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ON LA 2017 리포트: ② ”섬세하고 대담하게, 삶의 영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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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8일에서 20일까지 로스앤젤레스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케이콘〉 LA 2017 현장을 김영대가 찾았다. 〈케이콘〉 리포트는 ①편에서 이어진다.

올해 〈케이콘〉을 통해 확인한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는, ‘아시안 음악’ 혹은 ‘월드뮤직’의 하위 카테고리로 인식되었던 케이팝이 점차 독립적이고 보편적인 장르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이었다. 행사에 참가한 팬들의 상당수는 케이팝을 미국 팝의 유력한 대안으로, 혹은 함께 즐길 수 있는 트렌디한 팝 장르의 하나로 인식하고 즐긴다고 말하고 있으며, 일본이나 다른 아시아 국가의 대중음악과의 유사성보다는 오히려 그들이 듣고 자란 미국 팝 음악과의 연계성을 강하게 느끼고 있는 듯 보였다. 문화적으로 유연하며, 국적을 불문하고 트렌디한 대중음악을 따르는 젊은 음악 팬들, 특히 10대부터 20대 초반까지의 젊은 여성 음악 팬들에게 케이팝의 소구력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그들에 따르면 케이팝은 미국 음악이 주지 못하는 것을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그 핵심은 아이돌 음악이다. 전세계 어디서도 쉽게 찾을 수 없는 다양한 장르와 포맷의 케이팝 아이돌은 팝의 본고장 미국이 채 커버하지 못한 만만치 않은 규모의 틈새시장을 홀로 점유하고 있으며, 현재 미국 청소년들의 취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는 대중음악은 미국 대중음악을 제외한다면 케이팝 아이돌이 사실상 유일한 장르이다.

이는 비단 케이팝 팬들만의 의견은 아니다. 현재 아이돌 음악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스웨덴 출신의 작곡가 안드레아스 오버그는 지난번 필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 아이돌 음악이 미국 R&B 및 스웨디시 팝과 어떻게 정서적으로 맞닿아 있는지를 말한 바 있는데, 〈케이콘〉에 참여한 작곡가들이나 평론가들 역시 케이팝이 미국 어반 블랙뮤직에 가장 가까운 비-미국권 음악 중 하나임을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아이돌 음악을 미국 팝의 B급 버전으로 폄하하는 의견에 대해서는 오히려 더 새로운 음악적 실험과 상상력을 가능케 하는 포맷, 즉 가장 핫하고 트렌디한 토털 패키지 음악일 수 있다는 부분을 지적하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 현장에서 만난 작곡 팀 런던 노이즈(LDN Noise)는 여러 영미권 아티스트들과 작업했지만 케이팝 아이돌 음악은 그들에게 ‘새로운 세계’로 느껴졌으며, 창작자로서는 거부하기 힘든 흥미로운 영역이라고 강조했다. 현장에서 대화를 나눈 미국 기자 및 유력 블로거들은 방탄소년단의 빌보드 어워즈 수상이나, 최근 래퍼 제이지의 회사인 락 네이션과 계약한 박재범의 사례를 언급하며 이것이 케이팝 인기의 정점이 아니라 전주곡이 될 가능성을 전망하기도 했다.

〈케이콘〉은 분명 ‘양덕’들이 펼치는 ‘그들만의 리그’다. 패널들은 아이돌부터 케이뷰티에 이르기까지 케이컬처를 둘러싼 상상 가능한 모든 주제들을 올리고 있었다. 심지어 ‘한국에서 공부하며 생활하기’, ‘바이럴 비디오 만들기’ 등 참신한 주제를 진지하게 토론하는 모습은 과연 그들다운 모습이랄 수 있었다. 특히 북미인들의 삶의 영역으로 옮아간 주제들이 지난 몇년간 유독 두드러지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가령 작년에 있었던 LGBT+ 패널은 최근의 변화양상을 반영하는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유튜버로 활동중인 성소수자들이 모여 그들이 사랑하는 케이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나아가서 케이팝을 매개로 뭉친 미국 성소수자 팬들의 결속과 연대를 다짐하는 모습은 정작 ‘한국’은 빠진, 하지만 그래서 그들에게는 더욱 의미 있을 수 있는 대화의 장이었다. 올해 가장 인상적인 패널 중 하나였던 케이팝 속 블랙뮤직의 정체성에 관한 토론은 케이팝이 현재 직면한 또 하나의 문제점을 돌아보게 만든 토론이었다. 케이팝의 유력한 소비층으로 떠오르고 있는 아프리칸 아메리칸들이 발표자와 관객으로 회장을 메운 가운데, 아이돌과 케이팝 전반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화전용 및 인종주의의 명백한 혹은 미묘한 사례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대단히 독특한 광경이었다. 자유로운 비판을 하고 반박을 하는 와중에서도 그들을 지지하고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덕심’의 모순성에 대해서 수긍하는 그들의 모습은 신선했다. 블랙뮤직이 아닌 한국음악을 듣는다고 또래에서 2중의 차별을 받는다며 눈물을 보인 흑인 청소년과 그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는 관중들의 모습을 보며 이미 복잡한 정체성으로 진화환 케이팝의 현재와 문화가 가진 힘을 다시 한번 절감할 수 있었다. 그 밖에도 걸그룹 팬으로 살아가는 여성들의 모임, 케이팝 아이돌 팬을 부모로 둔 사람들의 고민, 중년에 접어든 케이팝 팬들의 고백, 케이팝 팬으로 시작해 현재 케이팝 관련 각 산업에서 활약하고 있는 업계 종사자들의 성공담은 〈케이콘〉이 아니라면 그 어디서도 흔히 볼 수 없을 그들만의 맞춤형 공론의 장이었다. 케이팝을 한국의 대중문화로 인식하면서도 동시에 북미의 하위문화로 새롭게 위치 짓는 이 같은 움직임은 최근 그 추세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그들에게 케이팝은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진지한 취미, 아니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 생활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다.

케이컬처의 상상 가능한 모든 주제가 등장하는 〈케이콘〉. ⓒ CJ E&M

케이컬처의 상상 가능한 모든 주제가 등장하는 〈케이콘〉. ⓒ CJ E&M

지난 10년간 미국에 머물며 관찰한 바에 따르면, 미국은 전세계 그 어느 문화권보다도 높은 잠재력을 갖춘 케이팝 씬 중 하나로 가파르게 성장중이다. 그리고 〈케이콘〉은 이 성장세와 변화의 양상을 매년 정확히 확인해 주고 있다. 초기의 〈케이콘〉이 홍보용 쇼케이스에 가까운 뉘앙스를 띠었다면 이제는 이미 세계에서 가장 큰 음악 씬 중 하나인 한국 대중음악과 그로부터 부가적으로 파생되는 다양한 문화의 위력을 과시하는 성격으로 진화했다. 북미는 한국, 일본에 이어 케이팝의 트렌드를 만들 수 있는 새로운 팬덤을 보유하고 있다. 3년 전 이제 막 데뷔무대를 마친 방탄소년단이 〈케이콘〉에 도착해 엄청난 환호를 받는 것을 보고 북미 시장이 이제 전혀 다른 포텐셜을 가진 시장으로 변할 것이라 예상했고, 실제로 그들은 다름 아닌 북미의 열광적 인기를 바탕으로 전세계에 영향력을 퍼뜨려 나갔다. 역사가 깊고 실질적인 수익이 발생하는 일본시장에 비해서는 여전히 미약한 단계이지만, 블랙뮤직이라는 음악적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고 독특한 하위문화를 형성해 부가가치를 올리는 북미시장 특유의 열성적인 팬 문화는 과소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 케이팝은 한국이 만들지만 더이상 한국만을 위한 음악이 아니며 아시안 커뮤니티에 갇혀 있는 지엽적인 흐름도 아니다. 현재 케이팝은 한국이 만들어 낸 초국적이고 코즈모폴리턴적인 모더니티의 모듈을 기반으로 쉽게 무너지지 않을 공고한 음악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고, 이를 통해 나오는 꾸준한 품질의 음악은 미국 대중들에게 그들의 대중음악을 대체 혹은 보완할 가장 매력적인 선택지로 어필되고 있다. 〈케이콘〉은 그 가능성을 압축요약적으로 보여주고 있고 그런 의미에서 〈케이콘〉의 성공은 단순히 이벤트의 성공이라는 개념을 넘어 어쩌면 하나의 문화 현상이라 불러야 할지 모른다.

빌보드에 케이팝 칼럼을 기고하는 제프 벤자민(Jeff Benjamin)은 2년전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케이팝 기획사들의 적극적 태도를 주문한 바 있었다. 과연 케이팝은 더 대담하게 그리고 더 섬세하게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 북미가 먼저 인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3년 전의 방탄소년단이나 올해의 카드(K.A.R.D)는 케이팝의 트렌드가 원산지로부터 일방적으로 공급되는 것이 아니라 순환적 구조를 통해 퍼뜨려질 수 있음을 보여준 가장 극적인 사례였다. 올해 이틀간의 공연 중에서도 압도적인 환호를 받았던 워너원의 놀라운 인기는 아이돌 콘텐츠가 뮤직비디오와 예능을 가리지 않고 북미와 한국 양쪽에서 정확히 동시에 소비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NCT 127의 인기는 오히려 한국보다도 미국에서 더 직접적으로 와 닿았고, 두 번째 공연의 피날레를 맡은 갓세븐 역시미국에 더 열광적인 팬덤을 거느린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북미 맞춤형 아이돌의 가능성은 섣부른 예상일 수 있으나 그들에게 유독 더 매력적인 음악이나 팀이 있다는 건 분명했다. 발매된 모든 음악을 다 들어야 직성이 풀리고 또한 여러 가수를 동시에 좋아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북미 팬덤 특유의 ‘잡덕’ 문화, 언어와 문화에서 근접성을 느끼는 미국계 멤버 및 다국적 멤버구성에 대한 애착 등은 제작자의 입장에서 북미시장의 공략시 면밀하게 고려해야 할 요소가 될 것이다. 특히 인종 및 성차별, 그리고 다른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 북미만이 가진 예민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한류 드라마의 인기, 유튜브의 등장 그리고 강남스타일의 폭발로 인해 어쩌면 ‘얻어걸린’ 면도 없지 않은 케이팝의 인기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태도가 필요할 것이다. 3일간의 〈케이콘〉 여정을 마치고 시애틀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필자는 팝의 본고장이자 세계 음악 시장의 절대적인 중심축인 북미에서 꾸준히 존재감을 높여가는 케이팝의 미래를 생각하며 ‘섬세한 시장분석’과 ‘대담한 상상력’이라는 두 키워드를 새삼 곱씹어 보았다.

김영대

Author:

음악평론가. 계간 [문학동네] 편집위원. [한국힙합] [90년대를 빛낸 명반 50]의 저자. 번역서 [미국 대중음악] (한울)이 새로 나왔습니다. 미국 Lewis & Clark 대학교에서 대중문화강의. toojazzy2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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