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도 아이돌은 제조된(manufactured) 것이라 영혼과 진정성이 깃들지 않았다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아이돌 팬들은 아이돌에게도 자아가 있다고 하지만, 아이돌이 그들의 뜻과는 관계없이 기획사에 의해 기획되고 제작되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마도 아이돌의 자아란 아이돌의 시작부터 따라붙어 온 원죄와도 같은 것이리라.
아이돌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아이돌이란 공장에서 찍혀 나오는 몰개성적인 로봇과 다름없고 아이돌로 가득한 대중음악 시장은 누가 누구인지조차 구별 안 되는 꼭두각시들의 잔치처럼 느껴질 것이다. 마치 카피 & 페이스트 한 것처럼 똑같은 아이들이 로봇과 같이 춤을 맞추는 모습은 어떤 의미에서 소름 끼친다(creepy)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표현은 해외의 케이팝 팬들이 레드벨벳의 ‘Dumb Dumb’ 뮤직비디오를 본 소감으로 가장 먼저 언급하는 것이다. 이 뮤직비디오가 보여주는 기괴한 무한복제와 대량생산의 이미지는 지금의 아이돌 씬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Dumb Dumb’은 아이돌 자신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아이돌의 탈을 쓰면 누구나 자아를 잃고 로봇 춤을 추게 되지만, 레드벨벳은 누구도 생각한 적 없는 아이돌의 자아로 폭발직전의 정신세계를 노래한다.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서도 “마네킹 인형처럼 어색하게” 행동하는 것은 레드벨벳 본인들에게도 미칠 것 같은 일이다. 게다가 “너만 보면 바보같이 춤을” 추게 된다니! “저 언니처럼 되고 싶은데 왜 귀엽다고만 하는 건지!” 이것은 아이돌이 아이돌 자신을 바라보는 메타한 시선이다. 그러나 아이돌에 대한 비판이 아니다. (자아가 없는) 아이돌이 자아를 드러내는 순간이다.
아이돌로서의 자아에 대해 고민하는 노래는 아마도 레드벨벳의 ‘Dumb Dumb’뿐일 것이다. 자신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자아를 가진 아이돌이라는 것은 중대한 전환점이다. 여기서 떠오르는 것은 M. C. 에셔의 〈그리는 손〉(1948)이다. 하나의 손이 자신을 그리는 다른 손을 그려내고, 그 손은 다시 자신을 그리는 손을 그려내기를 반복한다. 마찬가지로 아이돌이 아이돌을 노래하고 그 아이돌 노래는 다시 아이돌이 된다. 이것은 흔한 선언이나 공약이 아니다. 감각이 없는(dumb) 아이돌이 영혼을 갖게 된 것이다.
안드로이드에게 영혼이 깃들어 인간이 되는 이야기는 그다지 낯설지 않은 스토리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A.I.〉(2001)에서 가장 인간 같은 로봇 데이비드는 엄마의 사랑을 얻기 위해 인간이 되는 여정을 떠난다. 우리가 사랑하는 아이돌은 마치 데이비드처럼 사랑하고 교감하도록 프로그래밍된 로봇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혼과 진정성은 도대체 무엇인가. 아이돌도 성장하면서 아티스트적인 진정성을, 직업적 프로페셔널리즘을, 그리고 팬들과의 교감의 순간들을 갖는 것을 덕후들은 덕질을 하며 알게 된다, 마치 안드로이드에게 영혼이 깃들듯이. 영혼과 진정성이란 무엇인가? 아이돌이란 무엇인가? 레드벨벳은 어쩌면 아이돌이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이돌의 자아와 일탈에 관한 또 다른 이야기는 초여름의 일탈 : 샤이니 – ‘View’ MV에서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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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replies on “레드벨벳 – Dumb Dumb : 아이돌에 갇혀버린 아이돌”
그런데 그 아이돌로서의 자아고민도 결국 기획사가 맞춰준 컨셉에 맞추는것에 지나지않을까요?하는 질문이 듭니다.
아이돌에 관한 일탈, 고찰조차도 기획사의 상품화에 적합했기때문에 만들어진것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네, 그 조차도 컨셉이고 기획사의 기획이겠죠. 그런데 기획된 아이돌에게 진정성이란 없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만한 시점은 되는 것 같습니다. 아이돌이 덧없는 판타지라던지 진정성 없는 놀음이라는 인식은 여전히 유효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