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 2023년 5월 – 싱글

예미: 제목에서 주는 인상과 달리, ‘이브, 프시케 그리고 푸른 수염의 아내’의 주된 소구점은 가사에 있지 않다. 가사는 키워드 위주로 파편화되어 있고,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여흥구는 곡 감상의 포인트가 텍스트 해독에 있지 않음을 애써 보여준다. 반면 뉴진스 ‘Ditto’ 등으로 근래 케이팝에 유입되고 있던 저지 클럽 사운드에서 드럼과 베이스를 크게 부각하고 마이너 멜로디를 붙인 트랙은 클럽 음악 장르를 진지하게 구현한다는 감각을 전달한다. 허윤진의 내레이션 “I’m a mess”로 시작되는 곡의 파트 분배는 마치 한 사람의 아이디어가 팀원 모두의 결과물이 되는 과정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동일한 음이 구간을 달리하여 반복되는 구조 속에서, 비슷한 음이 반복될 때마다 다른 멤버를 배치하고 각 멤버별 표현의 차이를 드러내어 다섯 명을 고루 조명한다. 쉴 틈 없으면서도 요점이 확실한 퍼포먼스가 파트 분배의 특성과 시너지를 내고, 가사에 조각조각 적힌 메시지를 한 데 묶어 금기에 뛰어드는 여성을 완성한다.
‘이브, 프시케 그리고 푸른 수염의 아내’는 타이틀곡을 상회하는 성과로 정규 앨범 “UNFORGIVEN”의 흥행을 견인했고, 이로 인해 리믹스가 8월 현재까지 발매되고 있다. 리나 사와야마 등 동시대 여성 뮤지션들을 위한 판으로서 곡이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곡 주제를 작품 바깥까지 확장시킨 듯하여, 그 양상을 주목하게 된다.

조은재: 선명한 하이틴의 감성으로 펼치는 퍼포먼스는 놀라울 정도로 잘 정돈되어 있고, 모든 연출은 이 청춘의 생동감을 드러내는 데에 집중하고 있다. 레이블이나 프로덕션의 위용을 과시하려는 목적으로 청중, 심지어는 아티스트마저 압도해버리기 위해 잔뜩 힘을 주고 나오는 요즘의 몇몇 기획물에 비해 'Per'는 생기있게 반짝거리는 멤버들의 재능 하나만을 바라본다. 복잡하고 어려운 설명이 필요 없이 탁월한 재능 하나만을 부각하는 담백한 기획은 무척 오랜만에 보는 듯한데, 사실 이것이야말로 가장 단순하면서도 어려운 작업이다. 막연하고 모호한 '좋은 음악'보다 더 뚜렷한 지향성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여타 신인 그룹들의 교보재가 될만하다.

조은재: 메시지에 가려졌다기엔 '퀸카'는 곡 자체로도 이미 충분한 매력과 미덕을 갖추고 있다. 'I'm a 퀸카'를 반복하는 훅을 제외하고도 곡 전체에서 베이스는 중심을 잃지 않고 단단히 흐르고 있고, 임팩트 있는 코러스와 훅에 비해 덜 주목받는 감이 있지만, 절 부분 또한 드롭까지 충분한 에너지를 빌드업 해낸다. 누가 뭐래도 (여자)아이들의 퍼포먼스상의 강점은, 무대에 여러 가지 부가적인 장치를 더해 규모감을 과시하지 않고, 소수정예의 멤버가 각자의 끼로 존재감을 발산하고 곡이 갖고 있는 메시지를 무대연기로서 충분히 전달한다는 점이다. 'TOMBOY', 'Nxde'에 이어 '퀸카'까지 결코 쉽게 넘길 수 없는 메시지를 다른 누구도 아닌 아티스트 본인의 퍼포먼스 자체를 통해 설득해내려는 시도에서 기획자의 담대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그 모든 시도가 성공적이었다는 점에서 어떤 경외감마저 느낀다.

예미: ‘Movie Star’는 미주의 아이덴티티를 한 곡으로 요약해서 보여준다. 퍼포먼스 친화적인 사운드 위에 서정적인 멜로디를 얹고, 가사가 또렷하게 들리도록 하여 러블리즈의 메인 댄서라는 미주의 이력을 드러낸다. 구간별로 달라지는 창법에서는 보컬의 특징을 효과적으로 부각하기 위한 노력이 돋보인다. 안티-드롭 구성을 차용하고 하이라이트 파트에서도 가성을 활용하여 소위 ‘지르는’ 파트를 최소화하고 독특한 음색을 다채롭게 드러낸다.
이처럼 미주의 강점을 정리해서 보여주는 듯한 ‘Movie Star’의 가장 독특한 특징은 이 곡이 발매된 이력이다. 흔히 음악 외 활동으로 인지도를 얻은 뒤 소속사를 바꾸는 것은 곧 아이돌 활동 종료를 의미하곤 하는데, 미주는 예능 활동으로 찾은 소속사에서 솔로 데뷔곡을 발매하여 주목할 만한 예외 사례를 만들었다. 그룹 활동 이후로도 아이돌 멤버가 가수로서의 아이덴티티를 가져가는 흥미로운 사례로 ‘Movie Star’를 짚어보게 된다.

스큅: 동세대 아이돌 그룹에 준하는 퍼포먼스를 내놓는 데에 치중하는 듯했던 지난 활동곡들과 달리, ‘Next To Me’는 한결 여유가 돋보이는 곡이다. 90년대 힙합 풍 비트와 그루비한 기타 리프가 이룬 뼈대 위에, 엇박자를 많이 타는 리드미컬한 랩 파트가 재기발랄하게 곡을 휘저으면, 여유로이 정박에 꽂아 넣는 노스탤직한 보컬 파트가 흥취를 돋우고, 군데군데 흩뿌려진 브라스 사운드가 체리 온 탑처럼 곡을 완성한다. 어깨에 잔뜩 들어가 있던 힘을 빼고 나니 멤버들의 목소리를 포함한 팀의 면면이 한껏 더 살아나는 듯하다. 때로는 덜어내는 것이 해답임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

스큅: 유려하고도 강력한 후렴구의 탑라인이 오롯이 활용되지 못해 아쉽다. 도입부에 아카펠라로 포문을 열며 멜로딕한 후렴구를 기대하게 만들었던 것과 달리, 짧은 프리-코러스를 지나면 강한 비트 드롭과 함께 랩으로 처리해버린 첫 번째 후렴구(사실상 이것이 프리-코러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가 등장하며 스포트라이트를 가져가고, 두 번째 후렴구에 가서야 마침내 마주하게 되는 멜로디 파트는 직전의 굵직한 비트 드롭과 병치되며 다소 서둘러 지나가버리는 듯한 인상을 남기고 만다. 브릿지와 3절 전개 없이 페이드 아웃으로 맺어진 짧은 구성은 황급하다는 인상을 더욱 강화한다. 유려하게 흘러가는 소위 ‘스트리밍용’ 음악에 인상적인 퍼포먼스 포인트를 탑재하려다 양쪽의 강점이 모두 흐려진 모양새라 할까. 화려한 중세 뱀파이어 이미지와 콘셉추얼한 퍼포먼스도 곡에 비해서는 다소 과중하게 느껴진다. 각 요소를 놓고 보면 빼어나지만, 이를 '케이팝' 식으로 봉합하고 마감해내는 데 있어 균형 감각이 못내 아쉬워지는 싱글.

스큅: ‘ICKY’는 카드의 모든 발매작을 통틀어 드롭보다도 훅에 초점이 맞춰진 독특한 곡이다. 여느 때처럼 라틴 풍의 뭄바톤 리듬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다른 리듬 세션보다 플럭(pluck) 소스와 그르렁대는 반복적인 훅의 존재감이 더 선명하게 들어온다는 점이 색다르다. 여성 보컬 멤버들이 카리스마 있게 그룹을 진두지휘하면 남성 래퍼 멤버들이 재간을 부리며 곡을 가볍게 환기하는 카드의 케미스트리 역시 빛난다. 가사는 (케이팝에서는 오로지 BM이기에 가능할 듯한 함의 짙은 영문 랩을 포함해) 어느 때보다도 맹렬하게 섹슈얼리티를 표출하고 있음에도, 카드만의 독특한 혼성그룹 위계 구도와 "적당한 거리감에서 오는 여남 사이의 텐션 밸런스" 덕에 유희성만큼은 언제나처럼 유지된다. 독특한 관절 움직임이 특징인 댄서 루트의 안무로 감각적임이 한층 더 배가된 퍼포먼스까지 함께 감상하길 권한다.

에린: 드림캐쳐의 강점은 강렬한 록 밴드 사운드를 팀의 주된 색깔로 삼아 ‘악몽’, ‘디스토피아’를 주제로 연작을 발매하여 시리즈를 완결한다는 점에 있다. 이번에도 역시 드림캐쳐는 ‘아포칼립스’를 주제로 한 연작을 하나의 서사로 완결해낸다.
“Apocalypse: Save Us”를 시작으로 폐허가 되어가는 세상에 대한 외침의 ‘MAISON’과 행동을 촉구하는 ‘VISION’으로 연결된 서사는 ‘BONVOYAGE’로 희망찬 마지막을 써낸다. ‘BONVOYAGE’는 최근 드림캐쳐의 타이틀 중 가장 밝은 곡이기도 한데, 아련한 선율과 지유의 맑은 보컬은 함께한다는 곡의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후렴구로 넘어가면서 강력해지는 일렉 기타와 드럼은 시연의 우렁찬 보컬과 더불어 힘차게 질주하는 모습을 떠오르게 만든다. ‘폐허’로 시작한 아포칼립스의 이야기를 함께하는 ‘공존’의 미래로 마무리한 ‘BONVOYAGE’는 뚝심 있는 기획으로 완성도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드림캐쳐의 저력을 보여준다.

스큅: “보이넥스트도어(BOYNEXTDOOR)”라는 이름이 공개되었을 때부터 이들이 블락비와는 전혀 다른 노선을 걸으리라는 점은 자명했다. 하기야 지금의 지코는 ‘Tough Cookie’ 때의 지코가 아닌 ‘아무노래’의 지코 아니던가. 그러나 이다지도 가벼운 무게감과 말랑말랑한 질감은 조금 놀랍긴 하다. “듣기 편하면서도 독창적인 이지리스닝 트랙을 기반으로 일상을 이야기“한다는 소개글답게 보이넥스트도어의 데뷔 싱글들은 지고지순한 소년의 사랑 이야기를 귀엽고 아기자기하게 풀어낸다. 세 싱글 모두 각기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으나, 개인적으로 처음으로 공개된 ‘돌아버리겠다’를 가장 즐겁게 들었다. 힙합은 커녕 오히려 서프 록 내지는 개러지 록의 향취가 더 느껴지는 첫 싱글 ‘돌아버리겠다’는 2분을 간신히 넘는 짧은 곡 길이 안에 소년의 왁자지껄한 사랑 고백을 역동적으로 담아낸다. 조심스럽고도 익살스러운 기타 반주를 중심으로 리듬 세션을 서서히 쌓아올리다 후렴구에 이르러서는 상쾌하게 질주하는데, 그 쾌감이 상당하다. 예상치 못하게 포즈(pause)를 걸고는 거듭 내달리는 마지막 후렴구는 이 곡의 백미라 할 수 있겠다. 다소 정체되어 있던 보이그룹 씬(scene)에 새로운 불씨를 지핀 데뷔 싱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