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상반기를 돌아보며, 월별로 기억에 남는 케이팝 발매작에 대한 리뷰를 3주간 발행한다. 해당 포스트에서는 4월 발매된 싱글 중 뉴진스, 아이브, 이채연의 싱글을 다룬다.
뉴진스 ‘Zero’
스큅: 코카콜라 제로의 광고 음악으로 발매된 싱글이나, (후렴구의 “코카콜라 맛있다”를 단순 구전 동요의 인용 정도로만 이해한다면) 가사는 꽤나 은유적이고 안무는 꽤나 본격적이라 여타 활동곡에 준하는 인상을 준다. 악곡 역시 그러하다. 자잘하게 탄산이 퍼지는 듯한 브레이크비트, 은근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리드 신스, 나지막이 읊조리는 듯한 보컬로 주조해낸 리퀴드 훵크(liquid funk)는 댄스 뮤직 장르에 강하게 뿌리를 둔 리듬, 몽롱하고 복잡미묘한 감상을 불어넣는 코드 워크와 탑라인, 케이팝의 기본 태도인 맥시멀리즘에 반(反)하는 미니멀리즘 등 뉴진스의 기존 음악 특성을 그대로 반영한다.
다만 조금 독특한 점이 있다면 낙차가 큰 드롭의 존재다. 후렴구에 이르러 돌연 거칠게 몰아치는 리듬 세션과 단조로운 구전 동요 멜로디는 조심스럽고 섬세한 벌스 및 빌드 업과 극적인 대비를 이룬다. 대개 유려하게 솟구치는 멜로디로 두둥실 떠오르는 듯한 심상을 그리던 지난 곡들의 후렴구와 달리 한껏 부풀어 있던 감각을 드롭과 함께 펑 터뜨리는 식인데, 이러한 색다른 전개 방식은 그 어느 때보다도 유희적인 느낌을 안겨준다. 다소 사색적이었던 지난 싱글들 뒤에 나와 그룹의 이미지를 다시금 가볍게 환기해주고 있어 그룹의 디스코그래피 측면에서도 의의를 찾을 수 있는, 재치 있는 트랙이다.
아이브 ‘I AM’
예미: ‘I AM’은 그간의 케이팝 걸그룹이 쌓아온 유산을 총집합한 뒤 그 계승자 위치에 아이브를 위치시키는 곡이다. 웅장한 사운드로 시작하여 모두가 아는 케이팝 걸그룹의 클리셰대로 흘러가던 곡은, 후렴구에 들어서자 고음역대의 유니즌으로 앞 세대 걸그룹을 연상케 한다. 가사, 뮤직비디오, 퍼포먼스는 그간 아이브가 강조해온 빛나는 ‘나’에 초점을 맞춰, 케이팝 걸그룹의 과거와 현재를 담아낸 곡을 온전히 아이브의 것으로 만든다. 비행기 활주로를 런웨이처럼 누비는 모습을 보면서 자기애에 빠져들면 ‘나’를 이루는 주변 것들마저도 긍정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I AM’ 속 ‘나’가 부르는 케이팝의 클리셰가 자랑스러워진다. 클리셰의 뒷편에는 사실 역사와 전통이 있으며 그렇기에 의미와 힘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곡.
이채연 ‘KNOCK’
스큅: ‘Knock’이 재밌는 점은 안티-드롭과 드릴 브레이크다운 등 편곡 면에서 다분히 동시대적인 접근을 취하고 있음에도 어쩐지 90~00년대 한국 가요계 테크노 여전사의 곡들을 연상시킨다는 점이다. 130bpm 후반대의 적정한 속도감, 정박에 맞춰 쿵쿵 찍어주는 리듬, 단조 풍의 또렷한 멜로디, 단선적이면서도 드라마틱한 전개의 가사를 듣고 있노라면 자연스레 이정현, 채정안, 유채영과 같은 이름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물론 강렬하고 선명한 퍼포먼스 역시 이에 한몫한다 할 수 있겠다. 장풍을 쏘듯 기를 모았다가 한바탕 휘몰아치는 마지막 후렴구의 시퀀스는 올해 케이팝 퍼포먼스에서 가장 짜릿한 순간 중 하나로 남을 것이다. 솔로이스트로서 다소 흐릿했던 인상을 지우고 댄스 가요 여전사의 명맥을 잇는 독보적인 포지션을 점한, 절묘한 싱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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