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1일~10일에 발매된 아이돌 언저리 신작들에 대한 아이돌로지 필진 단평. 샤이니, 전설, 원더걸스, 티아라, 빅뱅, 배드키즈, B1A4를 다룬다.
유제상: 남성 5인조 그룹 전설의 새 싱글. 곡에 관해서 이야기하자면, 평이한 아이돌 노래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뜬금없이 뽕끼 어린 멜로디들이 구석구석 떡심처럼 끼어들어 듣는 이를 지루하지 않게 해준다. 물론 그 결과물이 대단히 좋다 뭐 이런 건 아니고... 음원 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뮤직비디오가 꽤 야해졌는데, 그 방향성이 여성향이라는 게 흥미롭다. 하긴 여자그룹은 그래야 되고, 남자그룹은 그래선 안 될 이유는 없지.
조성민: 곡의 구조나 무드에 비해 퍼포먼스가 무척 느슨하다. 이 느슨함이 여유로 느껴지기보단 어색함이라든가 허전함으로 다가온다는 점이 문제인 듯하다. 케이팝 보이그룹 특유의 비장미와, 성숙을 표현하는 어떤 나른한 섹시함 따위를 동시에 가져가려고 하다가 그만 손이 미끄러져 둘 다 놓친 것 같은 느낌이다. 슬슬 심기일전하지 않으면 곧 표류하게 될 듯한 시점인데, 과연 잘 대비하고 있을지.
미묘: 이런 곡을 놓고 악기 연주의 진정성에 대한 의문밖에 제기할 수 없는 이들에게 진심으로 안타까움을 느낀다. 근본이 없는 케이팝에서 근본 없음을 적극적으로 선언하고 나니 할 수 있는 게 이렇게나 많아졌다는 환호와도 같은 앨범이다. 사운드의 스타일도 그렇지만, 시크한 섹시와 뻔뻔한 청초함이 나란히 맞붙었다는 점 또한 레퍼런스를 정확히 가져오면서 현재를 재창조하고 있다. 원더걸스가 여기서 리부트하는 것은 자신들의 커리어가 아니라 '케이팝의 참맛'이다.
유제상: 이 앨범의 의도는 너무도 분명하다. '비록 지난 미국 진출은 실패했지만, 음반의 퀄리티가 부족한 것이 아니었음을 (늦었지만) 증명해 보인다'가 첫 번째요, '원더걸스가 실력으로도 인정받을 수 있는 그룹임을 보여준다'가 그 두 번째이다. 평자는 이러한 의도가 상당히 불편하게 느껴지는데, 이는 듣는 이에게 즐거움을 주기보다 '음반을 만드는 쪽의 상업적 성취' 또는 '참여자들의 창작자로서의 자신감 회복'을 우선시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앨범은 교실 구석탱이에서 헤드폰 끼며 하루하루를 죽이는 청소년기를 보내신 양반들의 구미에 맞을 요소가 너무도 많다(곡에서뿐만 아니라 "저 악기는 KORG의 [머시기]지, 엣헴!" 같은 거). 결국 이런 불편한 형태의 80년대 예토전생을 흡사 '새로운 움직임'인 양 받아들인다면, 팝의 본고장이 대한민국이라는 주장 또한 못할 것도 없어 보인다.
조성민: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원더걸스에게 닥친 가장 큰 과제는 '건재함의 증명'이었을 것이다. 그 방향이 그동안 원더걸스의 강점으로 꼽혔던 쉽고 빠르게 소화되는 음악과 춤이 아닌, 한 단계 진화한 '음악성'에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너무나 흔하고 뻔한 연출이지만 결국 직접 악기를 들고나와 연주해 보인 건 음악적 진정성에 대한 증명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깨에 둘러멘 악기가 춤 동작을 어색하게 만들고 있음에도 라이브 밴드로서의 연출을 포기하지 않은 'I Feel You'의 무대는 원더걸스를 'Nobody'로만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딘가 어색해 보이겠지만, 꿋꿋한 그 모습 자체로 새로운 원더걸스의 데뷔 무대가 되기에 충분하다. 과거의 원더걸스에게도, 새로운 원더걸스에게도 각별히 의미 있을 앨범.
미묘: 인트로부터 느껴지는 살짝 이상한 사람의 느낌과 티아라의 전성기를 다방면에서 환기하는 사운드가 잘 조화돼 있다. 후렴에선 매우 친숙한 가요 풍으로 전환되면서도 질감 좋은 비트가 댄서블한 균형을 절묘하게 잡아준다. 말하자면 티아라의 매력과 티아라의 전력, 티아라를 반가워해야 할 이유가 함께 직조돼 있다. 그 위에 용감한 형제의 시그니처가 스티치처럼 따라붙는데, 가사가 쫄깃하게 달라 붙는 특유의 훅 라이팅과 다른 그룹을 여럿 연상시키는 지나친 익숙함이 모두 포함된다. (그 익숙함이 용감한 형제 자신에게도 화두인 듯한 기색 또한 엿보인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괜찮을까?" 하는 의문이 남지 않는 것은 아니나, 이만하면 팝 산업에 있어서 우직한 정공법이라 해도 될 듯하다.
유제상: 타이틀 '완전 미쳤네'의 세 가지 버전을 포함한 EP. '완전 미쳤네'는 뮤지컬 스타일의 곡이지만 티아라 특유의 불안감 조성이 전주에 내재되어 있어 편안한 마음으로 듣기는 어렵다. 뭣보다 이런 곡을 들으면 이제 마마무 생각이 나기도 하고, 뮤직비디오의 복식도 뜬금없는 마린룩에 맞춰져 있어서 글쎄... 다만 이미 국내의 인기가 예전만 못한 가운데, 빠짐없이 모습을 드러내는 이들의 성실함만은 높이 사고 싶다. 역시 티아라는 멘탈 갑이야! 정말, 긍정적인 의미로!
조성민: 티아라의 가장 큰 특징이자 인기 요인이라면 역시 걸그룹 중에서 가장 극대화되어 있는 가요적 색채일 텐데, 그러다 보니 시간이 흐를수록 그룹 자체의 색깔을 찾아가기보다는 오히려 점점 더 '흔한 한국 가요'를 향해 가고 있어서 음악 외적인 이슈를 제외하고는 신선함을 찾기가 힘들어지고 있다. 티아라에 대한 대중 일반의 기대감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는 사실이 이들에게 자극제가 되었으면 좋겠는데, 국내 수요자층에 대해 그다지 큰 의식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서 더욱 안타깝다.
미묘: 이런 결말을 기대하진 않았다. '쩔어'의 몇 구절은 듣기 재미있고 '뽕짝'이라고 밖에 할 수 없을 사운드를 집어넣는 것도 유쾌하지만, 스왝으로 둘째갈 이유가 없는 이들이 정작 멍석이 깔리자 주저앉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똥을 싸도 박수"를 비롯해 과감한 표현들도 눈에 띄지만 이 역시 어정쩡하다. 아이돌과 힙합 양쪽에 다리를 걸치며 가능성을 확장하는 것도 가슴 철렁한 '뻑이 가요'나 블락비의 지코 같은 사례가 이미 몇 년째 쌓이고 있는바, 이 야심 찬 싱글 시리즈에 견주자면 비루하지 않은지. 아저씨 신파로 적신 '우리 사랑하지 말아요'의 한껏 축축함도 아쉽다. '약간 이상한 사람'과 거친 목소리를 오가는 T.O.P를 비롯해 두 곡 사이에서 정서의 아이러니와 변화 폭을 주는 목소리의 컨트롤은 듣기 좋지만 말이다. 앞선 세 장 "M", "A", "D"를 모아 나만의 "MAD" 앨범으로 즐기고 싶다.
미묘: EXID의 바로 그 곡의 틈새에, 다소 갈팡질팡하던 2000년대 후반 걸그룹 분위기와 '은근한 유혹' 클리셰가 섞여든다. 브리지에서 올여름 걸그룹 대전 분위기까지 재현할 때쯤이면, 단 한 곡으로 걸그룹 사파리를 완주하게 해주고자 하는 의도가 읽힌다. 배드키즈의 입지에 비추면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을 것. 흥미롭기는 한데, '은근한 보컬'과 찌르는 듯한 랩이 이 팀의 컬러와 역량에 꼭 맞아떨어지진 않고, 팀의 활동을 이끌기보다는 연장하는 성격의 곡이라 생각된다. 배드키즈와 비슷한 규모의 그룹의 팬이라면 귀 기울여 들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유제상: 타이틀 'Sweet Girl'은 평자가 좋아하는 유람선 음악 풍의 곡으로 과하지 않은 분위기가 계절과도 잘 어울린다. 사실 B1A4는 유명세에 비해 평자가 그동안 눈여겨본 그룹이 아니었는데, 이 곡을 통해서 이들에 대한 인상마저 달라질 정도. 다소 조악한 두 번째 곡 'You Are a Girl I Am a Boy'를 제외하면 다른 곡들도 타이틀의 기조를 잘 따르고 있으니 일청을 권한다.
조성민: B1A4 특유의 생동감과 다이내믹이 줄어들고, 간결함으로 위장한 '병약미'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의도는 '몽환'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비주얼상의 연출 장치가 제한적으로 작용하는 무대 위에서는 의도가 충분히 드러나지 못해 부담스러운 면이 있다. 이것은 몇몇 쟈니스 계열 제이팝 아이돌에게서도 보였던 모습인데, 안타깝게도 그들의 작품 중 그다지 성공작으로는 평가받지 못했던 어떤 작품들에 가까워 보인다. 'B1A4 힘차게 입장!'을 기대했던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맥 빠지는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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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replies on “1st Listen : 2015년 8월 초순”
이글 을 비롯한 최근글이 홈에 노출되지 않네요. 8월 초순 리뷰가 올라온줄도 몰랐습니다.
완전 미쳤네 좋아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