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치 언더그라운드? : 파리 케이팝 상점

Tweet about this on TwitterShare on FacebookShare on Google+Share on TumblrEmail this to someone

프랑스는 유럽 최대의 케이팝 팬덤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케이팝으로 이어지기도 한 일본 서브컬처 향유층까지 포함하면 세계 2위 규모라고도 한다. 그런 프랑스의 파리에서 케이팝을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상점을 찾아가 보았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케이팝을 어떻게 바라보고 즐기고 있을지 궁금했다.

파리의 차이나타운으로 알려진 13구. 대규모 아시아 식료품점인 탕 프레르(Tang Frères)가 있는 이브리 대로(Avenue d’Ivry)의 44번지다. 파리에서는 흔치 않은 대형 아파트 단지 올랭피아드(Olympiade)와 연결돼 있는 올랭피아드 오슬로 상가(Centre commercial Olympiade Oslo)에 두 곳의 케이팝 전문점이 위치해 있다.

입구에서부터 느껴지는 어딘가 익숙한 정취. 야트막하고 허름한 상가는 마치 옛 반포 상가나 세운상가를 떠올리게 한다. 이제는 서울에서 음악 전문 오프라인 매장을 찾아보기 어려운데, 혹시 이곳은 그런 장소들이 행하던 느슨한 공동체 허브의 기능 역시 수행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올랭피아드 오슬로 상가 (Centre commercial Olympiade Oslo)

두 유 노우 세운 샤핑몰?

올랭피아드 오슬로 상가 (Centre Commercial Olympiade Oslo)

세운상가 하면 역시 디지털

뮤지카 – 음반 전문점에서 패션 케이팝으로

2층에 자리한 뮤지카(Musica)는 두 개의 매장을 가지고 있다. ‘아시아 뮤직 월드’란 이름의 온라인 쇼핑몰(http://www.asiaworldmusic.fr/)도 운영하는 이곳은 원래 1980년대에 아시아 음반 수입점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다 2년 전, 케이팝의 비상한 인기에 힘입어 같은 상가에 케이팝만 따로 다루는 매장을 새로 열었다.

Musica, 44, Avenue d'Ivry, 75013 Paris

뮤지카 입구에서는 팬들이 뮤직비디오를 보며 소일하기도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가게의 풍경은 다소 의외일 수도 있다. 한쪽에 음반을 진열해 놓고 있지만, 음반을 구경하며 고르기보다는 원하는 음반을 말해주면 직원이 꺼내주는 방식이다. 음반을 다루는 본점 매장이 따로 있기도 하고, 온라인으로 주문하는 경우도 많아서일까. (하긴, 사실 우리는 케이팝 음반이 ‘뭐가 있나’ 구경하다 구매하는 물품은 아니란 것도 알고 있다.) 대부분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케이팝 스타들의 사진과 팬시, 그리고 의류다. 외부를 향해 나 있는 스크린과 매장 내부의 스피커에서 방탄소년단을 비롯한 케이팝 음악이 상가 복도까지 울리고 있다.

매장의 매니저인 한시트(Hansith)는 유쾌하고 활달한 어조로 본점과의 차이를 설명했다. 홍콩, 타이완 중심의 음반점으로 시작한 뮤지카는 이후 제이팝까지 다루게 되었는데, 적게나마 , 지누션 등을 찾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아시아인들에서 유럽인들까지 고객층이 넓어진 것은 동방신기 이후이며, 빅뱅을 기점으로 완전히 새로운 세대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과거보다 ‘소녀적(girly)’인 취향에 호소하는 이 세대의 케이팝은 비주얼과 라이프스타일에 영향이 크기에, 전통적인 음반점에 가까운 본점과는 달리 케이팝 전문인 2호점에서는 패션에 방점을 찍고 있다고 했다.

Musica, 44, Avenue d'Ivry, 75013 Paris

뮤지카는 유럽 전체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형태의 매장이다. 파리만이 아니라 프랑스 전체, 혹은 유럽 타 국가에서도 방학이나 주말을 이용해 일부러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물론 관광객이나, 파리에서 열리는 공연을 보러 오는 길에 들르기도 하는 손님도 있단다. 10대 중심의 저연령층이다 보니 부모와 함께 매장을 찾는 일도 흔하다고 했다. 그렇기에 인터넷 쇼핑몰과 페이스북 역시 단순히 상품을 거래하는 공간이 아니라, 부모들이 판단의 근거로 삼을 수 있도록 케이팝의 모습과 내용을 소개하는 일에도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는 것이다.

타이요우 – 다양하게, 눈으로

또 한 곳의 상점은 타이요우(Tai You, http://www.taiyou.fr/). 1998년에 창업한 이곳은 원래는 아시아권의 비디오와 관련 굿즈를 취급하던 매장이다. 이후 제이팝을 다루면서 보아, 동방신기 등이 간접적으로 소개되었고, 본격적으로 케이팝을 취급하는 계기가 된 것은 소녀시대의 ‘Gee’였다고 한다. 이곳 역시 의류와 팬시도 다루지만, 음반 패키지를 풀어서 전시해놓기도 한 것이 눈에 띈다. 일본 만화책, 애니메이션 DVD, 인기 캐릭터의 피규어 등도 함께 진열하고 있다. 매니저 장 피에르(Jean-Pierre)가 웃으며 ‘순수한 경쟁 관계일 뿐’이라고 말하는 뮤지카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 아시아의 마니아 컬처 콘텐츠를 눈으로 둘러볼 수 있는 점이, 비디오 전문점이었던 역사와 관계가 있는지도 모른다.

Tai You, 44, Avenue d'Ivry, 75013 Paris

타이요우 입구. 태극기 뒤로 마리오, 키티, 마인크래프트도 보인다.

차분한 어조의 장 피에르는 타이요우에서 체감하는 케이팝의 피크로 만 3년 전을 꼽는다. 2011년 〈SMTown Live in Paris〉를 전후로 한 시기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시들고 있는 것일까. 그는 여전히 방학과 주말에 손님이 몰리는 것은 다른 업종 매장과 다르지 않으며, 케이팝 공연이나 팬 이벤트가 있을 때 더 집중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안정화’된 시기라는 것이 그의 해석이다.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상품을 골고루 보여주는 매장이다 보니, 현지에서의 인기도 역시 조금은 엿볼 수 있었다. 입구 진열대에 동방신기JYJ, 보아 등이 있는 것은 고객층이라면 누구나 이들을 보고 케이팝임을 알아볼 수 있는 아티스트기 때문일 것이다. 내부로 들어오면 소녀시대부터 티아라, 방탄소년단, 엑소, 갓세븐 등, 보다 뒷세대의 주자들이 위치해 있다. 더불어 로열파이럿츠, 레드애플 등 국내에선 마이너하지만 해외 팬들은 종종 관심을 두는 아티스트들의 음반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Tai You, 44, Avenue d'Ivry, 75013 Paris

그래서, 누가 인기라고?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는 것은 아마도 누가 인기인지 하는 것일 터이다. 뮤지카와 타이요우 양쪽에서 말하는 인기그룹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소위 ‘해외 팬 취향’과 대체로 동일했다. 슈퍼주니어, 샤이니, 엑소, 방탄소년단, B.A.P 등의 보이그룹들이 폭넓고도 높은 지지를 받고, 소녀시대, AOA, 씨스타 등의 걸그룹들이 어느 정도 차이를 두고 뒤를 이었다. 국내에서 흔히 말하듯 ‘잡덕’ 성향이 있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흥미로운 것은 여기에 세대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처음 슈퍼주니어, 빅뱅, 소녀시대에 빠졌던 세대는 서서히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 팬 공동체의 평균연령을 높이고 있다. 이들은 여전히 당시의 아이돌들에 높은 충성도를 보이지만, 그 외에도 다양한 그룹과 미디어에 대한 폭넓은 관심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더 나중에 입문한 세대는 방탄소년단, 엑소, 갓세븐 등 보다 최근의 팀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더 패셔너블한 성향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여러 팀을 두루 좋아하는 일 또한 줄어드는 편이라는 것이 두 매니저의 공통된 증언이었다. 즉, 기존의 빅네임들이 ‘오래돼서’ 관심이 없다기보다는, 과거보다 좁은 폭의 관심사를 파고드는 세대가 형성되고 있다는 징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Tai You, 44, Avenue d'Ivry, 75013 Paris

타이요우에 진열된 드라마

드라마는 무시 못 해

국내에서 ‘한류’의 화두는 한때 드라마였지만 어느새 케이팝으로 옮겨갔다. 이에 따라 마치 드라마가 이제는 영향력이 별로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 또한 흔한 일이다. 그러나 뮤지카와 타이요우의 이야기는 달랐다. 언어장벽도 있고 시간도 걸리지만, 드라마는 여전히 한국 문화상품에 깊숙이 빠져드는 통로이자 도달지점이라는 것이다. 좋아하는 아이돌이 등장해서 보기 시작한 드라마를 통해 다른 스타들을 발견하는 일도 많다고 했다. 드라마 한류를 논할 때 모두 나온 이야기들이지만, 그 위상이 과거에 비해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짚고 넘어갈 가치가 있어 보였다.

뮤지카에서는 한국 드라마 DVD 전집을 사가는 고객이 결코 드물지 않다고 했다. 반면 타이요우에서는 드라마 판매가 쉽지만은 않은 일이라는 점도 지적했다. 정식 라이선스 발매가 아닌 경우 팬들이 제작한 자막을 구해야 하는데, 특히 어린 팬들은 영어에 익숙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별도의 불어 자막이 없으면 감상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프랑스 최대의 미디어 기업 중 하나인 카날플뤼스(Canal+)의 VOD 서비스에 몇 년 전의 한국 드라마가 적잖이 포함돼 있는 것도 그저 어쩌다 벌어진 일은 아닐 것이다. 특히 젊은 층 취향의 TV 연속극이 많지 않아 미국 드라마를 열정적으로 소비하고 있는 프랑스 등 서유럽 지역에서, 어쩌면 한국이 드라마에 대한 관심을 내려놓기엔 너무 일렀던 게 아닐까.

오피셜의 벽은 높다

두 매장을 둘러보며 눈에 띈 것 중 하나는, 국내의 문구점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소소한 팬시들과 함께 자리한, ‘왠지 비공식인 듯해 보이는’ 상품들이었다. 조심스러운 질문에 이들의 대답은 일단 공식 굿즈의 양과 종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뮤지카의 한시트는, 한국에서라면 아이돌들이 광고하는 상품을 살 수라도 있지만 여기선 그것도 어렵지 않으냐며 프랑스의 팬들의 채워지기 힘든 니즈를 분석했다. 특히 식품이나 화장품류일 경우 소량 수입을 위해 까다로운 유럽의 규제를 통과하기는 힘들다는 예를 들기도 했다.

Tai You, 44, Avenue d'Ivry, 75013 Paris

뮤지카 점내. ‘한국 st.’의 양말 등도 보인다.

의류의 경우 가격의 장벽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샤이니가 일본에서 발매한 브랜드로부터 연락을 받은 적도 있으나 현지의 저연령층 팬들이 구매하기에는 턱없이 높은 수입단가가 되어 도저히 들일 수 없었다는 예도 들었다. 몇몇 기획사가 패션에 직접 손을 뻗고 있는 추세이긴 하나, YG 엔터테인먼트의 담당자를 만난 적도 있었지만 그들이 ‘대중적인’ 가격대의 상품을 만들 거라고 기대하긴 어려운 듯했다. 이외에도 뮤지카는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한국 대사관을 비롯한 많은 주체들과 직접 부대끼며 방법을 찾으려 애써왔다고 한다. CD 한 장이 약 3만 원이 되는 수입업체의 현실과 프랑스의 생활 물가 및 십 대들의 용돈 규모 등을 고려하면, 가격 문제를 단순한 불평으로 치부할 수는 없어 보였다.

타이요우의 장 피에르는 일부 국내 팬들이 해외 팬들에게 갖는 다소의 반감에 대해서도 알고 있는 듯했다. 이를테면 판매량이 한터 차트에 반영되느냐 하는 것 등이었다. 해외 팬들도 관심을 갖는 한터 차트에 판매량을 올리고 싶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차트 반영을 위한 연회비를 비롯해 해외에서 소규모로 추진하기에는 제반조건이 까다로워 당분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해외에서 팔리는 음반 중 얼마나 되는 수가 이 차트에 반영되고 있는지 의문이라는 그는, 국내에서는 전부 집계가 되는지, 다른 차트는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하기도 했다.

팬덤과 함께

팬들은 꾸준히 들락거렸다. 한국에서 발매된 뒤 이틀이면 CD가 도착한다는 이곳은, 이들에게 아마도 화면으로나 접하는 케이팝 아이돌을 가장 빠르게, 실물에 가장 가깝게 접할 수 있는 장소일 것이었다. 드문 공연을 제외하면 말이다. 마침 통로 행인이 많지 않은 뮤지카의 경우 아예 음료수 등을 사 들고 복도에 앉아서 화면으로 틀어놓은 최신 케이팝 뮤직비디오를 보며 소일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파리 지역에서 팬 이벤트를 조직할 때면 스폰서나 홍보를 부탁하러 오는 일도 많다고 했다. 처음 상가에 들어서면서 나이브하게 기대했던 오프라인 공간만의 특성과는 조금 거리가 있지만, 팬들 사이의 허브가 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파리 케이팝 공연에 대한 프로모터들과 팬들의 고민이나 아쉬움도 이곳에 모여드는 듯, 인터뷰 도중 간혹 흘러나오기도 했다. 한국의 분위기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를 묻고, 팬 공동체, 한국 사업체들이나 정부기관들과도 적극적으로 대화하는 모습. 한국과는 또 다른 이곳만의 무언가를 맞춰나가고자 하는 고민도 엿볼 수 있었다.

올랭피아드 오슬로 상가 (Centre commercial Olympiade Oslo)

‘처는 한국사람입니다’라면 혹시 유부남…은 아마 아닐 것이다.

아파트 단지로 통하는 상가 밖에는 지나가던, 혹은 눌러 앉아있던 팬들이 남긴 낙서들이 보이기도 했다. 왠지 모르게 한국 드라마 팬들이 참 좋아하는 한국어 단어인 “미안해”부터, 읽을 수 있거나 없는 한글 낙서와 아이돌들의 이름까지. 과거 종로나 명동에서 수입 CD와 해적판 밴드 티셔츠들이 널려 있던 것과 차라리 비슷하게 느껴지는, 화려하기보다는 소박한 설렘이 살아있는 풍경이었다.

올랭피아드 오슬로 상가 (Centre commercial Olympiade Oslo)

취재에 응해준 뮤지카와 타이요우에 감사를 전한다.
미묘

Author:

가식과 내숭의 외길 인생. 음악 만들고 음악 글 씁니다. f(x)는 시대정신입니다.

http://verymimyo.egloos.com
http://twitter.com/mimyo_
http://facebook.com/demimyo

Share This Post On
  • 유월

    해외 특히 유럽권에서 케이팝 및 아이돌 문화가 어떻게 소비되는지가 적잖이 궁금했는데 정말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저 역시 예전에 비슷한 방식으로 제이팝을 접했던 적이 있는지라 신기하기도 하고요. 문득 드는 생각이지만 이거 각 나라별로 시리즈 연재가 가능하다면 참 재미있을거 같은데….힘들겠죠 또르르….

Logo Header Men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