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nzie 12주년 : (2) 켄지 연대기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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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줄거리 : 우연히 마법 같은 힘을 얻게 된 소년… 아니 소녀 켄지. 버클리 음대를 졸업하고 2002년 데뷔해 왕성한 창작욕을 불태우며 SM의 간판 프로듀서로 성장한 그녀의 앞에도 먹구름이 드리우는데… 힘내라, 켄지! 켄지 연대기 (상)에서 이어집니다.
아트웍 강동

아트웍 강동

“Brand New Sound” (2007년~2010년)

그렇게 화려한 나날이었지만, 어떤 이들은 켄지의 곡을 두고 “예쁜 곡들이지만 훅이 너무 약해서 히트를 못 한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한때 SM이 어지럽게 이어 붙인 곡 구조로 악명이 높았다면, 이 시기의 케이팝은 누구나 곡에 과격한 변화를 포함시켰다. 또한 이른바 ‘훅송’의 대대적인 유행까지. 어디까지나 정통파의 퀄리티 팝을 만들어내던 켄지에게 있어서는 다소 위기로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가 단적인 예가 될 것이다. 오래 전 M.I.L.K의 곡으로 만들어졌던 것이라고는 하나, 결과적으로 이 곡은 시대에 비해서는 지나치게 성실했다. (이러한 정황 속에서 소녀시대가 방향을 전환해 나간 양상은 음악웹진 weiv에 실린 [미묘의 아이돌 LAB] 다시 만난 세계를 참조하기 바란다.)

그러던 중 눈에 띄는 사례는, 천상지희 다나 & 선데이의 ‘나 좀 봐줘’(2011년 7월)다. 처음부터 끝까지 난감한 가사로 내달리는 이 곡으로 켄지는 작사가로서 가히 악명을 떨치기에 이른다. 이때 작사가 켄지의 어떤 리미터가 해제되었다면, 이후 f(x)의 ‘제트별’, 엑소의 ‘늑대와 미녀’ 같은 곡들의 바탕이 되었다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어쩌면 ‘의미불명’을 추구하는 이런 성향은 그녀가 원래 갖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어딘지 모르게 번역투인 가사 속에 말이다. “너 없이 약한 나를 알았어”(보아, ‘Time To Begin’, 2003), “어떤 마음으로 전할까 / 난 너에게”, “문득 가까워진 계절을”, “나를 놓치지 말아줘” (보아, ‘Milky Way’, 2003) 등. (이 시기, 특히 보아의 가사는 의도적인 번역투를 활용했음을 의심해 봄직하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자.)

또한, 무시무시한 ‘나 좀 봐줘’에 이르기까지는 보다 조심스러운 시도들이 복선처럼 깔려 있다. 그 중에는 제목이나 훅의 가사에서 약간의 이국 취향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방식도 있었다. (샤이니의 ‘Jo Jo’, ‘세뇨리따’, ‘혜야’, 슈퍼주니어의 ‘앤젤라’, 보아의 ‘M.E.P.’, f(x)의 ‘라차타’ 등) 외국 곡의 재편곡 및 번안 등이 있었던 2008년~2009년 시기, 켄지는 어쩌면 적잖은 선배 작곡가들이 그랬듯, 이국적인, 특히 라틴 음악에서 힌트를 찾고자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변화의 시도는 가사에서만 발견되는 게 아니다. 어쩌면 ‘SMP’를 개량해낸 보아의 ‘My Name’(2004)과 유려한 조바꿈이 밀물처럼 반복되며 감정을 쌓아 올리는 동방신기의 ‘One’(2005)에서 이미 변화의 씨앗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각 파트의 끝마다 시간을 끌면서 조바꿈을 밟아 나가는 슈퍼주니어의 ‘I Am’(2007), 정통파 팝의 틀 속에서 곡 구조에 의한 역동성을 실험한 소녀시대의 ‘소녀시대’, 악기를 이펙트처럼 사용해 곡을 리드하며 후렴에서 속도감을 높이는 샤이니의 ‘Real’ 등이 모두 이 시기의 곡들이다. 또한 샤이니의 ‘Jo Jo’는 4마디 단위로 모티프가 4번이나 숨가쁘게 변화한 뒤 후렴으로 돌입하고, 다시 제2의 후렴인 D파트(“Hey, My Jo Jo…”)로 이어진 뒤 다소 엉뚱하게도 인트로를 다시 끌어오는 형태를 띄었다.

‘흑켄지’ 혹은 ‘로커 켄지’ 역시 진화했다. 슈퍼주니어의 ‘Opera’, 소녀시대의 ‘Oscar’, 샤이니의 ‘낯선 자’ 등은 록을 일렉트로닉으로 옮겨놓은 사운드, 때로는 노골적인 록 사운드를 구사하면서 청자를 강렬하게 휘어잡는 카리스마를 선보였다. 이런 성향의 곡들은 이후에도 꾸준히 계속돼, 2012~2014년 동방신기의 ‘Gorgeous’, 소녀시대의 ‘Express 999’, 샤이니의 ‘Why So Serious?’, f(x)의 ‘바캉스’ 등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소녀시대의 ‘Oh!’(2010)가 발표됐다. 도입부를 여는 “전에 알던 내가 아냐 / Brand New Sound”란 가사는 마치 켄지 자신의 심기일전을 표현하는 것만 같다. 특이한 것은 후렴 뒤에 붙은 D파트(“전에 알던…”)가 통상적인 훅송처럼 간결한 프레이즈의 반복이 아니라는 점이다. 즉 굳이 훅송에 유리한 구조를 따오고서도 거기에 굳이 멜로디를 심었으며, 그 멜로디는 너무나도 ‘켄지스러운’ 매력을 갖고 있었다. 노골적인 듯 미묘한 듯 배어들어간 섹스어필과 과감한 “오빠”의 호명과 함께, 이 곡은 여성 아이돌 붐과 훅송의 시대에 대한 켄지의 2차 출사표이자 한 완성형이었다.

두 갈래의 길 (2011년~)

켄지의 이름이 외국 작곡가들과 함께 크레딧에 오른 것은 꽤 오래된 일이다. 그러나 완성된 곡을 가져와 재편곡한 것을 제외하면, 2010년 슈퍼주니어의 ‘My Only Girl’을 Brandon Fraley, Joshua Welton과 공동 작곡한 것이 처음이라 볼 수 있다. 이후 그녀는 외국 곡의 작사에만 10여곡 참여한다. 2011년 슈퍼주니어 M의 ‘태완미’의 편곡을 제외하면 2013년 샤이니의 ‘Evil’에서야 공동 작곡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솔직히 말하겠다. 자료 입수에 한계가 있고, 한 곡의 발매일을 안다고 해도 곡이 완성된 시기에 대해서는 내부인이 아니고선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켄지가 외국 작곡가들과 공동 작곡을 할 수 있는 환경에 처한 것과, 그 결과물이 본격적으로 쏟아져 나오게 된 시기 사이에 약간의 시간차가 있다는 것만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공동 작곡을 별로 원하지 않았는지, 시행착오가 필요했는지, 다른 일로 바빴는지, 외부에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켄지는 작년부터 공동 작곡한 곡들을 줄줄이 발표하고 있다. 엑소의 ‘늑대와 미녀’, ‘중독’, f(x)의 ‘Red Light’, 헨리의 ‘Fantastic’ 등이 포함돼 있다. 한편 올해의 곡들을 살펴보면 외국 작곡가와의 공동 작업 5곡, 오랜 파트너 김정배와의 공동 작업 1곡, 단독 작곡 4곡으로 나뉜다. 현재 켄지의 책상에서 공동 작곡이 꽤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 것임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공동 작곡, 혹은 송캠프에 있어 켄지가 기여할 수 있는 바는 많을 것이다. 윌 심스도 아이돌로지와의 인터뷰에서 ‘늑대와 미녀’ 작업 중 켄지가 아니었다면 이뤄지기 힘들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야기를 풀어놓은 바 있다. 뮤지션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은 때로 골치 아프고, 보컬리스트와 A&R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끼어든다면 더욱 그렇다. 그리고 그곳에, 이미 기획을 가장 잘 이해하는 프로듀서로 활약해 온 켄지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듯하)다. 어쩌면 켄지의 앞날은 (혹은 이미) 한 곡 한 곡의 작편곡을 하는 사람이란 의미의 프로듀서보다, 조금 더 큰 규모의 지휘자인 건 아닐까.

2012년부터 지금까지의 켄지의 곡들을 살펴보면, 또 하나의 특징이 발견된다. 타이틀 곡은 공동 작업을 통해 확실하게 가져가는 동시에, 다른 곡들을 통해서는 좀 더 개인적인 입맛에 맞는 곡들을 추구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소녀시대의 ‘Express 999’, ‘유로파’, 동방신기의 ‘비누처럼’, 샤이니의 ‘Evil’, ‘빗속 뉴욕’, f(x)의 ‘제트별’, ‘시그널’, ‘Milk’ 같은 곡들이다. 개중에는 대중성이 부족하다 해야 할 정도로 아이돌적인 곡도 있고, 때론 듣기에 따라 다소 어렵다면 어려울 수 있는 곡마저 있다.

이런 곡들은 메이저 히트곡이 되기에는 어떤 이유에서든 무리가 있어 보이지만, 매우 선명한 취향의 존재를 선보인다. 그것은 때로 ‘4차원 취향’이기도 하고, 해맑게 애틋한 아이돌 취향이기도, ‘덕후’ 취향이나 디스코/훵크, 제이퓨전 혹은 음악 마니아 취향이기도 하다. 이를 다 합쳐 보면 묘하게도, 우리가 흔히 ‘켄지 풍’이라 부르는 어떤 상과 사뭇 닮아있음을 느끼게 된다. 어쩌면 지금 그녀는 ‘켄지 월드’라 부를 만한 어떤 음악 세계를 좀 더 멀리, 그리고 보다 단단하게 세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프로듀서 켄지

켄지란 이름을 처음 발견하던 순간은 누구에게든 살짝 당황한 추억으로 남아 있지 않을까. 왠지 일본 남자 같은 이국적인 이 이름. 더구나 그런 예명은 아직 낯설었다. 지금처럼 “신사동 옆차기”, “이단 형제” 같은 이름보다는 주민등록증에 적힌 실명을, 예명을 쓰더라도 실명 같은 예명을 쓰는 경우가 아무래도 많던, ‘작곡가 선생님’이 곡을 ‘써주시던’ 시대였다.

시대는 변했고, ‘작곡가’란 말보다는 ‘프로듀서’가 익숙해졌다. 그들은 저마다 독특한 이름을 내걸고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며 ‘주문에 맞춘’ 프로듀싱을 모토로 내걸고 있다. 그러고 보면 켄지는 이미 2002년부터 그런 형태의 프로듀서의 길을 걸어왔다. 예명도 시대에 다소 앞섰고, SM 전속 작곡가답게 누구보다 치밀한 ‘맞춤형’ 곡을 만들었으며, 적어도 SM 소속 아이돌의 팬들에게는 가장 가슴 설레는 곡을 써내는 작곡가로 그 이름을 깊이 새긴 스타 프로듀서이기도 했다.

초등학생 소녀에게 띠동갑 연하남이 태어나기에 충분한 12년. 아이돌도, 팬도, 환경도 모두 변했고, 켄지의 음악도 달라졌다. (어쩌면 음악을 통해 보이는 것은 극히 일부일지도 모른다.) 불안과 슬픔 속에서도 꿋꿋한 소녀의 감성과 흑켄지의 카리스마, 당혹감과 물음표를 매력으로 치환하는 의미불명의 미학, 디스코/훵크와 록에 탄탄하게 뿌리를 내린 정통파 팝의 양분과, 파격을 두려워하지 않는 감각적인 실험들. 그 모든 것이 지금의 ‘켄지 월드’를 이루고 있다. 수많은 팬들에게 잊기 힘든 기쁨을 안겨준 켄지의 12년간에 경의를 표하며, 앞으로의 행보도 지대한 관심으로 지켜보기로 한다.

ⓒ Kenzie, 출처 Berklee College of Music

ⓒ Kenzie, 출처 Berklee College of Music

미묘

Author:

가식과 내숭의 외길 인생. 음악 만들고 음악 글 씁니다. f(x)는 시대정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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