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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ON LA 2017 리포트: ① ”과연 누가 케이팝을 듣고 있는가?”

〈케이콘〉은 지난 3년간 북중미에서만 무려 다섯 배가 넘는 성장을 이루며 매머드급 행사로 거듭났다. 케이팝 팬들의 열정에 기반해 열광적인 취향의 공동체를 만들고 확인하는 현장을 찾았다.

지난 8월 18일에서 20일까지 로스앤젤레스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케이콘〉 LA 2017 현장을 김영대가 찾았다. 〈케이콘〉 리포트는 두 편의 기사로 게재된다.

LAX 공항에 내려 그 악명높은 LA의 교통체증을 1년 만에 다시 뚫고 달리면서 4년 전 그 더웠던 여름, 처음으로 찾았던 그때의 풍경을 떠올렸다. USC의 홈구장 메모리얼 스포츠 아레나 앞을 가득 메운 다양한 인종과 옷차림의 젊은 팬들. 총 3만 명이라는 당시로서는 기록적인 방문객. LA 지역 언론을 비롯한 외신들이 포스트-강남스타일 시대 케이팝의 성장과 광범위한 인기를 주목했던 그 장면의 한가운데에서 나는 문화의 꿈틀거림을 느꼈다. 지금 돌아보니 그때는 정말 소박했다고 느껴질 정도다. 〈케이콘〉은 이제 규모와 위상에서 전혀 다른 존재감을 갖는 매머드급 행사로 거듭났다. 올해는 LA에만 무려 8만 5천여 명이 몰렸는데, 먼저 열린 뉴욕의 4만 명과 멕시코시티의 3만 명을 합하면 지난 3년간 북중미에서만 무려 다섯 배가 넘는 성장을 이룬 셈이다. 2012년 어바인에 만 명 남짓이 찾았던 것을 떠올리면 열 배가 넘는, 직접 보지 않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폭발적인 증가 폭을 기록 중이다.

이벤트의 규모는 비단 관객뿐 아니라 스폰서의 수로 판단한다. 올해는 총 50개의 스폰서, 그중에서 도요타, 아마존, AT&T 등 유력 해외 스폰서만 20개 이상의 업체들이 참가했다. 굳이 수치를 하나하나 짚지 않더라도 단일 국가의 대중문화 관련 행사로는 최대 규모에 가까울 것이다. 단지 기록된 숫자만으로도 수년 전부터 일부에서 나오던 한류 위기론이나 케이팝의 퇴보에 대한 우려 혹은 의심은 능히 반박이 가능할 것이다. 지난해의 기록적인 성공이 헤드라이너였던 방탄소년단의 폭발적인 인기를 통해 가능했다고 하더라도, 이제 전혀 다른 라인업으로 다시 만 명 이상 참가객을 늘린 올해의 결과는 케이팝의 전반적인 성장이라는 것 말고는 딱히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케이콘〉은 여느 케이팝 공연과는 그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로스앤젤레스 컨벤션 센터를 가득 메운 채 3일간 진행하는 패널 발표 및 워크숍에서는 비단 케이팝뿐이 아닌 한국 대중문화 관련 온갖 주제들이 다뤄지며, 주말 동안 스테이플스 센터에서 열리는 〈M 카운트다운〉 콘서트는 흔한 음악방송과는 차원이 다른 압도적인 스케일로 치러진다. 더 중요한 것은 〈케이콘〉이 시간과 비용과 노력을 투자하는 케이팝 팬들의 열정에 기반한 행사라는 사실이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온라인의 취미 생활이 전부였던 미국의 아이돌 팬들은 이제 〈케이콘〉을 통해 그들의 취향과 경험을 공유하며 동질감을 확인할 뿐 아니라 그들이 지지하는 스타를 직접 만날 흔치 않은 기회를 얻고 있다. 행사장 어느 곳에서나 느껴지는 이 긍정적이고 열띤 분위기는 외신들의 표현대로 미국의 〈코첼라(Coachella)〉 음악 페스티벌이나 〈코믹콘(Comic-Con〉과 같은 행사의 한류 버전 같은 느낌을 준다.

열광적인 취향의 공동체를 만들고 확인하는 그 귀한 경험을 얻기 위해 그들이 지출하는 비용은 결코 만만치 않다. CJ E&M의 자료에 따르면, 〈케이콘〉을 매년 방문하는 미국 팬의 경우 2박 3일간의 일정을 위해 총 2,300불, 한화로는 260만 원 량의 돈을 지출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인들에게는 한국 문화의 메카나 다름없는 LA에서 레코드숍 등에 들러 음반이나 굿즈 등의 추가적인 지출을 하는 것은 제외한 금액이다. 현장에서 이야기를 나눠본 팬들의 사정도 이와 비슷했다. 사정이 넉넉지 않은 학생들의 경우 이 3일간의 행사를 위해 평소에 추가적인 아르바이트를 뛰어 소위 〈케이콘〉용 ‘총알 장전’을 하는 것은 1년 중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한다. 뉴욕주 소도시에서 온 한 여성 팬은 본인의 학교는 물론이고 동네에서 사실상 유일한 케이팝 아이돌 팬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는데, 개인 사정상 가까운 ‘뉴욕콘’에 참석하지 못하고 훨씬 더 많은 비용을 들여야 하는 ‘LA콘’에 왔지만 그래도 자신과 같은 음악을 좋아하는 팬들, 그리고 그가 좋아하는 가수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비용 생각은 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현재 1,500불에 달하는 프리미엄 티켓은 무려 2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스테이플스 센터의 좌석 티어 중에서도 가장 빠른 시간 안에 매진된다. 조금 더 입체적으로 데이터를 들여다봐야 하겠지만 〈케이콘〉이 점점 메인스트림 중산층의 관심을 얻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할 것이다.

과연 미국에서는 누가 케이팝을 듣고 있는가? 케이팝은 정말 인기가 있긴 한가? 싸이 이후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하거나 혹은 의심하는 한국 팬들이라면 자연스럽게 떠오를 질문일 것이다. 〈케이콘〉은 이에 대해 몇 가지 답을 알려주고 있다. 한가지 전제해야 할 것은, 미국은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사람들의 생각보다 훨씬 크고 복잡한 나라이고, 그 중에서도 흔히 ‘메인스트림’이라 부르는 백인 주류 문화는 감히 넘볼 수 없을 정도로 그 위세가 공고할뿐더러 그 구조는 대단히 폐쇄적이라는 것이다. 지난 100년이 넘는 대중음악의 역사에서 절대적인 주류의 장르로 받아들여진 것은 유러피언 백인들과 아프리카계 흑인들의 음악 계통이 유일하며 여기에 라틴 아메리카의 음악전통이 가미되었을 뿐이다. 이 같은 역사와 환경을 고려할 때 나는 케이팝과 같은 외국문화 혹은 비주류의 문화의 성패는 단순히 빌보드나 아이튠즈 차트의 성과와 같은 수치보다는 〈케이콘〉과 같은 참여형 이벤트의 전반적인 규모 변화나 참가자들의 양상을 통해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재 미국 내 케이팝 씬은 흔히 교포라고 불리는 한국계 미국인을 중심으로 그들의 주력 전파대상인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주된 소비층이었던 몇 년 전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띠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뉴욕 〈케이콘〉만을 기준으로 살펴보아도 비-아시아계 인종의 참가비율은 올해를 기준으로 60% 넘고 있고, 놀랍게도 그중에 30% 이상을 백인 팬들이 차지한다. 흔히 ‘남미 팬’으로 불리는 히스패닉이 그다음을 잇고 있고, 심지어 전통적으로 아시아 계열의 대중음악과는 인연이 없었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수가 전체의 10%를 차지할 만큼 대폭 늘어난 것이 수치로 입증이 된다. (‘LA콘’에서 흑인 및 라틴계 참가자는 이보다 훨씬 높은 수치를 보일 것이다.) 케이팝이 몇 년 전부터 댄스팝의 카테고리를 넘어 R&B와 힙합 등 블랙뮤직을 적극 수용하고 있고, 유튜브와 음원 위주의 유통 구조에서 미국 내 흑인 커뮤니티 등에 유입이 용이해진 상황에서 미국 내 어반뮤직 팬들이 케이팝의 잠재적 고객으로 떠오르고 있는 상황을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이 변화 양상은 케이팝이 미국 내에서 아시안 커뮤니티를 서서히 빠져나와 보편적인 유행으로 확대되는 양상과도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김영대의 KCON LA 2017 리포트는 2부로 이어진다.

김영대

By 김영대

음악평론가. 계간 [문학동네] 편집위원. [한국힙합] [90년대를 빛낸 명반 50]의 저자. 번역서 [미국 대중음악] (한울)이 새로 나왔습니다. 미국 Lewis & Clark 대학교에서 대중문화강의.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