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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캣츠아이 ‘Internet Girl’, 도둑맞은 ‘플롭트로피카’

팝 컬쳐가 서브컬쳐를 연료 삼아 발전하는 것은 수십 년간 이어져온 순리와도 같고, 성공적인 도둑질은 팝 컬쳐의 새로운 모멘텀을 마련하곤 했다. 그러나 캣츠아이의 최근 시도들에서 감지되는 문제점은 그들이 무엇을 차용할 수 있었는가보다 무엇을 차용할 수 없었는가가 더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플롭트로피카(Floptropica)’라 불리는 인터넷 커뮤니티가 있다. 차트 성적이나 대중적 반응이 좋지 않은, 즉 ‘플롭(flop)’한 아티스트들을 애정 담아 조롱하던 팝 스타 팬 커뮤니티(‘스탠‘으로 불리기도 한다)의 한 조각이 팝 컬쳐의 우스꽝스러운 플롭 모먼트를 광적으로 소비하며 확대 재생산하는 일종의 서브컬쳐 커뮤니티로 발전한 것이다. “너 폭망 중인데 은근히 느낌 있다(Your flop era is lowkey serving)”와 같은 말은 이 커뮤니티의 문화 향유 양태를 정확히 꼬집는다. Cupcakke나 Jiafei의 샘플을 활용한 무지막지한 리믹스들은 플롭트로피카의 음악적 상징과도 같은데, 이들을 듣고 있노라면 2020년대 *‘캠프(camp)’ 미학의 정수가 바로 여기에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이들은 어떠한 밈도, 어떠한 유행곡도 자신의 것으로 집어삼키며 주류문화를 탈취하고 여타 팝 컬쳐 커뮤니티에까지 흘러들어가는 가공할 만한 영향력을 발휘해오곤 했다. 

*캠프란 과장성과 연극성, 그리고 그러한 과잉에의 진지한 투신이 실패하는 데에서 빚어지는 우스꽝스러움을 하나의 미학으로서 인정하는 개념으로, 종종 ‘키치(kitsch)함‘과 연관지어 이야기되기도 한다. 개념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Susan Sontag의 “캠프에 관한 단상(Notes on Camp)”(1964)를 참조하라.

(Cupcakke-Jiafei 리믹스 예시 영상을 임베드 하고 싶었으나 연령 제한이 있기 때문인지 되지 않는다... 궁금하신 분들은 이 부분에 하이퍼링크를 걸어두었으니 클릭하여 확인하시기를.)

뜬금 없이 플롭트로피카에 관한 긴 사설을 단 것은 이러한 현대적인 캠프 미학이 캣츠아이의 신보를 독해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맥락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이전작 ‘Gnarly’는 분명 이 캠프를 의도한 작품이었다. (멤버 라라 역시 ‘Gnarly’를 캠프로 언급한 바 있기도 하다) 하이퍼팝의 한껏 과잉된 사운드, 우스꽝스러운 무맥락의 가사, 그리고 황당할 정도로 비장하게 풀어낸 퍼포먼스까지. ‘Gnarly’는 ‘Touch’ 같은 멀끔한 팝을 소화하던 그룹으로서 매우 당황스러운 선택이었지만, 군더더기 없이 다듬어진 대형 프로덕션의 틀을 깨부수는 듯한 묘한 신랄함이 빚어지기도 했다. 특히 멤버들이 야생적으로 날뛰는 퍼포먼스에서는 마치 ‘갇혀 있던‘ 멤버들이 해방된 듯한 자유로움도 느껴졌다. 데뷔 첫 라이브 방송 당시 송출이 시작된 걸 모르고 방송에서 욕을 하지 않도록 미리 욕을 하자며 한바탕 신나게 F 워드를 내뱉던 멤버들이 화제를 모았던 때처럼 말이다. 해외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누렸던 2~3세대 케이팝의 캠프 양식과 맞닿아 있으면서도, 케이팝 프로덕션에서는 차마 넘볼 수 없었던, 다분히 ‘저속한‘ 20년대의 캠프 양식에까지 가닿으려는 과감함. ‘Gnarly’가 2025년 가장 성공적인 레이지베이트(rage-bait)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과감함이 안겨준 신랄함 때문일 것이다.

투어에서의 선공개 무대 후 1월 정식 발매된 ‘Internet Girl’은 ‘Gnarly’의 영광을 한 번 더 재현하고자 만들어진 트랙으로 들린다. 난데없는 아기 목소리 샘플링, 이어지는 “주키니나 먹어(Eat Zucchini)”라는 어이없는 챈트, 뻔뻔하리만치 천진난만한 멜로디, 왜곡된 전자음, “이모지처럼(like the emoji)”이라는 노랫말에 맞춘 변검술 같은 표정 연기, 스스로를 ‘인터넷 걸’로 지칭하는 연극성까지. 황당무개한 단어-사운드의 연발과 기이한 퍼포먼스는 철저하게 ’Gnarly’를 계승하고 있다. 그러나 ‘Internet Girl’에서 느껴지는 것은 틀을 깨는 신랄함이 아닌, 오히려 틀에 안주하는 안전함이다. 의도적인 트롤링 모먼트를 제하고 나면 ‘Internet Girl’의 프로덕션은 사실 꽤나 안전하게 들린다. 사운드는 듣기 상쾌한 정도의 임계점을 좀처럼 넘어가지 않고, 동요적인 멜로디는 상당히 친절하며, 의도적인 트롤링 모먼트 역시 결국에는 과거의 ‘후크송’처럼 곡을 어떻게든 각인시키겠다는 의지의 산물처럼 들린다. 여기에 더해 가사와 퍼포먼스는 발칙함의 수준에 머무른다. 슬로건과도 같은 “Eat Zucchini(주키니나 먹어)”는 단지 “Eat a dick(엿먹어 혹은 좆까)”이 차마 되지 않은/못한 무언가로 느껴진다. 하이퍼-에너지를 상당 부분 재단해낸 ‘Internet Girl’은 결과적으로 ‘Gnarly’보다는 오히려 디즈니 채널의 숱한 키즈 송처럼 들린다. 키즈 송도 키즈 송 나름의 유쾌함이 있고, 디즈니 채널이 사실상 죽어버린 현재 (케이)팝 그룹이 이러한 키즈 송을 대신해주는 것도 이상할 건 없는 상황이지만, 문제는 이것이 ’Gnarly’가 사랑받았던 저속한 캠프, 모종의 전위성과 정면으로 대치된다는 데에 있다. 결국 ‘Internet Girl’의 안전함은 ‘Gnarly’가 안겨주었던 쾌감까지 반감시키고 만다.

‘Gnarly’에 이어 ‘Internet Girl’까지 오고 나니 드는 의문은 대형 자본인 하이브가 인터넷 서브컬쳐 커뮤니티의 주도로 조형된 20년대의 캠프 미학을 탈취하려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일종의 ‘도둑맞은 가난‘처럼, 이는 도둑맞은 캠프, 도둑맞은 저속함이 아닐까. 물론 팝 컬쳐가 서브컬쳐를 연료 삼아 발전하는 것은 수십 년간 이어져온 순리와도 같고, 성공적인 도둑질은 팝 컬쳐의 새로운 모멘텀을 마련하곤 했다. 그러나 캣츠아이의 최근 시도들에서 감지되는 문제점은 그들이 무엇을 차용할 수 있었는가보다 무엇을 차용할 수 없었는가가 더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하위문화에서 생생하게 살아 있던 날것의 저속함은 범-대중을 타깃으로 하는 대형 자본의 공정을 거치며 정제되고, 결국 특유의 유머러스한 활력은 깎여나가게 된다. 이는 타협 없는 프로덕션을 관철시킨다 해도 단순히 메신저의 변화만으로 어쩔 수 없이 발생하게 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예컨대 중국계 하이퍼팝 아티스트 Alice Longyu Gao가 2023년 자신의 틱톡 영상에서 장난스레 불렀던 “Tesla”, “Smash on the Hollywood Hills” 샤라웃(이는 곧 ’Gnarly’의 데모가 되었다)은 은근한 비꼼(sarcasm)으로 들렸을지 몰라도, 하이브 아메리카의 그룹이 주체가 되었을 때 그것이 (나름의 신선함과 흥겨움을 안겨줄 수 있을 지언정) 결코 풍자는 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다시 플롭트로피카로 돌아가본다. 플롭트로피카는 여느 밈이 그러하듯 근본적으로 바텀-업 방식으로 형성된 서브컬쳐 커뮤니티이다. 그리고 플롭트로피카를 이끄는 아티스트들은 이 커뮤니티에 의해 발견된 존재들이었다. 터무니 없이 과장된 성적 표현의 가사가 시그니처인 Cupcakke는 메이저 레코드 레이블과 계약하지 않고 자유로이 음악 활동을 전개해나가는 인디 아티스트로 2012년부터 지금과 같은 작업을 내왔고, Jiafei는 애초에 틱톡 봇 계정과 중국의 과잉광고 밈이 결합되어 탄생한 가상의 캐릭터였다. 즉 스스로 아이콘이 되기를 자처한 것이 아닌, 커뮤니티가 추대한 존재들인 것이다. 무한히 혁신되고 재생산되는 플롭트로피카 유머의, 캠프의 생명력은 결국 바텀-업 방식의 추동력에 기인하며, 탑-다운 식의 대형 프로덕션에서는 쉽사리 구현할 수 없는 것임을 실감한다. 

By 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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