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걸 – ‘다섯 번째 계절 (SSFWL)’ (2019)

이미지 ⓒ WM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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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스티븐 리, 그리고 작사가 서지음과 함께 작업한 세 번째 작품이다. 두 번째 작품 ‘불꽃놀이’가 첫 작품 ‘비밀정원’ 중 ‘추억의 공유’라는 주제를 빌어온 노래였다면, 세 번째인 ‘다섯 번째 계절 (SSFWL)’은 ‘비밀정원’의 동화적인 색채를 판타지 세계관으로 확장했다.

SNS에서는 이 곡이 2000년대 초반에 방영된 애니메이션 〈이누야샤〉의 엔딩곡을 연상시킨다는 의견이 많았다. 여기에는 작곡가의 의도가 다분해 보인다. 스티븐 리는 SS501로 케이팝에 입문하기 전까지 제이팝 씬에서 활동한 작곡가로, 지금도 쟈니스계 등 유명 아이돌에 곡 제공을 하고 있어 일본 가요에 이해가 깊다. ‘다섯 번째 계절’에 많이 쓰인 코드 진행 IV – V7 – iii – vi 은 일본 대중 가요에서 특히 인기 있는 패턴이다. 노래의 정중앙에 위치한 “사랑이면 단번에 바로 알 수가 있대” 라인이 정확히 이 진행이다. 여기에 마이너 펜타토닉 음계로 오르내리며 전체적으로 하강하는 멜로디를 붙이면 우리가 아는 ‘동양풍’ 느낌이 된다. 전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곡이라면 류이치 사카모토의 ‘Merry Christmas Mr. Lawrence’가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B마이너 곡조이나, 군데군데 B마이너 코드의 자리에 B메이저 코드를 넣어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예를 들면 전주의 끝부분이나(Em – F#m – B), 유아가 부르는 A 섹션의 “쌓여가, 또 쌓여가”(Bm – B), “난 달라진 것만 같애”(Bm – B), “그 사람이 누군지”(Em – F#m – B), “두 눈을 커다랗게 뜨고 꾸는 꿈”(Em – F#m – G – A – B) 등등. 1절에서만 나열해도 이만큼이니 곡 전반에 걸쳐 쓰였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누야샤〉 엔딩곡으로 쓰였던 곡들 중 비교한다면, 하마사키 아유미의 ‘Dearest’와 Day After Tomorrow의 ‘イタズラなKISS’(장난스러운 키스)가 IV – V7 – iii – VI(마이너를 메이저로 바꿈) 코드 진행을 이용한다. 이렇게 마이너의 기본 토닉 코드를 메이저로 살짝 바꿔주면, 예상치 못한 전개에서 신비감이나 모험의 설렘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클래식에서는 이를 피카르디 3도(Picardy 3rd)라고 부른다. 바로크 시대부터 있었던 아주 오래된 종지 형태로, 바흐의 평균율 푸가 등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이 패턴을 특히 많이 이용한 작품으로는 〈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가 있다. 20세기 말에 발매되어 전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게임이라, 이 게임의 음악도 이런 판타지 배경의 모험가를 위한 음악의 대표격으로 인식되는 듯하다.

기획은 이런 음악에 ‘유러피안’ 비주얼을 매치해 지나치게 노골적인 일본 아니메풍 느낌을 피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티저로 공개된 이미지에서는 멤버들이 드가의 발레리나 시리즈처럼 머리를 올려 묶고 긴 로맨틱 튜튜를 입어 전작 중 ‘Closer’ 같은 노래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게 하기도 했다. 무대 의상에도 이 스타일이 다수 반영되었다. 아니메 느낌만을 의도했다면 이전에 입은 적 있는 미니 테니스 스커트를 입을 수도 있었겠지만, 무릎 길이의 의상을 입은 덕분에 무대에서 춤추는 모습도 한결 편해 보이고, 안정적이다.

뮤직비디오에서는 CG로 판타지의 느낌을 더욱 강조했다. 첫 장면은 오로라가 지는 하늘 아래 눈 덮인 산에 홀로 서있는 비니의 모습이다. 〈겨울왕국〉의 엘사가 눈보라 속에서 자유를 찾는다면 비니가 연기하는 캐릭터는 이와 달리 춥고 외로워 보인다. 노을지는 시간에 전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는 지호와 유채꽃밭에 서서 미소 짓는 아린을 지나면서 희망적인 정서가 더해지며, 후렴 전반부에 도달해서는 “사랑이면 단번에 바로 알 수가 있대 / 헷갈리지 않고 반드시 알아볼 수가 있대” 하는 맹목적 운명론이 펼쳐진다. 이는 작곡진은 다르나 소속사가 같은 온앤오프가 근작 ‘사랑하게 될 거야’에서 선보인 정서와 비슷하다. 판타지적 시공간 속에서 화자가 상대방에게 ‘너와 나는 사랑할 운명’이라 말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리고 이 메시지는 “(이제 난 그 사람이 누군지) / 확신했어” 하며 코러스 후반으로 한번 더 도약해 치닫는다. “확신했어”라는 가사와 손을 하늘로 힘차게 뻗는 안무는 딕션과 톤이 또렷한 효정의 보컬을 만나 그 메시지가 극대화 되고, 뒤이어 돌입하는 코러스 후반에 뮤직비디오는 이제껏 화면에 등장한 적 없는 활짝 열린 푸른 하늘을 보여주며 공감각을 확장해낸다. 이 때 음악도 한 마디에 네 박씩 들어가던 킥드럼이 두 배인 여덟 박으로 쪼개지며 마치 박차를 가한 듯한 효과를 낸다. 무심코 들으면 BPM이 빨라진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비밀정원’부터 이어진 적극적인 신스 스트링 사용은 오마이걸에게 아니메 사운드라는 옷을 입혀주었지만, 리듬은 계속해서 EDM 유행을 따르고 있는 것도 흥미로운 포인트다. 잘게 쪼개 빠르게 찍은 하이햇 등은 누가 봐도 EDM의 영향이며, 이는 얼마나 어울리느냐 여부와 관계없이 이 곡을 ‘케이팝’의 바운더리 안에 머무르게 한다. 상기한 코러스 후반의 리듬 변화 등을 보면, ‘비밀정원’ 때보다 이 리듬을 튠에 어떻게 매치할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고 나름의 발전도 이뤄낸 것을 확인한다.

그러나 다시 돌아와, 이 곡은 일본 서브컬처의 레퍼런스를 제법 노골적일 정도로 곡 전반에 걸쳐 보여주고 있다. 누군가는 그것이 친숙해서 좋을 테지만, 누군가는 이제까지 ‘Closer’나 ‘Liar Liar’ 등을 통해 다뤄온 기민한(alert) 사운드나 남다르게 섬세했던 앰비언트 정서가 일본 아니메 정서에 포섭되어 오마이걸이 꽤 분명한 ‘국적성’을 갖게 되어 아쉽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이미 케이팝 걸그룹 중에는 이 요소를 적극 차용하는 팀이 많다. 현재의 케이팝 씬에서 일본 서브컬처 요소란 콘텐츠에 충분히 몰두해주는 충성도 높은 팬덤을 다지기 위한, 일종의 성공 카드 중 하나이다. 그러나 오마이걸의 기획은 레거시가 길지 않은 중소기획사임에도 음악적 세련이라는 길을 타협하지 않고 걸어온 바, 이번 변화가 다소 아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바나나 알러지 원숭이’는 세련에서 탈선하기는 했으나 대중성을 위한 타협의 영역은 아니었으므로 논외로 하자.) 허나 이 곡으로 많은 주목을 받고 여러 번 수상의 영예를 안은만큼, 오마이걸의 커리어에 중요한 곡으로 남을 것만은 분명하다.

‘다섯 번째 계절 (SSFWL)’은 일본어 싱글로 발매되기도 했다. 한국어 가사도 훌륭했지만, 이 곡에는 일본어 노랫말이 특히 찰떡같이 붙으니 꼭 한번 감상해 보길 권한다.

오마이걸
THE FIFTH SEASON
WM 엔터테인먼트
2019년 5월 8일

   


랜디

Author:

K-Pop enthusiast. I mean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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