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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뉴진스 : ③‘불쾌한 골짜기’를 넘어간 아이돌

소위 ‘민희진 걸그룹’으로 불리던 뉴진스가 베일을 벗은 지도 어언 2개월 째. 씬에 한 차례 광풍을 휩쓸고 지나간 이들에 대해 〈아이돌로지〉 필진 3인이 각자의 단상을 적어보았다. 세 번째 글 “‘불쾌한 골짜기’를 넘어간 아이돌”에서는 필자 스큅이 아이돌 팝의 세계에서 뉴진스가 점하는 독특한 입지에 대해 논한다.

소위 ‘민희진 걸그룹’으로 불리던 뉴진스가 베일을 벗은 지도 어언 2개월 째. 씬에 한 차례 광풍을 휩쓸고 지나간 이들에 대해 〈아이돌로지〉 필진 3인이 각자의 고찰을 적어보았다. 세 번째 글 “‘불쾌한 골짜기’를 넘어간 아이돌”에서는 필자 스큅이 아이돌 팝의 세계에서 뉴진스가 점하는 독특한 입지에 대해 논한다.

New Jeans
ADOR
2022년 8월 1일

3년 전, 치밀하게 세공된 비주얼 디렉팅으로 SM 엔터테인먼트에서 이름을 떨친 민희진이 하이브 엔터테인먼트로 이적해 걸그룹을 제작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공개된 오디션 공고 영상은 잘 만든 한 편의 콘셉트 트레일러에 준하는 미학으로 소소한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이후 그의 행보는 케이팝 팬덤 내 초미의 관심사 중 하나였다. 작년 말부터는 민 디렉터가 직접 tvN 〈유퀴즈 온 더 블락〉, 웹진 「비애티튜드」 등 외부 매체 인터뷰에 얼굴을 비치며 그룹의 데뷔가 임박했음을 암시해, 소위 ‘민희진 걸그룹’에 대한 호기심은 더더욱 부풀어갔다. 그리고 7월 22일 0시, 그들은 아무런 예고 없이 등장한다.

그룹명 ‘뉴진스(NewJeans)’, 곡 제목 ‘Attention’. 멤버별 프로필도, 웅대한 세계관과 메타버스도, 그 어떤 티징 콘텐츠도 없이 공개된 데뷔곡 뮤직 비디오가 그려낸 것은 단 하나, “Attention”이었다. 보컬 찹 샘플을 중심으로 쌓아 올린 미니멀한 곡 편성, 장조와 단조를 끊임없이 넘나드는 몽롱한 키보드 반주, 아득히 뻗어나가는 코러스의 탑라인, 그에 맞추어 기지개를 켜는 듯한 산뜻한 안무, 검은 긴 생머리와 가벼운 옷차림 등 제법 수수한 스타일링, 여느 신인답지 않게 “카메라를 잡아 먹을 듯한 눈빛”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가뿐한 태도까지 (안무 컷을 제외하면 멤버들은 애초에 자신들이 들고 있는 아이폰과 맥북 외에는 카메라가 없는 것처럼 군다. 안무 컷도 대체로 멤버들 개개인의 얼굴보다는 군무를 담아내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카메라를 쳐다보지 않는 군무 컷도 다수 등장한다. 이때 이들은 카메라 대신 서로를 쳐다본다). 맥시멀리즘의 케이팝으로서 매우 이례적인 ‘Attention’의 초경량은 역설적으로 더욱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러한 이들을 두고 특히나 많이 거론된 단어가 있었다. “자연스럽다”. ‘Attention’에 이어 공개된 ‘Hype Boy’, ‘Hurt’, ‘Cookie’에 이르기까지, 곡 안팎으로 가능한 거의 모든 부속품과 군더더기를 덜어낸 콘텐츠 공세에서 단연 돋보인 점은 “애쓰는” 기색이 단 하나도 없었다는 점이다. 힘준 데뷔 기획에서 으레 비롯되는 작위적인 안간힘이 말끔히 지워진 모습은 이들이 정말이지 “자연스럽다”는 믿음을 주었다. 이 모든 것이 고도로 연출된 결과물임이 분명함에도 말이다. 외부의 관찰자보다 멤버 5명의 이너 써클이 우선시되는 뮤직 비디오의 시선은 그들이 아이돌이나 퍼포머와 같은 특정 역할을 수행하기에 앞서 그저 있는 그대로 존재한다는 인상을 주기까지 한다. 뉴진스는 그렇게 ‘아이돌’로서는 넘어가는 것이 불가능할 것 같았던 ‘불쾌한 골짜기’를 기어코 넘어버린 듯했다.

‘불쾌한 골짜기’ 개념을 설명하는 그래프 (출처: 위키피디아)

그러나 여기서 돌이켜볼 만한 부분은, 애초에 아이돌 팝이 ‘불쾌한 골짜기’를 넘어서려 한 적이 있냐는 것이다. 불쾌한 골짜기는 ‘적당히 인간을 닮은’ 것과 ‘인간과 거의 똑같은’ 것 사이 호감도가 급락하는 지점을 일컫는 말로, ‘인간과 거의 똑같은’ 재현을 추구하는 와중에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돌 팝은 근본적으로 현실에 깃든 적당한 비현실성─나는 이를 “(비)현실성”이라 칭한다─을 표방하는 콘텐츠에 가깝다. 버블 등의 프라이빗 메시징 서비스와 맞물려 “친근감”과 “친밀감”을 소구하는 흐름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지만, 이 역시 사실상 일종의 역할 놀이에 근접하는 판타지로, “자연스러움”과는 거리가 먼 개념이다 (한편 뉴진스는 자체 팬덤 플랫폼인 ‘포닝’을 런칭하며 멤버별 일대일 메시징 서비스가 아닌 답장이 불가능한 단체 메시지방을 가장 먼저 오픈했다. 이 역시 뮤직비디오와 동일하게 외부의 관찰자보다 그들만의 이너 써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인상을 안긴다). 다름 아닌 민희진이 디렉팅했던 흰 티셔츠와 컬러 스키니진의 소녀시대 ‘Gee’부터가 그 단적인 예증 아니던가. 더불어 “자연스러움”은 노력(달리 말하면 앞서 언급한 ‘애씀’)의 산물이 아니기에, 대개 셀프 프로듀싱과 맞물려 ‘획득’되는 “진정성”과도 다르다. “친밀감”의 판타지도, “진정성”의 신화도, 엄밀히 말해 애초에 불쾌한 골짜기의 문턱을 넘어갈 의도가 없는 “(비)현실성”의 산물인 셈이다. 뉴진스는 이러한 기존 작법의 방향성을 완전히 뒤집는다. 그들이 향해 가는 것은 적당히 (비)현실적이자 적당히 (부)자연스러운 것을 넘어선, 실제와 분간이 되지 않는 수준의 자연스러움─나는 이를 “현실성”이라 쓰고 싶다─이다.

〈유 퀴즈 온 더 블락〉에서 민희진 디렉터는 항상 ‘정(正)-반(反)-합(合)’을 염두에 두고 작업해왔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닿을 수 없을 것 같던 기존 걸그룹의 이미지의 ‘반’이 소녀시대였고, 소녀시대의 ‘반’이 f(x)였다고 한다) 이쯤 오니 결국 그가 현재 아이돌 팝의 ‘정’에 대항하여 내놓은 ‘반’이 뉴진스의 “자연스러움”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판도의 맥을 정확히 짚어 도출해낸 새로움이기에, 뉴진스가 몰고 온 센세이션은 어찌 보면 예정된 수순이었을 테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비인간적인 아이돌(특히 걸그룹)의 노동 환경 위에서 그 “자연스러움”이란 것이 얼마나 오롯이 존립할 수 있을지 다소 우려가 드는 것도 사실이다. (‘Cookie’의 영문 가사 논란이 유독 더 거셌던 이유도 필시 이 때문일 것이다) 뉴진스의 ‘반’은 과연 어떠한 ‘합’으로 이어지게 될까. 아니, 이는 애초에 ‘합’을 이룰 수 있는 성질의 것일까. 기대와 불안이 혼재된 떨림을 품은 채 이들의 미래를 바라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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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큅

머글과 덕후 사이(라고 주장하는) 케이팝 디나이얼 러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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