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의 불모지 : 뭄바이 공항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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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일, 한 인도 팬이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글에 따르면 1일 저녁 9시 30분경 약 15명의 팬들이 뭄바이 공항을 찾았다. KBS 〈두근두근 인도〉 출연진들이 도착한다는 정보가 있었으나 정확한 도착 시각은 알 수 없어서, 14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KBS PD가 찾아와 팬 여부를 확인한 뒤, 팬이 아닌 척하기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자칫 방송을 취소할 수도 있다는 발언도 했다고 한다.

뭄바이 공항의 인도 팬이 남긴 페이스북 글KBS 측은 촬영이 끝난 뒤 팬들을 따로 만나 사인도 해주며 인사를 나누도록 조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장에 있었던 또 다른 팬인 대학생 A씨의 이야기는 달랐다. 출연진을 따라간 팬은 없었으며 그들이 차에 탑승해 출발하는 것까지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다는 것이다. 출연진이 뭄바이 시내나 고속도로 상에서 팬들에게 사인을 해준 일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이 공항에서 기다리던 팬들이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A씨는, 미리 뭄바이에 와 있던 PD가 비행기 도착 약 1시간 전에 통역을 대동하고 공항 게이트 앞으로 찾아왔으며, 많은 국내 언론이 보도한 것처럼 가방을 뒤지거나 휴대폰, 카메라의 메모리를 확인한 일은 없었다고 밝혔다. (이러한 내용은 사건이 처음 알려진 페이스북 글에도 포함돼 있지 않다.) 다만, 가지고 온 플래카드와 포스터, CD 등을 모두 집어넣고, 출연진을 전혀 못 알아보는 척하길 요구했다는 것이다. A씨에 따르면 팬들은 출연진이 지나간 뒤 허탈함과 안타까움에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페이스북 글에서도 자신들의 고생보다는, 황량한 게이트 앞에 선 출연진의 허전한 얼굴이 마음 아팠다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어디를 가나 팬들의 마음이란 비슷한 듯하다.


몰래 찍은 영상 특유의 느낌이 살아 있다.
게이트와 촬영지인 펜스 사이의 거리감도 느껴진다.

KBS 측은 뭄바이 공항 촬영 허가를 받아내기가 매우 힘들었다고 밝히며, 소란이 일어나면 촬영 허가가 취소될 것을 염려해 팬들에게 이 같은 요구를 했다고 해명했다. 일견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인도에서 20년 이상 거주한 항공사 직원 출신 한 소식통에 따르면, 뭄바이 공항은 인천이나 부산과는 전혀 달라서, 매우 작고 혼잡한 곳이라고 한다. 더구나 2008년 뭄바이 테러 사건 이후 공항의 보안이 극도로 강화돼 공항 측도 매우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양자 간에 다소의 오해가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도 가능하다. A씨에 의하면 영어가 서툴렀다는 PD는, 방송을 취소하겠다고 말했다고 알려졌지만, 촬영 허가가 취소돼 방송을 찍을 수 없게 된다는 말이 와전되었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름을 밝히거나 하지 않은 PD의 자세가 그런 고압적인 인상을 더 강화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제작진의 우려는 얼마나 현실적인 것이었을까. 소식통은 인도의 한 국민 배우가 일요일마다 자신의 집 앞에 나와 팬들과 인사를 나누는 영상을 소개했다. 모든 팬이 다 차분하고 이성적이라 생각할 순 없지만, 팬 문화의 차이는 엿볼 수 있다. 국민적 인기를 누리는 연예인이 팬들을 매주 사실상 집 앞으로 초대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소식통은 인도 사회가 소리 치며 달려드는 팬 문화를 별로 경험해 본 적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인도인 팬은 사전에 “Fluttering India Fan Project”라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이미 여러 차례 주의가 오고 간 바 있다고 밝혔다. 촬영을 방해하면 안 되니 현장에 찾아가거나 사진을 찍고 선물을 보내는 일을 삼가야 한다는 내용이 지속적으로 포스팅 되었고, 자신도 아쉽지만 출연진이 인도에서 좋은 추억을 만들기 원했기에 그 내용을 따랐다는 것이다. 이 페이스북 페이지는 현재 폐쇄된 상태이다.

더구나 뭄바이 공항은 게이트를 나서면 바로 공항 밖으로 나가는 구조로 돼 있다고 한다. 펜스도 쳐져 있으며 게이트와 펜스의 거리는 인천 공항보다 훨씬 멀다는 것이다. 앞서 살펴본 인도 팬 문화의 일면과 이러한 환경을 고려하면, 15명의 팬이 삼엄한 보안이 이뤄지는 공항의 야외에서 얼만큼의 ‘소동’을 피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게이트를 빠져 나온 뒤에는 이미 건물 밖인 뭄바이 공항에서, 공항 측의 촬영 허가가 취소된다고 해서 잃을 것은 얼마나 되었을까.

팬들에게 ‘조용히 할 것’이 아닌, ‘모르는 척할 것’을 요구한 이유는 그곳에 있는지 모른다. “미디어의 불모지 인도에서 펼쳐지는 신세계 개척기”라는 〈두근두근 인도〉의 제작 취지를 감안하면, 아무도 몰라보는 편이 ‘그림이 나오기’ 때문이다. 즉 방송의 재미를 위해 현실을 왜곡하려 했고, 이를 위해 팬들에게 고압적 태도로 요구를 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케이팝의 불모지’ 인도에서 두 번 열린 엔소닉의 공연 중.
적당히 웅성대는 분위기가 침착해 보인다.

〈두근두근 인도〉는 처음 제작발표 단계부터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외교부에 의해 여행 자제국으로 지정된 인도가 위험하지 않냐는 것이었다. “미디어 불모지”를 찾아 대도시 밖으로 나간다면 더 위험할 것이라는 우려는, 공항에서의 상황을 보면 잊어버려도 될까. 그러나 더 낯뜨거운 것은 인도에 대한 시각이다. 인도는 IT 산업 세계 2위, 구매력 평가 기준 GDP 세계 3위인 나라이다. 이런 지적이 잇따르자 KBS는 한류가 덜 알려진 곳이란 표현이었다고 해명했다. 케이팝 팬이 없는 곳은 “미디어의 불모지”라는 정도가, 케이팝의 자부심을 한 꺼풀 벗겨보면 벌써 드러나는 맨 얼굴이다.

설령 인도가 정말 “미디어 불모지”라고 한들, 그곳에서 케이팝을 ‘전파’하며 ‘개척’하는 과정을 예능으로 담는다는 설정은 괜찮을까. 실제 방송을 보기 전에 단정하긴 어렵지만, 타자화와 제국주의적 시각(원한다면 ‘국뽕’이라 읽어도 좋다)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것이 아니었다면, 제작진의 다소의 과잉 대응이 이렇게 큰 오해로 이어졌을까. ‘언어는 달라도 전해지는’ 것은 케이팝의 매력만이 아닌 것이다.

“KBS가 뭘 하려는 건지 모르겠다. 인도가 무척 가난한 나라라고 보여주는 것? 우리 팬들에게 그보다 더 슬픈 건 우리가 좋아하는 아이돌들이 가까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들과 소통하거나 우리의 애정을 보여줄 수 없다는 것이다.” – 인도 팬 P

이번 취재로 접한 인도 팬들은 이 방송이 인도에 대해 어떤 편견을 보여줄지 오래도록 걱정해 왔다고 입을 모은다.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 류의 오리엔탈리즘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은 누구보다 그들이 잘 알고 있을 터이다. 그러나 인도 팬들은 이 방송에 기대를 걸었다. ‘케이팝 팬 3백 명’ 설은 터무니 없으며, 그런 잘못된 통계로 인해 인도에 케이팝 공연이 유치되지 않아 늘 아쉬웠다는 것이다. 〈두근두근 인도〉의 꺼림직한 제작 취지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만나기 어려운 케이팝 아이돌들이 자신들의 나라에 오는 것만으로 기뻤다고 한다. 공항에서의 일 역시, 팬의 존재를 알리지 못한 아쉬움이 가장 컸다는 것이다. 취재 내용을 기사화해도 되겠냐는 질문에 A씨는, 아이돌들에게 화살이 가지 않도록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익명을 요구한 것은 그 다음 일이었다.

미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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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식과 내숭의 외길 인생. 음악 만들고 음악 글 씁니다. f(x)는 시대정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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