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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원의 ‘기록’ – 음원 차트의 의미

‘리메즈 사태’는 차트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는 언제든 반복될 수 있는 사건이다. 차트가 유의미한 ‘기록’을 자료로서 남겨두고, 무의미한 경쟁의 ‘기록’을 종용하지 않도록 산업 차원에서 제동을 걸어야 한다.

가장 먼저 중요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필자는 음반/음원 관련 차트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여기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대중문화사에 의미 있는 사료로서 기록물들이 필요하고, 그중 하나가 각종 판매량 차트라고 보기 때문이다.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시대가 사랑한 음악이 무엇이었는지 기록하는 작업은 분명히 의미 있다. 그리고 그 기준으로써 ‘사람들이 많이 소비한’ 음악이 어떤 것인지를 사료로서 정리해두는 작업은 반드시 필요하다. 또 다른 한 가지 이유는 대중과 대중음악이 멀어지지 않도록 관여도를 높이는 역할을 하는 매개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앞선 이유와도 상통하는 맥락에서, 차트가 존재함으로써 대중음악가는 대중의 소비 취향을 분석할 수 있고, 대중의 개개인은 각자의 취향 영역 안에서 어떤 음악들이 널리 공유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미리 밝히자면, 이 글은 ‘음악은 스포츠가 아니다’, ‘어떻게 음악을 줄 세울 수 있느냐’고 주장하는 ‘차트 무용론’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엄격한 기준을 세운 차트를 수호해야 함을 이야기할 것이다. 음악의 평가 기준을 판매량 차트 하나로 일원화하는 관습은 많은 오류를 담을 수 있지만, 대중음악을 하나의 완성된 산업 영역으로서 인정한다면 ‘대중의 선택’을 가장 냉정하게 반영하는 차트를 절대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작금의 ‘리메즈 엔터테인먼트(이하 리메즈) 사태’ 또한 바로 그 ‘차트 절대주의’에 목매는 업계 분위기 위에서 생겨난 폐단일 뿐, 차트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로 생겨난 문제는 아니다. 리메즈 사태는 ‘대중의 선택’이라는 이름으로 대중의 진짜 선택을 무시하고, 자사 뮤지션들의 음악성 또한 ‘차트 상위권’이란 타이틀로 보장할 수 있다고 믿은, 그야말로 ‘차트의 함정’에 빠진 결과물이다.

닐로 멜론 실시간 차트 그래프
‘팬덤-대중 하이브리드형’ 음원 강자 트와이스와 TV 예능 경연곡인 mnet ‘고등래퍼2’와 경합 중인 자칭 ‘역주행’ 가수 닐로의 신곡 차트 그래프

그러나 판매량 차트라고 해서 현존하는 모든 차트가 반드시 수호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서두에 언급한 대로, 차트는 시대의 기록이다. 먼 훗날 특정 시기에 많은 대중이 어떤 음악을 공유했는지를 말할 때 근거로 들 수 있는, 역사성을 지닌 존재여야 한다. 리메즈 사태가 처음 밝혀진 곳이었던 실시간 음원 차트는 한 시간에 한 번씩 판매량을 집계한다. 리메즈 사태의 가장 직접적인 피해자라고도 할 수 있을, 같은 시기에 음원을 발표한 아이돌의 팬덤은 이렇게 주장한다. 실시간 차트, 그중에서도 특히 최상위권 음원들만 공개되는 ‘5분 차트’의 그래프가 시간대별로 일정한 판매량 추이를 보이며, 이 추이는 ‘대중 선호형’과 ‘팬덤 집중형’ 등의 몇 가지로 유형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리메즈 소속의 가수들이 ‘역주행’했던 음원이 이중 어떤 유형에도 해당하지 않는 기형적인 추이를 보였기 때문에 파문의 단초를 제공한 셈이다.

‘널리 알려진다’는 의미에서, 페이스북 등지에서 입소문을 타고 바이럴 되어 차트 순위권에 드는 가수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 ‘직캠 신화’를 만들어낸 ‘역주행’의 원조 EXID의 ‘위아래’, 여러 뮤지션이 커버하기도 하면서 바이럴 효과를 톡톡히 본 윤종신의 ‘좋니’, 그리고 mnet〈슈퍼스타 K〉를 통해 알려진 뒤 발표하는 곡마다 많은 사랑을 받은 볼빨간사춘기 역시 대표적인 ‘페북 스타’다. ‘역주행 신화’의 기저에 SNS 바이럴이 있다는 것은 이제 마케터라면 모르는 이가 없다. 그러나 ‘리메즈 사태’의 핵심은 ‘바이럴’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리메즈의 ‘페북 스타’들은 ‘천천히 대중의 픽을 받았다’는 전형적인 역주행의 서사를 가지고 있지만, 앞서 언급한 ‘입소문 먼저 탄 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나서 음원 성적이 올라간 케이스와 달리 마치 처음부터 유명했던 것처럼 발매와 동시에 차트 최상위권에 랭크되었다. 차트 순위 조작의 명분으로 ‘바이럴’을 내세웠다고 보는 편이 더 합리적인 상황인 것이다.

유튜브 '윤종신' 검색
윤종신의 ‘좋니’를 검색하면 수많은 커버 관련 단어들이 연관 검색어로 뜬다. SNS 바이럴의 효과를 체감할 수 있는 가장 최근의 사례.

여기서 주목할 점은, 실시간 차트가 시간대를 기준으로 일정한 사이클을 그린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사이클의 근거는 보통 대중 일반의 생활 패턴을 반영한, 항상성을 지닌 것이다. ‘새벽에는 음원 재생을 켜 두는 아이돌 팬덤의 스트리밍 횟수가 집계돼 아이돌의 순위가 올라간다’거나, ‘사람들이 일어나는 시간에는 다시 대중성 높은 가수들의 음원이 실시간 차트 위로 올라온다’는 진술 등이 이를 대표한다. 그렇다면 장기적으로 실시간 차트가 시대를 대변하고 역사성을 갖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일정한 유행의 흐름을 반영해 변화하는 일간, 주간, 월간 차트에 비해, 실시간 차트가 특별히 더 큰 시대적 함의를 담고 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많은 대중의 일상적인 습관에 의해 매일 반복되는 현상을 전시하는 것이 과연 1년 후, 10년 후, 100년 후에 어떤 의미를 갖게 될까? 단적으로 말하자면, 우리가 지금 이 시점에 ‘1994년 5월 28일 새벽 4시에 인기 있었던 노래’에 대해 굳이 알아야 할 필요가 과연 있을까?

그렇다면 실시간 차트는 무엇을 근거로 존재하는가? 실시간 차트가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발매와 동시에 발표되는 순위와, 최상위 3개 음원에 한해 1시간도 모자라 5분 단위로 갱신되는 ‘5분 차트’, 그리고 새롭게 세워지는 기록들을 중계하는 각종 매체와, 그런 ‘그림’을 만들어내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스밍(스트리밍의 줄임말)’과 ‘탈다(다운로드 횟수의 중첩을 위해 탈퇴와 다운로드를 반복하는 행위)’에 매달리는 아이돌 팬덤을 보라. 여기서 음악을 ‘듣는’ 사람은 없다. 실제로 어떤 팬들은 ‘진입 순위를 위해, 느긋한 감상은 일단 진입부터 시킨 다음에 해야 한다’고 강경하게 말하기도 한다. 음원 유통사는 팬들의 이러한 ‘스밍’을 방지하기 위해 음원 공개 시각을 자정에서 오후 6시로 늦춘다고 했지만, 오히려 발매 시간이 바뀐 뒤로 실시간 차트 성적을 위한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는 것이 관계자와 팬덤을 포함한 이용자들의 중론이다.

이러한 과열 양상으로 인해 차트가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해당 DB 정보를 모두 갖고 있는 유통사 측에서 모르는 바는 분명 아닐 것이다. 그러나 실시간 차트의 어뷰징에 대한 대책은 아직까지 알려진 바 없다. 과열 덕분에 이용료를 가져가는 것은 결국 유통사이기 때문이다. 더욱 유도하면 유도했지,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으로 해석해도 무방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SNS 입소문을 통한 역주행’이라는 타이틀로 차트 상위권에 안착한 가수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유통사에게도 ‘할 말’을 만들어준다. 실시간 차트가 ‘아이돌 팬덤 스밍 차트’라는 오명을 벗겨줄 근거로 작용할 여지가 충분한 것이다. 차트 최상위권에 아이돌 최신곡이 포진해 있는 것은 용납할 수 없으나, ‘대중들이 많이 듣는다’는 소문은 설령 그 실체가 없다 하더라도 어쩐지 쉽게 납득할 법한 근거가 되는 것일까.

차트의 세분화가 필요하다면, 그 기준은 ‘시간’이 아니라 ‘분야’가 되는 것이 더 합당하다. 실제로 권위 있는 차트는 보통 나름의 기준으로 동시기 발매작들을 횡적으로 분류해 판매량을 집계한다. 크게는 앨범 발매 형태를 기준으로 한 앨범/싱글 차트가 있고, 장르나 가수의 형태를 기준으로 나눈 차트도 다수 존재한다. 시상식에서 주는 상은 부문별로 천차만별인데, 어째서 그 기준이 되어야 할 차트는 단순 판매량 단 한 가지로 일원화되어 있는지 의심을 가져볼 법도 하다. 이를테면, 거의 대부분의 시상식에서 빼놓지 않는 ‘신인상’은 대개 그룹, 솔로나 남성, 여성으로 나누어 시상한다. 그런데 이 기준이 가시화되는 시점은 ‘네티즌 인기투표’ 따위를 할 때 정도이며, 그나마도 보통은 부문을 따로 나누지 않고 집계한 뒤, 수상자 선정 시점에서 ‘구색을 맞춰’ 두어 팀을 지정해주는 방식이다. 따라서 그렇게 자잘하게 집계하며 팬들의 마음을 졸이게 하던 차트 기록은 시상식 투표를 할 때나 되지 않으면 평소엔 유통사 DB 안에서 잠자고 있는 정보일 따름이다. 수상의 대상이 아닌 음원들의 자료는 잉여 정보에 불과해진다.

소리바다 어워즈 레드벨벳
음원 유통사 소리바다가 주최한 시상식에서 수상한 레드벨벳. 사진의 인물 및 단체는 내용과 관련 없다. | 사진=조은재

‘기록’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후일에 남길 목적으로 적은 글’을 말하고, 다른 하나는 ‘경기에서 세운 성적이나 결과’를 말한다. 차트가 지향해야 할 ‘기록’이 어디에 가까워야 하는지는 분명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대중문화가 산업의 형태를 취하기에 무시할 수 없는 부분도 분명 있다. 그러나 지금 문제를 만들고 있는 것은 결국 지향점의 문제다. 차트가 유의미한 ‘기록’을 자료로서 남겨두고, 무의미한 경쟁의 ‘기록’을 종용하지 않도록 산업 차원에서 제동을 걸어야 한다.

By 조은재

우리 존재 화이팅

4 replies on “음원의 ‘기록’ – 음원 차트의 의미”

볼빨간 사춘기는 케이팝스타가 아니고 슈스케 출신입니다 수정 바랍니다

1994년 5월 28일 새벽 4시에 인기있던 노래는 알고싶긴 하다… 내생일인데…

분명히 음원 차트는 ‘그 시대의 사람들이 많이 소비한 음악’ 임이 맞긴 합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음악성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차트 상위권에 올라야 한다는 이유 혹은 앨범의 맴버별 사진 혹은 포스터 등 부가물을 모으기 위해 음원 혹은 앨범을 구매하는 것이 현실이며 차트 상위권에 올랐다고 해서 이 음악이 과연 충분한 음악성을 보장하고 있을까에 대한 의문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물론 지금의 음원 차트를 공신력 있는 차트로 다시 개편하면 되지 않냐고 할 수 있겠으나 그 이면에는 음원 사이트와 기획사가 돈에 의해 얽혀 있기 때문에 공신력을 회복하기엔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리라 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공신력을 회복하지 못하는 음원 차트는 폐지 해야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며 (팬덤이 엺음에도 불구함에도)인디 뮤지션 혹은 전성기가 지난 뮤지션이 차트 상위권에 올랐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얼마든지 비난을 받을 수 있다고 보여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