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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원분석 노동 : 원더걸스 – I Feel You ②

츤데레 소녀의 속마음에서 엿보이는 터무니 없이 청순한 매력, 그것은 다시 섹시함을 보여주는 무기가 된다. 원더걸스가 세상을 ‘REBOOT’해버리는 힘 역시 거기서 나온다.

1편에서 이어진다.

츤데레 소녀의 속마음

그렇게 들여다보게 되는 속마음. 그 속마음은 터무니없이 여리다. 많은 이들이 레퍼런스로 공표된 프리스타일 계열 음악을 말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티파니, 신디 로퍼나 초기 카일리 미노그, 혹은 베이비페이스를 만나기 전 ‘쌩목’ 시절의 마돈나를 연상하는 부분이 있다. 누구든 너무나 예쁘고 곱다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좀처럼 리바이벌되지 못하는 특정한 감성이다. 그 한없는 청순함이 너무 이상적이어서 가식적으로 느껴져서인지, 그런 고운 결을 내놓기엔 너무 거친 시장이 되어서인지는 알 수 없다.

또한 그런 곡들이 주는 부서질 듯한 감성이 정확히 어떤 원리로 이뤄지는 것인지도 단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대체로 간명한 싱코페이션이 포함된 멜로디가 흐르듯 움직임으로써 역동적이기보다는 서정적이고 소박한 분위기를 갖는 점, 6th를 비롯한 아슬아슬한 노트들을 밟고 지나가거나 다른 화성과 페달 관계를 형성하는 경향이 있다는 가설을 세워본다. 그렇다면 ‘I Feel You’ 역시 이에 해당하는 점들이 있다.

원더걸스 - I Feel You 악보 (부분)
텐션, 혹은 텐션에 준하는 노트들이 빼곡하다.
원더걸스 - I Feel You 악보 (부분)
음정의 굴곡이 있는 앞부분에 이어, 텐션 노트를 단음으로 연타하기도 한다.

텐션 노트(tension note)들은 각 화음에 포함돼있지는 않으나 어울리는 음정들로서, 멜로디에 보통 세련미 혹은 불안감을 더해주는 요소가 된다. 첫 악보에도 수많은 텐션 노트들이 포함돼 있다. 두 번째 악보의 경우 후렴의 첫머리에 음정이 도약했다가 떨어지는 “혼자”가 각 화성과 7th와 6th 관계를 가지면서, 음정 폭의 변화나 발음과 함께 날카롭게 귀를 찌르도록 되어있다. “너의 손길이 느껴”의 경우 조금 더 민감한 마이너 6th 관계의 음정을 빠르게 연타한다. 이런 음정들은 싱코페이션과 함께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분위기를 낳는데, 명쾌하고 우직한 멜로디가 아니라 부서질 듯한 아슬아슬함을 자아내면서 연약한 듯한 미감을 빚어낸다. 다소 유사한 패턴이라 볼 수 있는 곡으로 마돈나의 ‘Borderline’을 들 수 있다.

Madonna - Borderline 악보 (부분)
‘Borderline’의 후렴부

싱코페이션으로 가득한 ‘I Feel You’가 처음으로 정진정명 스트레이트해지는 것은 1절 후렴의 마지막 “너에게 달려갈 생각뿐이 없어”이다. 여기서는 거의 모든 것이 정박에 위치한다. 늘 반 박자 빠르게 당겨 들어가던 각 마디의 두 번째 코드인 BbM7와 Am7가 정박에 위치하며, 멜로디 역시 마지막 “없어”를 제외하면 싱코페이션도 점음표도 없이 8분음표로 돼있다. 멜로디의 흐름마저도 Bb을 향해 단선적으로 올라갔다가 내려올 뿐이다. 순환하는 네 개의 코드 속에서 숨차듯 헤매던 화자가 마침내 바깥 세계로 달려나가는 듯한 짧은 순간, 이런 솔직함 역시 청아한 속마음의 일면일 것이다. 다만, 곡은 곧이어 화성을 뒤집어버리면서 (EbM7 – Dm11) 랩으로 돌입, 아주 짧은 해방감 끝에 다시 청자를 애태우도록 만들어져 있다.

원더걸스 - I Feel You 악보 (부분)
후렴의 마무리는 마치 진심이 들통나듯이.

잘 알려졌듯 초기 마돈나는 창녀와 성녀의 두 얼굴을 가지고 논 기획으로 출발했다. 종교 레퍼런스를 적극 활용하기도 했지만, 철없는 소녀다운 직선적인 해맑음과 빤히 쳐다보는 섹스어필의 병치가 이미 그에게 두 얼굴을 완성해주었다. ‘I Feel You’ 역시 하이레그 수영복, “하루종일 나를 만져”, 얼음 장면을 비롯해 과감하고 도발적인 성적 이미지로 가득하다. 그럼에도 이 곡과 뮤직비디오가 그저 ‘야한 비디오’에 그치지 않는 것은 곡 자체가 갖는 애타고도 청명한 정서가 결합돼 있는 덕분이다. 시크한 섹시와 뻔뻔한 청초의 결합은 80년대 레퍼런스를 정서적으로 이해하고 재현한 결과인 동시에 곡에 입체적인 매력을 부여한다. 또한 흔히 이뤄지는 뻔뻔한 섹시와 축축한 청승의 조합에 비해 우아한 품격마저 갖춰주고 있다.

연주하는 원더걸스

인스트루멘트 티저를 지켜본 이들이라면 이 영상들의 내용이 정작 앨범과는 그다지 상관없음을 알 것이다. 각 티저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recorded by” 문구마저 마치 명연주자를 모셔 놓고 진행하는 음악장비 프로모션 영상 같고, 티저에 녹음된 연주 중 그 어떤 것도 음반에서 들을 수 있는 스타일의 것이 아니다. 베이스 태핑과 장엄한 피아노 연주, 유독 거친(raw) 사운드로 연출된 드럼, 디스토션이 흠뻑 묻은 기타는 분명 록을 지칭한다. 사실 ‘I Feel You’를 비롯한 수록곡들은 베테랑 미만의 연주자들이 직접 연주하기에 적합한 곡들조차 아니며, 특히 드럼과 베이스는 원래 드럼머신과 신스로 연주되는 쪽이 제맛에 가까운 스타일이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의 라이브 연주를 들어보면 원곡의 편곡과 사운드에서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편성과 연주를 선보였고, 후반 키보드 솔로도 매력적이다. 그러나 커버 밴드가 아니니만큼 원했다면 더 라이브 연주에 적합한 곡을 만들었으면 그만인 일이다. 이런 일련의 모습은, 애초에 연주의 진정성을 어필하겠다는 계획이었다면 가장 먼저 떨궜을 법한 선택지들만 골라서 늘어놓은 듯하다.

그런데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어떤 식의 성공이었냐 하면, 평론가나 음악 기자들을 비롯한 오랜 ‘음악 덕후’들에게 외통수를 던져줬다는 점이다. 그들에겐 이 커다란 낚시 혹은 농담에 대해 분개하거나, 아니면 모른 척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주어진 것이다. 그리고 상당수는 후자를 선택했다. 연주실력의 이야기는 공개된 자리에선 대부분 “논란은 있으나…” 정도로 마무리되었고, 몇몇 사람들이 SNS에서 개인적으로 볼멘소리를 하는 것에 그쳤다.

이 당혹스러운 상황 앞에 자칫 ‘낚이지’ 않기 위해 조심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 이유를, 이것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라고 이해한다. 풍류건달의 기고 “원더걸스 : 이런 게 REBOOT지”에서도 나열된 수많은 레퍼런스의 향수와 함께, 80년대풍의 ‘미래적’ 느낌을 가득 담았던 코르그(Korg)의 키타(Keytar)(엣헴)와 스타인버거(Steinberger) 베이스까지. 1st Listen 코너에서 유제상 필자가 지적했듯 ‘음악 좀 들었다는 양반들’이 푹 빠질 수밖에 없는 노림수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악기를 연주하는 여자, 특히 (‘음악적으로 보잘것없는’) 아이돌에서 시작해 악기를 잡은 여자를 사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뮤직비디오에서 정장 입은 남성을 가지고 노는 장면들은 어쩌면 선전포고에 가깝다.

종종 간과되지만 원더걸스는 콘셉트와 전략을 구사하는 데에 음악의 힘을 크게 활용하는 그룹이다. 이번에도 화룡점정은 이 곡 자체의 매력이었다. 츤데레 소녀가 혼잣말로 “너 없인 못 살 것만 같아”라며 (실제로) 두 발을 동동 구르는 순진한 속마음, 달리 말할 것도 없이 예쁘고 사랑스러운 곡이다. 동시에 청자의 기분을 조였다가는 펴는 능수능란함으로 마감된 웰메이드이기도 하다.

결국 원더걸스가 ‘리스너’들에게 이 곡을 미끼로 요구하는 선택은, 아이돌의 대척점에 선 악기 연주와 밴드라는 ‘진정성의 신화’를 포기하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원더걸스 혹은 아이돌이란 세계를 애써 거부하던 이들에게 “←오른쪽을 보시오”라는 사인을 보여준 뒤, 왼쪽에 ‘I Feel You’를 던져놓고 “여기가 오른쪽이냐?”라며 웃는 것과도 같다. 왼쪽이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이 매력적이고도 추억 페티시즘마저 자극하는 세계를 거부해야 한다. 그리고 적지 않은 이들이 이를 해내지 못했다.

원더걸스의 다음 행보가 어떤 식일지는 아직 아무도 알 수 없다. 어쨌거나 당사자들은 연주실력에 대한 향상심을 표한 바 있고, 정말 이 앨범의 곡들을 완벽하게 연주할 수 있을 만큼 기계 같은 연주력을 달성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댄스그룹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밴드로서의 진정성마저 획득하길 원할 것이고, 누군가는 진정성을 조롱해주길 원할 것이다. 하지만 원더걸스는 이제 그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 앨범은 원더걸스의 커리어를 리부트했지만, 동시에 아이돌 담론에 대한 리부트마저 시도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무엇을 하든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이미 상당수가 함락된 듯하기 때문이다.

Reboot
JYP 엔터테인먼트
2015년 8월 3일
미묘

By 미묘

가식과 내숭의 외길 인생. 음악 만들고 음악 글 씁니다.
f(x)는 시대정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