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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아이들 – I am (2018)

(여자)아이들은 ‘걸그룹과는 다른 무엇’이 되기보다는 ‘다른 것을 하는 걸그룹’이길 선택한다. 걸그룹의 역할을 질문하는 걸그룹이다.

다짜고짜 치고 들어온다. 타격감 좋은 비트가 시간을 감아올리는 듯한 필인과 깊게 뻗는 스네어로 매번 아주 적절한 타이밍에 터진다. ‘Latata’의 후렴은 도르래를 돌려대는 듯한 “Latata Latata”가 어지러운 딜레이를 흩뿌리듯 모든 소리가 하나의 커다란 덩어리를 이뤄 소용돌이친다. “내게 널 갇히게 Lata”의 숨차듯 내려놓는 여음과 “랕탙타”하고 씹어 뱉는 목소리에서, 절도 있지만 관능적인 첫 버스의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보컬은 호흡이 그대로 느껴질 듯한 다이내믹을 선보인다. 좋은 래퍼의 꼼꼼한 곡들이 종종 그렇듯 보컬은 음운 단위로 연출되며 곳곳에서 절묘하게 맛을 내고, 그것이 곡의 호흡을 주도한다. 그리곤 “Latata Latata”에 이르러 끝없이 반복될 듯 연결되며 돌아간다. 후렴의 뭄바톤 리듬의 역동성 위에 후렴의 무정한 멜로디가 치고 나올 때면, 곡은 한껏 비장하고 격렬하게 퍼포머들을 주인공의 자리로 떠받들어 올린다. 보이그룹의 곡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최대한 멋있게’를 목표로 하는 애티튜드다. 다만, 이를 아주 잘 수행하고 있다.

같은 기조는 ‘Maze’에서도 볼 수 있는데, “네 안의 미로에 갇혀” 절박하게 헤맨다는 내용 역시 보이그룹에게서 볼 수 있던 소재다. 걸그룹이 노래했을 때 이것이 불편하지 않을 이유는, 역시나 ‘최대한 멋있게’의 애티튜드에 있다. 정확한 지점에서 리듬을 손에 쥐고 흔들며 애절하기보다는 격하고 역동적인 세계를 펼쳐 보인다. 마지막의 리듬 변화로 다시 한번 호흡을 끌어올리는 점도 멋진데, 오프비트에서 시작하기보다 좀 더 뻔뻔하고 노골적으로 ‘달린다’는 선언을 하며 터뜨려도 좋았을 것 같다.

멤버, 특히 래퍼의 작사 작곡 참여는 (여자)아이들을 특별하게 하는 큰 요소다. 보이그룹 세계에서는 매우 흔한 일이지만, 걸그룹 멤버의 자작곡은 빈도도 비중도 평가도 모두 한없이 박했다. 특히 신인 힙합 걸그룹이 이런 노선을 택했다는 점도 충분히 고무적이지만, 이 음반의 가치는 분명 ‘여자도 할 수 있다’에서 그치지 않는다.

‘달라 ($$$)’는 공격성과 달콤함의 극단을 이어 붙이면서 들을 때마다 조금씩 당혹감을 선사하는데, 1절이 끝날 때쯤이면 기세에 휘말리면서 어느덧 납득하게 하는 경험을 제공한다. ‘서로 다른 개성’ 같은 표현이 들어가는 그룹 이름에서부터 소속사 특유의 (일종의) X세대 취향이 엿보이는 터라, 제목만 보아도 이 곡의 소재와 주제가 무엇일지, 어떤 식으로 힙합의 스왜그와 연결될지는 얼마든지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달콤함 위에 얹은 거절의 메시지들은 ‘다름’이 향하는 곳을 명시하고(“너와 나는 너무 달라”~”I’m not your girlfriend”) 그것은 ‘다른 여자들과 나는 다르다, 남자들은 나를 원한다’ 류의 걸그룹 클리셰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전소연이 솔로 작업에서 보여줬던 재치와 유쾌함은 이 곡에서 되살아난다. 보다 전투적으로 쏘아붙이는 사이로 느긋하게 여유 부리는 듯한 제스처는 매우 색다른 스왜그를 선보인다.

일견 뻔하고 느끼한 R&B 계열 수록곡이 될 수 있었던 ‘Don’t Text Me’는 다른 곡에 비해 보컬이 한 걸음 뒤쪽으로 물러선 듯 들리는데, 공간을 누비고 다니는 신스의 사운드가 보컬에게 좀처럼 자리를 내주지 않는다. 역설적이지만 그것이 보컬-멜로디의 비중을 낮추면서 감성을 덜어냄으로써 달콤한 노래들과는 거리를 두게 한다. 퉁명스러운 랩이 서사의 도입부와 절정부에 큰 존재감으로 자리하는 것 역시 곡의 품위를 보탠다.

‘Latata’가 더욱 근사한 데뷔곡인 것은 이런 맥락 위에서다. 이것은 ‘보이그룹 따라잡기’가 아니다. 곡은 때로 부드러운 얼굴을 보이지만 그것은 감성이나 서정을 표현하지 않는다. 맹렬함 속에서 더욱 다부진, 나직하고 은근한 여성의 목소리로 “누가 뭐 겁나?”를 툭 내던지는 단호함이다. 그것이 나른함과 매정함을 오가는 프리코러스와, 여러 차례 결심을 굳힌 끝에 내달리는 듯한 후렴의 격렬함으로 청자를 사로잡는다.

Jelly
큐브 엔터테인먼트
2017년 11월 5일
아이들 쏭
큐브 엔터테인먼트
2018년 2월 28일

이런 점들을 제외하고 보면 (여자)아이들은 어떤 의미에서 보수적이기까지 하다. 곡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연애 관계에 관해 노래하고, 수시로 귀여움이나 섹시함의 표정을 드러내며, 이성애 중심주의를 벗어나지도, ‘남성성’이나 ‘무성성’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이미 백합 코드, 성별 지칭의 삭제 등 구체적인 사례로 의문이 제기되거나 전복된 걸그룹의 기초들을 꽤 고스란히 따른다. 힙합의 맥락에서 본다 해도 한국식 ‘걸스힙합’을 크게 벗어나려는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도전적인 ‘달라 ($$$)’ 같은 곡에서 적극적으로 끌어안기도 한다. 이들은 ‘걸그룹이 아니길’ 선택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자)아이들은 눈에 확 띌 만큼 가시적으로 도전적인 애티튜드와 격렬한 기세로 전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 꼼꼼한 연출과 잘 다져진 프로덕션, 그리고 과장되지 않으면서도 확실한 존재감과 풍부한 표현력을 보여주는 전소연이 이를 탄탄하게 뒷받침한다. 전소연의 솔로 작업이 ‘어린 여성’의 정체성을 중심에 제시하면서도 묘하게 다른 방향으로 소화해냈다면, (여자)아이들은 이를 그룹 단위로 확장하면서 또 한 번의 변주를 가한다. 대중적으로 훨씬 납득하기 좋은 결과물인 동시에, 누구라도 그 차이를 놓치기 어려운 노선이다. ‘걸그룹과는 다른 무엇’이 되기보다는 ‘다른 것을 하는 걸그룹’이길 선택한 셈이다. 그것이 (여자)아이들을, 걸그룹의 역할을 질문하는 걸그룹이게 한다. “불 위를 걷나?”

I am
큐브 엔터테인먼트
2018년 5월 2일
미묘

By 미묘

가식과 내숭의 외길 인생. 음악 만들고 음악 글 씁니다.
f(x)는 시대정신입니다.

One reply on “(여자)아이들 – I am (2018)”

전소연이 앨범 크레딧 전반에 이름을 올린것을 보고 블락비의 지코가 생각났던건 저뿐일까요…멤버들의 가이드를 떠주고 디렉션까지 디테일하게 하는 영상속 지코의 모습이 그려졌었는데 오늘 전소연이 한 인터뷰에서 말하더라구요 멤버들 가이드 본인이 다 떠줬고 디렉션까지 했다고 ㅎㅎ 언프에서 얻었던 경험이 전소연이 주도적인 프로듀싱을 하는데에 엄청난 득이 된거 같습니다. 너무 잘하네요 확실히 돋보이더라구요..여성 아이돌이 이렇게 높은 수준의 프로듀싱을 보여주는 멤버가 있을때 얼마나 좋은 음악성을 보여줄지 너무 기대됩니다. 특히 latata곡의 단독 작사가 눈에 띄더군요. 오히려 메이저 작사가에게 곡을 의뢰하지 않고 전소연이 작사한것이 곡의 유니크함을 크게 배가시켰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