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 아이돌팝 발매작 중 정규앨범을 중심으로 주목할 만한 앨범을 다룬다. 전소연, 데이식스 이븐오브데이, 디오, 드림캐쳐 등.
랜디: 그룹으로 활동하던 아이돌이 첫 솔로를 낼 때는 대개 앞선 팝이나 케이팝 가수들에서 캐릭터적인 레퍼런스를 따오기 마련이다. 그룹 활동으로 미뤄뒀던 자기 취향을 발산할 기회이기 때문에 영감을 준 아티스트를 불러오는 게 아닌가 싶다. 전소연이 (여자)아이들의 프로듀서로서 만들어온 음악은 격렬하면서도 어느 순간 서늘하고, 전체적으로는 집요한 무드의 케이팝이었다. 반면 그는 (여자)아이들로 데뷔하기 전 이미 ‘Jelly’나 ‘아이들송’ 같은 솔로 싱글을 내놓은 이력이 있다. 그가 내세운 ‘부캐’ “윈디(Windy)”는 (여자)아이들의 리더 전소연이 아닌 ‘Jelly’를 부르던 전소연에 가까워 보인다. (4번 트랙 ‘Psycho’에서 그룹에서 보여준 호러 테마가 조금 엿보이기는 하지만, 오컬트에 가까웠던 그룹의 음악에 비해 ‘Psycho’는 범죄 호러에 더 가깝다. 장르가 다르단 인상이다.)
타이틀곡 ‘삠삠’은 거친 질감의 일렉트릭 기타가 비트의 중심이 된다. 최근 힙합-팝 가수들 사이에서 ‘록스타’ 키워드가 인기이지 않았나. ‘삠삠’의 전소연 역시 힘 있는 일렉 기타를 깔고 시작하는 록스타지만, 요즘 팝 신(Scene)의 그들처럼 어둡거나 비장하지 않다. 그의 가사와 애티튜드는 “Adult world”의 모순 사이를 뛰어다니며 누비는 모험가에 가깝다. 마지막 트랙 ‘Is this bad b****** number?’에 그가 피쳐링으로 초대한 이들의 면면도 놓칠 수 없다. 비비와 이영지는 모두 험난한 ‘국힙’ 판의 대체 불가능한 젊은 여성 래퍼들로, 전소연과 공유하는 아우라가 있다. 전소연은 이들을 본인이 좋아한다는 〈원피스〉처럼 동료로 끌어들인다.
다섯 트랙의 짧은 EP지만 앞으로 전소연이 솔로로 보여줄 세계에 기대감을 갖게 하기엔 충분하다. 이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전소연의 음반이다.
랜디: 이게 대체 몇 년 만에 만나는 식상하지 않은 레트로인지. 표면적인 모사도 아니고 예스러운 사운드의 재연도 아닌, 올드 스쿨 요소들을 지금의 케이팝 신(Scene) 밴드 포맷에 적절히 녹여낸 수작이다.
타이틀곡 ‘뚫고 지나가요’는 많은 사람들이 사랑한 90년대의 음악적 요소들을 케이팝 록 밴드 형태에 성공적으로 이식해왔다. 코러스의 5도권(Circle of fifth)을 차근차근 다 도는 마이너 코드 진행(I – IV – vii – iii – vi – ii – V)은 3코드나 4코드 가요가 주가 된 21세기 이후 케이팝에서는 보기 쉽지 않았던 전개이나, 최근 유키카나 김제형 같이 노스탤지어를 주제로 하는 가수들의 음악에 일부분 쓰이며 새삼 다시 등장하고 있었다. (일명 '가요 뽕'이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여기에 곡 설명에 언급된 힙합 리듬을 일반적인 808드럼이 아닌 도운의 리얼 드럼 셋으로 연주해 발걸음 같은 경쾌한 박자로 구현해냈다. 멜랑콜리한 곡을 받치는 붐뱁 리듬이 아이러니한 분위기를 만든다. 왕가위 스타일 미장센의 뮤직비디오를 매칭해준 것은 가히 신의 한 수였다. 이 곡 특유의 울적한 동시에 어딘지 산뜻한 인상은 음악과 연주, 그리고 비주얼 작업이 모두 함께 이루는 정서다.
이외에도 20세기 가요를 사랑한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할 요소가 곳곳에 숨어있다. 특히 4번 트랙 ‘네가 원했던 것들’ 같은 곡은 토이가 김연우나 윤상 같은 객원 보컬을 모셔다가 만들었을 법한 악기 사용과 전개가 돋보인다. 전주는 마치 Ab 키의 도미넌트처럼 시작하고, 그래서 "도대체 왜 그땐"의 장1도 인터벌이 ‘솔솔솔 라솔솔’인 것처럼 들리게 했다가, 이내 Db 메이저로 전개되며 첫 음 두 개가 사실은 ‘레레레 미레레’였던 것을 드러낸다. 프리-코러스의 중반을 지나면서는 별안간 D 메이저로 이조해버리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귀의 착각을 일으키는 전개를 미려하게 적용했던 작법은 토이의 '여전히 아름다운지' 같은 일명 ‘웰메이드 가요’라고 불리던 90년대 음악들을 연상시킨다. 좀 더 좁혀 말하면 음악적 복잡성을 귀에는 매끈하게 전달하는 방식에 사로잡히는, 음악 너드들을 위한 음악이다.
데이식스와 그 유닛 이븐 오브 데이는 댄스 음악이 주류인 케이팝 신에서 분명한 존재감을 뽐낸다. 이들을 보며 밴드나 작곡의 꿈을 꾸는 다음 세대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 같다.
심댱: ‘괜찮아도 괜찮아’에 이어 그가 “공감”으로 띄운 키워드는 ‘진솔함’이다. ‘What Is Love’, ‘Tell Me (What Is Love)’로 대표되는 SM 식 R&B에 특화된 그루비함도 있지만, 청자에게 와 닿는 진솔한 감정표현 역시 디오가 가진 매력이다. 이 진솔함은 로맨틱하거나 묵직하게 연출되는 보컬 톤에 기인한다. ‘괜찮아도 괜찮아’와 2015년 그룹 발표곡 ‘Sing For You’처럼 어쿠스틱 기타를 중심으로 한 악기 구성이 “공감”의 특징인데, 앞서 언급한 ‘진솔함’을 극대화하는 연출로 보인다. 한편, 곡의 흐름이 회화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독특하다. ‘What Is Love’에서 터뜨려온 물음을 장미꽃다발로 답하는 ‘Rose’의 순수함, ‘I'm Gonna Love You’의 자연스러운 고백에서 느껴지는 건조함, ‘My Love’에서부터 ‘나의 아버지’까지 종이에 번져가는 물감처럼 점차 넓어지는 사랑의 범위, 담담한 안부로 건네는 ‘I'm Fine’의 산뜻함이 그 이유다. 날카로운 편집점 같은 전곡의 깔끔한 마무리를 제외하면 “공감”은 한 편의 영화보다 갖은 색채를 더해 완성한 한 폭의 그림처럼 들린다. 개별곡의 개성보다 곡과 곡 사이의 흐름이 디오의 상(像)을 보다 명료하게 제시하기 때문이다. 진솔한 보컬에 집중한 “공감”은 완벽하지 않더라도 후회 없이 그려낸 자화상처럼 마음을 움직일 것이다.
마노: 팀으로서는 최초로 여름을 겨냥하여 발매된 시즌 스페셜 EP. 제목부터 ‘여름 특별 번외편’을 표방하고 있기에 혹여 지금껏 추구해온 음악적 세계관이 달라지거나 하진 않을까 하는 우려는 잠시, 인트로만으로도 충분히 조성되는 음산하고 기괴한 무드로 집중도를 높이기 충분하다. 타이틀곡 ‘BEcause’는 커리어 초창기에 비해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무척이나 가벼워진 기조의 ‘공포’를 선사하고 있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커리어 초기 작품들이 곳곳에서 귀신이 나타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동양풍’ 호러였다면 이번에는 오컬트 놀이동산에서 벌어지는 죽음의 숨바꼭질을 그린 ‘서양풍’ 호러로 장르가 바뀐 것 같다고나 할까. 곡의 기조도 전반적으로 (역시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가볍고 산뜻하지만, 코러스 파트에서 디스토션을 입힌 보컬과 함께 일렉트릭 기타가 쏟아져 나올 때는 팀의 음악적 색채가 유지되고 있음을 확인하며 일순 안도하게 된다. 시국 탓에 어느덧 잊고 있던 이륙의 설렘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게 해줄 밝고 시원한 ‘Airplane’, 어딘가 쓸쓸함이 깃든 휘파람 멜로디가 곡을 리드하는 ‘Whistle’, 쭉 뻗은 드라이브감이 시원함과 청량함을 선사해주는 AOR 풍 트랙 ‘Alldaylong’, EP를 산뜻하게 마무리하는 록발라드 트랙 ‘해바라기의 마음’까지, ‘드림캐쳐만의 여름’을 꾹꾹 눌러 담았다. 고유한 음악적 세계관을 계승하면서도 한 번도 시도한 적 없는 독특한 변주를 더했다는 점에서, 제목처럼 팀의 커리어에 있어서도 기분 좋은 ‘한여름의 휴일’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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