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의 기사에서는 SM 엔터테인먼트(이하 ‘SM’)가 제시하는 ‘NCT(New Culture Technology)’의 의미와, 그것이 구현되는 새로운 사업들을 둘러보았다. 이어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신인 그룹 NCT(Neo Culture Technology)를 살펴본다.
NCT 등장
암전된 SM타운 씨어터, 연습생들이 트레이닝할 때 녹화하는 영상의 인사말들이 하나씩 들려오기 시작한다. 한 명의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각기 다른 색의 빛 덩어리가 나타나고, 수없이 많은 목소리가 겹쳐지는 속에 빛 덩어리들은 DNA 구조로 뭉쳐진다. 이 알록달록한 DNA 나선들은 곧이어 저마다의 색깔로 채색되며 변신해 나간다. 그리곤 흰 옷에 흰 가면(드문드문 은색 가면을 쓴 이도 있다)을 쓴 ‘루키즈’들이 객석 통로로 입장, 좌우와 중앙의 세 블록으로 나뉜 객석을 에워싼다. 이들의 가면과 의상은 레이저 프로젝션을 받는 스크린으로 이용되다가, 몇 명인가가 가면을 벗고 다시 극장은 암전된다.
네이버 TV캐스트를 통해 일반공개된 티저 영상이 흘러나온 것은 이때였다. 이어 열 명의 멤버가 무대에 올라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두 번째 티저 영상이 상영된 뒤,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의 프레젠테이션으로 진행되었다. 다양한 내용이 소개되었으나 언론과 팬, 대중들을 떠들썩하게 한 주된 논점은 크게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NCT는 40명?
일부 매체는 NCT가 40명이라는 보도를 내보냈다. 물론 “아버님만 아신다”는 SM 팬들의 격언이 있기는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처음 루키즈가 입장한 인원은 수십 명이었으나, 그중 가면을 벗고, 무대에 실제로 오른 인원은 열 명이었기 때문이다. NCT라는 기획이 여러 개의 유닛을 포함하기는 하나, NCT가 40인조 그룹이 되기보다는 10인을 전후한 규모의 그룹으로 대중을 만나게 되리라 유추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NCT48?
NCT 기획의 핵심은 세계 각지에 현지화된 유닛을 데뷔시켜, ‘n개의 도시(city)’에서 활동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지역별로 활동하는 대규모 그룹인 AKB48 프랜차이즈를 연상하는 이도 많다. 그러나 ‘NCT 유닛 간의 콜라보레이션’, ‘한류 3단계의 최종장으로서의 현지와의 합작’ 등의 키워드로 미루어 NCT의 각 도시 유닛은 거의 별개의 그룹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티저 캐치프레이즈인 “꿈의 동기화(Synchronization of your dreams)”에서 동기화는 서로 다른 개체 간에 이뤄지는 작용을 말한다. 즉, NCT는 모든 유닛을 총괄하는 브랜드이자 아티스트 풀로서 존재하고, 각 도시의 유닛은 상당한 독립성을 갖게 될 듯하다.
더 적극적인 현지화
SM이 작년 말 중국의 아이돌 육성 TV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등 굳이 중국 현지 선발에 관심을 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NCT에서 말하는 ‘현지화’란 보다 적극적인 의미로 보인다. “하나의 좋은 곡을 각 나라의 언어로 발표”하며 현지화를 거친다고는 하지만, 이 역시 지금까지 일본에서 편곡을 부분변경하거나 현지어로 녹음하는 것보다는 좀 더 큰 차이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음악은 기호의 문제여서, 담고 있는 정서와 그것이 보여지는 형태는 어쩌면 인종이나 언어보다도 큰 장벽이 되기 때문이다. ‘세계 속의 케이팝’이 마이너리티 혹은 힙스터 문화인 것도 같은 이유다. 그렇다면 현지화의 범위는 필요하다면 음악의 디테일, 뮤직비디오, 멤버의 구성이나 활동 방식까지도 넓어질 수 있지 않을까.
음원 시장이 사실상 세계 통합을 향해 가고 있지만, 미디어 시장은 그렇지 않다. 해외 팬들이 케이팝 음원을 구매하는 일에는 어려움이 없다. 반면 해외 팬들이 방송이나 언론, 혹은 콘서트를 통해 스타들을 접하는 데에는 결정적 한계가 있다. 국내 팬은 아이돌이 해외 활동을 떠나면 애정을 쏟을 곳이 부족해 적적하지만, 해외 팬들에겐 연중 대부분의 기간이 그렇다.
따라서, 엑소-K와 엑소-M으로 구성됐지만 함께 데뷔하여 활동의 상당 부분도 함께했던 엑소의 모델과는 달리, NCT는 데뷔 자체를 달리 하여 해당 지역에 주로 상주하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팬들은 각자 현지의 유닛에 집중하고, 타지역 NCT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쏟는 구도 역시 가능하다. 물론 서울에 거주하는 팬이 리우데자네이루 NCT의 멤버에 ‘덕통사고’를 당해 팬이 될 수도, 세네갈 NCT의 현지화된 음악이 유난히 취향에 맞을 수도 있지만, 서울 NCT와 접근성을 비교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AKB48 프랜차이즈와의 가장 큰 차이점 역시 이 부분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굳이 비교하자면 일본 본토와 거리가 있는 자카르타의 JKT48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멤버 유동성?
이러한 정황에서 ‘멤버 유동성’란 키워드를 다시 살펴보면, 팬덤에 큰 타격을 줬던 사례들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 그려진다. 우선 NCT라는 아티스트 풀에 가입 또는 탈퇴가 유동적일 수 있고, 멤버 변동에 민감한 국내 시장 이외의 지역에서 필요에 따라 변동이 이뤄질 수도 있다. 혹은 ‘유닛 간의 콜라보레이션’이 연장되어 유닛별 이합집산이 이뤄지는 방식도 생각할 수 있다. 보도자료에 미묘하게 표현됐지만 1) “올 봄 첫 번째 유닛의 데뷔를 시작으로”, 2) “상반기 내 서울과 도쿄에서 활동할 팀”이라는 서술은, 첫 유닛과 서울 NCT가 각기 별개의 유닛임을 시사한다. 종합하면 엑소의 모델보다는 많이 확장된 슈퍼주니어에 가까워 보인다. 웬만한 코어 팬들도 멤버를 다 모를 정도로 큰 ‘브랜드’가 있고, 국내 활동 유닛은 고정되며, 때때로 과외활동처럼 유닛을 짜기도 하는.
한류 3단계론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는 몇 년 전부터 ‘한류 3단계론’을 주장했다. 1단계가 컨텐츠의 단순 수출, 2단계가 현지와의 협조 및 확장이라면, 3단계는 현지와의 합작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 그는 “2016년이 되어서야 그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에” 3단계에 돌입한다고 선언했다. 그 구체적인 상으로서의 NCT를 살펴보면 현지와의 합작은 ‘현지에서의 제작’에 가까운 이야기다. 외국에서 제작한다면 그것을 ‘케이팝’이라 부를 수 있을까. 이미 오래전부터 ‘외국인이 만든 곡은 케이팝인가’, ‘외국인이 부르는데 케이팝인가’ 같은 논란 혹은 말장난으로 반복돼 온 이 질문은, NCT가 성공적으로 진행된다면, 기어이 그 대답을 찾을지도 모른다.
약 10년째 케이팝이 해외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고, 해마다 ‘케이팝은 끝났다’는 말도 들려온다. 세계 컨텐츠 시장이 제3세계 문화예술을 소비해온 방식을 살펴본다면, 그 시기가 논의의 대상일 뿐 언젠가 끝난다는 것만은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팬덤이 마이너리티에 집중되고 주류 문화로 진입하지 못하는 이상은 말이다. 영미권 주류 문화에 대한 케이팝의 도전은 그만큼 무거운 일이다.
그런데 질문을 ‘케이팝이 무엇인가’, ‘무엇이 케이팝을 만들었나’로 돌려본다면 결국 답은 육성 시스템을 중심에 둔 혼종적, 복합적 문화 상품이란 결론에 도달한다. NCT는 이러한 케이팝의 ‘정수’를 수출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제작 방식과 일부의 특질이라는 뼈대만을 가져가, 인물과 정서, 활동 방식 등의 살은 상당 부분을 현지에서 직접 조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한국 국적의 팝인가. 아니다. 하지만 이것이 케이팝인가. 답은 ‘그렇다’ 또는 ‘아무래도 상관없다’이다. ‘케이팝’과 ‘한국’의 분리인 것이다.
극단적인 경우, 마드리드 NCT의 팬은 NCT가 한국에서 온 것인지 모를 수도 있다. 심지어, 마드리드 NCT가 NCT란 브랜드에 속해 있다는 것조차 의식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 그것은 삼성전자가 하고 있는 일이고, 미국에서 시작한 상당수의 다국적 기업들이 하고 있는 일이다. 케이팝이 한국 것인지 몰라도 그만이다. 이 정도가 되면 케이팝은 ‘뮤지컬’ 같은 하나의 장르일 뿐, 뉴욕이나 런던에 가면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에 가보고 싶지만 서울에서 현지화된 뮤지컬이나 창작 뮤지컬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그런 것이 되니 말이다. 케이팝이, 언젠가 끝날 ‘한국 케이팝’에서 탈출하는 것이다.
지켜본다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는 ‘한류 3단계’의 완성으로 NCT를 소개하는 자신의 “신고식”을 보아, 강타, SM C&C의 김민종 이사가 “지켜보고 있다”고 언급했다. 돈을 잘 벌자는 의미도, 꿈을 이루자는 의미도, 신인그룹 NCT가 스타가 되라는 기원의 의미일 수도 있다. 그 진의는 역시 ‘아버님만 아실’ 것이다. 하지만 이 격언은 ‘그러니 지켜봐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NCT와 SM의 야망은 지켜볼 가치가 충분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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