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빛깔 청춘의 편린을 노래하고 연주하다
‘청춘’이라는 단어로부터 흔히 연상되는, 혹은 으레 기대되는 몇 가지 이미지가 있다. 혈기왕성한 젊은이들, 그들의 조금은 철없어 보일 정도로 해맑은 질주, 청명한 하늘과 내리쬐는 태양, 우거진 신록,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밤의 음악과 춤과 술, 맹목적일 정도로 정신없이 빠져드는 사랑, 그러한 것들. 물론 완전히 정반대의 것을 연상하는 것 역시 어렵지 않다. 실연, 고민, 상념, 고뇌, 눈물, 우울, 절망, 공허, 한숨, 상처, 무기력, 그 외 수많은 단어들. 빛이 있으면 당연스레 어둠도 함께 있고, 그렇기에 이글대는 생명력으로 빛나는 시절의 뒷면은 어둑한 얼룩으로 가득하게 마련이다(물론 반대의 경우도 존재한다). 환희와 상흔을 동시에 지닌 양면적이고 아이러니한 시기, 예측불가로 가득한 시절. 당시에는 지긋지긋하다가도 막상 지나고 보면 문득 그리워지곤 하는 어떠한 나날들.
‘청춘’을 뜻하는 제목 ‘Youth’처럼, 데이식스는 이 앨범에 청춘의 편린들을 차곡차곡 담아냈다. 고민하고, 방황하고, 사랑하고, 이별하고, 치유하고, 놀고, 즐기고. 물론 데이식스는 이전부터 청춘의 자화상을 꾸준히 그려왔지만, 달라진 것은 이들의 음악이다. 전에 없던 질주감과 가속도가 붙었고, 흥겨움이 더해졌으며, 초여름의 바람 같은 청량함과 이글대는 태양 같은 열기를 함께 얹었다. 데이식스 스스로도 ‘청춘의 뜨거움, 열정, 에너제틱한 부분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뜨거운 여름에 걸맞은 앨범을 만들고 싶었다’며 월드투어 〈Youth〉 서울 공연에서 밝혔다. 그렇듯, 이 앨범은 세간에서 으레 떠올리곤 하는 ‘청춘’을, 특히 ‘한 여름의 청춘’을 날 것의 느낌으로 그려낸다. ‘날 것’이라는 그 느낌마저도 역시 흔히 회자되는 청춘의 이미지 중 하나다. 그렇게 다섯 명의 청년들은 있는 힘껏 악기를 연주하고, 핏대를 세우며 소리 높여 노래한다. 청춘을 연주하고, 청춘을 노래한다. 그마저도 ‘청춘’이다. 한 여름 빛깔의 청춘을 그대로 소리로 빚어낸다면 바로 이 앨범이 될지도 모르겠다.
마치 질주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처럼 앨범은 ‘Warning’으로 힘껏 내달리기 시작한다. 날 것의 느낌이 물씬한 얼터너티브 사운드에, ‘선을 넘지 말라’는 경고 메시지가 사방에서 어지럽게 흩날리며 유발되는 긴장감이 모든 감각을 곤두세우게끔 하며 집중도를 높인다. 아찔한 긴장감은 그대로 타이틀 ‘Shoot Me’로 이어져, 약간의 불길한 기류를 머금은 레게 리듬과 함께 고조되고는 탕탕, 총성을 닮은 그런지한 드러밍으로 폭발한다. 가사대로라면 관통되는 것은 “그래 날 쏴”라며 호소하는 노래 속 화자인데, 어쩐지 듣는 쪽이 관통되는 것만 같은 타격감을 안기곤, 이내 ‘어쩌다보니’에서 산뜻하게 표정을 바꾼다.
질주감과 타격감은 그대로이되, 마치 힘껏 달린 뒤 목을 축이려 ‘톡’하고 딴 탄산음료가 넘쳐 흐른 것만 같은 청량감이 더해졌다고 할까. 쨍쨍 내리쬐는 태양 아래에서 찡그리며 웃는 듯한 표정을 보이다, 이내 밤이 되어 ‘Feeling Good’으로 조금 다른 질주감을 선사한다. 뚜껑 없는 차를 타고 쭉 뻗은 도로를 달리며, 청춘들은 “그냥 철없이 밤을 느끼러/한 번 뿐인 오늘을 즐기러” 간다. 댄서블하고 흥겨운 80년대 바이브를 더하는데, 비슷한 노선을 취했던 ‘Blood’나 ‘Hunt’(“Daydream”) 같은 곡들은 브라스의 활용으로 어딘가 ‘더운’ 느낌을 주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이후 이어지는 ‘혼잣말’까지의 곡들은 맑게 울리는 신스 사운드, 훵키한 기타 리프, 하이톤의 화음을 적극적으로 배치하며 시원하고 청량한 공기를 일관적으로 유지한다. 유일한 발라드 트랙인 ‘원하니까’에서조차 그렇다. 유사한 무드의 ‘예뻤어’(“Sunrise”)를 한겨울 눈 내리는 풍경 속의 모노드라마라 한다면, ‘원하니까’는 부슬부슬 내리는 여름비 속에서 읊조리는 독백이라 할 수 있을까. 이미 끝난 인연에 대한 그리움마저 담백하고 산뜻하게 갈무리하며, 여섯 장(章)의 청춘드라마는 잠시 쉼표를 찍는다. 다음 장을 기약하며.
데뷔 타이틀곡 ‘Congratulations’(“The Day”)를 두고 맛있는 파히타는 “젊음을 꿈꾸고 동경하는 이들의 젊음이 아니라 젊음을 헤쳐가고 있는 이들 자신의 젊음, 그 에너지 자체를 폭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평한 바 있다. 이를테면 본작은 그것을 앨범 단위로 확장한 결과물이다. 더불어 “스쿨 밴드의 풋풋함과 프로덕션의 프로페셔널리즘 사이의 팽팽한 줄다리기”(조성민)에서 벗어나, 좀 더 ‘프로페셔널한’ 밴드로서 나아가는 한 걸음이다. ‘졸업’과는 조금 다르다. 이들은 분명 성장했으되, 여전히 청춘의 한 페이지를 살아내고 있으며, 그것을 그들만의 음악으로 힘껏 펼쳐 보이고 있다. 이들이 써 내려가는 청춘 비망록의 다음 페이지는 어떤 모습일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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