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o City를 지나 다시 SM Town으로
‘Superhuman’은 근래 SM 발매작 중에서도 단연 손꼽을 만한 만듦새를 자랑한다. 곡을 재생하자마자 쾌청하게 울려퍼지는 화음에 이끌리지 않기란 어렵다. (재밌게도 이는 2012년 수많은 청자들을 무릎꿇게 했던 f(x) ‘제트별’의 인트로와 유사한 화성구조다.) 프로듀서 탁이 주특기를 발휘해 만든 컴플렉스트로의 자장 위에서 멤버들은 각자의 음색을 뽐내며 자유로이 부유한다. ‘Regular’와 비교했을 때 음악 면에서는 랩 중심의 라틴 트랩에서 보컬 중심의 일렉트로 팝으로, 이미지 면에서는 사이버펑크 서울 뒷골목에서 가상의 사이버공간으로 큰 변화가 있다. 그러나 동일하게 (레트로의 향취가 살며시 베인) 미래도시의 감각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그룹의 서사를 이어보려는 노력이 느껴진다.
그러나 문제는 ‘Superhuman’이 그리는 미래도시의 감각이 과연 NCT 127이 고수해온 ‘네오 시티’의 감각과 동일하느냐는 것이다. ‘Superhuman’의 촘촘한 화성과 밀도 높은 사운드는 공간감과 도회성으로 대표되는 NCT 127의 ‘네오 시티’라기보다 ‘SM 타운’의 유구한 공식을 따른다. 미래적이고 초인간적인 이미지 역시 동방신기의 ‘Humanoid’, 샤이니의 ‘Everybody’, 엑소의 ‘Power’의 중간 어딘가에 위치한 양 보인다. 이러한 기시감은 이식된 평행우주를 보는 듯한 이물감을 불러일으키며 기존 SM의 ‘문화기술’과 구분되는 ‘신-문화기술’을 표방하겠다던 팀의 방향성에 의문을 품게 만든다.
이는 비단 타이틀곡의 문제만은 아니다. “We Are Superhuman”은 후반부로 갈수록 NCT 127의 색채가 옅어지는 모습을 보인다. 사실 앨범의 리드 싱글이자 1번 트랙인 ‘Highway to Heaven’만 해도 기존 NCT 127의 도회성을 훌륭하게 변주한 곡이다. ‘Sun & Moon’과 같은 기존의 보컬 중심 수록곡의 연장선상에 놓이며, 태용-마크의 강렬한 콤비 플레이에 비해 회자되지는 못했으나 특유의 부력으로 노래에 공간감을 불어 넣으며 그룹 사운드의 어반함을 지탱하는 역할을 해온 보컬 멤버들을 전면에 배치해 그룹 색채의 발현 통로를 훌륭하게 이관한다. 잠재되어 있던 자원을 끌어내 그룹의 개성을 또 다르게 구현해내려는 방식에는 도무지 흠잡을 곳이 없다. 그러나 이어지는 ‘Superhuman’은 수면 위로 끌어 올려진 보컬을 단지 SM의 표준을 구현하는 재료로 사용하고 있으며, 이어지는 수록곡들은 다른 그룹에게 갔어야 하는 곡이 아닌가 의구심이 들 정도의 이질감을 불러일으킨다. (‘아 깜짝이야’는 샤이니가 ‘Romance’와 같은 곡에서 시도했던 세련된 이국적 팝을, ‘시차’는 동방신기와 엑소가 주로 선보여 온 전통적인 SM 발라드를, ‘종이비행기’는 키의 솔로앨범과 NCT 드림의 곡들을 떠올리게 한다.) 전체적으로 공기를 한소끔 더 머금은 듯한 사운드의 질감과 그 틈새를 더욱 벌리며 곡을 환기하는 보컬이 NCT 127의 명맥을 이어주고는 있으나, 실연자로 인한 필연적인 차이를 넘어선 차별점을 짚어내기 어렵다.
노선 변경이라기보다 경로 이탈처럼 느껴지는 급선회의 배경에는 팀 내외에 걸친 여러가지 변화가 존재한다. 우선 샤이니, 엑소가 솔로/유닛 활동에 주력하고 있는 현재 정통 SMP를 그룹 단위로 효과적으로 선보일 수 있는 보이그룹은 사실상 NCT밖에 없다. (관록과 두 멤버 간 케미스트리에 집중하며 비교적 칠(chill)한 음악을 선보이고 있는 동방신기, 라틴뮤직과의 접합으로 새로운 길을 걷고 있는 슈퍼주니어는 논외다.) NCT 중에서도 SM이 야욕을 본격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그룹은 NCT 127이다. NCT Dream은 유동적인 연합 유닛으로 졸업 체제를 고수하고 있으며, NCT의 중국 유닛으로 예정되었던 WayV는 형식적으로 NCT에서 완전히 분리된 뒤 폐쇄적인 중국 시장 안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충수에 빠진 세계관을 타개할 활로로서 제시된 것이 아마 NCT 127의 북미 진출이었을 것이다. NCT가 초국적 시스템으로 기능할 수 없게 된 이상 NCT 127 단일 유닛에 글로벌 그룹으로서의 입지를 부여한 것이다. 북미에 자리매김 하려는 입장에서 분명 북미가 케이팝에 거는 ‘보이밴드 팝’의 기대치를 의식했을 것이고, ‘Superhuman’은 그 결론으로서 훌륭한 곡이라 할 수 있다. NCT가 기존 SMP와 차별화된 그룹 색으로 북미 팬들에게 소구한 부분도 있었다는 점에서 여전히 미심쩍긴 하지만, 이전과 같은 그룹 색을 유지하기도 어려운 상황인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보컬 멤버 정우가 투입되고 퍼포먼스 멤버 윈윈이 함께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화려한 퍼포먼스 중심의 그룹에서 보컬 중점 그룹으로 무게추가 기울었기 때문이다.
물론 위의 상세한 배경 해석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릴 수 있다. 하지만 이 급작스러운 변화가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한계를 넘어”라는 가사가 유난히 공허하게 들려온다.) 과격하게는, 결국 무뎌진 ‘네오’는 그토록 자신 있게 선포했던 ‘신-문화기술’의 파기 선언을 뜻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Neo’ Culture Technology가 아닌 기존의 Culture Technology로, Neo ‘City’가 아닌 SM ‘Town’으로 그들은 분명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다만 앨범의 아우트로 ‘We Are 127’에서 이전작들과 본작의 사운드스케이프를 아우르며 새로운 차원으로 넘어가려는 반동의 힌트가 제시되고 있기에, 이를 실패라 단정짓기에는 이르다. “We Are Superhuman”은 전환‘기’를 쌓아올리는 것이 아닌 전환‘점’을 특정하기를 택한 작품이다. 이 전환점이 어떠한 작용을 하게 될지는 다음 앨범이 나와야 비로소 확실해질 것이다. 판단은 그때까지 보류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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