼 타이틀곡에 대한 아쉬움으로 이야기가 귀결되고 마는데, 포화될 대로 포화된 작금의 케이팝 신(scene)에서 '오마이걸만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다시 한 번 점검할 때가 된 것은 아닌가 싶다. 그러고 보니 곧 데뷔 7주년이다.
비눈물: 어쩌면 "Simple is best"라는 명제가 반드시 통하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앞서 빠른 템포의 댄스곡이 여러 번 반복되어 왔기에 'Real Love'에서는 오마이걸의 정체성을 되짚어보기 위한 일환으로 미디엄 템포와 이지 리스닝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 덜어냄의 정도가 좀 더 적절했다면 어땠을까. 가령 곡에서 4번 반복되는 후렴구에 여운을 잇는 포스트-코러스 혹은 마지막 후렴구 속 "만난 것 같은 섬의 pink빛 하늘을 빌려"와 같이 배리에이션을 주는 장치가 좀 더 마련됐다면 일관성에 따라오는 무료함을 해소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타이틀곡이라는 부담감을 제한다면 일찍 찾아온 여름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드라이브 송이겠으나, 그룹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정규 앨범의 리드 싱글로서는 다소 아쉬움을 남기는 곡 선정이다.
하지만 사실 'Real Love'는 앨범의 인트로 역할에 가깝고, "Real Love"의 본격적인 정수는 나머지 수록곡들에 담겨 있다. 앨범은 그룹의 과거 작품들을 차근차근 훑어 내려가면서 친절하게 현재의 오마이걸로 안내해준다. 이를테면 'Drip', ‘Replay'은 정규 1집 "THE FIFTH SEASON" 속 'Vogue', 'Checkmate'의 당당하고 시크한 애티튜드를 본격적으로 확장한 곡이고, 'Eden'의 아른하고 몽환적인 보컬 필터링 등의 음악적 장치와 '어른아이'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문맥은 '나의 인형 (안녕, 꿈에서 놀아)'와 일맥상통하기도 한다. 그렇게 차근차근 디스코그래피를 짚어가며 트랙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Real Love"는 여행 속 축제의 생동감을 온전히 전달하는 'Blink'와 데뷔 초 어린 왕자 스토리('B612')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맺는 'Dear Rose'의 엔딩 구간까지 도달하기 위한 긴 여정임을 깨달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공간의 확장을 그리고 기적을 말하는 맥락에서는 마치 '비밀정원'의 시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앨범의 일관적인 흐름이라는 관점에서 "Real Love"에 좀 더 적합한 순서가 있지 않았을까 작은 의문을 품게 하기도 한다. 현재의 트랙리스트 속 중반부는 마치 "NONSTOP" 앨범 아트 속 칸을 뛰어넘는 보드게임처럼 그 결이 들쭉날쭉한 편이다. 만약 적은 볼륨 내에 다양한 모습을 채워 넣는 미니 앨범이라면 적절한 안배겠으나, 하나의 긴 이야기를 이어가는 정규 앨범에 착 들어맞는 그림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앨범의 후반부는 손색없이 훌륭하게 마무리를 짓는다. '심해 (마음이라는 바다)'로부터 이어지는 발라드 트랙 'Sailing Heart (항해)'가 끝에 위치하며 정규 앨범의 서사를 잇고 'Real Love'의 Instrumental 트랙으로 여운을 남기며 전체적인 구성에 안정감을 부여한다.
한편 "Real Love"는 미미, 유빈, 아린처럼 리드보컬이 아닌 멤버들의 존재감과 비중이 부각되며 멤버 간의 간극 없이 그룹의 보컬 합이 조화롭게 발전한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이번 앨범을 통해 멤버들의 성장과 더불어 오마이걸의 음악 세계가 충분히 무르익은 만큼, 앞으로 오마이걸만이 보여줄 수 있는 고유한 모습이 무엇일지 심도 깊은 자기 분석이 필요하지 않을까.
스큅: 한동안 NCT의 유닛 간 음악적 경계가 모호해졌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있었지만, NCT 드림이 언제고 여타 유닛과 확실하게 구분되는 지점은 그들이 결코 유희적임을 놓지 않았다는 데에 있었다. 소위 '네오하다'는 모호한 수식어로 뭉뚱그려진 강렬하고 톡 쏘는 사운드를 휘두를 때에도 반음계를 적극 활용하는 밝고 쿼키(quirky)한 멜로디와 화성('Drippin'', '119', 'Ridin'', 'Diggity' 등), 비장하기보다는 활기찬 샤우팅('Stronger', '맛', 'Countdown' 등) 등의 요소들에서는 특유의 장난기가 항상 묻어나왔다.
'버퍼링 (Glitch Mode)'은 상기한 특색들이 고루 녹아든 타이틀곡이다. 새로이 돋보이는 부분은 독특한 구성미인데, 캐치한 안무가 더해진 단순한 코러스와 단단하던 흐름을 거듭 뒤틀며 서스펜스를 부여하는 프리-코러스, 곡에 급제동을 걸고 질주하는 브릿지를 뻔뻔스레 넘나드는 전개가 흥미롭다. 특히 브릿지의 일렉 기타 사운드를 이어받아 미묘하게 변주된 엔딩의 타격감이 상당하다. 1집에 이어 '청소년 유닛'으로서의 '성장 서사'에 구애받지 않고 그룹이 본래 보유하고 있는 것에 기초해 고유의 정체성을 확립해나가는 시도가 한층 더 안정되었다는 인상이다.
수록곡에서도 그룹의 익숙한 유산과 신선한 시도가 함께 나타난다. 유려한 악곡을 천진난만한 보컬로 펼쳐 보이는 'Better Than Gold', 'Rewind'는 그룹의 익숙한 매력을 보여주고, 힘차고도 스웨거 넘치는 랩이 주도하는 'Fire Alarm', 'Saturday Drip'은 그룹에 새로운 형태의 혈기를 주입한다. 그리고 이를 하나로 종합해내는 것은 물론 시종일관 가뿐한 멤버들의 애티튜드겠다. 작년 1집 리패키지 "Hello Future"에 이어 2집 "Glitch Mode"에서도 점점 견고해지는 그룹의 아성을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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