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쿨 아이돌 페스티벌”, 아이돌의 거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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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쿨 아이돌 페스티벌〉(이하 스쿠페스)은 2010년 시작된 ‘콘텐츠 덩어리’인 〈러브라이브! 〉의 일부로, 2013년 출시된 모바일 게임(iOS, 안드로이드)이다. 〈러브라이브! 〉는 신입생 부족으로 폐교 위기에 처한 학교를 홍보하기 위해 ‘스쿨 아이돌’ 뮤즈(μ’s)를 결성한 9명의 소녀들의 이야기라는 설정이다. 이를 바탕으로 음반, 애니메이션, 게임, 출판 만화가 맞물려 돌아가며, 9명의 캐릭터를 담당한 성우들이 출연하는 공연과, 캐릭터들의 무대를 연출한 애니메이션 형태의 공연-상영이 병행되기도 한다. 인터넷에서 종종 들리는 “젠카이노~”, “니코니코니” 등도 〈러브라이브! 〉에서 비롯된 유행어들이었다.

나는 〈슈퍼마리오〉를 나보다 못하는 사람을 본 적 없는 괴멸적인 게임맹이다. 설득력 없는 설득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아이돌 웹진인 아이돌로지에서 (소액이지만 취재비까지 들여서!) 스쿠페스를 살피는 것은 게임 리뷰로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스쿠페스가 아이돌을 다루는 방식에는 분명 우리의 관심을 자극할 만한 요소들이 있다.


뮤즈 – ‘夏色えがおで1,2,Jump! (여름색 미소로 1, 2, Jump!)’

고난은 팬덤을 응집시킨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2010년 발매된 〈러브라이브!〉의 첫 싱글 “僕らのLIVE 君とのLIFE(우리들의 LIVE 너와의 LIFE)”는 관계자 구매를 포함해도 채 500장이 팔리지 않았고, 오리콘 차트의 200위 이내에 간신히 걸치는 성적에 그쳤다. 2005년에 시작된 가상 아이돌 콘텐츠인 〈아이돌 마스터 (THE iDOLM@STER)〉의 아류라는 비판도 받았다. 더구나 주역 성우 한 명의 어머니가 한국인이란 사실이 묘한 도발을 일으켜 혐한파들의 공격 대상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

작품이 대중적 호응을 얻게 된 것은 TV 애니메이션이 방영되던 2013년 이후의 일이다. 작년에는 스쿠페스의 한국어 서비스가 시작됐고, 국내 ‘라이브 뷰잉’이 유치되면서 큰 화제를 모았다. 작년 말, 스쿠페스의 전세계 사용자는 1천만 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이 기사는 영어판을 기준으로 작성되었지만 내용은 한국어판과 거의 동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약 4년간에 걸친 고난과 그 끝에서 이뤄진 급성장. 팬덤은 높은 충성도와 응집력을 획득했다. ‘럽폭도’라고도 불리는 강성 팬덤의 배경이다.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이다.


스쿠페스가 어떤 게임이고 팬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이렇게 잘 보여주는 영상이 있다니. (영상에 담긴 건 가장 어려운 레벨이다.)

멤버는 안고 가는 것

스쿠페스는 리듬게임과 수집형 카드게임, 스토리모드를 결합해 두었다. 아이돌 멤버는 카드의 형태로 구현된다. 카드는 뮤즈의 멤버 9명과 스쿠페스에만 등장하는 ‘일반 부원’ 54명, 그리고 이들의 배리에이션으로 구성된다. 일반 부원은 카드를 아무리 업그레이드해도 뮤즈 멤버 9명의 능력치에 한참 못 미친다. 열심히 해도 따라갈 수 없는 능력치의 벽. 가슴 아픈 현실이다.

일반 부원으로선 높은 편이지만 뮤즈 멤버에 비하면… ‘눈빛이 마음에 든다’는 이유로 성장시켜 보았지만 아무 짝에 쓸데 없는 짓이었던 듯하다.

일반 부원으로선 높은 편이지만 뮤즈 멤버에 비하면… ‘눈빛이 마음에 든다’는 이유로 성장시켜 보았지만 아무 짝에 쓸데 없는 짓이었던 듯하다.

뮤즈 멤버는 시작부터 능력치의 단위가 다르고 특수능력도 있다. 목소리가 마음에 들어서 골랐지만 (그렇다, 뮤즈 멤버는 음성지원도 해준다) 멤버들 중에서는 능력치가 높은 카드도 아니다.

뮤즈 멤버는 시작부터 능력치의 단위가 다르다. 목소리가 마음에 들어서 골랐지만 (그렇다, 뮤즈 멤버는 음성지원도 해준다) 멤버들 중에서는 능력치가 높은 카드도 아니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그런 일반 부원이라도 버리지 않게 되는 동력이 있다는 것이다. 우수한 카드를 얻고 게임을 더 많이 하는 데에는 ‘러브카스톤 (영어판에서는 ‘Love Gem’)’이라는 유료 코인이 필요하다. 그런데 무료 플레이어라 해도 멤버를 성장시키면 이것이 꾸준히 획득된다. 한번 레벨을 올리거나 게임에 투입하기 시작한 멤버는 들인 노력과 정성이 아까워서라도 보상을 받을 때까지 팀의 일원으로 가져가고 싶어지는 것이다. 능력치가 모자라 성적에 다소 악영향을 주더라도 말이다.

아이돌은 스탯이 아니다

카드의 능력치는 ‘Smile’, ‘Pure’, ‘Cool’이라는 세 개 성향으로 나뉜다. 리듬게임에 포함된 곡들 또한 이에 대응해 구분되는데, 이 성향들은 글자 그대로의 의미와는 조금 다른 듯하다. 빨간색인 ‘스마일’은 즐거운 곡이거나 따뜻한 애정을 표하는 곡들에 해당한다. 녹색의 ‘퓨어’는 청순미라기보다는 귀엽고 깜찍한 매력에 가깝고, 파란색의 ‘쿨’은 좀 더 성숙하거나 청량감 있는 곡들이 많다. ‘상대에 대한 감정’, ‘아기자기한 외적 매력’, ‘내면의 매력’ 정도로 바꿔 표현해 볼 수도 있겠다.

팀 구성의 예. 팀 이름과 리더, 구성원을 고를 수 있다.

팀 구성의 예. 팀 이름과 리더, 구성원을 지정할 수 있다. 여기서는 얼굴만 보이지만 눈썰미 있는 독자라면 ‘견적’이 나올 것이다.

좋은 점수를 얻으려면 플레이하려는 곡의 성향에 맞는 카드들로 유닛을 구성해야 한다. 그러니 좋아하는 캐릭터들로 팀을 짠다든지, 서로 다른 성향의 멤버들이 함께 있어서 ‘케미’가 발생한다든지 하는 일과는 거리가 있다. 언뜻 무척 단순해진 듯한 인상이다. 그러나 카드의 도안으로 표현된 멤버들은 각기 ‘속성’을 갖는다. 퉁명스럽거나, 맹하거나, 운동을 좋아하거나, 이과계거나, 미술부 같은 기호가 포함된 것이다. 즉 같은 성향으로 팀을 통일해도 ‘내 팀은 쿨한 소녀와 스트리트 댄서, 발레리나, 모범생, 수영 선수, 중2병으로 구성됐다’와 같이, 기호 차원의 배리에이션이 이뤄진다. 여전히 현실의 아이돌에 비하면 무척 단순화된 형태다. 하지만 ‘노래 실력’, ‘댄스 실력’, ‘외모’와 같은 능력치의 프레임에 비해서는 아이돌에게 느끼는 매력의 층위를 보다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다.

애정은 역사에서 온다

카드 도안은 부원의 성격과 캐릭터를 이미지로 보여준다. 부원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각성 (영어판에서는 ‘Idolize’)’을 거치는데, 이때 도안이 무대의상을 입은 모습으로 바뀐다. 부원은 캐릭터성이 거의 제거되고 성격과 외모만이 남는다. 그런데 이 부원을 데리고 게임을 꾸준히 하면, 해당 부원의 스토리 모드가 열린다.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부원의 성격과 설정을 보여주는 짤막한 대화이다. 카드 도안을 통해 이미지로만 전달되던 부원의 배경 설정을, 서사를 통해 더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일반 부원과 뮤즈 멤버 모두에게 해당된다.

어쩐지 효연 같던 아이가 셜록 홈즈 아이돌로 ‘각성’했다.

어쩐지 효연 같던 아이가 셜록 홈즈 아이돌로 ‘각성’했다.

그리고 그 모습은 대부분, ‘각성’하기 전, 처음 만났던 모습이다. 플레이어는 ‘나의 기억 속에만 남아 있는’ 부원의 옛 모습을 다시 만나고, 그 뒤에 가려져 있던 이야기를 전달 받는다. 부원의 서사 속으로 플레이어가 빨려 들어가는 것이다. 비록 톱 아이돌이 되지는 못했을지 몰라도, ‘나만은’ 애착을 쏟았던 ‘나만의 아이돌’로 말이다.

오랜만이야. 잘 지냈니? 자니…? → 이 아이의 뒷이야기는 사기 입부?
“스쿨 아이돌? 그런 장르는 처음 들어봐. 난 세계적 댄서가 될 거니까 모든 장르의 댄스 스킬을 연마해야겠지!”

63명이나 되는 멤버들 중에는 취향에 맞지 않는 캐릭터도 있을 것이다. 게임을 설계하는 입장에서는 재미를 떨어뜨릴 위험으로 인식될지 모른다. 그러나 마음에 안 들거나 능력치가 낮은 캐릭터라도 플레이어의 타산적 필요에 의해 꿋꿋이 데리고 있다 보면, 플레이어의 기억과 연동하여 부원에게 정이 드는 현상이 벌어진다.

애니메이션 풍 음악의 딜레마

스쿠페스의 음악은 ‘애니메이션 음악 풍’을 기조로 일본의 주류 아이돌팝과 제이팝을 적절히 뒤섞은 듯한 모습이다. 예를 들어 ‘愛してるばんざい (사랑해 만세)’ 같은 곡이나 작중 니시키노 마키(西木野真姫)의 목소리는 우리가 주류 제이팝에서 흔히 기대할 법한 스타일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많은 곡들이 록 밴드 구성을 기반으로 하여 시원하면서도 즐거운 분위기를 띤다. 그 결과, 케이팝 팬이라도 적지 않은 경우 큰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을 곡들이 되었다. 목소리 또한 애니메이션 풍의 ‘귀를 찢는’ 고음보다는, 몇몇 멤버들의 음정과 발성이 과격하게 흔들리도록 하는 디렉팅을 통해 ‘어린이 목소리’를 구현한다. 그 결과, 대사와 비교해 들어보았을 때 노래하는 목소리는 무난한 제이팝의 수위에 근접한다.

재미있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러브라이브! 〉의 음악이 케이팝 성향을 띤다고 느낀다는 점이다. 나의 귀에는 케이팝적이라기보다는 ‘오타쿠용 음악’의 향취가 적은 것에 가깝게 들렸다. 표현은 다르지만 상통하는 구석이 있을 것이다. 분명 애니메이션 풍의 음악인데도, AKB48 등 현실의 일본 아이돌보다 덜 ‘오타쿠적’으로 들린다는 것은 희한한 일이다. 그런 느낌의 정체와 이유를 명백히 밝히기는 어렵다. 그러나 성우들이 직접 출연하는 뮤즈의 라이브 영상을 보면 작은 힌트가 눈에 띈다.


어마어마한 팬들의 반응도 인상적이지만 보컬의 느낌이 역시 조금 다르게 들린다.

라이브 영상 속에 비해 스쿠페스에 등장하는 〈러브라이브! 〉의 레코딩 음원은 훨씬 안정적인 보컬이다. 일본의 아이돌들이 ‘부족하지만 노력하는’ 모습을 큰 매력 포인트로 가져가는 것에 비해, 케이팝은 완벽하게 정제된 보컬을 중시한다. 또한 뮤즈의 노래는 어디까지나 성우들에 의한 연기의 일부이다. 목소리로 캐릭터를 표현하는 것이 최우선 사항인 것이다. 라이브 현장의 흥분도 제거된 스튜디오 속의 연기는, 보다 이지적인 접근에 가깝다. 이것이 음악 속에서 어떤 ‘뜨거움’을 줄인 것은 아닐까. ‘진정성’이 줄었다거나 ‘착색되었다’, 혹은 ‘안정적이다’ 등, 표현의 선택은 각자의 몫이지만 말이다.

가상 아이돌은 가능한가

〈러브라이브!〉의 히트와 함께 가상 아이돌에 대한 관심도 증폭되고 있다. 특히 사용자가 입력하는 데 따라 노래하는 소프트웨어인 ‘보컬로이드(Vocaloid)’ 하츠네 미쿠(初音ミク)의 굉장한 성공은 이 분야의 큰 가능성을 보여줬다고도 할 수 있다. 한국에는 일찍이 ‘사이버 가수’ 아담, 류시아가 있었고 한국어 보컬로이드인 시유도 있었다. 홀로그램 콘서트도 다시금 화두가 되고 3D 모델링과 애니메이션 기술도 비약적으로 발전한 지금, 가상 아이돌의 가능성은 과거보다 훨씬 크게 느껴진다.


애니메이션 〈러브라이브!〉 중 ‘Snow Halation’의 무대.
각자 가장 소중한 것들을 나열하며 각자에게 다른 아이돌의 의미를 말하면서 곡이 시작된다.

그러나 스쿠페스는 아이돌이란 존재가 단지 예쁘장한 옷을 입은 소년, 소녀가 춤추며 노래하는 것만이 아님을 보여준다. 현실의 아이돌도 음반과 뮤직비디오, 무대를 통해 활동하지만 그들에게 충분한 매력을 보충하는 것은 다른 곳에서 이뤄진다. 음악의 힘은 대단하지만 백워드 매스킹 같은 도시전설이 아니라면 음악 그 자체의 한계를 갖는다. 아이돌에게는 예능과 SNS, 인터뷰, 팬 미팅 등을 통해 보여지는 캐릭터와 뒷이야기, 각종 2차 창작에 의한 층위의 추가, 또한 팬덤과의 관계 속에서 성장해 나가는 커리어까지 포함하여 하나의 거대한 서사 콘텐츠가 된다. 그것이 손에 닿을 수 없는 이상향인 아이돌을 대중의 친구이자 연인으로 자리매김하게 하는 것이다.

가상 아이돌은, 아직까지는, 대중을 직접 만나거나 예능에 출연하지 못한다. 무료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게임 스쿠페스는 그래서 가능한 것이리라. 이 게임은 수익성도 높긴 하지만, 수익성보다도 플레이어를 〈러브라이브!〉의 세계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에 더욱 집중한다. 게임 속의 서사와 〈러브라이브!〉의 설정이 연결되고, 애니메이션과 출판만화의 서사로 이것이 한층 더 강화된다. 잡지와 콘서트 등을 통한 상호 교감과 팬덤에 얽힌 역사까지 포함하자면 굉장히 다층적인 서사의 ‘덩어리’가 이뤄지는 것이다. 뻔한 이야기지만 ‘스토리텔링의 힘’이다. 그것은 정확히, 현실의 아이돌과 거울상을 이룬다.

처음 스쿠페스를 시작하면서 나는 〈프린세스 메이커〉나 〈풋볼 매니저〉를 상상했다. 그러나 스쿠페스는 아이돌 기획자의 시선이 아니라 아이돌과 팬의 역학관계에 집중하는 게임이었다. 팬으로서 아이돌에게 매료되는 방식과 같은 방향성으로 팬들이 〈러브라이브!〉에 빠져드는 것은 어쩌면 그런 이유일 것이다. 훌륭한 해답이지만 이것만이 정답은 아닐 것이다. 〈러브라이브!〉는 하나의 가상 아이돌 성공사례이고, 앞으로 가상과 현실에서 어떤 사례가 등장할지는 상상해볼 뿐이다. 그러나 그 상상을 구체화할 수 있는 힌트는 어쩌면 〈러브라이브!〉와 스쿠페스 속에서 잔뜩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미묘

Author:

가식과 내숭의 외길 인생. 음악 만들고 음악 글 씁니다. f(x)는 시대정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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