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 아이돌팝 발매작 중 주목할 만한 싱글에 대한 아이돌로지 필진 단평. 동키즈, 전소연, SF9, 데이식스 이븐오브데이, 태연, 방탄소년단, 걸스 플래닛 999, 비&몬스타엑스&브레이브걸스&에이티즈, 디오, 드림캐쳐의 싱글을 다룬다.
동키즈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
스큅: 2019년 정식으로 데뷔한 동키즈는 (긍정적인 의미의) 우스꽝스러움을 십분 살린 훵키한 레트로를 뚝심 있게 고수해왔다. 한껏 멋을 부린 ‘Lupin’과 ‘아름다워’에서도 특유의 쾌활함은 여전했다. 올해는 데뷔 초에 보여준 구김살 없이 해사한 모습을 다시금 꺼내 보이고 있는 듯하다. 4월 발매된 군더더기 없는 ‘청량’ 싱글 ‘Universe’가 ‘상상 속의 너’를 떠올리게 했다면,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에서는 ‘놈’, ‘Blockbuster’, ‘Fever’ 때와 같은 엉뚱한 천진난만함이 나타난다. 당혹스러운 첫인상과 달리 트랙 자체는 꽤 멀끔한 행색을 하고 있는데, 소위 ‘감자탕집 놀이방 어린이들’처럼 곡 위를 사방팔방 누비는 멤버들이 제목과 가사에 걸맞은 특이점을 만들어낸다. 한껏 과장된 장난기로 자칫 우스운 수준에 그칠 수 있을 재기발랄한 가사를 천연덕스레 소화해내는 멤버들에게서 모종의 프로 정신이 느껴질 정도다. 하이라이트는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Skrr”라는 외침 뒤에 이어지는 드롭과 베이스라인 위에 흩뿌려지는 수더분한 유니슨 보컬. 좌충우돌한 그룹의 콘셉트가 압축적으로 드러난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준수하고도 확고한 방향성의 음악을 꾸준히 선보여왔음에도 데뷔 이후 아이돌로지에서 정식으로 다룬 적이 없어 뒤늦은 Discovery!를 부여한다.
전소연 ‘삠삠’
예미: “Welcome to adult world”로 노래를 시작하지만, ‘삠삠’의 화자는 여전히 철없는 아이다. 커피와 술을 즐기며 다 큰 척 폼을 잡지만 세상은 어지럽고 내면은 복잡하다. 여러 감정을 장면 단위로 나열한 가사에서, 화자의 속마음을 정확히 읽으려 애쓸 필요는 없는 듯하다. 일렉트릭 기타 소리 위에 외치는 ‘태양은 삠삠’은 그 혼란마저도 즐거운 현재를 말하니까. 래핑과 가창을 한 음색으로 소화하는 해석력과 에너지는 여름이 뜨거워질수록 더 빛난다. 원 그룹 활동과 확연히 구분되는 색채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두 모습 모두를 생생하게 그려내는 전소연의 역량을 보여준 곡.
SF9 ‘Teardrop’
조은재: SF9이 이름을 알리게 된 히트곡 '질렀어'의 미덕은 섬세하고 감성적인 멜로디가 텐션을 유지하며 속도감 있는 비트와 어우러짐과 동시에 모노톤의 패션과도 좋은 합을 보이는 데에 있었다. SF9의 캐릭터는 이때 형성되어 'Good Guy'로 이어지면서 확고한 이미지로 굳어졌다. 'Tear Drop'은 감성적인 보컬과 간결한 퍼포먼스, 그리고 수트 패션 등으로 대표되는 'SF9의 공식'을 그대로 따른다. 그러나 감성은 이전보다 훨씬 격정적으로 흘러넘쳐 웬만한 2000년대 K-발라드 못지않게 구슬프게 우는가 하면, 잘 정돈된 수트 실루엣과 잘 어울렸던 퍼포먼스는 바디 웨이브를 유난히 강조한 동작으로 바뀌면서 부담스러운 감정 과잉을 주체하지 못한다. SF9이 강점을 갖고 있었던 '애이불비(哀而不悲)'의 미덕을 살렸더라면 더 좋았을 곡. 적당히 절제된 퍼포먼스에서 SF9 본연의 관능미가 더 도드라졌던 것을 생각해보면 굳이 이렇게 과잉으로 흐를 이유는 없었다고 본다. 고유의 캐릭터를 살렸을 때는 발군이었던 멤버 각자의 수행력이 과장된 표현으로 인해 잘 부각되지 않고 묻혀버린 것 또한 안타까운 부분이다.
데이식스 이븐오브데이 ‘뚫고 지나가요’
하루살이: 해외 팝 트렌드에 발맞춰 움직이는 시장의 흐름과 달리 Even of Day는 과거 국내 가요를 복각하는데, 동시에 이질적인 조합을 구성한다. 보컬은 고전적인 록이나 발라드 창법보다 가볍고 트랜디한 스타일을 구사하는데 멜로디와 악기 사운드는 눅진한 레트로를 추구한다. 두꺼운 신시사이저와 재즈 건반에 드럼을 사르륵 풀어놓기보단 과감하게 던진다. 프리-코러스에서 코러스로 크로매틱 하행으로 넘어가 천천히 낙하하는 이미지를 그리는데 가사는 수평 방향의 파괴를 그린다. 결과적으로 청자의 “90년대 한국 발라드”에 대한 향수 여부가 감상을 가르리라 예상된다. 반가울 수도, 지겨울 수도, 어쩌면 색다를 수도.
태연 ‘Weekend’
스큅: 장르를 막론하고 뛰어난 소화력을 뽐내는 만능 보컬리스트 태연은 언제나 ‘무엇을’ 부르는지보다 ‘어떻게’ 부르는지에 주목하게 만드는 아티스트였다. 예민한 신경으로 곡에 반응하여 섬세하게 목소리를 통제하는 태연의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런 그가 이번에 들고나온 ‘Weekend’는 멜로우한 디스코 팝이다. 해외에선 Doja Cat, 국내에선 방탄소년단을 필두로 부상해 유행 중인 스타일이다. 이전에도 레퍼런스가 선명하게 감지되는 곡을 내놓고는 했기에 그리 새삼스러운 선택은 아니나, 이번만큼은 그 선택에 의구심을 품게 된다. 원전이 어떠한 것이건 태연 특유의 예민한 보컬을 펼쳐 보일 수 있는 스타일을 선택하며 본인만의 독창성으로 곡을 승화시키던 과거와 달리, 한껏 누그러진 텐션으로 일관하는 ‘Weekend’는 태연의 해석이 개입할 여지가 비교적 적다는 인상이다. 물론 그의 폭넓은 소화력은 여전히 빛난다. 포스트-코러스, 브릿지 파트에서 가사의 말맛을 살리는 시원한 보컬은 물론 톡톡 튀는 랩까지 태연의 가창은 매끄럽기 그지없다. 그러나 태연이 존재감을 과시하기엔 곡이 재현하는 디스코 팝의 양식이 너무도 분명하고 또 제한적이다. 여기에 더해 다른 그 어떤 때보다도 시류에 적극적으로 따라붙고 있는 곡인 만큼 태연이라는 아티스트 개인보다도 트렌드를 더 의식한 것이 아닌가 하는 미심쩍음도 추가된다. 즉, 필연적으로 ‘무엇을’에 대한 인상이 ‘어떻게’에 대한 인상을 앞지를 수밖에 없는 곡이라는 뜻이다. 무엇이든 잘 해내는 ‘만능 치트키’보다는 독보적인 해석력을 지닌 보컬리스트로서의 태연을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방탄소년단 ‘Permission To Dance’
예미: ‘Permission to Dance’는 ‘Dynamite’와 ‘Butter’의 뒤를 이어 BTS의 미국 내 입지를 굳힌 곡이다. 영국 팝 싱어송라이터 에드 시런의 색채가 묻어나는 유쾌하고 친숙한 멜로디에 현악기와 록 사운드가 가미되어, 이전 시대 톱 보이밴드로 손꼽힌 원 디렉션을 연상케 했다. 그간 쌓인 영어 곡 제작 이력은 외부에서 제공받은 트랙에도 “We don’t need to worry ‘Cause when we fall, we know how to land”라는 가사처럼 팀의 서사를 녹여 넣을 여유를 만들었다. ‘마음껏 춤추자’는 가사에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입힌 뮤직비디오는 끝날 듯 끝나지 않는 팬데믹 시국을 어쩔 수 없이 떠올리게 한다. 모두의 삶에도, 방탄소년단의 여정에도 ‘일상’이 찾아오길 빌어 본다.
걸스 플래닛 999 ‘O.O.O’
스큅: 〈프로듀스〉 시리즈와 〈걸스 플래닛 999: 소녀대전〉(이하 〈걸스 플래닛〉)의 결정적인 차이는 한·중·일 3국의 참가자들이 3인 1조로 묶인 ‘셀’ 제도에 있다. ‘셀’은 합격/불합격의 당락을 함께하는 운명 공동체로, 매 라운드 참가자들의 선택에 따라 변동이 이루어질 수 있다. 바뀐 제도에 맞게 프로그램은 전에 없이 ‘연결’이라는 키워드를 강조한다. 시그널송 ‘O.O.O’의 퍼포먼스 역시 마찬가지이다. “경계를 넘어, 언어를 넘어, 한계를 넘어” “같은 꿈으로 연결된 99명의 소녀들”에 대한 장황한 내레이션 이후, 삼원의 스테이지 위에 선 삼국 소녀들의 퍼포먼스가 차례로 비춰지고, 브릿지에 다다라 국가별 1위 참가자를 필두로 99인은 국적 구분 없이 섞이게 된다. 가사 속의 ‘너’가 가리키는 대상이 청중이 아닌 참가자들 서로를 가리키고 있는 것 역시 그와 궤를 같이한다. 이전에 비해 한층 다채로워진 곡 구성과 높은 퍼포먼스 난도를 갖춘 시그널송, 그리고 그와 함께 전반적으로 높아진 참가자들의 실력 수준에서는 엠넷의 “더 완벽한 세계”를 향한 갈망이 느껴진다.
그러나 방송이 2화까지 공개된 현시점 〈걸스 플래닛〉은 프로그램이 〈프로듀스〉 시리즈의 후속편임을 숨길 생각이 없어 보인다. 연출 구도가 거의 흡사함은 물론, 트레이닝 센터 입소 후 첫 기상미션을 하는 장면에서 〈프로듀스〉 시리즈를 오버랩 시키기도 했을 정도다. 하지만 프로그램의 맹점은 개선되지 않고 오히려 심화되었다. “소녀들의 연결”을 부르짖었던 것과 달리 ‘셀’ 제도는 팀 구성을 위한 치열한 눈치 싸움을 조장한다. 오히려 경쟁이 과열될 소지가 다분하며, 공정하지 못한 결과를 낳을 위험성 역시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결국 최종 데뷔 조는 국적 제한 없이 9명으로 전체의 10분의 1만이 살아남는 서바이벌 포맷이거늘, “소녀들의 연결”을 강조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생존 경쟁의 과정에서 참가자들 간 유대가 맺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원형의 경기장을 설계한 프로그램 스스로 그를 앞서 강조하는 것은 후안무치하다고밖에 할 수 없다. “조작”을 방지하겠다고 해서 기만의 혐의까지 지워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지양”하고 “음악에 더 집중된 콘텐츠를 만들”겠다던 Mnet의 해답이 허울만 좋은 ‘연결’을 내세운 〈걸스 플래닛〉인 것일까. ‘O.O.O’의 무대를 이룬 노란색, 파란색, 빨간색의 삼원에서 거대한 CJ의 로고가 보인다.
조은재: 비록 〈걸스 플래닛〉은 뻔뻔할 정도로 노골적으로 〈프로듀스 101〉 시즌 5'를 천명하고 있지만, ‘O.O.O’는 ‘Pick me’부터 ‘_지마’까지 이어졌던 〈프로듀스〉 시리즈의 시그널송과는 조금 다른 결로 연출되었다. 동작 자체는 단순하지만 박자를 쪼개거나 동작을 과장되게 해서 퍼포머에게 부담을 주었던 〈프로듀스〉 시리즈의 과격한 안무는 동작 하나하나가 예쁘게 구성된, 좀 더 트렌디한 케이팝 코레오그래피로 바뀌었고, 클라이맥스에 빠지지 않았던 EDM 드롭 대신 장르 변화를 동반한 댄스 브레이크 구간들이 삽입되었다. 시그널 송 자체만으로 이미 상당한 완성도를 자랑하는 셈이다. 이것은 ‘(연습생으로서의) 미숙함’과 ‘경쟁’을 바탕으로 ‘성장 서사’를 만들어냈던〈프로듀스〉 시리즈와 지향점이 달라졌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참가자 개개인의 캐릭터를 부각했던 경쟁 구도보다, 이들이 이 프로그램이 끝난 이후에 팀으로 활동할 것을 전제로 팀워크를 형성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프로듀스〉 시리즈가 시즌을 거듭하며 세 번째 시즌의 아이즈원과 네 번째 시즌의 엑스원, 그리고 이후 진행했던 서바이벌 쇼 〈아이랜드〉의 엔하이픈이 나오면서 '아이돌 그룹'을 만들어내는 서바이벌 쇼는 여타 전통적인 오디션 프로그램과 달리 경연이 끝난 이후에도 그룹으로서 화제성을 지속할 수 있고, 심지어 더 큰 흥행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에 생겨난 계산일 것이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이제 '아이돌 서바이벌'은 최종 데뷔 그룹의 흥행을 위한 사전 프로모션 이벤트에 가까워진 셈이고, 그래서 프로그램을 대표하는 시그널 송은 최종 데뷔 그룹의 이미지 제고 차원에서 퀄리티를 담보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O.O.O’의 화자가 더 이상 표를 던져줄 청자에게 ‘나를 뽑아달라’고 외치는 게 아니라 노래를 부르는 서로에게 ‘함께 만나서 나아가자’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 또한 투표 조작이라는 초유의 기만적인 행태로부터 (데뷔 그룹 멤버가 될) 참가자를 유리시키기 위해 새롭게 깔아둔 레이어라 볼 수 있다. 비록 양심도 없이 또다시 수많은 참가자와 케이팝 팬덤을 착취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지만, 그 안에서 최소한의 논리를 다시 세워보려는 시도 끝에 나온 곡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걸스 플래닛〉을 〈프로듀스〉 시리즈의 연장으로 본다면 벌써 다섯 번째 시즌이고, 〈슈퍼스타 K〉와 〈쇼미더머니〉 시리즈 또한 다섯 번째 시즌쯤에 와서는 모두 그러했듯이, 기획의 방향성을 바꾼다 한들 똑같은 연출 방식으로는 더 이상 신선도와 화제성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최종 데뷔 그룹의 흥행만이 주안점이 된 지금에야 프로그램의 향방은 어찌 되든 상관없을지도 모르겠다. ‘O.O.O’의 순진무구한 메시지와 전에 없던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전처럼 열정적으로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자꾸만 공허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애국가도 4절까지다.
비, 몬스타엑스, 브레이브걸스, 에이티즈 ‘Summer Taste’
예미: 최근 들어 아이돌을 기용하여 활동곡 같은 CM송을 발표하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펩시 역시 그중 하나다. 펩시는 스타쉽엔터테인먼트와 협업하여 이미 소유, 아이즈원, pH-1이 함께한 ‘ZERO:ATTITUDE’ 등의 곡을 내놓았고, ‘Summer Taste’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아무도 꿈꾸지 않은 유명 아이돌 간의 콜라보레이션을 성사시킨 이 곡의 뮤직비디오는 참여자들의 개별 샷이 주를 이루며, 곡의 목적이 협업을 통해 시너지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광고 효과 증대에 있음을 보여주었다. 아이돌을 활용한 광고에 공들인 음악을 곁들이는 추세가 반갑지만, 좋은 음악이 등장하는 만큼 조금 더 의미 있는 협업을 보고 싶은 아쉬움이 든다.
디오 ‘Rose’
에린: 디오의 보컬은 풍성한 공간감을 활용하여 곡의 정서를 담백하게 전달하는 데에 탁월하다. 그의 보컬의 공간감은 ‘괜찮아도 괜찮아’에서는 무심한 듯하면서도 따뜻한 위로의 메시지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면, 이번 ‘Rose’에서는 상대에게 좋아하는 감정을 고백하는 장면 속으로 불러드린다. 경쾌한 기타 소리와 디오의 담백하면서도 풍부한 중저음 보컬의 조화는 상대를 향한 올곧은 설렘을 강조하고, 화려한 미사여구 없이도 상대를 향한 고백에 묵직함을 더한다. ‘Rose’는 화려하지도 않고 소란스럽지도 않지만, 설렘의 감정을 정직하게 노래했을 때의 울림에 집중하여 화려하고 강렬했던 엑소의 디오와 솔로 가수 디오를 차별화하고 그의 존재감을 안정적으로 드러낸다.
드림캐쳐 ‘BEcause’
조은재: ‘여름’을 표현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절대 빠질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납량특집’이다. 드림캐쳐는 올여름 가장 오싹한 섬머 송을 내놓았다. 공포에 파랗게 질린 얼굴을 “오션 뷰”에 비유하고 집착적인 태도로 영원히 사랑한다 되뇌는 가사는 그 자체로 호러 영화의 한 장면을 만든다. 무심한 듯 서늘하게 흐르던 절 구간에서 일순 박력 있게 울리는 프리-코러스와 잠깐의 포즈 뒤에 다시 짐짓 차분한 척 박자를 타는 후렴까지 들쑥날쑥 급변하는 무드는 공포 영화 등장인물의 싸이코틱한 표정 연기처럼 듣는 사람의 호흡까지 자유자재로 리드한다. 공포 영화가 서스펜스를 만드는 방식을 케이팝의 언어로 완벽하게 번역해낸 수작(秀作). ‘괴담’ 하면 빠질 수 없는 ‘엘리제를 위하여’ 멜로디가 후렴 한가운데에서 포인트를 만드는 것 또한 탁월하기 그지없는 연출이다. 귀곡성 한 번 내지 않고 온갖 괴담을 떠올리게 하는 드림캐쳐만의 표현력에 다시 한번 홀리게 된다.
하루살이: “Dystopia” 연작이 꾸준히 드림캐쳐의 음악과 이야기를 확장했다면, 이번 ‘BEcause’는 빼곡한 드럼과 구체적인 공포를 제시해 드림캐쳐는 여전히 드림캐쳐라는 인상을 준다. 인트로부터 후렴과 아웃트로까지 동일한 멜로디 테마를 가져가는데 진행이 다이내믹해 지루하지 않고 몰입도가 높다. 디스토션 기타가 몰아치는 첫 후렴 직후 드럼 앤 베이스로 랩 파트를 연결하고, 웅장한 피아노에서 다시 밴드 사운드를 강조한 마지막 후렴으로 넘어가는 등 시시각각 표정을 바꾼다. 브릿지에서 노래는 차분해지지만, 시계 초침 소리로 인해 오히려 더 다급한 감각을 주는 것도 특징. 공포 영화 〈어스〉를 모티브 삼은 안무는 거울과 도플갱어, “Hands Across America” 캠페인, 가위 등 영화 속 소재를 재현한다. 이 때문에 어떤 가사는 더 의미심장하게 들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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