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미술용품 가방을 이고지고 서울역에 내린 것은 아직 해도 안 뜬 컴컴한 새벽, 같이 간 후배가 대합실 의자에서 잠시 눈을 붙이는 사이, 지하철이 움직이는 시간까지 대합실 바닥에 퍼질러 앉아 미완성한 디피(디스플레이, 부스의 간판)의 마무리에 열을 올렸다.
2절지 가까운 사이즈의 종이에 그려진 형형색색의 머리를 가진 다섯 명의 소년들. 아무리 가리고 그린들 완전히 숨길 수는 없는 사이즈이긴 했지만, 딱히 실사풍도 아닌 SD 캐릭터임에도 지나가는 사람들의 ‘저거 에쵸티 아니야?’ 하는 수군거림은 정신없이 색연필을 돌리고 있던 내 귀에도 분명히 들렸다.
지하철 시간이 되어 어느 정도 마무리한 디피를 챙겨 서둘러 대합실을 빠져나갔다. 당시의 서울역은 요즘은 〈응답하라 1994〉에서나 볼 수 있는 구역사, 출구로 나가기 전 컴컴한 기둥 사이에서 빛나던 4집 콘셉트 마약퇴치 홍보사진 앞을 지날 때면 항상 잠시 멈춰 서서 속으로 ‘이번 행사 대박’을 외치곤 했다. 알 만한 사람들은 다들 ‘굼벵이관’이라고 부르던 여의도 종합전시관, 거기서 개최되는 아마추어 만화행사 〈코믹월드〉가 우리의 목적지였다.
부스 참가자들은 일반 참가자보다 먼저 들어가 부스를 열고 굿즈 판매를 준비한다. 미리 가져간 우드락 판을 세우고 서울역에서 부랴부랴 마무리한 디피를 부착한 뒤, 후배와 함께 제작한 H.O.T. 메인 트윈지와 코팅택, 아크릴 열쇠고리 류의 팬시를 늘어놓는다.
당시 제작되어 판매되는 거의 모든 회지들은 멤버들 커플 지향의 여성향 회지였고 메이저 두 커플을 비롯한 온갖 마이너 커플들의 꽁냥대는 애정행각 또는 사뭇 심각하거나 격정적인 감정묘사, 또는 작가가 아끼는 멤버에 대한 애정 고백 등이 그 주 내용이었다. 그림을 잘 그리는 게 인기의 한 요인이긴 했다. 그러나 압도적인 퀄리티로 오빠들에 대한 극강의 판타지를 채워주는 게 아니라면, 각 멤버의 캐릭터를 살린 코믹한 전개나 설정 잘한 시리어스물, 또는 방송이나 후기를 잘 재현하거나 그 가상 비하인드 스토리를 설득력 있게 전개하는 쪽이 좀 더 인기가 많았다.
예전 참가 때의 상황이나 온라인상의 평판으로 미리 혼잡이 예상되는 부스는 따로 빼내어 벽 쪽에 배치하는 게 관례였는데, H.O.T. 부스 몇몇도 미리 벽 쪽에 배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우리 바로 옆 부스에 떡 하니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당시의 초인기 작가, 어째서 벽 부스가 아닌 거지? 왜!
아니나 다를까 일반 참가자 입장이 시작되자마자 비명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코믹월드〉는 행사장 내에서 뛰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데 이런 만화 행사에 익숙하지 않은 가수 팬들 중 일부는 행사장 안에서 꽤나 위험한 행동들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여지없이 옆 부스 앞에 엄청난 인파가 몰렸고 통로를 꽉 채운 사람들에 밀려 우리 부스 디피가 부서지기 시작했다.
당시 대부분의 디피는 우드락(스티로폼을 압축한 보드)에 손으로 그리거나 인쇄한 종이를 붙여, 같은 우드락으로 만든 받침대 위에 세우거나 붙이는 형태였다. (조금 앞서가는 동아리에서 현수막을 인쇄해 디피로 쓰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우드락이라고 해 봤자 살짝 더 단단한 스티로폼일 뿐, 출신을 증명이라도 하듯 사람들의 압박에 하릴없이 부서지기 시작했다. 연신 “밀지 마세요”를 외쳐봤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옆 부스의 굿즈들이 매진되기 시작하고 이내 주변 부스에는 평화가 찾아왔지만, 그나마 줄 서서 기다리면서 주변 부스 물건 하나씩 사주던 분들마저 사라져 뭔가 시원섭섭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되돌아보면 그림이 엄청나게 퀄리티 있는 것도 아니었고 센스가 대박도 아닌, 그럭저럭 귀여운 스타일에 조그마한 아이디어로 승부하던 회지와 팬시로는 행사에서 큰 대박을 바라기는 어려웠다. 사실 첫 회지를 들고 코믹에 참가했을 때의 생각은 첫 회지를 뽑은 모든 부스 주인장들이 그렇겠지만 목표는 본전, 오로지 본전이었다. 물론 그 목표가 부산 내려갈 편도 차비로 바뀌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지만.
아마추어 만화 행사인 〈코믹월드〉에서 팬아트와 팬코스프레가 분리되어 나오게 된 것도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전에는 코스프레한 만화 캐릭터가 북적이는 회장 곳곳에서, 역시나 형형색색 헤어스타일의 코스어들이 서로를 덮치는 퍼포먼스가 심심찮게 벌어졌다. 그럴 때마다 회장 곳곳에서 하늘을 찌를듯한 팬들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분리되어 나온 팬 행사는 크게 판매전과 무대행사로 이루어진 형태였다. 무대행사는 해당 팀을 코스프레한 코스어들이 그 팀의 노래에 맞춰 안무를 선보이는 것이었다. 과거에는 무대까지는 아니고 야외촬영에서 개인 포즈나 단체 포즈, 커플 포즈를 잡아주는 것이 메인이었는데 팬 행사로 운영하게 되면서 좀 더 팬들이 좋아할 만한 컨텐츠를 선보이게 된 것이다. 나름 객석이 꽤 되는 무대에 고퀄의 코스프레를 갖춘 코스어들이 대열을 맞추고 음악이 빵빵하게 울려 퍼지며 안무가 시작되면, 신기하게도 분명히 진짜 가수가 아닌데도 그 오라와 노래와 분위기에 행사장은 순식간에 열광의 도가니가 되었다.
그렇게 팬들이 모여 만든 행사는 만화행사의 일부분으로 참가했을 때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걱정할 필요 없이 팬들의 뜻대로 행사운영이 가능했지만, 그만큼 참가자수가 줄어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거기다 팬아트의 운명이란 것이 아무래도 그 가수와 씬의 흥망성쇠와 일치하는 법이라 2000년대 초반, 그룹들의 침체기가 시작되면서 함께 사그라들게 되었다.
그리고 양적인 면이나 충성도로 봤을 때 팬아트의 시작이자 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H.O.T. 팬아트가 점점 힘을 잃으면서 이러한 흐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물론 이후에 등장한 보이그룹들의 팬아트가 그 인기에 힘입어 어느 정도 존재감을 보였지만 거의 온라인 중심의 활동이었고, 2000년대 초반 팬 행사의 침체 이후 팬아트 관련으로 다시는 그 정도로 열정적이고 조직적인 흐름은 일어나지 못했다.
아무것도 모르면 용감해질 수 있다고 했다. 좋아하는 H.O.T.를 좋아하는 그림과 글로 그려낸다는 공통점으로 모두들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렇게나 불타오를 수 있었던 시절, 지금 스스로 돌아봐도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지금도 한 번씩 책장 한 켠에 자리 잡고 있는 당시의 회지와 팬시들을 꺼내 볼 때면 나도 모르게 살며시 미소가 지어지는 것은, 대상에 대한 만든 사람들의 전혀 통제되지 않은 애정이 작품 전체에서 부끄럽지만 대책 없이 흘러넘치는 게 절절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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