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1일~10일에 발매된 아이돌 언저리 신작들에 대한 필진 단평. 플레이백, 포썸, 유니콘, GI, 퍼펄즈, 빅스타, 데이식스, 레이디스코드, 몬스타엑스, 전진, 5tion, NPI, 레드벨벳, 세븐틴, 루커스, 제스트제트의 음반을 다룬다.
맛있는 파히타: 소유 & 정기고의 '썸' 이후로 남녀 듀엣을 시도하는 케이스가 늘어나고 있는데, 과거와 같은 깊은 사랑의 관계를 상정하지 않는 그야말로 '썸' 정도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유행이 되고 있다. 플레이백과 에릭남의 콜라보는 신인임에도 괜찮은 가창력을 보여주는 데다가 즐길 만한 부분이나 대중적인 접점이 많은 곡으로 느껴지는데, 다만 유행 이상의 어떤 것을 보여주기엔 부족한 것 같다.
미묘: 가을 날씨에 어울릴 법한 화창한 곡이다. 일렉트릭 피아노와 신스의 센스 있는 활용이 예쁜 공간을 이루고, 씩씩하면서 단정한 비트 역시 이에 근사하게 맞아 떨어진다. 조금 의아한 것은 1절 후렴의 후반에야 처음 등장하는 에릭남의 존재인데, 피처링을 알고서 기대하며 들으면 반가울 만한 시점이면서, 곡 자체에서는 조금 튄다는 인상이 있다. 반면 피처링이 없는 버전을 들어보면 다소 밋밋하게 들리기도 해서 피처링의 이유를 수긍하게 되기는 한다. 강한 인상을 남긴 데뷔곡에 비추어 다소 꼼꼼하지 못한 행보는 아쉽다. 감성적 접근을 균형 있게 잡아내면서 청결감을 남기는 좋은 곡인데, 어쩌면 타이틀보다는 수록곡으로 더 빛났을 곡은 아닐까.
미묘: 보도자료부터 경악할 표현으로 가득하더니 곡도 만만치 않다. 이제 와서 영화 〈신세계〉의 유행어들을 늘어놓으며 재치 있다는 양 "아항?"하는 뻔한 '걸그룹 웃음'을 집어넣는데, 그 외에도 이런 저런 걸그룹들에게서 익히 들어본 요소들을 버무렸다. 그것 자체가 나쁘다는 건 아니다. 트랙은 대단히 매력적이진 않지만 아주 어설프지만도 않은데,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 보컬트랙은 연출도 마감도 엉성하다. (왠지 모를 의무감에 들어간 듯한 보컬 글리치도 유치하다.) 그러니 "들어와 Ah" 같은 것이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는데, 구린내 나는 취향으로 선별된 것들이 지저분하게 결합되었다. 그것은 나쁘다. 그리고 할 말은 하자면, 싱글 제목은 정말 저질이다.
김윤하: 타이틀곡 ‘헉(Huk)’을 비롯한 수록곡 대부분이 랩 파트를 제외하면 꽤나 높은 고음들로 이루어져 있어 묘하게 신경이 쓰인다. 귀여움을 부각시키는 데 최선을 다하는 걸그룹들의 평균치를 생각해봐도 조금 과하다 싶은데, 앨범 전체 프로듀싱과 보컬 어레인지까지 담당했다는 김조한의 취향이 반영된 결과인가도 싶다. 이 특징은 프로그레시브 EDM을 베이스로 한 트랙 ‘못참겠어’에서 극대화되며 유니콘의 위치를 ‘얘들은 누구야’에서 ‘어쩐지 신경 쓰여’로 밀어 올린다. 어쨌든 중요한 건, ‘신경이 쓰인다’는 사실이다.
미묘: 팀의 작명 센스가 어디서 또 별 생각 없는 기획이 나왔나 하고 들었다가 의자에서 떨어졌다. 곡들은 걸그룹 클리셰들을 면밀히 관찰한 티가 역력한데, 그것이 '의미 없는 가사', '감탄사', '반복' 같은 겉핥기가 아니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작편곡과 보컬 편성 모두에서 찌르고, 끌고, 돌렸다가는 밀어붙이는 호흡을 매우 적절하게 구사한다. 보컬의 색채가 다소 단면적인 것은 아쉽지만 신인인 점을 감안해야겠고, 그 단면이 가녀린 쪽의 귀여움을 지향하면서도 씩씩함을 잃지 않아서, 유행하는 보이스컬러를 엉성하게 잔뜩 풀어 넣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면서 매력적이다. 보컬에 사용한 과감한 이펙트들도 프로덕션이 악기로서의 보컬을 제대로 휘어잡고 있는 흔적으로 느껴진다. 타이틀인 '헉'과 전치사를 소문자로 표기한 미덕이 있는 'Step by Step'은 가요 보컬그룹 지향성과 아이돌의 균형점을 어느 정도 잡아내고 있고, 플래시핑거가 편곡에 참여한 '못참겠어'는 감상적인 무드와 시원한 EDM 풍을 근사하게 결합해낸다.
조성민: 앨범의 완성도가 상당히 좋아서 이게 신인의 데뷔 앨범이 되기엔 조금 아깝게 느껴질 정도다. 멤버들이 제대로 소화를 못 하고 있다는 인상이 있어서 더 그렇다. 앨범 전체 트랙에 걸쳐 보컬에 과하게 들어간 효과음은 부족한 실력을 가리려고 들어간 것 같아 듣기 불편하다. 여기에 타이틀곡의 무대에서는 그루브 충만한 음악과 어울리지 않게 한껏 깜찍하게 짜여진 안무가 조금 부담스럽게 다가온다. 첫술에 배부르고 싶었던 욕심이 느껴진다.
미묘: 또 하나의 레퍼런스 비빔밥으로서, 에이핑크, EXID를 비롯한 레퍼런스들이 숨은그림찾기처럼 빼곡하게 가득한 인터랙티브 아이돌팝이다. (농담이다.) 그래도 이를 조립해 놓은 마감은 제법 그럴싸하다. 케이팝이 양식화되면서 이제는 원하는 레퍼런스의 목록을 엑셀에 정리하면 이 정도의 곡은 나올 수 있다는 느낌이다. (바꿔 말하면 이만큼의 조립을 해내지 못하는 프로덕션에겐 문제가 있다.) 버스(verse)가 연장되면서 신스 브라스로 길게 눌러주며 분위기를 전환하는 것도 개인적으로는 취향에 맞는 편. 레퍼런스 외에도 이 곡에 넘쳐나는 것은 노림수인데, 그중 '뮤비형' 노림수는 엉덩이에 집요한 손가락 커서 등 '색드립'에 가까운 종류로, '행사형' 노림수는 대체로 교태의 질감으로 묶여 있다. 사람에 따라 감상용으로선 껄끄러울 수 있겠다.
미묘: 파워풀한 보컬을 선보였던 전작이 '파워댄스'란 묘한 느낌을 남겼다면, 이번에는 좀 더 장점을 살리는 데에 성공한 것 같다. 초기 브라운아이드걸스처럼 블루지한 미드템포로 그윽하고 매캐한 느낌을 주면서 에너지 넘치는 곡을 만들어냈다. 보컬의 힘을 인상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곡이며, 또한 변주와 후반 레이어링 역시 보컬그룹으로서의 면모를 강조해준다. 그러면서도 '보컬그룹'치고는 퍼포먼스 역시 보여줄 만한 리듬과 구성을 잘 찾아냈다. 실질적인 대중 접근성을 단정하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케이팝 시대 보컬그룹의 한 모델을 보여주는 듯하여 흥미롭다.
김윤하: 첫 곡 ‘달빛소나타’를 듣고 조금 놀랐다. ‘용감한 형제의 소년들’이라기보다는 크러쉬나 로꼬 등 최근 젊은 층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R&B를 기반으로 한 뮤지션의 음악을 듣는 듯한 낯설고 익숙한 기시감. 2년 전 발표했던 미니 앨범 타이틀곡 ‘일단 달려’를 생각하면 그야말로 놀랄 만한 변신이다. 레이블 ‘브레이브’를 미국 현지에 정식으로 설립한 보람이 드디어 느껴진다. 획기적 변신만큼 완성도도 높았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부쩍 성숙한 멤버들의 곡 소화력을 듣는 재미만으로도 은근히 쏠쏠하다.
김영대: 타이틀 트랙 'Congratulations'는 분명 올해 하반기 최고의 트랙 중 하나다. 다소 평이하게도 들릴 수 있는 익숙한 곡 구성이 멀티 리드 보컬 편성으로 완전하게 해소되었다. 기본적인 접근의 차이만 있을 뿐 그냥 훌륭한 아이돌 팝인 '버릇이 됐어', 솔루션스 나루의 센스 있는 음악성이 결정적으로 빛을 발하는 'Free하게' 모두 특별한 흠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탄탄한 트랙들이다. 멤버들의 목소리가 아주 따로 놀지도, 또 그렇다고 아주 변별이 없는 것도 아닌 균형점을 보컬 어레인지의 측면에서 탁월하게 잡아냈다. 연주와 작곡을 하는 아이돌 밴드라는 진정성 싸움이 상업적 속임수가 아님을 증명하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닐 테지만, 적어도 음악만을 놓고 본다면 유쾌한 출발이다.
김윤하: 우선 밴드와 아이돌 사이의 지루한 싸움은 접어 두자. 첫 곡 ‘Free하게’를 듣는 순간, 숙원사업이었던 이종교배 프로젝트의 성공소식을 기필코 들은 듯한 기분이었다. 아이돌이라는 프레임 안으로 록 밴드와 록 음악을 들일 때, 이 정도 무게감과 이 정도 짜임새라면 누구든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지 않을까. 홍지상이나 이우민 등 JYP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익숙할 이름과, 나루(솔루션스), Frants(텔레파시) 같은 인디씬 조력자들이 DAY 6라는 깃발 아래 부담 없이 조우한다. ‘Colors’ 같은 뻔한 록 발라드 넘버도 느끼하거나 진부하지 않게 소화한다는 점이 이 새로운 밴드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이다.
맛있는 파히타: 노래를 들으며 눈이 번쩍 뜨였다. JYP라는 이름이 떠올리는 모든 것들을 걷어내고 기본으로 돌아가서 쌓아올린 느낌이다. 충실한 팝-록적인 기조로 엮어진 앨범을 전체적으로 들어보면 이들이 음악방송을 포기하고 외부에서 프로모션하고 있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특히 타이틀곡 'Congratulations'는 젊음을 꿈꾸고 동경하는 이들의 젊음이 아니라 젊음을 헤쳐가고 있는 이들 자신의 젊음, 그 에너지 자체를 폭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절대로 놓쳐서는 안되는 트랙.
미묘: 형식으로서 케이팝 아이돌은 밴드 포맷과 조화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이 있는데, 이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엿보인다. 록 밴드 아이돌임에도 이 음반의 수록곡들은 디스토션 기타를 비롯한 몇 가지 요소만 대체하면 JYP 엔터테인먼트의 다른 팀 발매곡들과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이 기획사의 음악적 취향의 폭이 특히 최근 몇 년 사이에 다소 변화한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음악적 색채 자체가 어느 정도의 호환성을 갖고 있다고 보는 편이 좋을 것이다. 필요하다면 댄스 음악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도 주저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악기 연주의 '손맛' 역시 놓치지 않는 것이 이 밴드 아이돌의 설득력을 한층 증폭시킨다. 밴드가 연주했을 때의 다이내믹과 현장감을 기분 좋게 보장하면서도 팝적인 세련미를 담보하는 곡들과, 이를 아이돌적으로 소화해낼 수 있는 섬세한 배려. JYP의 매력과 노하우가 전력 집결돼 있다.
조성민: '자작곡'이라든가 '셀프 프로듀싱' 같은 것들이 대중에게 특별하게 받아들여지는 시기는 이제 지났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이 멤버들에 참여에 의해 탄생했다는 점은 분명 주목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아이돌 멤버가 '작곡가 선생님'을 어설프게 흉내낸 듯한 몇몇 사례와 달리, 이 앨범은 스쿨 밴드들이 으레 갖고 있는 어떤 풋풋함이 프로덕션의 프로페셔널리즘과 팽팽히 줄다리기를 하는 와중에 태어난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이런 앨범이라면 프로덕션 입장에서는 분명 다른 아이돌과 같은 방식으로 소비되길 원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래서 결정된 것이 지금의 그 '무홍보 전략'이었으리라는 생각이 드는데, 좋은 음악을 더 자주 접할 수 없어 아쉬우면서도 내심은 그 행보가 이해될 정도로 좋은 곡들로만 가득하다. 청춘에 그린벨트를 쳐놓겠다는 그 생각, 일단은 찬성한다.
김영대: 이 앨범의 최대의 미덕은 처음부터 마지막 곡까지 일관되고도 높은 완성도로 매끈한 만듦새를 과시한다는 것. 흔한 말로 '웰메이드'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불과 몇 달 만에 또다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면서 기분 좋게 놀래킨다. 기리보이의 비트와 주헌의 랩이 타이트한 맺고 끊음을 보여주는 '신속히'는 역시 돋보이고, 전혀 상반된 톤의 'Perfect Girl'에서 유연한 보컬로 이미 충분히 식상한 '몸매감탄' 류 주제의식을 제법 그럴듯하게 설득시킨다. '삐뚤어질래'가 가장 모험적인 트랙이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왜 몬스타엑스여야 하는지 그 이유를 보여주는 데에는 고민이 더 필요해 보인다. 그 점을 제외하고는 딱히 아쉬움을 찾기가 어려운, 기대 이상으로 '잘빠진' 블랙뮤직 앨범이다.
돌돌말링: 표본 조사 같은 걸 해본 적은 없지만, 최근 주변 북미 케이팝 팬들이 힙합돌들에 열렬히 반응하는 분위기다. 최고의 전문가들이 분업해서 (아이돌 당사자들의 퍼포먼스는 물론) 협동으로 이루어내는 완벽한 프로덕트도 좋지만, 힙합 문화를 적절히 차용한 그룹들을 조금 더 진짜배기라고 느끼는 부분이 있는 듯. 최근의 새로운 대세는 몬스타엑스인 것 같다. 귀에 쏙쏙 들어오는 노래가 탄력이 좋은 멤버들의 춤과 잘 어우러진다.
미묘: 80년대 신스팝('신스를 사용한 팝'이 아닌!)의 정취에 소위 '감상용 일렉트로닉'의 스타일과 보컬리스트로서의 욕심을 무척 잘 버무렸다. 보컬을 노래하는 수단보다는 악기 개념으로 접근하면서, 다양한 음색과 효과, 레이어링을 구사하는 것이 인상적인 공간을 낳는다. 이를테면 '60 Seconds'에서 치찰음을 강조해 놓은 것은 (자칫 침이 튈 듯한 (...) 기분을 느끼게 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이 곡을 더 매캐하고 섹시하게 만드는 식이다. 'Wow Wow Wow' 역시 보컬에 걸쳐진 수많은 이펙트들이 이 쉼 없이 새로운 자극을 던지는 곡 속에서 각각의 확고한 이유를 갖고 있다. 더 재미있는 것은 이 음반에서 전진이 발휘하는 존재감이 일렉트로닉을 흡수한 가수보다는 완연한 팝스타의 그것에 가깝다는 점이다. 남성 아이돌이 멋지게 나이 들면서 우아한 음악적 취향을 가미하면, 철벽 헤테로 남성이라 할지라도 '팝스타'로서 납득할 만한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돌돌말링: 신화의 전진이 'Wow Wow Wow'라는 타이틀과 함께 솔로로 돌아왔다. 제목 덕에 '빠삐놈'에 기가 막히게 녹아 들어가 합필요소가 됐던 그 노래 'WA'를 잠시 떠올렸는데, 헤아려보니 'WA'가 나온지도 7년이나 지났더라. 당시도 신화는 이미 중견 아이돌 취급을 받았는데, 이제는 정말 매일 새 역사를 갱신해나가는 살아있는 역사가 되었고, 그럼에도 아직까지 조금도 퇴색되지 않은 그룹의 컬러란 경이롭기까지 하다. 신화의 막내 라인인 전진도 이제는 이렇게 특유의 비성마저 연륜으로 들리게 하는 가수가 되었다. 후렴의 나란한 8분음표 건반 소리마다 쉬어가는 느낌이 나는 것도 여유로워 좋다.
조성민: 신화는 분명 자신들이 잘하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는 팀이다. 신화의 전진이 이 작품의 주인이라는 것을 숨길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는 이 앨범은, 그래서 더 부담 없이 있는 그대로의 전진을 느끼면서 들을 수 있다. 타이틀곡 'Wow wow wow'의 뮤직비디오와 무대를 보고 난 감상은 영화 〈킹스맨〉에서 콜린 퍼스의 액션 씬을 보고 난 뒤에 느꼈던 그 희열과도 비슷했는데, '남자가 멋있게 나이 들면 이런 모습'이라는 말 정도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수록곡도 하나하나 훌륭히 갖춰져 있으니, '남자 냄새'가 필요한 이들이라면 꼭 들어보길 권한다.
돌돌말링: 2004년 데뷔했던 이름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 고무적이나, 멤버가 여러 번 교체되었기 때문에 (초기 멤버는 2집 때 잠시 떠났다 돌아온 오병진 한 명뿐이다) 'More Than Words' 시절의 5tion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어필하는 면이 없을 듯하다. 뮤직비디오에서는 안무를 전혀 볼 수 없었는데, 약간의 율동이라도 있으리라 기대한 노래였어서 의아했다.
미묘: 뱀파이어 콘셉트나 6/8 박자의 악곡은 빅스의 한창 무시무시하던 시절을 연상시킨다. 클럽뮤직 사운드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며 치명적 사랑, 변신 등의 주제를 사용하는 것은 LGBT 프렌들리인 듯도. 곡의 몸통은 4/4 박자로 진행되지만 프리코러스와 훅은 6/8 박자로 뛰어가 버리는 점이 이색적인데, 어수선하기보다 꽤 자연스럽게 구현되어 멋진 전환을 낳을 만하다. 그런데 뱀파이어 콘셉트를 곡에 녹여 넣기보다, 훅에서 "나는 뱀파이어로소이다"를 반복해서 선언하는 것이 조금 낯뜨겁다. 더구나 (약간 엉성하게) 무서운 목소리로 "I'm a vampire"라 노래하고 조금 쉬었다가는 다시 똑같은 구절을 반복하는 것을 듣고 있노라면, 뱀파이어 전용 패스가 있다면 얼른 지나가시라고 문을 열어드리고 싶은 기분도 드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무난에 살짝 못 미치는 보컬도 아쉽다.
김윤하: ‘색깔이 없는 게 색깔’이라는 레드벨벳을 향한 농담 아닌 농담이 이 앨범을 통해 기정사실화 되었다. 초창기 엑소가 ‘아버님의 집념’의 산물처럼 느껴졌다면, 지금의 레드벨벳은 ‘SM A&R 팀의 집념’의 결과물처럼 느껴진다. 어딘가 기묘하고 쨍한 아트워크와 물샐 틈 없는 프로덕션, 그것을 완벽히 소화해 내는 소녀들과 그녀들이 끊임없이 호출하는 언니와 MJ의 이름까지. 조금 과장해 이것을 두고 SM이 21세기 일렉트로-걸-팝의 대량생산에 성공했다는 초록 신호라 해도 믿을 수밖에는 없을 것 같다. 그 끝이 유토피아인지 디스토피아인지 알 수 없는 이 신호는 다행스럽게도 이토록 예쁘고 잘하는 소녀들마저 대량생산할 수는 없다는 현실에 부딪히며 장렬히 산화한다. 어쨌든, 훌륭하다. 레트로 신스팝의 감성적인 터치에 아련함을 한 스푼 더 얹은 마지막 곡 ‘Cool World’를 꼭 놓치지 마시길.
미묘: 그간 레드벨벳의 두 얼굴 노선이 융합되어가면서 두 얼굴의 정확한 정체 역시 드러나고 있다. 그중 하나는 90년대 초반 미국의 본격파 R&B~뉴잭스윙 보컬그룹들의 보다 재즈 함량 높은 취향에 닿아있는 듯하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는 또한 S.E.S.가 진행하다가 내려놓았던 그 길이 아니겠는가. (또한 f(x)에게서 기대하게 되진 않는 방향성이기도 하다.)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을 덜 대중적인 취향을 별세계 느낌의 현대적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결합, 연령과 외모에 어울리는 캔디팝 향을 얹어 놓은 것이 앨범의 전반부. 보다 검증된 달콤함으로 청자를 '안심'시키는 것이 후반부라고 할 수 있겠다. 'Time Slip'이 두 세계 사이를 좀 더 알기 쉽게 오고 간다면 'Dumb Dumb'은 그 부분에서 아주 특별할 정도로 능수능란하다. 레드벨벳을 놓치고 지나가긴 쉽지 않겠지만, 앨범 전체를 꼭 들어봤으면 하느 마음에 디스커버리를 붙여본다.
돌돌말링: 타이틀곡 'Dumb Dumb'이 공개됐을 때부터 제시 제이(Jessie J)의 'Bang Bang'이 비슷하게 들린다는 의견이 있었다. 일단 같은 조에, BPM도 각각 145에 149 정도로 비슷하다. 'Dumb Dumb'이 더 느리다는 게 의외였는데, 비트를 엄청 세밀하게 쪼개놔서 본래보다 더 빠르고 복잡하게 들린 듯하다. 그런 탓에 안무도 많이 어려워 (때론 버거워) 보이기도 한다. 지난 활동곡 'Ice Cream Cake'을 통해 발견한 조이의 시크한 랩을 좀 더 들을 수 있길 바랐는데, 'Dumb Dumb'에선 좀 더 짧고 애교 있게 끊어가는 느낌이었다.
김영대: 나쁘진 않지만 뭔가 어색한 걸침이 있던 지난 EP의 아쉬움을 극복하고, 훵키하고 달콤함을 내세운 버블검 팝으로 돌아왔다. 결과적으로 좋은 방향 설정이다. 훅 멜로디와 가사가 그야말로 입에 착착 붙어 떨어지는 훵키한 댄스팝 '만세'는 당연히 베스트고(계범주가 작업한 첫 두 곡의 완성도는 탁월하다), 미디엄 템포의 보컬 팝인 '어른이 되면'이나 그룹 전체의 매력발산용 트랩 풍 힙합 트랙 'OMG' 등 남자 아이돌 미니앨범으로선 구색과 퀄리티를 얼추 갖춘 셈이다. 다양함 덕분에 조금 산만하게 느껴지는 면도 없지는 않지만 전작에 비해 다양한 장르의 소화력과 멤버들 각각의 다채로운 면모를 선보이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은 성공적이다.
김윤하: 데뷔곡 ‘아낀다’를 올 상반기 최고의 싱글 중 하나로 꼽았던 입장에서 "Boys Be"는 더없이 반갑다. 지난 미니앨범의 산만했던 구성을 뒤로 하고 '가요'를 구심점으로 한 번 더 조이고 나니 곡 작업과 프로듀싱을 담당하고 있는 멤버 우지가 가진 장점이 훨씬 돋보인다. 단단하고 단정한 비트를 기본으로 팝, 힙합, EDM 등 꽤 넓은 장르의 폭을 뭐 어렵냐는 듯 가뿐히 취합해 가요의 영역으로 넘겨버리는 재주가 범상치 않다. ‘아낀다’의 뒤를 잇는 센스 넘치는 팝 넘버 ‘만세’의 상쾌함은 물론 ‘어른이 되면’의 간지러운 소년의 고백도 포근하다. 이들을 통해 비로소, 소년들이 돌아온 기분이다.
맛있는 파히타: 데뷔곡 '아낀다'에 이어 이번 타이틀곡 '만세'에서도 멤버들의 버라이어티함뿐만이 아니라 뿜어져 나오는 재기발랄함은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노래는 젊은 에너지로 가득하고, 학교라는 배경에서 다양한 캐릭터들은 장르적 상상력으로 이끈다. 이것이 아이돌이라는 장르의 기본이고 통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앨범 전체를 살펴보면 뒤에서 힘에 부치는 느낌은 있지만 마찬가지로 버라이어티한 구색맞춤이 있어서 공히 아이돌적인 진정성이 느껴진다고 말할 만하다.
돌돌말링: 그동안 대인원 아이돌은 수없이 시도된 분야였으나, '식비가 너무 나가서' 같은 도시전설 st.의 이유로 금방 모습을 감추곤 했다. 그래서 슈퍼주니어나 엑소 등을 성공시킨 SM의 성과가 더욱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란 인상을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최근 들어 대인원 신인 그룹들이 속속들이 등장하고 있는데, 세븐틴은 그중 단연 돋보인다. 생각해 보면 세븐틴을 조직한 플레디스야 말로 애프터스쿨을 통해 대인원 그룹 노하우를 착실하게 쌓아온, '아무나 할 수 없는' 프로젝트를 꾸준히 해온 회사다. 전작보다 상쾌한 느낌을 강조한 메이저 후렴구의 F-E-Am-(B♭sus2)-C 코드 위에 "잠깐 소녀야!" 하고 호명하는 가사를 펼쳐놓은 센스에 반해 Pick!으로 꼽았다.
조성민: 개인적으로 보이그룹의 곡을 평가하는 기준을 몇 가지 가지고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나도 모르게 슬쩍 흐뭇한 웃음이 새어 나오면 별 다섯 개를 준다'이다. 오랫동안 아이돌 보이그룹을 좋아해 온 사람이라면 이런 '종합선물세트'를 받아들고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화면을 가득 채우고 "소녀야"를 외치는 소년들은 그저 소녀와의 눈 맞춤 하나만을 바라는 눈빛으로 카메라를 간절히 응시한다. 가사부터 안무까지, 헤어스타일부터 의상에 붙어 있는 이름표까지, 모든 것이 소녀를 위한 연가를 훌륭히 불러내는 데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5개 트랙 중 3개를 차지하는 유닛 트랙이 각기 개성을 드러내는 가운데, 완전체 곡에서는 단순한 유닛의 합이 아닌 또 다른 캐릭터를 표현한다. 이때 가장 돋보이는 것은 바로 이 대인원을 컨트롤하는 전략이다. 보통 인원수가 8명을 넘어가면 이 멤버를 곡뿐만 아니라 무대에서 배치하는 문제에서 치밀한 계산이 필요해지게 되는데, 대부분은 이런 문제에 부딪혔을 때 멤버들을 단순히 몇 가지 도형적 형태로 인원을 나누어 배치하는 데에 그친다. 그러나 세븐틴은 그 모티브를 뮤지컬이나 여타 대인원의 퍼포먼스에서 가져오는 듯, '몇 명을 어디에 어떻게 배치'하는 문제가 아닌, '몇 명인지는 중요하지 않고, 전체적인 그림이 예쁠 것'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결과, 누가 보더라도 흥미진진하고 시각적 쾌감이 느껴지는 퍼포먼스를 독보적인 강점으로 갖게 되었다. 신인치고는 물론이고, 여타 기성 인기 아이돌과 비교했을 때도 충분히 대적할 만한 꽤나 큰 무기를 얻은 셈이다. 아무튼, 세븐틴 만세다. 누나지만 너라고 불러줘도 괜찮아요.
미묘: 전작 "Break Ya"에 수록된 두 곡을 함께 담은 루커스의 새 싱글. 걸그룹이 잘 안 되면 섹시 콘셉트로 간다고들 하지만 (옳은 시선이라고 보진 않는다) 보이그룹이 막히면 감성 튠을 낸다는 법칙을 상정해도 되지 않을까. 그런 하찮은 농담을 해보지만 이 싱글은 생각보다 좋은 선택이다. 강한 사운드의 전작이 무리는 없으나 특별히 튀어 보이지는 않았는데, "너가"라는 구어가 귀에 밟혀서인지 훨씬 박히는 곡이 되었다. 감성을 터뜨리며 숨을 몰아쉬는 훅에 새튜레이션이 걸려 묵직하게 튀어나오는 것도, 사소하지만 근사한 부분. 질척거리기 쉬운 곡풍이 제법 템포의 균형을 잡아내고, 보컬트랙이 곡의 주인공이 되어있다는 느낌을 확실하게 준다. 보컬트랙들에 전반적으로 발라드 성향이 과잉해지려는 아슬아슬함이 있는데, 점차 더 섬세해지는 균형감을 기대해 본다.
미묘: 초반 기타 사운드가 어쩐지 록 느낌이다 했더니 후렴에선 정말 힘찬 록으로 달린다. 왠지 혈연으로 낙하산 선발된 파일럿이 등장할 것 같은 이름의 제스트제트, 곡 또한 주인공 일행이 넓은 언덕을 달려가는 장면이 반복재생될 것 같다. 아니메 풍의 상쾌한 록 사운드를 보이그룹이 사용한 일이 그리 많지 않아서인지 나름의 신선함이 있다. 각각의 사운드 소스와 그 조합은 흠잡을 데 없고, 후렴으로의 전환이나, 후렴의 급박한 분위기도 모두 즐겁게 들을 만하다. 아무래도 비정규 싱글처럼 들리는 인상이 강한 것은 '지나치게 아니메스러운'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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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reply on “1st Listen : 2015년 9월 초순”
사소한 거 하나 지적하자면 5tion은 2004이 아니라 2001년에 데뷔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