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은 그 어떤 때보다도 양질의 뮤직비디오가 많이 쏟아진 한 해였다. 이러한 흐름을 되짚어보며, 아이돌로지의 필진 3인(스큅, 마노, 조은재)이 Pick!한 2024년의 아이돌팝 뮤직비디오들을 간략한 한줄평과 함께 소개한다. 순서는 음원 발매순으로 정렬했다.
투어스 ‘첫 만남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
마노: 시종일관 반칙투성이인데, 당해놓고도 그저 웃게 만드는.
스큅: 헤테로-로맨스로 풀지 않은 ‘첫 만남’의 보편적인 정서를 아기자기하고 개운하게 담아낸다. 이들이 작년 한 해 대중적인 어필에 가장 성공한 보이그룹일 수 있었던 이유가 이 뮤직비디오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피원하모니 ‘때깔’
스큅: 곡을 시각적으로 잘 옮겨낸 뮤직비디오. 힙합 표방 그룹이지만서도 무게 잡지 않는 피원하모니의 ‘즐겜’ 애티튜드가 돋보인다.
태용 ‘TAP’
스큅: 작년 한 해 쏟아져 나온 NCT 멤버들의 솔로 작업물에서는 NCT라는 거대 시스템 안에 갇혀 있던 멤버들의 상이한 개성이 돋보였었다. 태용의 ‘TAP’ 뮤직비디오는 이를 시각적으로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크래비티 ‘C’est La Vie’
조은재: 경쾌한 소년미와 만화적 표현력의 ‘기분 좋은 텐션’.
싸이커스 ‘We Don’t Stop’
마노: 올드스쿨 미장센 위에서 경쾌하게 춤추는 젠지 소년들.
청하 ‘Eenie Meenie’
스큅: 어떠한 과장도 오리엔탈리즘적 타자화도 없이 서울의 로컬리티를 은근하게 잘 녹여낸, 보기 드문 뮤직비디오.
RM ‘Come Back To Me’
마노: “아니 영화 감독을 데려오시면 어떻게 해요”
영파씨 ‘XXL’
스큅: “난 더 원해 want more 아직 배고파 배가 터져 헐,ㅋ 되도 난 좋아” (선우정아 ‘Workaholic’ 가사 中)
키스오브라이프 ‘Midas Touch’
스큅: 아라크네, 헤라, 아프로디테, 메두사까지. 멤버들 별로 그리스신화의 여인들을 대응시킨 비주얼라이제이션이 탁월했다.
아이브 ‘해야’
조은재: 음악을 두 번 이상 듣게 하는 뮤직비디오는 이렇게 만든다.
아이브 ‘Accendio’
스큅: 사실 처음 봤을 땐 웬 충청도 구석 펜션 같은 로케이션이 뜬금없고 웃겼는데, 곱씹어보면 그게 곧 핵심이었던 듯하다. 어중간하게 현실적인 곳에서 느닷없이 펼쳐지는 마법소녀물.
조은재: 장래희망이 ‘마법소녀’였던 모든 이들을 위한 트리뷰트
82메이저 ‘촉’
스큅: 모든 보이그룹을 통틀어, 2024년 ‘멋’을 제일 잘 뽐낸 뮤직비디오.
트리플에스 ‘Girls Never Die’
스큅: 반전세계 속 ‘다시 만난 세계’. ‘다시 만난 세계’와 정반대의 소녀군상을 그려내고 있지만, 그 본질적인 메시지는 같다. “널 생각만 해도 난 강해져 울지 않게 날 도와줘”. 댓글창을 뒤덮은 수많은 간증들을 보며 참 오래간만에 “대중가요의 생명력”(멜론X서울신문 ‘K-POP 명곡 100’, 소녀시대 ‘다시 만난 세계’ 선정의 변 中)을 느꼈다.
에스파 ‘Supernova’
스큅: 올해의 뮤직비디오를 논할 때 연출도 멤버들의 캐릭터도 규격을 이탈해 마구 날뛰는 이 뮤직비디오를 절대 빼놓을 수 없다. 규격에 균열이 . 마침내 각성하여 폭주하던 멤버들의 얼굴을 AI 이펙트로 일그러뜨리며 이 ‘균열’을 완벽하게 성문화한 뮤직비디오의 마지막 시퀀스는 2024년 케이팝의 가장 진보적인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조은재: 한국에 마블 시리즈가 필요 없는 이유
XG ‘Woke Up’
스큅: 코코나가 삭발을 하는 순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분명 기존의 케이팝과는 ‘다르다’는 것을. 자신들이 지닌 케이팝 씬에서의 독특한 입지를 “은하계의 늑대들”이라는 캐릭터로 효과적으로 형상화해낸 뮤직비디오.
뉴진스 ‘Bubble Gum’
스큅: 격동의 시기에 나온 이 뮤직비디오가 그저 신기루가 아니길 간절히 바랐더랬다.
RM ‘Lost!’
스큅: 대중가수로서의 혼란을 결국 다시 대중가수로서 풀어내고 있는 RM의 인사이드아웃이 진중하고도 유쾌하게 담겨있다.
RM ‘Groin’
스큅: 다분히 시네필스러운, 수려한 미쟝센을 눌러담은 다른 뮤직비디오들도 인상적이었지만, 사실 편안한 차림으로 노래하며 리듬 타는 이 뮤직비디오가 제일 인상적이었다. 웰컴 백 투 베이직.
에스파 ‘Licorice’
스큅: 지난 날의 웅대한 세계관이 실은 우스운 게 맞았다고 속 시원하게 시인한 듯했고, 그 메타인지가 유쾌하고 좋았다. 호불호 갈리는 감초(licorice)를 민트초코로 치환해 그에 맞서 싸우는 전대물을 찍겠는다는 이 발상은 대체 누가 한 걸까.
에스파 ‘Armageddon’
스큅: 정형화된 ‘뷰티샷’을 과감하게 포기했다고 밝혔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뮤직비디오가 탄생했다. 한껏 넓어진 표현의 폭을 만끽하며 자신들의 역량을 오백분 발휘한 멤버들 및 스태프들에게 박수를.
마노: 현세대 케이팝 뮤직비디오 미장센의 정점.
조은재: 역시 에스파야, 구하러 왔구나.
이브 ‘Loop’
스큅: 솔로로서의 첫 출발. 배낭을 매고 갈 길을 찾는 듯 서성이는 이브를 비추며 시작되는 뮤직비디오는 대단한 프롭 없이 그저 그의 걸음걸이를 따라 안무-서사를 깔끔하게 담아낸다. 화보 같은 구도로 안무를 역동적으로 담은 덕에 단순하면서도 지루하지 않은, 스타일리시한 뮤직비디오가 탄생했다.
아르테미스 ‘Virtual Angel’
스큅: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갖는 게 아니라, 극한의 절망 자체를 희망으로 삼는 것, 그리고 그 열쇠로서 ‘서로’를 말한다.”(〈주간동아〉2024.05.22 “유별난 24인조 소녀들 ‘트리플에스’” 中) 묘하게 트리플에스의 리얼리즘과 맞닿아 있는, 아르테미스의 판타지아.
에이티즈 ‘WORK’
마노: ‘플렉스’는 바로 이렇게 하는 것.
리사 ‘Rockstar’
스큅: 누군가가 케이팝의 넥스트 스텝을 묻는다면 고개를 들어 리사를 보아라.
조은재: 외국인도 대통령 할 수 있게 개헌해주세요.
키스오브라이프 ‘Sticky’
조은재: ‘2024년 여름’에 썸네일을 붙여준다면.
리사, Rosalia ‘New Woman’
스큅: 사진기, 복사기, 브라운관, 블라인드 쳐진 유리창, 깨진 거울. ‘대상화’를 암시하는 오브제들이 설정한 바운더리 안에 갇히지 않고 생동감있게 움직이는 여성의 모습이 멋들어지게 펼쳐진다. ‘신여성’의 앤썸에 꼭 어울리는 뮤직비디오.
영파씨 ‘ATE THAT’
스큅: 단언컨대, 영파씨는 아마추어리즘을 가장 프로페셔널하고 진지하게 이행하는 그룹이다.
조은재: 타임머신이라도 탄 듯한, ‘차용’도 ‘모사’도 ‘재현’도 아닌 ‘오리지널’ 그 자체
재현 ‘Smoke’
스큅: 태민이 보여주었던 나르시시즘이 지극히 도취적이었다면, 재현의 나르시시즘은 처연하고 고독해보이기까지 한다. 앨범의 얼굴이 될 만한 트랙이자 뮤직비디오였다.
조은재: 재현과 R&B와 공드리적 상상력으로 가득한 화면이 안 어울릴 듯 딱 맞아떨어진다.
르세라핌 ‘CRAZY’
스큅: 애써 쉬운척보다는 에라이 미친척. 뮤직비디오에 아이코닉 하우스 오브 쥬시 꾸뛰르를 초청한 것은 최고의 선택이었다.
보이넥스트도어 ‘부모님 관람불가’
마노: 좋은 의미로, ‘젠지력’이 폭발했다.
스큅: 일련의 현실 사건들들들(…) 이후 케이팝 보이그룹의 ‘악동’ 콘셉트에 관한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이어오던 차, 너무도 괜찮은 재검토의 결과물을 마주했다.
피원하모니 ‘Sad Song’
스큅: 노래에 새로운 차원의 이미지나 서사를 덧씌우는 뮤직비디오도 좋지만, 그냥 정석적으로 노래-안무를 잘 담아내는 뮤직비디오들 역시 충분히 조명할 만하고, 이 뮤직비디오가 그러하다. 문화 전유를 피하며 라틴-힙합의 심상을 현명하게 풀어냈다.
NCT 위시 ‘Steady’
스큅: 추억이 아닌 애도를 이다지도 반짝반짝하게. 끝을 애도하는 영상 위에 울려퍼지는 영원의 노랫말의 뭉클함.
XG ‘IYKYK’
스큅: ‘IYKYK’ 뮤직비디오를 보며 초싸이언 힙합 걸갱 XG보다, 하우스/UKG를 수호하는 사이버 정령 XG를 더 많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82메이저 ‘혀끝’
스큅: 유쾌하게 건방지다. 2020년대 보이그룹에서 이런 껄렁임이라니 귀하네요.
로제, Bruno Mars ‘APT.’
마노: ‘저예산’ ‘가성비’ 프로덕션 희망편.
스큅: 감독 크레딧에 브루노 마스가 올라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역시 잘 하는 사람은 하나만 잘 하지 않는다.
에스파 ‘Whiplash’
마노: 미니멀한 미장센으로 구현해낸 맥시멀리즘
스큅: 2024년 감독과 아티스트의 궁합이 가장 완벽했던 뮤직비디오라 할 수 있겠다. 멜트미러와 에스파의 조합, 아무래도 일회성으로 끝나기에는 아깝다.
XG ‘Howling’
스큅: 서구권의 이미지를 동경하며 이를 일본식으로 번안했던 재패니메이션은 차후 서구권의 유색인종 문화에 침투해 일본의 족적을 남겼다. ‘Howling’의 뮤직비디오는 이러한 족적을 회수하며 재차 번안하고 있는 듯한 흥미로운 비주얼을 보여준다.
이브 ‘Viola’
스큅: 이브가 그토록 필요하다고 외쳤던 “some space”는 이런 모습이었구나. 깔끔한 배경의 세트에서 춤추며 미소짓는 이브의 표정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에이티즈 ‘Ice On My Teeth’
마노: ‘부디 목숨만은 살려주세요’
크래비티 ‘Now or Never’
조은재: 가장 여리고 섬세한 소년의 얼굴이 지어내는 아홉가지 표정.
마크 – 프락치 (Feat. 이영지)
스큅: 각자의 씬에 속하면서도 그로부터 초탈한 듯한, ‘프락치’와도 같은 두 사람의 독보적인 존재감이 영상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조합이 계속되기를.
- 결산 2024 : ④뮤직비디오 Pick! - 2025-02-28
- 결산 2024 : ③올해의 앨범 16선 - 2025-02-28
- 결산 2024 : ②올해의 노래 16선 - 202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