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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티즈 “THE WORLD EP.1 : MOVEMENT”

“부디 이들의 ‘천둥과 같은’ 노래와 춤이 앞으로도 이 세상을 거하게 뒤흔들기를 바란다. 기세를 보아하니 이미 뒤흔들리기 시작한 것 같지만 말이다.”

‘벽’에 저항하는 에이티즈만의 방식

‘게릴라(guerrilla)’를 사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대개 정규군에 속하지 않으며 독립적 부대로서 전투에 참여하는 소수 집단의 병사(a member of a usually small group of soldiers who do not belong to a regular army and who fight in a war as an independent unit: Merriam-Webster’s Learner’s Dictionary)’, ‘일반적으로 보다 큰 정규군부대에 반(反)하는 비정규 전투에 가담하는 소수의 독립 집단의 일원(a member of a small independent group taking part in irregular fighting, typically against larger regular forces: Oxford Dictionary of English)’. 대동소이하지만 다른 사전에서도 대부분 ‘독립적(independent)’, ‘소수의(small)’, ‘정규군에 대항하는(against regualr army)’이라는 키워드가 공통적으로 강조되어 있다. 옥스퍼드 영한사전에서는 ‘자유의 전사(freedom fighter: 반정부 무장 투쟁을 하는 사람을 그 지지자들이 칭하는 이름)’를 참고어로 제시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게릴라란, 어떤 틀에 의해 정해진 시스템 등에 반기를 들어 저항하고 투쟁하고자 하는 혁명군인 셈이다. 

에이티즈가 노래하는 ‘Guerrilla’도 이와 같은 저항 정신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 저항의 대상은 노랫말 속의 ‘벽(wall)’으로 상정되어있다. “춤을 춰 Break that wall 우리 Feel로”라는 가사에서처럼, 에이티즈는 자신들만의 느낌과 감각으로 춤과 노래를 통해 이 ‘벽’을 부수겠다 선언한다. 해석의 여지는 다양하겠지만, 여기서의 ‘벽’이란 대체로 경계, 한계, 통제, 억압 등을 의미할 것이다. 마치 핑크 플로이드가 일찍이 ‘Another Brick In The Wall Part 2’를 통해 ‘우리에게는 교육도 사상 통제도 필요없다(“We don’t need no education, we don’t need no thought control”)’고 세상을 향해 경고했던 것처럼. 이는 앨범 발매 전 공개된 트레일러에서 드러난 메시지와도 일맥상통한다. 깨끗하게 표백된 교실에 갇힌 채 세뇌에 가까운 교육을 받는 학생들, 그리고 강압적인 시스템을 붕괴시키고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저항군으로 분한 멤버들의 모습에서 핑크 플로이드가 노래했던 ‘벽’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을 통제하고 억압하려는 시스템의 부조리함을 있는 힘껏 부정하고자 하는 저항의 메시지를 공통으로 표방하고 있다는 점에서 두 곡이 연결된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이러한 메시지가 드러나는 것은 비단 타이틀곡인 ‘Guerrilla’ 뿐만이 아니다. 앨범 전반적으로 두드러지는 메시지 역시 꽤 분명한데, 애초에 앨범 제목부터가 (정치적인 의미로서의) ‘운동’을 의미하기도 하는 ‘MOVEMENT’이다. 앨범의 인트로를 장식하는 첫 번째 트랙 제목이 ‘선전’을 의미하는 ‘PROPAGANDA’인 것 역시 범상치 않다. “세상이여 깨어나라”고 명령조로 일갈한 뒤 거짓, 통제, 규율, 증오, 이기심과 같은 철폐의 대상을 하나하나 열거하다, 이내 “우리를 감시하는 하늘의 눈(“eyes in the sky”)을 보라”며 절규하는 목소리와 함께 한껏 로킹하게 치닫는 사운드로 문을 열면 별안간 회색빛 디스토피아가 눈 앞에 펼쳐진다(‘Sector 1’, ‘Cyberpunk’). 텅 빈 눈동자로 “무엇도 피지 않는 조화로운 거리들”을 배회하는 사람들을 깨워내기 위해 춤과 노래라는 무기를 꺼내 들고(‘Guerrilla’), ‘천둥과 같은 소리로’ 이 세상을 바꿔버리겠다 다짐하며(‘The Ring’) 이내 도래하는 새로운 세계를 목도한다(‘New World’)는 일련의 스토리는 그 자체로도 설득력이 충분하지만, 무엇보다 이 설득을 가능케 만드는 것은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음악적인 유기성이다. 거기에 더해 이 앨범의 가장 큰 미덕 중 하나는 메시지와 세계관이 직관적이고 명료하되 유치하거나 단조롭지 않다는 점, 그리고 이 무겁고 진지한 메시지와 세계관을 마냥 무겁지만은 않은 음악으로 영리하게 잘 보완해냈다는 점이다.

본 앨범 발매 전 공개된 바 있는 두 편의 트레일러를 통해 에이티즈는 새로운 연작 그리고 세계관의 시작을 선언하기도 하지만, 또 한 가지 엿보이는 것은 초심으로의 회귀다. 데뷔 직전 선보였던 “Treasure” 연작의 트레일러와, 이번 “THE WORLD” 연작의 시작을 알리는 트레일러에서 공통적인 기류가 감지되기 때문이다. 세상에 없는 보물을 찾아내기 위해 힘차게 닻을 올리던 해적들, 그리고 통제와 획일화가 목적인 시스템과 세상에 있는 힘껏 저항하는 게릴라들 간에 놓인 공통점은 어떤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들고 뛰어넘는 ‘무국적성’에 있기도 하다. 길고 긴 항해 길을 나서며 넌지시 내미는 ‘동료가 되지 않겠느냐’는 물음과, 세상을 향해 ‘눈을 떠라’ 일갈하는 외침은 다르면서도 또 분명 닮아있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본 앨범은 팀이 아주 초창기부터 추구해온 어떤 ‘시대 정신’의 성장판을 담아낸 셈인데, 그 서사가 자칫 뻔해지거나 혹은 자가복제로 그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프로덕션의 섬세한 안배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생각해보면 에이티즈는 “없던 길도 만들”겠다는, 뻔뻔하리만치 올곧은 패기와 기개로 지금까지 쭉 달려온 팀이었다. 그리고 커리어 초기부터 “앨범 전체를 꿰뚫는 테마와 스토리”로 작품 그리고 본인들의 존재 당위를 충분히 설득해낼 줄 아는 팀이기도 했다. 부디 이들의 ‘천둥과 같은’ 노래와 춤이 앞으로도 이 세상을 거세게 뒤흔들기를 바란다. 기세를 보아하니 이미 뒤흔들리기 시작한 것 같지만 말이다.

마노

By 마노

음악을 듣고 쓰고 말하고 때때로 트는, 싫어하는 것보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 때 반짝이고 싶은 사람. 목표는 지속 가능한 덕질, 지속 가능한 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