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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뉴진스 : ②뉴진스의 꿈과 환상의 세계

소위 ‘민희진 걸그룹’으로 불리던 뉴진스가 베일을 벗은 지도 어언 2개월 째. 씬에 한 차례 광풍을 휩쓸고 지나간 이들에 대해 〈아이돌로지〉 필진 3인이 각자의 단상을 적어보았다. 두 번째 글 “뉴진스의 꿈과 환상의 세계”에서는 필자 비눈물이 뉴진스가 비주얼-미디어를 통해 그리는 환상계에 대해 탐구한다.

소위 ‘민희진 걸그룹’으로 불리던 뉴진스가 베일을 벗은 지도 어언 2개월 째. 씬에 한 차례 광풍을 휩쓸고 지나간 이들에 대해 〈아이돌로지〉 필진 3인이 각자의 고찰을 적어보았다. 두 번째 글 “뉴진스의 꿈과 환상의 세계”에서는 필자 비눈물이 뉴진스가 비주얼-미디어를 통해 그리는 환상계에 대해 탐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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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1일

‘Hype Boy’에서 제목부터 가사까지 반복해서 등장하는 ‘hype’이라는 단어는 과연 무슨 뜻일까. 과대광고(를 하다), 눈속임 등의 사전적 의미와 더불어, 갑자기 주목받는 화제작 혹은 통상의 기준이나 기대 이상으로 과도하게 고평가되는 미디어와 이를 둘러싼 상황이라는 다면적 의미로 파생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곡에서는 쿨하고 멋진, 혹은 꿈꾸던 이상형이라는 뉘앙스로 쓰이고 있다. 총 4편으로 구성된 ‘Hype Boy’의 뮤직비디오는 개별의 스토리로 시작하지만, 그 끝은 모두 동일하게, 파티가 열리는 수영장 군무 씬(scene)에 도달한다. 멤버들은 각자 자신의 ‘hype’ boy를 파티에 초대하지만 처음 품었던 동경이나 예상과는 다른 상대방의 모습을 바라보며 마무리된다. 이와 같은 결말을 통해, ‘hype’는 멋지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허황된 꿈, 과장된 환상의 이미지까지 포함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뮤직 비디오의 엔딩 구간에서 그 의미가 가장 잘 드러나는데, 부풀어 오른 기대감이 조명과 함께 톡 꺼지는 연출은 문득 김만중의 고전소설 「구운몽」의 마지막 장을 떠오르게 한다.

노승이 웃으며 말하였다. “승상이 오히려 꿈을 깨닫지 못하였소.” 승상(양소유)이 말하였다. “사부께서 저를 깨닫게 하시겠습니까?” ⋯⋯ 노승(육관대사)이 말하였다. “성진아, 인간 세상의 재미가 어떠하더냐?”

김만중 「구운몽」 中

욕망을 품은 죄로 천상에서 인간계로 떨어져, 양소유로서 속세의 부귀영화를 누리다 그 모든 것이 전부 꿈이었음을 깨닫는 성진의 상황은 hype boy(이상형)를 꿈꾸다 결국 hype(거짓)=boy라는 진실을 깨닫는 뮤직비디오 속 멤버들과 닮아있다. 이처럼 ‘Hype Boy’의 여러 요소는 꿈과 환상 같은 허구적 이미지와 연관되어 나타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프로모션부터 뉴진스가 꾸준히 보여주고 또 강조하는 특질은 ‘현실적인 자연스러움’이다. 어째서 이처럼 상반되는 개념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을까? 대체 무엇이 꿈이고 무엇이 현실일까, 또 (뉴진스의) ‘자연스러움’이란 무엇일까? 어쩌면 ‘Attention’에서 그 힌트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Attention’의 가사 중 “You give me butterflies you know”란 구절이 나온다. 표면적으로는 내 맘을 설레게 한다는 뜻의 관용 표현이나, 꿈-이상향의 개념과 화자의 소속감을 내포하는 가사와 함께 읽히면서(“내 맘은 온통 paradise” / “꿈에서 깨워주지 마”) 장자의 고사 ‘호접지몽(胡蝶之夢)’으로 맥락적 의미가 확장된다.

“장주(莊周)가 꿈에 나비가 되었다가, 나비가 또한 변화하여 장주가 되었노라. 장주가 이르기를, ‘장주의 꿈에 나비가 된 것인가? 나비의 꿈에 장주가 된 것인가?’ 하였으나, 끝내 분별할 수 없었노라.”

장자 「제물론」 中

‘Attention’의 뮤직비디오 역시 꿈인지 현실인지, 피아(彼我)의 구분이 불분명해지는 상황을 연출한다. 이를테면 멤버들은 공연장에 들어가면서 종이 티켓을 내지만 신분 검사를 위해 정맥을 스캐너로 찍고, 실재하는 밴드가 가상의 세계 속에서 ‘See you in my dreams(꿈속에서 만나)’라는 제목의 실제 곡을 부르기도 한다. 이처럼 의도적으로 현실과 비현실을 교차하고 비트는 뉴진스의 이(異)-세계 속에서 자연스러움은 사전적 의미의 순수한 상태가 아니라, 한 땀 한 땀 철저한 계산 아래 만들어진 인공적인 (혹은 이상적인)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뉴진스의 독특하고 감각적인(aesthetic) 콘셉트-비주얼-미디어가 공통으로 추구하는 Y2K 이미지를 만들 때도, 단순히 과거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실재하지 않는 이데아적 레트로를 창조하는 식이다. 예를 들면, 뮤직비디오와 앨범 디자인, 자체 소통 앱 포닝 등 여러 콘텐츠를 구성하는 테마와 레이아웃 등에서 90년대로 회귀하는 하이틴 감성을 느낄 수 있지만, 사실 그 익숙함은 의도적으로 꾸며낸 극도의 자연스러움이며 경험해 보지 못한 과거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 즉 가상의 향수(pseudo-nostalgia)이다. 앞서 여러 꿈에 대한 언급과 암시를 통해 뉴진스만의 환상계를 구축한 것 역시, 주 소비층인 10·20세대를 겨냥하여 촌스럽지 않으면서도 가상의 향수를 느낄 수 있을 만큼 색이 바랜, 이상적인 과거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위함이었다. 이를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매개체는 결국 시각 미디어이기 때문에, 초기 프로모션에서 다른 요소들보다 비주얼과 영상에 힘을 쏟은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발매 후 시간이 지나면서 특유의 콘셉트와 이미지에 쏠렸던 관심을 서서히 음악으로 옮기면서 성공적으로 그룹의 인지도를 안착시킬 수 있었다.

뉴진스는 앞으로 이어질 케이팝 4세대에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면서, 기존의 유행을 따르기보다 직접 만드는 트렌드 세터의 면모를 대중에 각인시켰다. 그러나 EP라는 볼륨을 감안하더라도 앨범의 짧은 러닝타임은 작은 아쉬움을 남긴다. 만약 정규 앨범이었다면 1-3트랙과 아웃트로 역할로만 남은 ‘Hurt’ 사이의 간극을 좀 더 설득력 있게 채울 수 있었을까. 좀 더 긴 호흡의 작품에서도 첫 앨범만큼의 밀도 높은 퀄리티와 집중도를 이어갈 수 있을지, 앞으로의 행보에서 주목할 지점이다.

그러나 한 가지 우려되는 점 역시 존재한다. 앨범의 발매 이후 해외를 중심으로 ‘Cookie’의 영어 가사를 둘러싸고 단어가 부적절하게 사용되었다는 논쟁이 제기되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어도어 측은 그룹 결성부터 앨범의 기획 의도까지 배경 이야기를 전부 설명하면서 해당 논란을 전면 부정하는 공식 성명을 발표하였다. 회사 차원에서 무리한 논란을 적극적으로 해명한 부분은 좋은 대응이지만, 제작자로서의 개입이 정도를 넘어설 경우 뉴진스의 존재는 뒤로 가려지고 어도어=민희진으로서의 자아만 표면에 남게 될 수도 있다. 소설이라면 작가는 작품 뒤에서 본인의 글맵시로 필력을 증명해야 하지, 이미 발표된 작품 중간에 개입하여 작가의 존재감을 앞세우는 것은 다소 마땅치 않을 것이다. 세상에 발표한 순간 그 작품은 감상하는 사람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데뷔 이전부터 받아온 관심을 고려한다면 꽤 어려운 과업이겠으나, 언젠가 뉴진스는 ‘민희진 그룹’이라는 이름표를 떼고 홀로서기를 해야만 한다. 이번 앨범을 통해 멤버들의 매력과 발전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준 만큼, 그다지 멀지 않은 시점에 그 목표가 실현될 수 있지 않을까. 이제 막 발걸음을 뗀 신인 그룹에 필요 이상으로 쏟아진 시선에 경도되지 않고, 뉴진스만의 방식대로 또 새로운 역사를 써나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비눈물

By 비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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