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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스 플래닛 999: 소녀대전〉(이하 〈걸스 플래닛〉)이 99명의 소녀가 출연하는 시그널 송 ‘O.O.O’ 무대를 공개했다. 많은 이들이 이 무대를 보고 자신의 ‘원픽’을 찾았다. Mnet은 기존에 했던 대로 “바로 나야” 같은 킬링 파트도 준비하고 엔딩에 숨을 고르는 소녀들을 클로즈업으로 잡아냈다.
흥미로운 것은 ‘O.O.O’가 그려내는 세계다. 이전에 공개된 K 그룹, C 그룹, J 그룹 영상과 이번 99인 버전 영상을 합치고 노래 가사를 같이 보면 행간에 숨겨진 맥락이 드러난다. Y 노란색 원에 서 있는 K 그룹의 센터, C 시안색 원 위에 서 있는 J 그룹 센터, M 마젠타색 원 위에 서 있는 C 그룹 센터. 세 사람이 서 있는 원은 겹쳐지진 않지만 중앙에 흰색 접합부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 잠깐 색에 대해 얘기를 해보자면, CMYK는 잉크의 삼원색이다. (시안, 마젠타, 옐로를 합하면 검은색이 만들어지지만 우리가 원하는 블랙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K, BLACK을 별색으로 추가한다) 하지만 CMY는 빛의 3원색을 두 개씩 합치면 나오는 색이기도 하다. (R+G=Y, G+B=C, R+B=M) 그리고 이 혼합색들을 합치면 빛은 가산 혼합되기 때문에 W, 백색광이 나온다. 다시 〈걸스 플래닛〉의 행성으로 돌아가보면, 모든 소녀들은 단색광이 아닌, 두 개의 빛이 합쳐진 행성에서 살아가고 있다. K 그룹이 살고 있는 행성은 Y광, 적색광과 녹색광이 합쳐진 행성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적색광을 공유하는 M 행성에 사는 C 그룹, 녹색광을 공유하는 C 행성에 사는 J 그룹을 느낄 수 있다. 이는 C 그룹과 J 그룹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이제 가사의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O.O.O’의 가사는 여태껏 나왔던 〈프로듀스〉시리즈의 시그널 송과는 전혀 다른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 MC인 여진구는 “같은 꿈을 꾸는 순간 그 꿈은 경계를 넘어 서로 다른 이들을 하나로 연결합니다. 여기 같은 꿈으로 연결된 99명의 소녀들이 있습니다. 경계를 넘어 언어를 넘어 한계를 넘어 이 소녀들이 만들어갈 이 위대한 이야기의 시작을 함께해 주세요”라며 무대의 시작을 알린다. 여기서 우리는 경계, 언어, 한계를 넘는 주체가 ‘소녀들’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걸스 플래닛〉에는 철저히 국적으로 분리된(K 그룹, C 그룹, J 그룹) 소녀들이 그 한계를 넘어 유대를 쌓는 과정을 담겠다는 제작진의 선언이 담긴 셈이다.
첫 가사인 “하늘이 열리고 별들을 넘어서 / 너와 내 꿈들이 연결될 시간이야”는 기존 자기가 살고 있던 행성의 하늘이 열리고, 별들을 넘어서 사는 “너”와 “나”의 꿈이 연결될 것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말하는 “너”는 이 노래를 듣는 청자인 우리를 뜻하는 게 아니라, 다른 행성에 사는 “너”. 즉 다른 그룹의 “너”를 뜻한다. 이제 꿈을 연결한 소녀들은 “어떻게 보낼까 더 확실하게 My sign / 너도 내 우주에 끌리고 있잖아”라며 상대방에게 자신의 우주로 넘어오라고 권유한다. 그 경계를 넘어오라고(“Over”) 하지만, 이들은 1절이 끝날 때까지 자신의 그룹이 서있는 원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들은 “만나고 싶어 어디 있니? 너의 세계가 궁금해”라며 다른 그룹의 지원자들이 살고 있는 세계를 궁금해한다. 따라서 “같은 순간 다른 공간 같은 꿈을 꾸는 너와 나”라는 가사는 서로 같은 순간을 살지만, 다른 공간(다른 나라)에서 태어나 삶을 살아왔고, 케이팝 걸그룹이라는 같은 꿈을 꾸는 다른 그룹 참가자인 “너”를 향해 부르는 것이 된다. 그렇기에 댄스 브레이크 이후 세 개의 원을 가리던 무대장치가 사라지고 “저기 보인다 OVER”라는 가사가 나오는 것도 당연한 수순이다. 물론 세 그룹의 참가자들은 서로를 보지 않고 자기의 앞만 보면서 노래를 계속 불러나간다. 영상 4분 기준, 세 명의 센터가 무대의 중앙에서 서로를 보며 만나는 “난 널 기다려” 파트에서 세 그룹은 처음으로 서로를 향해 바라본다. 무대도 하나의 거대한 원으로 바뀐다. 99명의 소녀들은 3개의 원을 만들고 서로 섞이기도 한다. 처음으로 각자 다른 행성에 살던 소녀들이 서로를 마주 보고 상호작용을 한 것이다. 이어 꽃가루가 터지면서 99명의 소녀들이 모두 영상의 시청자를 바라보며 춤을 추기 시작한다. 서로만을 바라보던 소녀들이 하나가 되어 시청자를 인지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같은 순간 다른 공간 같은 꿈을 꾸는 너와 나”라는 가사는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된다. 같은 순간을 살아가지만, 〈걸스 플래닛〉에 출연 중인 연습생인 참가자와 그걸 응원하는 시청자, 그렇지만 이 둘의 목표는 하나, 데뷔다. 노래는 곧 “난 널 기다려 한 걸음 한 걸음 좀 더 가까이 지금 내 꿈이 너에게 전해지고 있어”라는, 시청자들에게 자신의 꿈을 응원해달라는 조금 더 노골적인 당부로 이어진다. ‘O.O.O’는 “나를 뽑아줘”의 변형이었던 ‘PICK ME’, ‘나야 나’, ‘내꺼야’, ‘_지마 (X1-MA)’를 영리하게 변주한 시그널 송이라 할 수 있겠다.
글: 심해
스무 살에 인피니트로 케이팝 돌잡이 해서 엔터 업계에서 먹고 사는 주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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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reply on “독자 기고 : 〈걸스 플래닛 999〉 ‘O.O.O’, 이제 서로가 궁금한 서바이벌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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