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슬픔의 케이팝 파티〉라는 수상한 제목의 파티가 열렸다. 폭발적인 호응 속에 이어지는 이 기획을 아이돌로지가 들여다 보았다. 지난 5월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에서 열린 〈슬픔의 케이팝 파티〉에서 있었던 DJ 세트를 리뷰한다. 각 DJ의 사진 아래 아이콘을 클릭하면 해당 세트의 곡목 또는 음원을 확인할 수 있다. 〈슬픔의 케이팝 파티〉는 9월 28일 부산 금사락에서도 개최된다. [예매 링크]
스큅: 하우스 기반의 현세대 아이돌 그룹 수록곡들을 매끈하게 엮어냈다. DJ 데뷔 무대인 만큼 자신의 취향을 고스란히 녹여낸 결과가 아닐까 짐작해본다. ‘슬케파’에서 탄생한 DJ로서, 좋아하는 곳에서 좋아하는 곡을 틀게 된 설렘이 한껏 느껴지는 세트리스트. 곡과 곡을 잇는 과정에서 화성의 충돌로 교란이 빚어진 부분이 간혹 있었으나 유기적인 흐름 덕에 세트를 즐기는 데에는 지장이 없었다. 중간중간 포인트 안무를 곁들이는 모습이 눈에 띄었는데, 다른 DJ들과 다르게 케이팝으로 디제잉을 시작했기에 가능한 연출이 아닐까 싶기도. 레몬튠을 시작으로 앞으로 케이팝에 특화된 DJ와 디제잉을 더욱 많이 볼 수 있으리란 기대를 품어본다.
심댱: “차가워 또 짜릿해” 세트리스트 초반에 수록된 ‘Blue Lemonade’ 가사처럼, 탄산음료 같이 톡톡 튀는 달착지근함이 슬케파의 포문을 연다. 파랑을 메인 컬러로 한 듯 청량감이 곳곳에 느껴지는데, 세븐틴 ‘Moonwalker’ 사이사이에 존재감을 드러내는 이달의 소녀 ‘위성’ 등 트랙이 가진 질감과 톤을 믹스매치해 깊고 다양한 파랑을 느낄 수 있다.
텐션이 떨어지지 않는 산뜻한 남자 아이돌팝은 배경이 되고, 여자 아이돌에서의 섬세한 이미지는 메시지가 되어 lemontune의 케이팝을 소개한다. 푸른 빛깔 케이팝과 함께 관객의 반응을 불러일으킨 것은 플레이 중간에 곁들여진 안무. 슬케파에 어울리는 에티튜드로 파티의 분위기를 무르익게 한 그를 더 많은 행사에서 볼 수 있길 바란다.
스큅: lemontune의 명-수록곡 큐레이팅 뒤에 펼쳐진 것은 Arexibo의 명-활동곡 릴레이였다. 카드 ‘Oh NaNa’, (여자)아이들 ‘Latata’ 등 뭄바톤을 시작으로 일렉트로 하우스 기반 다양한 장르의 곡들을 솜씨 좋게 펼쳐 보인다. f(x) ‘라차타’와 루나 ‘Free Somebody’, 아이즈원의 ‘라비앙로즈’와 ‘비올레타’ 등 대구를 이루는 곡들을 연이어 배치해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센스가 일품이다. 세트 말미 이달의소녀 진솔의 ‘Singing In The Rain’을 이용해 퓨처 베이스로 급커브를 도는 순간의 짜릿함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 장르와 BPM을 갈아끼우면서도 임계점을 넘기지 않은 채 적당량의 흥을 지속적으로 유지한 감각적인 세트.
하루살이: 뭄바톤으로 시작해 퓨처R&B로 마무리하기까지 우악스럽지 않게 트렌드를 요약한다. 최근 2년 사이에 발매된 타이틀곡 위주로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흥을 유지한다. 시간의 흐름에서 자유로운 f(x)만이 이 조건에서 벗어나 있다. ‘부탁해’ 전주와 동시에 하얀 조명 효과로 가득 찬 플로어는 잊을 수 없는 장면이다. 그 뒤로 정교한 고뇌를 거친 선곡이 다이내믹하지만 조화롭게 이어진다. 케이팝의 현재가 궁금하다면 Arexibo의 믹스부터 들어보기를 권한다.
스큅: 케이팝 광인에게 ‘현타(현실 자각 타임)’는 숙명과도 같다. 프로덕션 내외의 근본 없는, 괴이한, 때로는 저열하기까지 한 구석을 발견하는 순간, 그럼에도 이에 어쩔 수 없이 반응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 우리는 환멸에 빠지고 이를 숨기거나 애써 외면하기 바쁘다. 케이팝이 ‘숨듣명’ 내지는 ‘길티 플레저’라 불리는 이유다. 그러나 GCM은 이 구도를 뒤집는다. 케이팝의 ‘플레저’에 꼬리표로 따라붙던 ‘길티’를 대문짝만하게 입간판으로 내거는 것이다. 그의 세트리스트는 나사 하나가 빠진, 혹은 이상하게 덧기워진 곡으로 채워져 있다. 가사도 장르도 무근본 케이-댄스-팝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너 나 알아’를 시작으로 괴랄하게 일그러진 SMP ‘Catch Me’와 ‘Red Light’, 밑도 끝도 없이 “오빠”를 외치는 YG의 ‘붐바야’와 ‘강남스타일’까지. ‘Just Guilty’라는 슬로건을 몸소 실천하는 듯한 매서운 위용을 뽐낸다. 그리고 뒤이은 매시업 ‘Oppa Suregi’에서 ‘강남 스타일’의 “오빠”가 “쓰레기”로 전치되는 순간, 전복의 에너지는 끝끝내 임계점을 넘어선다. 길티‘하지만’ 플레저였던 케이팝은 길티‘하기에’ 플레저인 경지에 도달하고, 길티와 플레저가 역접이 아닌 순접의 관계를 맺으며 피동적인 환멸은 적극적인 능멸로 탈바꿈한다. 이제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빠개는’ 수밖에. 브레이크를 잃은 채 내달리는 폭주 기관차는 SMP의 정점 ‘Maxstep’, 공인된 슬픔의 케이팝 파티 뱅어 ‘Hero’, 올 상반기의 진성 케이팝 ‘우와’를 끝으로 장렬히 산화한다. ‘현타’의 고리를 끊은 이 세트를 들은 이상 탈-케이팝은 글렀다.
스큅: “5월의 퀴어퍼레이드 같았다”는 후기에서 단순 유희를 넘어 정체성 정치의 음악으로 자리 잡은 케이팝을 읽는다. 케이팝은 어떻게 게이 앤썸, 혹은 그보다 일반적인 ‘게이-팝’으로서의 지위를 얻는 걸까. 일전에 “퀴어도 아이돌을 좋아해” 기사에서 다룬 바 있듯 가사와 내러티브의 재해석과 전유를 그 이유로 들 수 있지만, 그보다 훨씬 근본적이고 직관적으로 케이팝에 서린 흥과 한, 뽕과 끼의 과잉이 바로 한국식 ‘캠프(camp)’로 발현된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노동요’가 ‘게이-팝’과 위화감 없이 이어지는 것 역시 이 때문 아닐까. ‘숨듣명’을 기믹으로 끄집어낸 ‘노동요’ 역시 캠프의 미학이라 할 수 있지 않은가. GCM이 앞서 ‘길티 플레저’의 전복을 이뤄냈다면, 넷갈라는 (한국인의 얼) ‘디나이얼’을 무참히 깨부순다. 웰컴 투 케이팝 무간지옥.
하루살이: 결론부터 말하자면 ‘미친 뽕끼’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게이-팝〉과 〈노동요〉 두 개의 섹션으로 나누어 진행해 넓은 범위의 케이팝을 다뤘다. 넷갈라의 손을 거치면 발라드도, 트로트도 전부 케이팝임에 동의하게 된다. 잠시 숨을 돌리자며 튼 첫 곡 ‘만약에’는 떼창으로 오히려 더 열기를 달궜다. ‘빠빠빠’로 다시 분위기를 바꾸자마자 후렴에 맞춰서 객석 곳곳에서 점프하는 장관이 펼쳐졌다. 〈게이-팝〉에서 MBK의 곡만 세 곡 이상 선곡되었는데 한국인 정서를 관통하는 MBK 감성이란 무엇인가 재고하게 된다. 확실한 것은 토요일엔 넷갈라의 선곡이 가장 슬펐다는 것. 트와이스의 ‘Fancy’를 지나 〈노동요〉로 넘어가면 어느 선 이상 올라간 BPM에 그저 무아지경으로 빠져들게 된다. 디제이의 뒤로 보이는 엘모 화면은 이 집단 최면에 정점을 찍는다.
스큅: “To the world 여긴 NCT”. 공식 인사와 함께 무대가 시작되고 무수히 많은 믐뭔봄(NCT 응원봉의 별칭)이 흩날린다. NCT가 아닌, J.E.B(요한 일렉트릭 바흐)의 이야기다. NCT 매시업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던 그는 기대에 부응하듯 NCT 노래를 다수 선곡했고 관객은 열띤 호응으로 응답했다. NCT 127 버전의 ‘초련’까지 샘플링한 그의 진정성에 탄식을 금치 못했으며, ‘생율 Bomb’과 ‘옹헤야 Says’가 나올 때는 원곡이 아닌 매시업을 떼창해버리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를 단순히 NCT의 후광 덕이라 보아서는 곤란하다. NCT 매시업은 표상일 뿐, 그 너머에는 인터넷 밈(meme) 세대의 음악이라 평가/칭송받는 그의 음악이 자리한다. 케이팝 팬덤이야말로 그 누구보다도 활발하고 적극적인 인터넷 밈의 수용자이자 생산자이기에, 슬픔의 케이팝 파티는 그에게 홈그라운드와 다름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흡사 사이비 종교 집회 같았다는 농담은 강력한 밈의 설파자와 그의 열렬한 추종자(follower)가 웹에서 현실 공간으로 옮겨온 장면을 꽤나 정확히 포착한 셈이다. 그렇다면 J.E.B의 밈이 독보적인 전염성을 가지는 이유는 무얼까. 이를 구차하게 열거하는 것은 밈의 효력을 약화시킬 뿐이므로 여기서는 그의 뛰어난 봉합력만을 언급하고 싶다. 개별 매시업에서도 빛을 발했던 봉합력은 세트 전체에 걸쳐 나타난다. 1시간의 플레이 시간동안 제대로 된 BPM 스위치는 단 한 번 뿐이었다. 그럼에도 그 긴 시간을 착실하게 ‘빠갤’ 수 있었던 것은 예측불허한 다채로운 배치 덕이었다. 초반 40여 분 간은 하프 타임과 더블 타임을 오가며 롤러코스터와도 같은 구성을 보였다면, BPM 스위치 이후로는 비트가 포온더플로어 하우스로 안정화되어 체감 BPM이 더 낮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최초공개하는 ‘뱅어’들을 난사하며 텐션을 증폭시키고야 만다. 몽환적인 트랩을 때깔 좋은 하우스로 완벽히 탈바꿈한 ‘일곱 번째 Satisfaction’과 원곡의 하이퍼-에너지를 맥시멈으로 구현해낸 ‘Booyahappiness’의 황홀경을 부디 놓치지 말기를.
마노: 서늘하고 느긋한 로우템포 튠으로 시작해 청량하고 산뜻한 미드템포 튠으로 마무리 되는, 초여름이라는 행사의 시간적 배경과도 잘 맞아떨어지는 세트다. 텐션과 온도를 성급하게 올리지 않고 적절히 안배하는 동시에 들쭉날쭉해지는 일 없이 일정히 가져가고 있어 파티의 시작을 알리는 오프닝으로 손색이 없다. 게다가 첫 곡이며 가장 느린 곡이 73 BPM(엑소 ‘Ko Ko Bop’), 마지막 곡이며 가장 빠른 곡이 115 BPM(월하소년 ‘I Know You Know’)로 편차가 꽤 큰 편인데도 처음부터 무작정 달리기보다는 신중히 천천히 달구어가며, 마치 처음부터 한 곡인 양 퍼즐처럼 꼭 맞아떨어지도록 구간과 구간을 정밀히 엮어나간다. 한편 작곡 전공 출신의 트랙 메이커이기도 한 그의 능력이 몇몇 리믹스 트랙(세븐틴 ‘울고 싶지 않아’, JBJ95 ‘Home’, 서연 ‘여름 안에서’)에서 빛나기도 하는데, 그러고 보면 세트의 전체적인 인상이 곡과 곡을 이어 하나의 커다란(?) 트랙으로 만든 듯하기도. 백미는 ‘울고 싶지 않아’-‘Underwater’-‘Rumor’-‘나침반’-‘오솔레미오’-‘한’으로 이어지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서늘한 신스-뭄바톤-라틴팝 구간. 이어서 직접 리믹스한 ‘Home’에서부터 분위기를 일신하여 조금 온도가 올라간 듯한 시원함을 변주해낸다. 녹음된 믹셋 역시 까슬거림 없이 매끈한 완성도를 자랑하고 있어 일상의 BGM으로 함께하기 좋으므로 일청을 권한다.
스큅: 디제잉이 끝나고 세트리스트를 되짚어보며 치밀한 구성에 감탄한다. ‘예뻐지지 마’와 ‘Bad Boy’ 사이 ‘I Am’이 없었다면. ‘Rumor’와 ‘오솔레미오’ 사이 ‘나침반’이 없었다면. 한 곡이라도 빠졌다면 흐름이 어그러졌을, 모든 곡이 꽉 맞물린 세트리스트다. 곡 배치 안목은 물론 자연스러운 BPM 증가, 사운드 소스 융화와 조성 변화까지 신경쓴 세심한 전환부, 적재적소에서 제 몫을 다하는 리믹스 트랙 등 단단한 세공력 역시 돋보인다. 데뷔 무대임에도 불구하고 탁월한 디제잉을 선보여 향후를 더욱 기대하게 된다.
스큅: ‘숨듣명’이 아닌 ‘슬케팝’. 준수한 완성도를 지녔지만 화제성이 떨어져 빛을 발하지 못한 곡들이 다수 포함되었다. 끊임없이 샤잠(Shazam)을 돌린 사람이 분명 적지 않았을 것. 일반 클럽 혹은 라운지 펍에서 틀어도 위화감이 없을 정도로 세련되었다. 특히 레드벨벳 ‘Kingdom Come’, 레이디스코드 ‘Galaxy’, CLC ‘Breakdown’이 이어지는 부분은 순전한 ‘슬픔’, 애수의 케이팝을 경험케 하는 이례적인 구간. BPM을 소수 단위로 매만지는 듯한 섬세한 조작과 동명의 타이틀곡을 잇는 센스 역시 돋보이며, 화려한 턴테이블 조작과 라이브 무대매너는 디제잉에 재미를 더한다. 양일 10개의 플레이리스트를 통틀어 가장 이질적인 세트를 선보였는데, “케이팝의 해석이 다르다기보다는 내가 그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여러 가지로 플레이하고 있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는 그의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숨듣명’에 매몰되어버린 지옥의 케이팝러에게 내리는 동아줄처럼 느껴진다 하면 과언일까.
스큅: 최첨단 가상 아이돌부터 90년대 댄스 가요까지, 밀레니얼 ‘국힙’부터 2019년 신인 아이돌까지, 신세대 SMP부터 윤상과 스윗튠까지. 케이팝의 바운더리 내에서 시대와 장르를 종횡무진한다. 가장 넓은 폭의 음악을 다루며 베리베리 ‘딱 잘라서 말해’를 영턱스클럽 ‘훔쳐보기’와 잇고 한요한 ‘댄스’를 알로 ‘잠자는 숲속의 왕자’와 잇는 등 꽤나 과감한 코너링을 시도하지만, 일관되게 나타나는 레트로의 향수로 균형감각을 안정적으로 유지한다. 레트로의 향수가 짙게 묻어난 노래는 대개 사장된 명곡이었다는 점도 재미있다. 레트로 마니아의 ‘이 노래 왜 안 떠요?’ 특집 같았달까. DJ의 섬세한 촉을 엿볼 수 있는 선곡이었다. 디제잉과 별개의 이야기지만 ‘국힙’ 트랙에 대한 관객들의 일차원적인 거부반응에 ‘(슬픔의) 케이팝’이란 과연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기도 했다. 케이팝-아이돌팝은 ‘국힙’의 안티 체제인 걸까.
스큅: 21세기에도 불건전가요가 있다면 바로 이 곡들일 것이다. 일반 ‘숨듣명’이 방구석 클럽튠이라면, 이 ‘숨듣명’의 스케일은 이불 속. 사실 ‘노동요’의 기믹으로 끌어 올려진 작금의 ‘숨듣명’은 우악스러운, 소위 ‘빠개는’ 댄스튠만을 포착하고, 음침하지만 유려한 선율과 가락을 지닌 ‘슬케팝’을 간과하는 측면이 있었다. 만나는 이러한 곡들까지 착실하게 챙기며 폭넓은 ‘슬픔의 케이팝’을 들려준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세트리스트를 듣고 있노라면 이불 속에 들어가 몸을 들썩이며 눈물을 떨구고만 싶어진다. 관객들 역시 이전까지 떼창을 비롯한 단체 호응이 두드러졌던 것과는 달리 각자 사색의 담요를 두른 채 무아지경에 빠진 듯한 모습이었다. 음악 면에서나 ‘구오빠’들을 향한 일갈을 담은 메시지 면에서나 ‘슬픔’과 ‘케이팝’ 두 가지 축을 가장 고르게 녹여낸, 케이팝의 음습한 희로애락과 이를 향한 자조가 짙게 밴 세트.
심댱: 울먹이는 여자의 외침 사이로 삐죽이는 인피니트 ‘태풍’의 인트로, 그리고 스크린에 띄워진 “SAD AND BAD.” 인상적인 인트로와 함께 등장한 manna는 케이팝과 댄스 가요를 아우르며 지나간 오빠들을 향해 일갈한다. ‘구 최애마냥 못났고 나빴던 그 오빠, 하지만 참 사랑했지…☆’ 같은 소회는 잠시. 적적함과 슬픔을 잊어보려 시작한 지옥의 케이팝 플레이는 오빠를 향한 미움과 한데 얽혀 혼돈의 카오스로 승화된다. 이 혼돈의 카오스는 댄스 가요와 케이팝 사이(ex. 스페이스 에이 ‘성숙’, 모모랜드 ‘Baam’), 나이트와 클럽 사이를(ex.거북이 ‘Come On’, 씨스타 ‘So Cool’) 누비며 어느새 순수한 흥으로 진화한다. 미움과 슬픔, 그리고 혼돈의 감정은 ‘나쁜 기집애’가 되겠다는 독한 마음으로 갈무리를 맺는다. 슬픈 ‘땐스곡’으로 대동 단결된 세트리스트는 기승전결이 뚜렷해 마치 막장드라마와 같은 강렬한 자극을 주었다. manna의 시간은 관객의 K-DNA를 고루 건드리며 슬케파의 분위기를 한층 더 얼큰히 달아오르게 했다.
스큅: 제목을 붙이자면 ‘당신이 슬케파에 바랐던 모든 것’. 관중의 취향을 저격하고 말겠다는 사명감마저 느껴진다. 여기서 말하는 관중의 취향은 2세대 아이돌 붐을 전후로 음악 취향 형성의 결정적 시기를 보낸 90년대생 여성, 이른바 ‘뮤직뱅크 세대’를 중심으로 편재되어있다. 이에 따라 세트리스트는 SMP와 SMP 특유의 터무니없음을 공유하는 곡들로 채워졌는데, 흡사 “300X2”를 방불케 하는 열렬한 떼창을 듣고 있자니 이쯤 하면 SMP를 X세대 이후, Y세대와 Z세대(밀레니얼 세대) 사이 과도기적 세대의 분열증적 시대정신이라 해야 하지 않나 싶다. 격변하는 현실과 끊임없이 불화하는 ‘어둠의 케이팝’ 퍼레이드는 마지막 순간 동 세대 ‘빛의 가요’ 히트곡, ‘비밀번호 486’을 만나며 극적인 화합을 이뤄낸다. 이틀간의 살풀이를 마무리하고 ‘현생’으로 복귀해야 하는 시점 최적의 선곡. 슬픔의 케이팝 파티를 관통하며 마지막 획을 그은 완벽한 구성이었다. 성범죄 연루 전적이 있는 멤버가 소속된 그룹의 곡을 제외한다는 내부 방침을 미처 지키지 못했다는 점만이 옥에 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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