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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불어온다는 믿음: 오마이걸 – ‘Windy Day’

머리가 헝클어지고, 식탁보가 날아가고, 나무를 붙잡지 않고서는 도저히 버틸 수 없을 만큼 강풍이 불어오는 와중에도 소녀들이 웃는 까닭은 그 바람을 ‘너’라고 믿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이별 노래가 내 얘기 같은 날이 있다. 그 반대인 경우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별하고 돌아오는 길 이소라의 노래를 듣고 그게 너무나 내 얘기 같아서 눈물 흘리지 않은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으랴. 사실 그 노래들은 나의 이별과는 아무 상관 없는 노래들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믿는다. 이 노래가 나를 위한 이별의 노래라고, 오늘의 이 멜랑꼴리한 날씨 역시 네가 나를 떠나가서 그런 것이라고.

오마이걸의 미니앨범 3집 리패키지 타이틀곡 ‘Windy Day’는 사랑에 빠진 내가 불어오는 바람에 너를 떠올리고 설레하는 노래다. 머리가 헝클어져도 기분은 좋다. 네가 내게로 왔으니까. 식탁보가 날아가고, 나무를 붙잡지 않고서는 도저히 버틸 수 없을 만큼 강풍이 불어오는 와중에도 소녀들이 웃는 까닭은 그 바람을 너라고 믿기 때문이다. ‘Windy Day’ 속 소녀의 설렘은 실체가 있는 ‘너’의 말이 아닌 ‘나’의 믿음에서 비롯되고 있는데, 애초에 ‘Windy Day’에서 ‘너’는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너’라고 믿는 바람이 나에게 불어올 뿐이다. 나는 너와 전혀 상관없는 날씨를 보면서 너를 떠올린다. 흔들리는 나무와 바람개비가, 내가 널 좋아한다는 증거가 된다. 나무와 바람개비는 중요치 않다. 저 자리에 풍차가 들어가도 상관없다. 중요한 건 네가 내게 불어오고 있다는 그 믿음이다. 노래와 뮤직비디오는 화사한 봄처럼 진행되지만 날씨는 궂은 비, 아니 그보다 더 심한 날씨다. 나는 비가 오는 날에도 너를 떠올리고 봄이 되었나 생각할 만큼 너를 좋아하고 있다.

상자 속의 바람

하루 종일 싱숭생숭한 내 마음을 설레게 만든 이 바람은 어디서 시작되는가. 바람은 너도 아니고, 너와 관련된 곳에서 불어오지도 않는다. 사슴을 발견한 지호가 쏜 총에서 불어오고, 어두운 숲을 헤매던 유아가 연 상자에서 불어온다. 바람은 내가 일으킨 것에 가깝다. 내 마음속 불어오는 바람은 너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러나 내가 강풍 속에서 너를 떠올리며 설레는 까닭은 너를 사랑하고 있으니까. 비가 오는 날에도 내 맘은 봄인 것이다. 진짜로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너는 내게 진짜로 소중하기에 내게 보이지 않지만, 나는 너를 느낄 수 있다. 느낄 수 있다고 믿는다. 화창한 봄은 나의 마음속이다. 바깥에서 구름이 비를 뿌려도 내 맘은 그게 아니다. 내 맘은 너로 인해 봄이다. 어쩌면 너를 좋아하는 나로 인해 내 맘은 봄이다. 나를 흔드는 게 너이니, 나는 기꺼이 흔들릴 수 있다. 기꺼이 헝클어질 수 있다.

오마이걸 - Windy Day MV
사슴이 되는 소녀들

그러나 해가 저물고 밤이 되면 소녀들은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유아가 연 상자에서 바람이 불고, 비니는 상자를 연 유아를 보게 된다. 지호가 사슴을 보고 찾아간 그곳에는 사슴은 없고 거울만이 있다. 거울에 지호가 비친다. 너의 말은 정말 사랑의 말이었을까? 모든 것을 알게 된 소녀들은 스스로 사슴이 된다. 더 이상 사슴을 찾는 지호는 없다. 사슴뿔 머리띠를 하고 사슴처럼 도망치는 소녀들만이 존재한다. 내가 사슴이라 믿고 찾던 너는 사실 나를 비추는 거울일 뿐이었다. 나의 감정은 오직 나의 감정이다. 너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나만의 감정. 그렇게 너와 관계 없는 바람이 불어오면 그 바람은 견뎌 내야 하는 바람이다. 사슴뿔을 달고 난 후 소녀들은 표정 없이 뿔을 잡고 바람을 견딘다. 뿔은 내게 남은 마지막 마음이다. 이것을 잃으면 이제 남은 것이 없다.

오마이걸 - Windy Day MV

오마이걸의 전작 ‘Liar Liar’를 이끄는 감정은 설렘 자체보다는 설렘이 가져오는 불안에 가까웠다. ‘나의 마음이 이런데 너의 마음은 어떻지? 나의 마음과 너의 마음이 다르면 어떡하지?’ ‘Liar Liar’에 비해 ‘Windy Day’에는 불안이 존재하지 않는다. 근거 없이 굳건한 믿음만이 존재한다. 이것은 맹신에 가깝다. ‘Windy Day’ 속 나에게 불안이 들어갈 틈 같은 건 없다. 나는 이미 너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바람이 불어온다. 네가 불어온다. 네가 불어온다고 믿는다. 이 바람은 너무나 강하고 견디기 힘들지만, 이 바람이 너라고 믿는다면 나는 힘들지 않다. 너라고 믿으니까, 머리가 엉켜도 나의 기분은 좋으니까. 나는 괜찮다.

글: 김누누

By Editor

idology.kr 에디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