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부터 7월까지 이어질 걸그룹 대전에 관해 강동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모든 팀이 승리할 수는 없으니 한두 팀은 필시 쓴맛을 보게 될 것인데, 소녀시대, 씨스타, 에이핑크, 걸스데이, 그리고 AOA 같은 쟁쟁한 팀들의 격돌인 만큼 무리수를 던져서 자멸하는 팀이 나타나리라는 것이 강동의 예측이었다. 이 이야기를 한 그는 물론 나도 불안에 휩싸였는데, 가장 무리수를 던질 만한 상황의 팀이라면 그것은 소녀시대이기 때문이었다.
2007년 이래 케이팝 씬에 ‘소녀 시대’를 오픈한 것은 소녀시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2014년에 이들이 겪은 끝없는 불운은 이젠 소녀시대의 끝이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을 남겼다. 야심 차게 준비한 신곡 ‘Mr.Mr.’는 뮤직비디오 소실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겪었고, 제시카의 탈퇴는 팀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멤버들의 열애설이 쉴 새 없이 터지기도 했다. 따라서 이번 컴백은 소녀시대의 건재함을 과시하고 이전과 같은, 혹은 그 이상의 대중적 호응을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건재를 과시한다는 것은 때때로 매우 중요하고도 어려운 미션이다. 이를 잘 수행한 사례로는 동방신기의 ‘왜 (Keep Your Head Down)’을 들 수 있는데, 언젠가 한 번 길게 써보고 싶지만 이 곡은 SM 엔터테인먼트의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 중 하나였다. 3인의 멤버가 탈퇴한 후 긴 공백기를 거치고 돌아오는 순간에 그들에게 필요했던 건 소위 말하는 ‘2막’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2010년 12월 31일을 넘어서 새해까지 이어진 〈MBC 가요대제전〉이 끝나고 난 뒤 첫 광고는 동방신기의 컴백 TV 광고였다. 새해가 밝았음을 알림과 동시에, 해 뜨는 바다를 배경으로 걸어오는 2인의 모습은 더 이상의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하지만 소녀시대의 상황은 동방신기와 다르다. 걸그룹으로서의 기대 수명을 훌쩍 뛰어넘었음에도 아직까지 신선하다는 것을 보여야 한다는 점이다. 만약 건재함을 과시하기 위해 퍼포먼스의 극한을 보여주겠다고 덤벼들었다면 “소녀시대가 급하긴 한가 보다. 저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가?”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됐을지도 모른다. 소녀시대가 급하긴 할지 모르지만, 그런 방식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무리수를 두어서 망치는 길이다.
‘소녀들의 건재함’에 대한 소녀시대의 결론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변함없이 밝고 사랑스러운 모습이다. 처음 소녀시대가 데뷔하던 때 각 멤버의 이름 앞에 수식어를 붙였던 것을 기억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꼬꼬마 리더 태연”이나 “버섯보다 빛나는 파니파니 티파니”, “명랑공주 수영”, “활력소 써니”처럼 말이다. 7월 7일에 있었던 컴백 쇼케이스에서 소녀시대는 당시의 자기소개를 다시 해 보인다. 쑥스러워하면서도 오래전의 자기소개를 다시 하고 있는 그 마음은, 필시 웃음과 패기가 넘치던 초창기의 소녀들을 다시 재연하고 싶은 의지일 것이다. 아울러, 소녀시대가 건재함을 보여주고자 하는 방식을 드러내는 한 장면이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PARTY’에서의 소녀시대는 힘을 들이지 않는다. 애초에 파티란 즐기는 것 아닌가. 이국의 해변과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노래하는 “P-A-R-T-Y” 부분의 멜로디는 마치 어린이들이 남을 약 올리는 듯한 멜로디를 채용했는데, 듣고 있자면 심지어는 “나는 여기서 이렇게 놀고 있다! 약 오르지!”하는 느낌마저 받는다. 이게 누굴 향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은 기다리는 이들에게는 좋은 소식일 테고, 싫어하는 이들에게는 가장 괴로운 일일 것이다. 적어도 뮤직비디오에서 소녀시대는 아무 문제 없다. 심지어 잘 놀고 있다. 그것도 아주 행복하게. ‘PARTY’에는 어떤 자극적인 장치도 없다. 심지어는 수영복을 입은 모습도 전혀 섹스어필을 의도하지 않는다. 무리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저 순하고 편하게, 그리고 신나게 흘러가는 노래는 격돌하는 걸그룹 속에서 유유히 노니는 여유를 보여준다.
9년 차에 접어드는 아시아 최고 걸그룹의 여유는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굳이 힘주어 알리지 않아도 이들의 이름은 그 자체가 화제이고 논쟁거리이다. 소녀시대가 전쟁에 참가할 필요가 있을까? 소녀시대에게 필요한 것은 여유로운 파티이다. 밝고 즐거운 소녀가 이들의 출발점이자 가장 큰 무기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PARTY’는 한결같이 밝은 소녀시대의 모습으로 리프레시 해주는 에피타이저가 될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소녀시대의 새로운 시작이다. 곧 소녀시대가 가져올 메인디시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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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replies on “여름엔 전쟁보다 파티 : 소녀시대”
되게 좋은 기사네요 ㅎㅎㅎ
기자님들 소녀시대는 자유롭게 즐기도록 해주세요^^
그러고보니 저 P-A-R-T-Y 부분의 안무가, 글을 읽고 다시 보니 진짜로 서양 어린이들이 용용 죽겠지~ 하고 놀릴때의 제스처와 비슷하네요!!! 아이돌로지 덕에 매일 매일 새로운 발견거리가 하나씩 늘어납니다 :)
아직 대적할 걸그룹이 없다는 것만 봐도…
버섯보다빛나는 티파니가아니라 보석보다빛나는티파니입니다 기사수정해주세요
버섯보다 빛나는 티파니는 티파니의 발음 실수로 인해 후에 생긴 별명입니다.. 아랫분 말씀처럼 ‘보석보다’가 맞고요. 기사 읽다가 빵 터졌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