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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벨벳 : 기계장치 소녀들은 웃는다, 웃지 않거나.

중요한 건 레드벨벳이 어떤 머리를 했냐가 아니다. 레드벨벳이 모두 같은 머리와 같은 의상을 입고 있다는 사실이다. 레드벨벳은 언제나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수많은 재봉틀이 놓여 있다. 재봉틀을 작동시키면 재봉틀은 미싱을 한다. 재봉틀은 미싱을 하거나 미싱을 하지 않는다. 우리가 봤을 때 재봉틀은 모두 같은 재봉틀이다. 그러나 재봉틀은 각각 다른 일련번호를 가진 모델들이다. 즉 다른 제품이다. 그러나 재봉틀은 그냥 재봉틀이다. 수많은 재봉틀은 각각의 재봉틀이 아닌 그냥 재봉틀들이 된다. 개개의 재봉틀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재봉틀들만 존재할 뿐이다.

레드벨벳 - Dumb Dumb

레드벨벳이 정규 1집 앨범 “The Red”로 컴백했다. 이번에는 말괄량이 삐삐다. 데뷔곡 ‘행복’에서 네 명의 멤버가 똑같이 부분 염색을 하고 나온 것을 시작으로, 금발을 거쳐서 이제는 삐삐 머리까지 왔다. 사실 중요한 건 레드벨벳이 어떤 머리를 했냐가 아니다. 레드벨벳이 모두 같은 머리와 같은 의상을 입고 있다는 사실이다. 레드벨벳은 언제나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레드벨벳에게 개개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레드벨벳은 그저 레드벨벳으로만 존재한다.

레드벨벳이 내세우는 기본 콘셉트는 바로 귀엽고 밝은 ‘레드’ 콘셉트와 여성스럽고 클래식한 ‘벨벳’ 콘셉트로 전환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레드벨벳이 갖는 일체성이 드러나는데, 다름 아닌 곡에 따라 그룹 자체가 변한다는 것이다. 레드벨벳은 멤버 개개인마다 가지고 있는 특색이나 콘셉트가 존재하지 않는다. 즉 여타 아이돌 그룹들이 메인보컬, 래퍼 등의 포지션으로 멤버를 나누거나, 혹은 예능 담당, 신비주의 담당 등 그룹 내에서의 롤에 따라서 멤버 각각의 콘셉트가 부여될 때 레드벨벳은 그 어떤 것도 멤버들에게 부여되지 않는다. 레드벨벳에는 메인보컬도, 래퍼도 없다. 다만 곡에 따른 ‘레드’의 콘셉트와 ‘벨벳’의 콘셉트만이 존재할 뿐이다.

레드벨벳 - Dumb Dumb

‘레드’는 행복하다. 항상 웃고 있다. ‘벨벳’은 차분하다. 웃지 않는다. 레드벨벳의 표정은 딱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웃거나, 웃지 않거나. 그 속에서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웃지 않는 경우란 없다. 그녀들은 언제나 모두 함께 웃거나 아무도 웃지 않는다. 그녀들에게 감정은 ‘기쁨’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기쁨마저 온전히 그녀들의 감정이라 하기에는 힘든데, 다름 아닌 그녀들의 기쁨이 막연하다는 것에 있다. 레드벨벳의 데뷔곡 ‘행복’에서 어린 소녀들은 본인들의 행복함을 말하면서 어른들의 세계에 대한 염증을 드러낸다. 그것은 분명히 염증이다. 마치 학습된 것처럼 웃으면서 어른들의 추방을 말한다. 그리고 레드벨벳은 무표정해진다. 누군가 스위치를 누른 것 같다. 스위치를 누르면 레드벨벳은 행복해한다. 밝게 웃는다. 그리고 다시 스위치를 누르면.

레드벨벳은 표정이 없어진다.

레드벨벳 - Dumb Dumb

레드벨벳 멤버들은 모두 같은 머리를 하고 같은 의상을 입는다. 우리가 보기에 그렇다. 모두가 긴 생머리에 투톤 염색을 하거나, 다 같이 금발을 하거나, 양갈래 삐삐 머리를 하거나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투톤 염색을 했을 때는 멤버마다 색이 달랐고, 금발을 했을 때는 톤의 차이가 있었다. 조금만 레드벨벳에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면 알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레드벨벳의 머리는 모두 같은 것 같고, 의상도 모두 같은 것 같고 그래서 멤버를 구분하기가 힘들다. 마치 레드벨벳은 어떤 기계 장치 같다. 자유롭지만 그녀들은 언제나 질서정연하게 정렬돼 있고, 다 같이 즐겁고 다 같이 침묵한다. 모델의 제작자는 제품을 일련번호든 무엇으로든 구분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걸 알 수 없다. 우리가 봤을 때 재봉틀은 모두 같은 재봉틀이다. 타이틀곡 ‘Dumb Dumb’ 뮤직비디오에서 멤버들이 끊임없이 복사되는 장면은 마치 대량생산 같이 보인다. 그 속으로 들어가서 구분하려는 노력을 하기 전까지 우리는 모델들을 구분할 수 없다. 우리가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아이린이 이쁘다, 슬기가 귀엽다 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바로 그 공정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실 모든 그룹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레드벨벳은 의도적으로 다 같아 보이려 한다. 낯선 것이 되려고 하는 것이다.

제품마다 일련번호가 존재한다. 세상에 똑같은 제품이란 없다. 다만 우리가 봤을 때 똑같아 보이는 것일 뿐. 버튼을 누르면 재봉틀은 미싱을 한다. 버튼을 누르면 레드벨벳은 행복해한다. 버튼을 누르면 재봉틀은 미싱을 멈춘다. 버튼을 누르면 레드벨벳은 웃음을 멈춘다. 모든 재봉틀들이 그렇다. 아이린도, 슬기도, 웬디도, 조이도, 예리도 그렇다.

글: 김누누

레드벨벳 - Dumb Dumb


The Red
SM 엔터테인먼트
2015년 9월 9일

By Editor

idology.kr 에디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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