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순간이라도 찬란할 수 있다면”
2015년의 아이돌 시장은 흔히 말하는 ‘비교적 작은 규모의 회사에서 등장한 대형 아이돌’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방탄소년단은 그중 하나며, 누군가는 이들을 대안적 존재라 여길 정도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학교 시리즈” 등을 지나 발표한 두 번의 “화양연화”는 많은 이들이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좋은 작품이었고, 그 결과 많은 호평과 함께 팬들의 좋은 반응도 얻었다. 흥행의 측면에 있어서도 성공을 거뒀지만 씬 내에서의 입지도 다졌고, 그 과정에서 멤버들의 진면모를 보여줄 기회도 많이 얻었다.
“화양연화”가 시사하는 지점은 뚜렷하다. 불안한 소년의 자화상 같은 표현으로 대체되는, “화양연화”라는 텍스트 자체가 가진 아름다운 포인트는 이미 많은 이들이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정체성을 관통하는 비주얼과, 가사를 통해 건드리는 취향의 지점도 뚜렷하다. 그뿐만 아니라 이것이 방탄소년단이 선보이는 장르 속에서 음악적으로도 잘 연결되어 있다. 밝음과 어두움을 건너뛰듯 오가는 전개는 역설적으로 그 간극이 커서 자연스럽다. ‘고엽’에서 ‘Outro’로, 또는 ‘I NEED U’에서 ‘잡아줘’로 이어지는 등의 일부 구간은 빈틈 없이 이어져 듣는 이를 감탄하게 하지만, 그러면서도 ‘쩔어’나 ‘흥탄소년단’과 같은 트랙이 함께 등장하는 것이 전체적인 콘셉트 속에서 결코 부자연스럽거나 어설프지 않다는 것이다.
이번 두 장의 미니앨범은 특히 장르 음악 내에서의 흐름을 읽어낸 몇 트랙의 소리 구성이나 편곡이 돋보였다. 그러나 굳이 그러한 포인트가 아니더라도 장르 음악으로서의 접근과 풀어내는 방식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장르적 미학을 살리기 위해서는 멤버들끼리 가진 공통된 합의 이상으로 취향이 어느 정도는 맞아야 하고, 그것이 하나의 장르로 연결되어야 가능하다고 본다. 단순히 ‘잘 나왔다’ 이상으로 앨범 뒤에는 수많은 토론과 작업이 오갔을 것이다. 여기에 더욱 매끄러워진 표현, 상황을 뚜렷하게 그려내는 가사는 관심 있게 봐야 할 지점이다. 여전히 ‘Ma City’와 같은 몇 곡에서는 투박한 가사를 선보이지만, ‘Intro: Never Mind’나 ‘이사’ 등의 몇 트랙에서는 완성도 높은 가사를 만날 수 있다.
잘 만들어진 옷을 받아서 멋지게 소화하는 것도 좋은 능력이지만, 직접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재단하여 입는 것도 훌륭한 능력이다. 작업 중 절대다수는 멤버들이 함께 만들어 가는 식이기 때문에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올 뿐만 아니라, 직접 퍼포먼스로 이어가는 데도 좀 더 유기적으로 적용될 수밖에 없다. 직접 만든다고 해서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다. 잘 만들어야 가치가 증명되는 것이고, 방탄소년단은 이를 해냈다고 볼 수 있다. 방시혁, 피독, 슬로우 래빗, 브라더수, 수프림보이 등의 조력자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그 조력자들마저도 이제는 방탄소년단이라는 팀과 긴밀하게 작업하는 이들이 다수인 만큼 안정적인 팀워크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비주얼 측면에서 방탄소년단이 가진 아름다움은 길게 분석하거나 설명하지는 않겠다. 어쩌면 직접 표현했던 ‘위태로운 청춘의 단면’이라는 말이 가장 적절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는 다른 걸 따라잡지 못하더라도 뮤직비디오만 봐도 알 수 있다. 다만 그런 시각적 영역이 앨범 전체와 긴밀하게 붙어 있다는 점은 크게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다. 이는 멤버들의 성장(음악적, 정신적 성장 외에도 발육까지 포함해서)이나 점점 아이돌이라는 직업을 인식하는 듯한 측면, 좋은 음악과 함께 아이돌다움(!)이 함께 커 가는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감탄사가 나올 지경에 이르게 된다(당연히 팬들은 더욱 그럴 것이다).
소년이라는 존재는 위태롭고 불안하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방탄소년단은 그러한 이미지를 잘 차용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에 현재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반영해 내기도 했다. 그러한 콘셉트가 아이돌 시장에서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하기도 했다는 점에서 방탄소년단은 좋은 기류를 만난 셈이었고, 다르게 말하면 그러한 흐름의 중심에 방탄소년단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훌륭한 시즌을 보내고 난 방탄소년단에게 그다음은 이제는 불안함이 아닌 기대라고 할 수 있다. ‘좋은 작품을 만드는 능력’을 궤도 위로 끌어올린 팀이기 때문에, 이제는 ‘잘할까’라는 생각이 아닌 ‘무엇을 할까’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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