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아이돌팝 발매작 중 주목할 만한 싱글에 대한 아이돌로지 필진 단평. 권은비, 아이브의 싱글을 다룬다.
권은비 ‘Glitch’
비눈물: 데뷔 앨범 "Door"의 앨범 아트를 떠올려본다. 큰 맥락 없이 곡들이 나열된 앨범의 구성처럼 어지러이 흩어진 오브제들은 솔로 가수로서의 여러 이미지를 한꺼번에 담고자 했던 욕심을 투영하고 있는데, 이와 비교하면 "Color"의 앨범 아트 속 하나의 뚜렷한 의도로 수렴하는 정갈한 색감과 미감이 돋보인다. 언뜻 보면 한데 모여 파랗게 흐르는 바다의 온화한 이미지로만 비치지만, 상단에 빛을 만나 하얗게 부서지는 물거품 위로 권은비의 거울상이 어릿대는 모습은 'Glitch'의 번뜩이는 반전을 예고하고 있다.
그 반전은 앨범의 첫 곡부터 드러난다. 'The Colors of Light'는 메인 테마를 예고해주는 인트로일 뿐만 아니라 프로듀서의 의도와 소리를 온전히 눌러 담은 'Glitch'의 감독판이며 단독으로 음악적 기능까지 수행하는 앨범의 핵심 트랙이다. 먹먹한 앰비언트 사운드와 첼로 선율이 무난히 흐르는 사이로 불현듯 파고든 글리치가 디지털 노이즈로 비산하여 고막의 주도권을 뒤흔들고, 이에 호응한 현악기와 키보드가 어택을 한껏 올리고 나타나 전자음을 휘감으며 비상하는 구간은 올해의 인트로로 뽑아도 손색없을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인트로의 밀도 높은 글리치 사운드와 달리, 'Glitch'에서는 파트 사이사이 깜빡 나타날 뿐 곡의 전면에 나서진 않아 소리의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미약하다. 하지만 'Glitch'는 단순히 오디오 이펙트만으로 글리치를 표현하는 대신 좀 더 디테일한 방식을 활용한다. 예를 들면 'ㅊ', 'ㅅ'와 같이 마찰·파열의 성질을 갖는 음운을 의도적으로 배치하고 발음의 세기를 강조하여 (글리[치], 피[치] / 상관업[씨], 반드[씨]) 부딪치고 깨지는 글리치의 음성학적 특성을 묘사한다. 또한 'appear-disappear', '확실-불확실', '애매한-반듯이' 등 가사 속에 상반되는 정(正)과 부(負)의 소재를 반복적으로 대조하여 곡에서 나타나는 소리의 대립 구조를 언어적으로 치환해낸다.
또한 브리지 이후 청자들의 예상을 단숨에 깨뜨리는 강렬한 드롭은 후렴구에서 긴장을 툭 풀면서 여백을 남기던 안티-드롭 기법과 큰 대비를 보인다. '사라져, 쉿'이라는 가사와 함께 고요한 정적이 흐르는 순간 곡에서 가장 파괴적이고 역동적인 소리가 터져나오는 것은 역설(逆說)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가사에서 계속적으로 음과 양이 부딪치며 나타났다 사라지는 오류-글리치의 정의를 역설(力說)함으로써 이러한 구조적 반전 역시 곡이 갖는 커다란 맥락의 일부분으로 녹여냈다.
이처럼 'Glitch'는 결함이 갖는 본질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면서 어느 범주나 기준에 한정되지 않는 다양성, 더 나아가 아티스트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실제로 가수 본인이 직접 곡에 어울리는 안무와 콘셉트, 아이디어 등을 제작진과 공유하며 기획을 주도하기도 했는데, 이러한 모습에서 권은비가 가진 솔로 아티스트로서의 가능성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었다. 권은비가 'Glitch'를 통해 보여준 유려한 콘셉트 소화력과 주체적이고 치밀한 기획이 지속된다면 누구와도 비교되지 않는 독보적인 솔로 가수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라 굳게 믿는다.
아이브 ‘LOVE DIVE’
조은재: 세이렌의 노래 소리 같은 허밍이 곡 전반에 깔려 몽환적인 무드를 조성하는 가운데, 보컬 또한 리버브가 강한 구간과 약한 구간의 대비를 크게 주어 마치 수면을 기준으로 수중과 대기 중을 바쁘게 오가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런 드라마틱한 연출은 곡의 제목인 'LOVE DIVE'를 외치고 마침내 물속으로 뛰어드는 순간 드롭되는 사운드를 통해 폭발력을 발휘한다. 이것은 'ELEVEN'에서 점점 느려지는 킬링 파트 바로 뒤에 타악기 드롭과 함께 후렴으로 넘어갔던 것과도 유사한 전개인데, 'DIVE'라는 단어가 만드는 낙하감을 음악에 그대로 적용했다는 점에서 'ELEVEN'에서의 전개보다도 훨씬 설득력 있다. 'ELEVEN'과 'LOVE DIVE'에는 모두 '감히'라는 단어가 등장하는데, 'ELEVEN'에서는 '말이나 행동이 주제넘게'라는 의미였다면 'LOVE DIVE'에서는 '두려움을 무릅쓰고'라는 의미로 바뀌어 아이브의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조형하는 키워드로 작용하고 있다. 나르시시스트의 도도한 애티튜드를 직설적으로 보여주는 퍼포먼스 또한 곡과 훌륭한 시너지를 만들어 아이돌을 감상하는 가장 원초적이고 클래시컬한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사실 우리는 언제나 이런 아이돌을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예미: 'Love Dive'는 1, 2절 내내 그룹이 능숙하게 표현하는 이미지가 그려진 뒤 "숨 참고 Love Dive" 한 마디에 그간 나온 사운드, 가사, 안무가 묶여 절정으로 치닫는 구조를 띠는데, 이미지와 구조가 함께 짜릿함을 선사한다. 신비로운 무드 속 긴장감을 의도하는 사운드는 데뷔곡 'ELEVEN'과 일관성을 형성하는데, 시작부터 등장하는 웅장한 브라스 사운드와 처음부터 끝까지 마이너로 일관된 음계, 신화를 모티브로 자기애를 그려낸 극적인 가사는 전작의 기조에 밀도를 더한다. 'ELEVEN'에서 제시된 자기애라는 주제가 'Love Dive'에서는 비교 대상 없는 나르시시즘으로 확장되는데, 핵심 키워드를 직접 외치는 멤버의 모습이 대담한 인상을 주는 동시에 흡사 자기 소개를 하는 듯한 밀착감을 보여준다. 2분 57초간의 휘몰아침이 끝난 자리에는 멤버의 매력과, 그 매력을 과감히 뽐낼 줄 아는 애티튜드가 남는다. 단 두 곡만으로 그룹 고유의 결을 각인시킨 기획과 저력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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