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일~10일에 발매된 아이돌 언저리 신작들에 대한 필진 단평. 리온파이브, ‘김태범, 소진’, 제아, 데이트, 비비드, 포미닛, 15&, 베리굿, ‘티아라, 스피드, 더 씨야, 승희’를 들어보았다. 이번 회차부터는 열흘 간 발매된 신보 중에서 각 필자가 단 한 장씩을 꼽아 “Pick!” 스티커를 붙인다. 이전 회차에도 “Pick!”이 추가될 수 있으니 지난 회차들에도 많은 관심 바란다.
미묘: 물씬 풍기는 이 90년대 나이트 댄스 가요의 느낌은 혹시 〈토토가〉의 시장 실효성에 대한 리트머스가 될까.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부분에서 흠잡을 데 없는, 좀 더 탄탄한 프로덕션이 되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뚝뚝뚝'의 보컬은 어딘지 어색하지만, 꼭 나쁘다고 할 순 없는데, 2000년대 R&B 발라드의 재현 같은 '눈물이나'를 들으면 멤버들의 보컬은 이쪽이 훨씬 잘 어울리는 듯하다. 두 곡 모두, 전형성의 틀 내에서 절창은 아니지만, 캐릭터가 살아날 수도 있을 보컬이다. 그러나 그것이 효과적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하긴 어렵다. '뚝뚝뚝'의 후렴이나 '눈물이나'의 랩 등이 그것을 잘 보여준다.
조성민: 타이틀곡 '뚝뚝뚝'에서 보컬들의 목소리는 힘없이 악기 소리에 파묻히고, 랩은 마치 갓 배운 듯 어색하다. 보컬이 묻히는 건 믹싱의 문제가 아니라, 보컬의 성량이 작아서다. 두번째이자 마지막 트랙인 '눈물이 나'를 들어봤을 땐 그나마 괜찮은 듯도 한데, 이 정도 기복은 아무래도 트레이닝 정도의 차이인 것 같다. 유튜브에 퍼져있는 여타 영상 자료들을 봤을 때, 퍼포먼스에 특별히 큰 공을 들이는 것 같지는 않다. 다행히 멤버들이 아직 젊으니까, 다른 돌파구를 찾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미묘: 가볍게 굴러가는 비트의 소프트한 록 풍으로, 부담 없으면서도 조금은 가슴 설렐 수 있을 곡. 포근한 사운드 속에서 직접적인 감정의 무게는 김태범에게 맡겼다는 듯이 편안하게 부르는 소진의 목소리가 인상적이다. 초탈한 듯이 담담하게 "다른 남잘 만나면 멀어지겠지"하고선 "잊혀지지가 않는다"에서 슬그머니 떨려오는 섬세한 감정 표현도 근사하다. 곡 전체가 너무 무게 없이 흘러가 버린다거나 후렴에서 존재감이 다소 약하다는 것은 아쉬움이라 할 수 있겠지만, 소진만 놓고 본다면 표현과 활동의 영역을 넓힌다는 의미도 있겠다.
유제상: 90년대 분위기 물씬나는 소품. 배경에 깔린 잔잔한 비트, 건반소리와 기타소리, 호구지책에 초점을 두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 가사 등이 옛날 방식 그대로다. 여기에 김C가 젊어진 듯한 김태범의 보컬도 90년대의 정취를 더한다. 이분 최소 옛날사람... 참고로 뮤직비디오에는 줄창 아영이만 나오는데 〈사랑과 전쟁〉 때문인지 그 모습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소진을 출연시켰어야 했다.
조성민: 걸스데이의 노래에서 그다지 빛날 기회가 없었던 소진의 보컬을 마음껏 들을 수 있는 싱글. 어쩌면 걸스데이 완전체의 음악적 성향과 소진의 음색이 조금 많이 다른 건 아닌지,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겼다. 소진은 분명 좋은 보컬이기 때문에, 좀 더 돋보일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다.
유제상: 압구정보안관의 곡 '하루만이라도'의 제아 버전/더 씨야 버전을 수록한 싱글. 곡은 적당히 비트가 있는 발라드로 묘하게 시대착오적인 분위기를 내는데, 이는 배경음이 하나로 섞이지 않고 리듬게임의 노트음인 양 툭툭 튀어나와서 그런 듯싶다(이러한 문제점은 더 씨야 버전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제아의 보컬로만 한정해서 이야기하자면 역시 '화려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팝페라, 뮤지컬, 뮤지컬 영화... 하여튼 그런 분야가 생각나는 목소리. 이런 차분한 곡은 '딱 맞는 옷'은 아닌 듯.
조성민: 제아(feat. 바로) 버전의 타이틀곡이 더 씨야 버전과 함께 수록된 디지털 싱글. 랩 가사가 남녀 버전으로 각각 다르게 쓰인 점이 일단 눈길을 끈다. 제아의 보컬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 원숙하고 안정적이라서 무척 편하게 들린다. 바로의 랩 역시 적당한 균형감을 유지하고 있는데, 제아와 바로 둘 다 딱 기대했던 만큼이라 누가 듣더라도 크게 실망하진 않을 것 같다. 문제의 더 씨야 버전은 제아 버전보다 좀 더 일찍 비트가 등장하면서 약간 뻔한 팝으로 흘러가는데, 가이드 버전을 듣는 듯한 맨송맨송함도 다소 느껴진다. 랩은 바로보다 짧고 간단하게, 그리고 약간 무성의하게 작성돼서 차라리 아예 빼버렸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똑같은 곡을 서로 다른 두 가수가 부르게 되면 '정면 대결'을 피할 수 없게 되는데, 왜 더 씨야에게 이렇게 무모한 도전을 시켰는지 조금 안타까울 정도.
맛있는 파히타: 데이트는 '슈티'라는 이름으로 2014년 말에 데뷔한 2인조 걸그룹이다. 곡은 해묵은 느낌이 있지만, 군더더기 없고 어느 시대에 내놓아도 사랑받을만하다. 아프리카TV와 SNS로 활동하는 실험(?)이 성공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제야 다시 들어본 데뷔 EP의 느낌이나 프로모션 형태들을 보면 아이돌 걸그룹의 진정성이라는 측면에서 오히려 모범이 될 부분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유제상: 에이핑크나 여자친구가 여성 아이돌 음악의 시계 바퀴를 과거로 돌려놓은 것이 후배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확연히 보여주는 싱글. 어린아이 목소리의 랩은 UP 스타일이어서 기왕 과거로 가는 김에 화끈하게 가보자는 건가... 하는 돈데기리한 생각마저 든다. 귀에 쏙쏙 박히는 멜로디는 굿이지만, 이런 양상이 섹시와 더불어 양대 기조가 되어가는 상황이 달갑지는 않네.
조성민: 주류 시장에서 '먹힐' 스타일은 아닌데, 이런 스타일의 노래를 좋아하는 층은 분명 있다. 개인적으로는 직캠 BGM으로 깔아보고 싶다. 아육대 같은 곳에서 쉬는 시간에 장난치는 장면 같은 거 찍으면 꼭 이런 거 BGM으로 깔던데... 실내보다 야외 경기장에서...
미묘: 구식 R&B 발라드의 정겨움이 적절히 배어 있으면서 질척거리지는 않아서 꽤 나쁘지 않은 곡이다. 편곡과 보컬에 욕심이 보이는 것도 좋은 부분. 멤버들의 음색도 각각 매력이 있고 너무 과장되진 않는 표현력도 인상적이다. 그런데 이 곡의 작업을 어떤 시스템에서 했는지가 정말 궁금한데, 요즘은 저가의 콘덴서 마이크에 기본적인 보컬스트립 EQ만 잡아도 이런 사운드는 나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믹스 역시 요즘 웬만한 마스터 플러그인 프리셋만 하나 걸어줘도 이렇게는 나오기 힘들다. 프로듀서가 최종 결과물을 들으면서 뭔가 잘못됐다는 걸 느끼지 못했다면 이 일을 할 사람이 아니라고밖에는 못 하겠다. 미안하다. 하지만 멤버들에게 더 미안해야 할 것이다.
조성민: 멤버들 음색이 독특해서 귀에 굉장히 꽂히는 편인데, 곡의 진행이 너무 엉성하고 어색해서 안타깝다. 최근의 다른 걸그룹에서는 듣기 힘든 목소리들인데, 왜 이런 데서 썩고 있나 싶다. 보컬만 들어보면 스피카, 써니힐 등의 보컬형 걸그룹으로 충분히 어필될 만하다. 다음 앨범을 기대해본다.
김윤하: 타이틀곡 '미쳐'는 캐릭터를 살린 케이팝이 흔히 그렇듯 음악만 들었을 때와 뮤직비디오나 무대와 함께 놓고 이야기할 때가 사뭇 다른 곡이다. 트랩 비트를 메인에 둔 흔한 걸스 힙합이라는 다소 밋밋한 첫인상은 '빨개요' 활동 이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현아와 급부상한 전지윤의 존재감, 특유의 '뽕기'를 살려주는 허가윤의 보컬을 만나며 속된 말로 '케미'가 터진다. 걸그룹의 자켓과 뮤직비디오에서 색(Color)과 얼굴마저 빼버린 이 자신감은 '이래라저래라 꼰대질하지 말라'며 허리에 손을 올리고 상체를 낮춰 위협하다 문득 표정을 바꾸며 '날 내버려둬요' 애원하는 '1절만 하시죠'나 시원하고 세련된 팝 스타일 코러스가 돋보이는 'Show me'까지 무난히 이어진다. 과하거나 부담스럽지 않게, 지금 포미닛의 위치와 성장 모두를 제시하는 한 장이다.
맛있는 파히타: 포미닛으로 말하자면 몇 번의 굵직한 히트는 있었지만, 팀의 방향성에 있어서 이렇다 할 느낌을 받은 적이 없어 이번엔 또 뭐가 나올까 싶었지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번 앨범은 매우 즐길만하다. 작년 현아의 '빨개요'를 이어 타이틀로 내놓은 '미쳐'는 전작을 닮았으나 더 강력하고 본격적이라 어떤 연장 선상에 놓인 느낌을 준다. 트랩 비트와 에스닉한 샘플은 잘 어우러져 좋은 사운드를 만들어내는데 pre-chorus 부분의 멜로디가 약간 통속적으로 느껴지는 점만 제외하고는 매끈하게 세련된 인상을 받는다. 수록곡 '간지럽혀'와 '눈에 띄네'의 깔끔하고 쿨한 느낌도 개인적으로 마음에 든다. 흠이라고 느껴질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닌데 '1절만 하시죠'는 코러스가 너무 이질적으로 느껴진다는 점, '추운 비'는 앨범 전체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게 통속적이라고 느껴진다는 점이다.
미묘: '미쳐'에 대한 MRJ의 비판에 상당 부분 수긍한다. 그러나 초기 포미닛을 가져온 듯한 '빌드업'이 이끌어내는 후렴의 '비어있음'은 의도적이라 느낀다. 퍼포먼스의 힘이 확실히 보장된 아티스트들이 보여주던 것과 같은 구성인데, 지금까지 그것이 대부분 남성 아티스트였다는 것이다. 싸늘한 공간과 무거운 비트 속에서 후렴은 폭발하기보다 긴장을 고조시키고, 그 긴장의 양태는 살벌하다(음반보다는 무대에서 더 선명하다는 것, 무대에서 브리지가 약하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포미닛의 1기를 멜로딕한 일렉트로닉의 '쎈 언니'로, 2기를 부담 줄인 '힙합 언니'로 규정한다면, 이것은 '힙합 쎈 언니'로의 진화이다. 미니앨범 전체가 '추운 비'를 제외하고는 감정의 토로보다는 감성적으로 차갑고 어두운 짓궂음으로 일관한다는 것 또한 그 방증일 것이다. 모자로 눈을 가린 커버아트도 지윤이 셰이드를 쓰고 나왔던 초기를 연상시키지만, 당시에 갖지 못했던 것을 얻어내고 돌아온 자신감이 엿보인다. 7년 차의 완숙미로 가요계 '쎈 언니'의 한계를 돌파하는 통쾌한 이정표.
MRJ: 전혀 즐길 수 없었던 곡이다. 비트와 전체적 프로덕션은 환상적이다. 특히 킥과 스네어 샘플들은 매우, 매우 훌륭하며, 가윤의 보컬로 이뤄진 프리코러스 섹션도 좋다. 그러나 곡의 나머지 부분은 기대에 심히 못 미친다. 근사한 pre-chorus 뒤에 이어지는 후렴은 너무나 실망스러운데, 지루하고 반복적인 루프만을 중심에 두고, 코드 진행도 정체돼 있으며, 보컬 파트도 포미닛의 뛰어난 재능을 전혀 활용하지도 못하고 있다. 포미닛의 과거 곡들을 무척 아꼈기에, 그들이 이 곡보다는 훨씬 더 좋은 것을 해낼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곡 분석과 리뷰는 다음의 비디오에서 전체를 볼 수 있다.
유제상: '미쳐', '추운 비'를 더블 타이틀로 내세운 거의 일 년만의 EP. '미쳐'는 상당히 광포해진 '빨개요'로 곡의 구조가 거의 동일하다. 뮤직비디오로만 한정하여 이야기하자면 그로데스크한 장면 없이 그로데스크한 느낌. 멤버들의 눈은 가리고 꺼먼 입만 보여서 그러려나... 한편 '추운 비'는 정반대에 위치한 신파조 곡으로 포미닛의 전체 커리어로 봐도 흔치 않은 곡이다. 각각 EP의 시작과 끝을 맡고 있으니 뒤로 갈수록 분위기가 점점 말랑해질 것 같지만 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여섯 곡 중 다섯 곡이 '미쳐'의 분위기로 '추운 비'는 보너스 트랙 같은 느낌. 하여튼 이전 곡들이 '우리가 잘 나간단 사실을 모르셨나요'라면 이 판은 일단 병 하나 자기 머리로 깨고 시작한다. 개인적으로는 대만족이지만 좀 멀리 나간 듯한 느낌도 든다.
조성민: 현아 '빨개요'의 업그레이드판으로 들리는 '미쳐'를 위시하여 미니 앨범임에도 불구하고 완결성 있는 트랙을 갖추고 있는 포미닛 6집은, 물론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만, 보는 재미가 있어서 더욱 추천할 만 하다 하겠다. 멤버들의 음반 참여도가 높아져 이전보다 곡의 소화력이 좋아진 점도 한몫하지만, 멤버 허가윤이 참여한 스타일링은 다른 어떤 때보다도 포미닛에게 '딱 맞는 옷'처럼 느껴진다. 전체적으로 멤버 모두가 만들어진 작품을 잘 이해하고 즐기고 있달까. 후렴의 '미친 것처럼'을 반복하면서 추는 안무가 파워풀하면서도 중독성 있는 점도 마음에 들고, 이미 전작 '오늘 뭐해'에서도 실험한 바 있지만, 멤버별로 각기 다른 스테이지를 주어 한 명, 한 명이 모두 주목되게끔 구성한 점이 탁월해 보인다. 여기까지만 보면 포미닛이 잠시 비어있는 2NE1의 '힙합 하는 쎈 언니' 입지를 빼앗아올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다만 아쉬운 점은, 타이틀곡에서의 남지현의 역할 배치가 과욕 혹은 실수였던 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다 같이 '우리처럼 미쳐!! 다들 따라 해!!!'라고 외치는데 남지현 혼자 너무 제정신인 느낌이라 몰입이 확 깨진다. 상대적으로 역할 비중이 적은 멤버를 브릿지 등에 배치해서 임팩트를 주는 것은 이제 아이돌 작품에서 꽤 흔히 볼 수 있는 구성이지만, 남지현에게는 이 자리 자체가 너무 벅차기도 했고, 또 효과적인 방식으로 배치 되지도 않은 것 같아 너무나도 아쉽다. 같은 멤버인 권소현의 괄목할만한 발전과 대비되는 부분이라 더욱 아쉽다. 어찌됐든 포미닛의 풀파워를 본 느낌이라 꽤나 기분 좋은 앨범. 연차가 오래된 아이돌이 이렇게 총력전을 펼치면 당해낼 재간이 없지 않겠나.
미묘: 낡은 스타일로 흐르기 딱 좋은 구성인데, 피아노로 가볍게 리듬을 띄우면서 텐션 노트를 섞어 넣음으로써 분위기를 바꿔 놓는다. 우아함과 상큼함을 동시에 잡아내는 흥미로운 레시피이다. 필시 이는 15&의 성숙한 보컬과 소녀성을 함께 표현하려는 의도이리라. 또 한 가지 즐거움은 비교적 담백한 편성으로 느긋하게 흘러가다가 한 번씩 짧게 악센트를 주는 방식이다. 곡의 구조를 적극적으로 주무른 듯한 흐름 속에서, 경쾌하게 걸어가면서 드문드문 아주 가볍게 점프하는 듯한 기분 좋은 동세를 보여준다.
유제상: 이 싱글을 들으니 15&가 뜨지 못하는 이유가 '너무 노래를 잘해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은 미친 짓'에서 이들의 목소리는 감정을 전달하지 못한 채 마냥 아름답기만 하다. 사실 이러한 이야기는 〈케이팝 스타〉에서 이들의 총수님이 심사평으로 자주 하시는 바로 그것이다. 등잔불 밑이 어둡다고 생각지 않으십니까?
조성민: 잘 들어놓고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조금 미안하지만, 어째서인지 편하게만 들리지가 않는다. 일단 개인적으로 소녀들 특유의 발랄함이 살아있던 'Somebody'나 'Sugar'를 좀 더 좋아했기 때문에 도저히 소녀의 감성이라고는 보기 힘든 가사로 되뇌는 '사랑은 미친 짓'이 전혀 와 닿지 않는다. 물론 이들의 보컬은 무척 스킬풀하고 성숙하지만, 음색에 앳됨이 남아있기 때문에 아직 이런 곡을 완벽히 소화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어 보인다. 게다가 칸토의 랩 역시 곡에 완전히 섞이지 못하고 있어 포인트가 된다기보단 거추장스러운 장식품이 된 느낌이다. 좀 더 가볍게 갈 수는 없었을까. 기대했던 만큼 아쉬워서 계속 들어보지만, 왠지 그냥 임정희에게 갔어야 했을 노래가 이들에게 온 것 같아 들을수록 어딘가 석연치 않은 기분만 쌓인다.
맛있는 파히타: 3명의 멤버를 교체하고 새롭게 돌아온 베리굿이지만 그 큰 틀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자신들이 가진 모든 역량을 다 보이려는 팀들과는 달리 이들은 주어진 틀 안에서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이번 싱글은 데뷔곡 'Love Letter'와 마찬가지로 소위 '야마'를 잘 터뜨리지 않는다. 곡은 큰 흐름을 보면 분명히 후반부를 향하며 고조되지만 그걸 느끼지 못할 정도로 잔잔하다. 이는 어떤 인상을 남기기보다는 쉽고 자연스럽게 다가가겠다는 의미로 느껴진다. 뮤직비디오는 동남아시아 휴양지를 배경으로 촬영되었는데 컴백을 앞두고 광고계약을 맺은 익스피디아닷컴의 광고영상처럼 보일 정도이다. 광고 플랫폼으로서의 뮤직비디오는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지만, 이 정도 되면 너무 심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미묘: 약간 불쌍한 목소리로 서정성과 풋풋함을 강조하는 랩, 청아하고 고운 멜로디의 처리, 공간 속에 부유하도록 배치된 일렉트로닉 사운드로 인한 동화적인 분위기 등은 전작 'Love Letter'와 같은 구성요소들이다. 같은 레시피로 만든 곡이지만 전작보다 편안하게 흘러가는데, 비교적 덜 알려진 팀이기에 멤버 교체 이후임에도 무난한 선택을 할 수 있었나 싶다. 뮤직비디오가 여행 테마의 현장감을 살리기보다는 아마추어 편집처럼 보인다는 점과 함께, 기대했던 것만큼의 임팩트가 없어 조금 실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곱씹으며 들어 보면 곡 자체는 사랑스러움을 잘 살린 좋은 곡이며, 팀의 색채를 유지하는 방향성 설정도 지금까지는 일리 있다고 느껴진다.
유제상: 좀 생뚱맞은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요즘 너 때문에 난'은 서태지 이외의 사람이 만든 것 중에서 서태지 멜로디의 미덕을 가장 잘 살린 곡이라 생각된다. 특히 후렴구의 "요즘 너 때문에 난" 파트에서 울려 퍼지는 기타 소리는 90년대를 보낸 사람에게 밈 단위로 호소하는 무언가가 있다. 사실 전작 'Love Letter'도 그런 부분이 없지는 않았지만, 도입부의 랩 때문에 빛이 바랬는데, 이 곡은 뭔가 다르다. 알 수 없는 기운에 이끌려 새로 고안된 일 등급 한우 인증 마크인 'Pick!'을 수여함.
유제상: 멜로디가 근래 들었던 계절송 중에서 최고다. 상당히 주관적인 부분이라 평가하긴 어렵지만, 도입부부터 '계속 듣고 싶다'는 맘이 들게 할 정도. 노래의 짜임새도 그렇고 비록 MBK 엔터테인먼트로 이름은 바꿨을지언정 '아직 저력이 있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떠오르게 된다. 겨울 다 간 마당에 이런 노래가 나오는 게 안타깝긴 하지만, 아직 이들에겐 티아라, 스피드, 더 씨야와 파이브돌스의 승희가 있으니 언젠간 다시 일어설 수 있겠지.
조성민: 지난번에 리뷰했던 2014 크롬 패밀리의 겨울 앨범 "A Very Special Christmas"와 비교되는 MBK 엔터테인먼트의 시즌송. 겨울이 다 끝나가는 마당에 겨울 시즌송을 발표한 것도 조금 당혹스러운데, 너무나도 안일하게 쓰여있는 곡도 당혹스럽고, 아무리 봐도 저예산이 분명한 뮤직비디오도 당혹스럽다(스키장의 배경으로 저 멀리 아파트 단지들이 보일 땐 현실 한숨이 나왔다). 정신 차려요, MB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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