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벨벳 – Be Natural (2014)

이 붉은 벨벳은 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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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곡은 리메이크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리메이크가 아니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S.E.S.의 2000년 원곡을 다시 발표했다는 점은 리메이크라 할 만하지만, 음악만 놓고 본다면 달라진 것은 보컬뿐이다. 그나마도 부분부분 원곡의 창법을 그대로 가져온 듯한 인상마저 있어서, 달라진 것은 보컬리스트뿐이라고 하는 편이 정확할지 모른다. 물론 아이돌에게 그런 경우가 드물진 않지만, 팬서비스성 특별무대와 정식 출시 음원은 맥락이 다를 수밖에 없다.

S.E.S.에게 ‘Be Natural’은 성장의 선언이었다. 그렇다, 지금도 걸그룹들이 종종 소울/훵크 사운드를 도입하거나 섹시 안무를 시도하는 것과 같은, ‘성장’ 말이다. 심드렁하게 늘어지다가 짜증인지 격정인지 애매한 고음을 ‘뽑아내는’ 목소리는, ‘가요계의 요정’이던 S.E.S.에게 극적인 변화를 부여했다. (당시에는 쓰지 않던 표현이지만) 레이드백 스타일이 주는 섹시한 느낌, 다소 어려운 듯한 화성과 과감한 구조 역시 S.E.S.에게는 새로운 옷이었다.

레드벨벳의 ‘Be Natural’에서 재해석으로 ‘들릴’ 만한 것은 거의 없다. 모든 것이 2000년 원곡 그대로이다. “수필 같은 넉넉한 말들” 같은 가사는 지금의 걸그룹 곡으로 생각하면 제법 생경하다. (이건 소녀만화 잡지 말미에 실리는 작가의 말 같은 질감을 보이던 바다의 캐릭터와도 관련된다.) 유니슨으로 처리한 후렴은 요즘의 아이돌 보컬 편곡을 역행하고, 걸그룹 곡에 남자 래퍼가 거드는 형태도 예스럽다. (심지어 S.E.S.의 원곡에 들어간 멤버들의 랩 더블링마저 이번엔 빠져 있다.) 사운드의 퀄리티는 나아진 듯하지만 (정식 음원이 발매되기 전임을 이해 바란다) 편곡 자체는 원곡과 거의 다르지 않다.

그래서 느껴지는 것은 15년 전 그대로인 이 곡의 현재성이다. 이 곡의 화성은 ‘지금 듣기에도’ 만만치 않게 꼬여있고, 해먼드 오르갠 위주의 사운드는 ‘지금 듣기에도’ 유려한 섹시함을 가지며, 90년대 말에 유행하던 909 드럼 사운드는 ‘지금 듣기에도’ 절도 있다. 그리고 과감한 조바꿈을 거듭하는 분절적인 곡의 구조는 ‘지금 듣기에도’ … 요즘 곡 같다. 요컨대 이 곡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곡을 다시 들어보라” 하는 것이다.

음악 외적인 부분까지 본다면 이 곡은 또한 제법 다르다. 심재원의 퍼포먼스 디렉팅과 카메라워크가 결합된 뮤직비디오는 적당히 컷을 나누기도 하고 디졸브로 클로즈업이 들어가기도 한다. 지난 몇 년간 소속사가 일궈낸 콘텐츠 중 하나이자, 혁신적이기에 자랑해야 했던 이 기법이, 이제는 뮤직비디오의 다양한 언어 중 하나로 자리잡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의상 탓인지 S.E.S.에 비해 길쭉하고 여리여리해 보이는 멤버들의 몸짓은, 꽤 어리게 들리는 목소리와 더불어 더 가냘픈 여성성을 강조해, 사뭇 ‘야하게’ 다가온다. ‘있어 보이는’ 세트 속에서 상징적인 듯한 안무를 소화하는 멤버들의 모습에는, ‘칼군무’의 유행이 지나간 자리에 세워진 절도와 통제가 깃든다. 이 곡이 보여주는 새로움이란 (멤버들의 신체 조건과 패션의 변화를 포함해) 아이돌 산업의 기술적, 미학적인 발전이다.

그 지점에서 이 곡은 리메이크의 정의로 되돌아간다. 한 아티스트가 다른 아티스트의 곡을 재해석하는 리메이크가 아니다. 소속사가 한 아티스트에게 다른 아티스트의 곡을 리메이크하도록 시킨 경우도 아니다. 이것은 산업적, 예술적 주체로서의 소속사가 자신의 곡을 다시 발매한 일이 된다. 그러니 이 곡은 차라리, SM 엔터테인먼트(혹은 S.M.E)란 이름의 아이돌이 발표한 ‘Be Natural (2014 Rerecorded)’이라 표기하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인다. 그리고 마침 이 곡은 묘하게 건조하다. 유니슨인 보컬도 그나마 매우 평탄하게 처리돼 있어, 보컬 믹스에 입체감을 부여했던 원곡과 대조를 보인다. (티 나게 처리하지 않아도 보컬의 존재감을 살려낼 수 있는 기술력의 향상을 전시하려는 것일까.) 화려한 연출에도 불구하고 비디오는 시종일관 어딘가 매끈하게 움직이는 밀랍인형들 같고, 마침 안무도 두 멤버가 다른 두 멤버를 움직이게 하거나 여러 멤버가 겹쳐져 하나의 ‘형상’을 이루는 동작들이 눈에 띈다. 그리고, 색깔로 멤버를 구분해야 했던 전작 ‘행복’에 뒤이어 무채색으로 옷을 맞춰 입은 레드벨벳의 멤버들은, 여전히 각 멤버 개개인보다는 팀으로서만 존재감을 보인다. ‘얼굴 없는 아이돌’이라 불러도 좋을지 모르겠다.

주체로서의 소속사라는 것에 대한 가치 판단은 유보한다. 누군가에게는 새롭고, 누군가에게는 비인간적일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이 곡에서 레드벨벳은 소재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작업을 통해 SM 엔터테인먼트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어떤 전통을 세워 보이고자 하는 것일 수도, 또는 ‘2000년에 이미 우리가 옳았다’는 것일 수도 있다. 혹은, 이 기업이 내우외환에 대해 결국 시스템의 개량이라는 기존의 전략을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읽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면으로든 레드벨벳은 커리어 초반부터 유례 없는 행보를 걷고, 혹은 걸어지고 있다.


레드벨벳 – Be Natural
SM 엔터테인먼트, 2014년 10월 13일 (예정)

미묘

Author:

가식과 내숭의 외길 인생. 음악 만들고 음악 글 씁니다. f(x)는 시대정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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