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피니트H – Fly Again (2015)

그대 아이돌의 자랑이듯, 아이돌 그대의 자랑이어라.

아주 거시적인 시점으로 보자면 인피니트H도 결국 몇 년 간 이어져 온 최근의 힙합 시류에 편승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힙합 음악에의 진정성이라든가, 정통성이라든가 하는 것들을 떠나서, 이들의 음악은 그 힙합과 아이돌, 혹은 ‘힙합 아이돌’의 트렌드 안에서 상당히 이색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기성 힙합 아이돌들이 그들의 작품을 만들 때 가장 신경 써온 점은 아무래도 힙합 씬의 아이돌에 대한 주목이었고, 지금도 많은 힙합 아이돌이 대중보다는 ‘힙합’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개중에는 이미 충분히 인정받은 아이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아이돌도 있는데, 인피니트H는 그런 인정과 부정 여부를 떠나, 다른 힙합 아이돌과 다른 지향점을 갖고 있다. 이들의 음악은 철저히 ‘아이돌 팬덤’을 향해 있고, 이들이 인정받고자 하는 쪽은 ‘힙합’이 아니라 ‘아이돌’에 가까워 보인다. 이들과 함께 한 힙합 프로듀서들이 하나같이 ‘이 음악(= 힙합)을 아이돌 팬들이 좋아할까’에 대해 고민했다고 밝혔던 것을 생각해봐도, 이들의 지향점이 다른 힙합 아이돌과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번 앨범에는 인피니트 내 솔로/유닛 앨범 최초로 멤버 호야가 작곡에 참여하고 있고, 이전 앨범에 대한 지적을 수용한 듯 두 멤버가 전곡의 가사를 썼으며, 심지어 이들이 만든 노래가 타이틀곡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은 이런 ‘아티스트적’인 면을 그다지 과시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이들이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음악이나 퍼포먼스 자체의 경쾌함 등이다. 이들이 지금 스스로가 아이돌인 것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고, 그들이 만족하고 있는 그 아이돌로서의 정체성을 굳이 부정해가면서까지 아티스트가 될 욕심은 없기 때문으로도 읽혀진다. 이것은 억지로 지켜가는 미덕이라기보단 이들의 천성에 가까워 보여 무척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그래서 이들의 음악이 마냥 ‘아이돌 자작곡’ 수준에 머물러 있는가 하면, 그것은 또 전혀 아니다. 타이틀곡 ‘예뻐’도 그렇지만, 또 다른 호야의 작곡 참여 곡인 ‘지킬 앤 하이드’를 보면 무척 멜로딕하고 그루비한 후렴이 돋보이는데, 이는 멤버들과 가장 오랜 시간을 협업해 온 스윗튠의 영향으로도 느껴진다. 한편 ‘지킬 앤 하이드’의 간결한 편곡은 아마도 호야가 자라오면서 들었을 시기의 국내 힙합 정서와도 닿아있는 면이 있어 여러모로 호야의 음악적 잠재력을 엿볼 수 있게 한다. 후렴의 태완의 보컬이 호야와 비슷한 창법으로 디렉팅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물론 기약은 없지만) 나중에 언젠가 나올지도 모르는 호야의 솔로 곡을 미리 들어본 듯한 느낌도 준다.

게다가 인피니트H의 두 멤버가 그저 기성 힙합의 문법을 그대로 따라가기엔 너무나도 아이돌적이라는 점도 이런 지향성을 갖게 된 이유가 될 것이다. 힙합 댄스 강사이기도 했던 동우와 비보이 출신의 호야는 완전체 인피니트에서도 퍼포먼스의 중심축으로 작용해왔다. 그들이 원래 춰오던 춤과 다른 장르인 ‘칼군무’에서는 보여줄 수 없었던 퍼포먼스를 유닛 무대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는 다른 힙합 아이돌에게서는 보기 힘든 화려하고 정교한 퍼포먼스로 접목되었고, 이 부분은 아이러니하게도 인피니트H가 가장 아이돌적으로 소구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물론 스트릿댄스를 아이돌만 추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대중문화 시장 안에서 스트릿댄스를 가장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 역시 아이돌이기 때문이다. ‘예뻐’에서 맨 처음과 맨 끝에 등장하는 코믹한 애드리브 동작들도 그렇지만, 컴백 무대에서 선보인 ‘바빠서 Sorry’ 중 스윙스의 랩 파트 대신 들어간 안무와 프리스타일 댄스를 보면 이들이 무대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무척 분명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내에 힙합 듀오 팀은 굉장히 많지만, 이렇게 아이돌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인 팀은 없었다.

[인피니트H 컴백 쇼케이스에서의 ‘바빠서 Sorry’ 무대. 2:45부터 스윙스의 랩 피쳐링 대신 들어간 댄스 퍼포먼스를 볼 수 있다.]

‘예뻐’ 뮤직비디오는 예쁜 여자 한 명을 두고 두 멤버가 ‘예쁜 것도 죄다’라는 검사와 ‘예쁜 것은 죄가 아니다’라는 변호사로 각각 등장해 아웅다웅 법정 공방을 하는 스토리로 흘러간다. 이는 작년 초 발표된 투하트의 ‘Delicious’ 뮤직비디오의 연장선에 있는 느낌이 드는데, 상반된 매력의 두 남자가 한 여자를 두고 싸우고, 여기서 그들이 목표로 하는 여자는 궁극적으로는 시청자들을 의미한다는 점이 비슷하다. 이렇듯 인피니트H의 비주얼 디렉팅은 아이돌성이 극대화되어 있는데, 이 부분은 아무래도 기획사인 울림 엔터테인먼트의 영향으로 보인다. 테이스티, 인피니트H, 그리고 투하트의 뮤직비디오들을 모아 보면, 이 기획사는 남자 두 명이 동시에 매력적으로 보이려면 어떤 캐릭터와 스토리가 필요한지를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이렇듯 인피니트H의 작품은 여타 아이돌들이 아이돌 이미지와의 차별화를 통해 아티스트 이미지를 구축하려 애썼던 것과 달리 충분히 전략적이고, 철저히 대중지향적이다. 이러한 지향성은 한 사람 안에서 아이돌과 아티스트, 각각으로서의 정체성 간의 괴리를 만들지 않아 어느 쪽으로든 진정성 있게 다가온다. 아이돌에게 어떤 ‘모범 사례’가 존재할 수 있다면, 바로 그 ‘모범’이 되고자 하는 것이 완전체 인피니트의 목표인 듯 보이는데, 이 목표는 솔로나 유닛으로 활동할 때에도 일관적으로 유지된다. 이렇게 철저히 아이돌적인, 그것도 아주 모범적인 아이돌의 면모로 힙합을 노래하니, 어쩐지 ‘힙합 아이돌’로서가 아닌 그저 ‘인피니트H’로서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아이돌임을 최대한 감추려고 애썼던 여타 힙합 아이돌과는 확실히 다른 노선이다. 은연중에 존재해온 ‘힙합’과 ‘아이돌’ 사이의 계급 의식에서 훌륭하게 비켜서 있는 듯한 느낌. 인피니트H의 이런 ‘아이돌부심( : 아이돌로서 갖는 자부심)’을 지지한다.

P.S. : 별이 3개인 이유는, 나머지 2개는 따다가 멤버 각각에게 조공했기 때문이다. 사랑해요.

인피니트H의 “Fly Again” 미니앨범에 관한 아이돌로지 필진 단평은 1st Listen : 2015년 1월 하순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