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단은 간단한 의문이었다. 미니앨범으로 데뷔하는 아이돌들이 눈에 띈다는 것은, 그만큼 싱글로 데뷔하는 아이돌이 많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행사장에서 부를 곡이 모자라면 어떻게 하지? 이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맛있는 파히타와 미묘가 걸그룹 행사 무대에 대한 취재에 나섰다. (고 쓰고, 유튜브를 뒤졌다.) 그리고 그 결과는 예상치도 못한 것이었다.
다음의 플레이리스트는 본 기사에 포함된 모든 영상을 담고 있다. 본문의 스크린샷을 클릭하면 해당 영상으로 이동한다. 또한 “이게 대체 누구?”라는 호기심이 생긴다면, 각 아이돌의 이름을 클릭해주기 바란다.
유형 1. 고전주의
〈무한도전 토토가〉가 있었다면, 이젠 〈토토아〉다! 9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을 풍미한 추억의 가요들이 세월의 강을 건너 이제 신인 아이돌의 몸으로 현신(現身)한다.
핑클 – 내 남자친구에게
최근 풀 밴드 세션의 어른스러운 음악으로 데뷔한 지지베스트도, 무대에서는 핑클을 소화하며 “콜미콜미콜콜기버콜”을 한다.
UP – 뿌요뿌요
상명대학교 평생교육원 문화예술 최고위과정생 여러분은 저 자리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계셨을까. 비주얼록 풍의 ‘솔아솔아’를 부르던 프리츠의 ‘뿌요뿌요’에서 강렬한 갭모에를 느끼셨길 진심으로 바라본다. 프리츠는 쿨의 ‘애상’을 부른 적도 있다.
룰라 – 3! 4!
룰라를 동시대로 겪은 사람이라면 이 곡의 포인트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어데로”이다. 그리고 칠학년일반은 이 포인트를 정확하게 살려낸다. 꼼꼼한 디렉팅의 결과일까.
엄정화 – 페스티벌
엄정화의 ‘페스티벌’을 부른 팀은 적지 않다. EXID가 곡이 없어서 부른 것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EXID의 이 커버를 꼽은 것은 이 무대가 보여주는 압도적인… 노래방 분위기이다. 금방이라도 “콜록콜록, 야 음료수 좀.” 할 것 같은 이 분위기를 느껴보시라. (아쉽게도 전원 버전은 구하지 못했다.)
DJ DOC – Run To You
이 곡에서 트랜디는 마치 만취해 들러붙는 부장님을 피하기 위해 마이크를 잡고 테이블 앞으로 나온 대리님처럼 노래한다. 이 곡을? 그렇다.
유형 2. 신고전주의
이것이 2025년의 〈토토아〉다!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까지의, 추억이라면 추억인 레퍼토리들이 벌써 애창되고 있다. 바야흐로 케이팝이 레거시(legacy)가 되고 있는 현장이라고 할까. 익숙하면서도 개중 많이 불려지는 곡은 공연권, 저작권 수익도 기대해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소속사 선배의 곡을 부르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또 다른 맥락으로 굉장히 신선하게 느껴지는 곡들도 있다.
원더걸스 – Tell Me, 티아라 – Roly Poly
뭐니뭐니 해도 터질 수밖에 없는 이 조합. 들리는가, 이 함성이. (물론 이것이 연천 위문열차 영상이란 점을 감안할 필요는 있다.) 숨 돌릴 틈을 주지 않고 ‘Roly Poly’로 넘어가는 순간의 열광을 놓치지 말자.
AOA – 짧은 치마
검색어에서 밀린 분풀이라도 하려는 걸까. 단발머리의 커버곡 중에는 크레용팝의 ‘빠빠빠’도 있는데, 놀랍게도 이 영상에는 단발머리의 ‘빠빠빠’ 용 응원법도 담겨 있다.
크레용팝 – Dancing Queen
이 곡을 고른 이유가 궁금해서 몇몇 사람들에게 의견을 물었는데, 곡의 가사 중 어느 한 줄을 짚어 왔다. 밝히진 않겠다. 그저 그렇게 매정한 사람이 아이돌로지 필진이 아니라서 다행이라 하겠다. 베티엘은 오렌지캬라멜의 ‘아잉’도 커버했다.
브라운아이드걸스 – Sixth Sense
교복을 입고 부르기엔 조금 무서운 곡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볼 만도 하지만… 혹시 모를 일이다. 여고생이 총칼을 휘두르는 류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사랑에 빠질 수 있을지도. 꽤 잘 소화해내는 모습 또한 인상적.
카라 – Step
일렉트로닉 성향이 있는 플래쉬에게 카라의 ‘Step’은 꽤나 어울리는 선택. 그러나 교복을 입고 소화하는 이 곡의 안무는… 카라는 ‘미스터’도 많이 커버되는데, 여기서 우리는 여태 몰랐던 사실을 하나 깨닫게 된다. 카라는 상당히 야한 안무가 많은 그룹이었다는 걸… 왜 몰랐던 건지는 얘기하지 말자.
스피카 – 러시안 룰렛
배드키즈가 누군지 모르겠다면, “귓방맹이!”의 그 그룹이다. 그런 그녀들이 러시안 룰렛… 귓방맹이를 번갈아가며 때리다 누가 먼저 죽는지 하는 내기인 걸까? 배드키즈는 마이티마우스의 ‘랄랄라’, 브라운아이드걸스의 ‘다가와서’를 커버하기도 했다.
2NE1 – Go Away
아는동생이 커버한 2NE1의 감상 포인트는 사실, 의외로 무난하게 잘 해내는 무대가 아니다. 공식 계정에 이 곡의 연습 영상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아는동생의 직캠 중에는 또한 에이핑크의 ‘Mr. Chu’, AOA의 ‘사뿐사뿐’, 빅뱅의 ‘붉은 노을’도 있다.
분량상 생략했으나 그 외에도 메이퀸이 커버하는 에이핑크의 ‘NoNoNo’, 벨로체가 커버하는 걸스데이의 ‘Something’, 틴트가 커버하는 카라의 ‘미스터’ 등도 흥미로운 무대.
유형 3. 초현실주의
이것이… 무엇일까. 누가 좀 알려주면 좋겠다. 커버 영상을 찾다 발견한 예상 밖의 넘버들을 소개한다.
UV – 쿨하지 못해 미안해
팬 이벤트긴 하지만 무척 흥미로운 무대이다. 사실 이 곡은 마마무가 꾸준히 공개해온 커버 비디오 중에도 존재한다. 표정연기가 훌륭한 마마무 버전의 ‘쿨하지 못해 미안해’ MV(!)도 놓치지 말자.
플로 라이다(Flo Rida) – Club Can’t Handle Me (feat. David Guetta)
드렁큰타이거, 리쌍의 소속사 정글 엔터테인먼트의 신인 아이돌 포텐은 여러 모로 색다른 팀인데, 커버곡마저 무척이나 남다르다. 안무도 따로 짠 정성이 돋보인다.
저스틴 비버 (Justin Bieber) – Baby
클릭비를 리메이크한 데뷔곡 ‘Love Letter’에 이어… 베리굿을 남자곡 리메이크돌로 인정해도 될 것 같다. 어쩐지 뮤직비디오에도 콧수염을 붙이고 나오더라니.
나미 – 인디언 인형처럼
‘아차’ 했다. 오픈 후에 데뷔한 팀인데도 아이돌로지가 이들을 모르고 넘어가고 말았다. 심심한 사과를 표한다. 그러나 이 무대의 편곡과 노래를 들으면, 다루지 않는 게 맞았던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이런 소재로 왜 아이돌을 하세요…
신인 아이돌의 어려움이야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자신들의 곡으로는 충분히 분위기를 띄우기 어려워 더 익숙한 곡의 힘을 빌려야 한다는 것은 서운한 일일지도 모른다. 혹은 누구누구처럼 한두 곡만 해도 되는 네임파워가 아쉬울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멋진 무대를 펼치는 신인 걸그룹들에게 애정 어린 경의를 표한다. 또한 그 무대들을 담는 ‘직캠러’ 여러분께도.
눈치챘겠지만, 이 기사에 포함된 영상들은 대부분 현재 구하기가 상대적으로 쉬운 신인들이다. 그러나 지금 대형 아이돌이 된 그들에게도 신인 시절은 있었다. 유명 아이돌의 신인 시절 커버 무대 영상을 소장하고 계시거나 영상의 소재를 알고 계신 독자 여러분께 공개적으로 제보를 요청한다. 자칫 사라질지 모르는 이 영상들을 보존하는 것은 아이돌 역사에 큰 공헌이 될 것이다. 트위터 @idologykr 혹은 이메일 [email protected]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다.
- 아이돌로지 10주년 : 현 필진의 Essential K-pop 플레이리스트 - 2024-05-13
- 아이돌로지 10주년 : 아이돌로지는 사랑을 싣고 (前 필진) - 2024-04-29
- 아이돌로지 10주년 : 아이돌로지는 사랑을 싣고 (미묘) - 2024-04-15
3 replies on “토요일! 토요일은 아이돌이다”
이런 경우 해당곡의 저작권 문제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공연권으로서 사용료를 지불하는 원칙으로 알고 있습니다. :)
베스티는 버블팝 불렀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