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카이… 아니, 지난 시간에 우리는 곡의 장조와 단조를 알아보았다. 장조와 단조는 곡의 콘셉트를 나누는 것이었다. 장조는 주로 밝고, 즐겁고, 사랑스럽고, 귀여운 곡, 단조는 주로 어둡고, 슬프고, 섹시하고, 강렬한 곡이었다. 잘 생각나지 않는다면, 다시 돌아가서 읽어주면 아이돌로지의 트래픽에 도움이 된다.
메이저 코드 vs 마이너 코드
그런데 멤버들을 옥죄는 것으로 악명 높은 아이돌로지 엔터테인먼트는 자사의 12인조 아이돌 하모니즈에게 곡의 콘셉트와 안무를 지정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매순간 지어야 할 표정까지 디렉팅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을 ‘메이저 코드’와 ‘마이너 코드’라고 부르고 있다. 하여튼 자잘한 설정 정말 좋아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메이저 코드와 마이너 코드가 주는 느낌이 각각 장조(메이저), 단조(마이너)의 느낌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즉, 어느 멤버가 밝은 표정을 지으면 메이저 코드, 섹시한 표정을 지으면 마이너 코드라고 생각하면 된다. 표정이 적절히 바뀌는 것도 음악에 흥미로운 에너지를 더해준다. 카리스마 있는 콘셉트의 무대에서 시종일관 눈에 힘 주고 있던 한 멤버가 갑자기 귀여운 표정을 지어버렸을 때의 감동도 그 한 예가 되겠다.
포미닛 현아의 섹시 표정과 소현의 섹시 표정이 느낌이 다르고, 신화 동완의 애교 표정과 혜성의 애교 표정이 느낌이 다르다. (후자의 예는 왠지 조금 송구스럽지만 넘어가자.) 하모니즈도 이와 마찬가지로, 같은 슬픈 표정이라도 멤버마다 느낌이 조금씩 다르다. 그러나 우리는 대체로 ‘아 지금 카리스마 표정이구나’ 하고 알아볼 수 있다. 아래의 오디오 샘플을 들어보자. 메이저 코드와 마이너 코드를 차례로 연주한 것이다.
위에서 연주한 것은 ‘도-미-솔’로 이어지는 화음들이다. 지난 시간에 살펴본 장조 스케일과 단조 스케일에서 ’도-미-솔’을 찾아보자. 장조와 달리 단조는 ‘미’에 플랫(b)이 붙어 반음이 내려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도’와 ‘솔’은 똑같다. 그렇다. 차이는 ‘미’에서 비롯된다. 고작 반음 차이이다. 똑같은 얼굴이어도 눈빛을 조금 바꾸는 것만으로 전혀 다른 표정이 되는 것과 비슷하다. 스케일에서 ‘미’가 3번째 음이기 때문에 이를 흔히 ‘(제)3음’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도’(1음)와 ‘솔’(5음)은 중요하지 않은가? 그렇지 않다. (사실 ‘솔’은 상대적으로 잉여롭다고 할 수는 있다.) ‘도’는 이 코드의 바탕이 된다. ‘근음’, 혹은 ‘베이스’라고도 부른다. 우리는 이 근음이 하모니즈 멤버의 이름이라고 생각해도 좋겠다. 우리가 코드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코드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도’의 다른 이름은 ‘C’, 우리가 “C 코드”, “G 코드” 할 때의 그 C이다.
정리해 보면, 하모니즈의 멤버 ‘도’ 군이 취하는 여러 가지 표정들은 “C 코드”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의 눈빛(‘미’)이 어떠냐에 따라 “C 메이저” 코드와 “C 마이너” 코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도’ 군이 밝은 표정을 지으면 “C 메이저”, 슬픈 표정이나 카리스마 있는 표정을 지으면 “C 마이너”가 된다.
입으로 말할 때는 “C 메이저”, “C 마이너”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를 표기할 때는 조금 다르다. “C”라고만 적어서, 메이저인지 마이너인지 적혀 있지 않다면 관례상 메이저로 간주한다. “C 마이너”는 꼭 “C minor”를 줄여서 “Cm”이라고 명시해줘야 한다. ‘여교수’, ‘여검사’ 같은 메이저의 더러운 횡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아이돌 마이너 취향을 가진 사람들은 정치적 올바름을 위해 (‘남교수’, ‘남검사’처럼) “C 메이저” 역시 “CM”이라고 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다음에 설명할 기회가 오겠지만, “CM”이라는 표기는 그 자체로 오해를 낳을 소지가 있다. 그러니 부조리하지만 꾹 참고 우리는 “C”라고 표기하도록 한다. 아이돌로지 엔터테인먼트 측은 이에 관해, ‘우리는 모두 우리가 사랑하는 아이돌들이 행복하길 바라니까’라는 궁색하기 짝이 없는 변명을 늘어놓았음을 알려둔다.
다른 멤버들도 볼까?
앞에서 ‘도-미-솔’이라고 표현했지만, 하모니즈에는 ‘도’ 군 외에도 11명의 멤버가 더 있다. 이 멤버들 모두 밝은 표정도, 어두운 표정도 지을 줄 안다. 아래의 표와 같이 말이다. 몇 명만 예를 들어 보겠다.
뭐가 뭔지 잘 몰라도 너무 걱정할 필요 없다. 눈 여겨 볼 것은 각 코드의 가장 아래에 있는 음이다. “E 코드”는 ‘미’가 가장 아래에 있기 때문에, ‘미’의 다른 이름인 ‘E’를 따서 “E 코드”라고 불린다. “A 코드” 역시 ‘라’가 가장 아래에 있어서, ‘라’의 다른 이름인 ‘A’를 따서 “A 코드”라고 불린다.
건반 그림을 자세히 보자. 가장 낮은 두 음 사이에 검은 건반과 흰 건반을 합쳐 몇 개의 건반이 있는지 세어보면 된다. “C”의 경우 ‘도’에서 출발해 4칸 가면 ‘미’가 나온다. “C 마이너”는 ‘도’에서 출발해 3칸만 갔더니 ‘미b’이 나왔다. 다른 코드들도 이 간격은 같다. “E”는 ‘미’에서 4칸 나아간 ‘솔#’을 가졌고, “E 마이너”는 ‘미’에서 3칸 뒤의 ‘솔’을 가졌다. “G”와 “G 마이너”, “A와 A 마이너”의 경우도 직접 건반 수를 세어서 확인해 보자. 이처럼 모든 코드는 각각 메이저와 마이너가 될 수 있으며, 그 차이는 1음(=근음)과 3음 사이의 거리에 의해 정해진다.
다시 토닉, 그리고 장조와 단조
첫 시간의 내용으로 돌아가 보자. 하모니즈의 리더인 토닉이 곡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때 토닉의 표정을 살펴보자. 토닉이 메이저 코드에 해당하는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면 이 곡은 대체로 장조라고 할 수 있다. 반면 토닉이 눈살을 찌푸리고 카리스마 있는 마이너 표정을 짓고 있다면 대개 곡은 단조에 해당한다. 링크를 눌러서 보라고 하면 아이돌로지 트래픽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이미지를 다시 가져와 본다.
악보에 적힌 코드 이름을 이제는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니콜의 ‘MAMA’에서 토닉은 Bm9이었다. B는 ‘시’의 다른 이름이다. 따라서 이 코드의 근음은 ‘시’이며, ‘m’이라고 표기된 것으로 보아 마이너 코드이다. 토닉이 마이너 코드이므로 이 곡은 단조 곡이다. 또한 이 코드에는 ‘시’에서 마이너 코드의 간격인 건반 3칸 올라간 ‘레’ 음이 포함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멜로디에도 “가”와 “하”가 ‘레’ 음이다.
빅스의 ‘Error’의 경우 토닉이 Fm7이다. F는 이 코드의 근음이 ‘파’라는 것을 의미한다. ‘m’이라고 하니 마이너 코드이며, 토닉이 마이너 코드이므로 이 곡은 단조 곡이다. 역시, ‘파’에서 건반 3칸 올라가면 ‘라b’(=’솔#’)이 나온다. 이 곡이 조표가 ‘시, 미, 라, 레’에 플랫(b)을 달고 있으므로, 멜로디의 “더 그리운” 부분의 ‘라’ 음에는 모두 플랫이 달려 있다. 즉, “F 마이너” 코드의 3음인 ‘라b’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조금 어려울 수 있으니 내용을 다시 정리해 본다.
- 하모니즈의 12명의 멤버들은 모두 밝은 표정(메이저 코드)과 어두운 표정(마이너 코드)을 지을 수 있다.
- 코드의 이름에 등장하는 C, D, E 등의 첫 글자는 어느 멤버인지를 나타낸다.
- 그 뒤에 소문자 m이 붙으면 마이너 코드, 그렇지 않으면 메이저 코드이다.
- 가장 낮은 ‘근음’(멤버 이름과 같다)으로부터 ‘3음’이 건반 4칸 떨어져 있으면 메이저 코드, 3칸 떨어져 있으면 마이너 코드이다.
- 어떤 곡의 리더인 토닉이 마이너 코드라면 그 곡은 대개 단조이며, 토닉이 메이저 코드라면 대개 장조이다.
이번 시간에는 각 코드가 마이너인지 메이저인지를 구별하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한다. 아래에 몇 곡의 후렴구 코드를 분석해 보았다. M은 메이저, m은 마이너를 나타낸다. 곡을 들으면서 메이저 코드와 마이너 코드를 느껴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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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replies on “리스너를 위한 화성학 ③”
문외한으로서 여전히 조금 어렵긴 하지만 애써 따라가보려 노력중입니다.
감사합니다. 혹시 잘 이해가 안 되시거나 너무 후루룩 넘어가는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
군대에서 오늘 우연히 이 페이지를 찾은 사람 입니다… 너무 유용한 글들을 이제야 발견한게 아쉽습니다 ㅠㅠ
정말 감사히 보겠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