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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스 : 그들이 살아남는 법 (2)

자극적 콘텐츠를 팬들에게 더 이상 강요하기가 어려운 시점이었다. “죄인아 피눈물 흘려라”에서 “나 사랑하지?”로, 글리치합에서 포 온 더 플로어로 회귀한 것은 일종의 리트머스 실험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혹독한 시장 속에서 정통파를 노리며 데뷔했으나 ‘다칠 준비가 돼 있어’로 ‘어그로 마케팅’을 시도한 빅스의 이야기는 빅스 : 그들이 살아남는 법 (1)에서 이어진다.

지난 글에서 ‘다칠 준비가 돼 있어’로 어그로 마케팅에 시동을 걸었던 빅스의 행보를 정리해 보았다면, 이번 글에서는 콘셉트의 자극성이 점진적으로 강화되었음에도 그 정도에 비해 비교적 무난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분석해 보려 한다.

내가 무릎을 꿇은 것은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 SBS

‘hyde’ 뮤직비디오에서 빅스는 누가 누군지 식별하기 어려운 메이크업과 더불어,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싶은 아이템(해골은 그렇다 치더라도 뱀, 거미, 환형동물)을 배치함으로써 ‘다칠 준비가 돼 있어’보다 구설에 오르기 좋은 콘셉트를 완성하였다. 아이돌치고는 과한 비주얼계 콘셉트가 비교적 무난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것은 ‘hyde’라는 곡을 잘 표현하기 위한 이유 있는 수단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작사가 김이나는 <지킬박사와 하이드> 속 이중인격이라는 콘셉트를 적절하게 녹여내 악곡 내의 드라마를 처절한 비극으로 설정하였고, 이 드라마가 곡과 의상, 안무와 적절히 조화되는 순간 ‘어그로’의 레이어는 한층 정교해졌다. 가사 내용을 구현하는 안무는 빅스의 데뷔 전부터 이미 시장에 자리 잡은 유행이었지만, 이 곡만큼 가사와 안무 사이의 밀착도를 높인 경우는 없었다. 멤버들의 표정 연기와 더불어 “나 설마 그런 말을 했을 리가”(레오) “미칠 것 같아”(라비) 등으로 대표되는 개인 안무는 물론, SBS <인기가요> 컴백 무대에서의 팀 안무 구성은 세 명씩 흑/백의 의상을 입혀 지킬과 하이드의 인격이 바뀌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콘셉트를 단지 아이돌이라는 상품의 판매고 상승을 위한 부차적 요소로만 취급했다면 나올 수 없는 타이틀곡이었다.

‘hyde’로 빅스의 인지도는 한 단계 더 상승한다. (2012년 갖 데뷔했을 무렵 업로드된 <빅스 TV> 속 멤버의 욱일승천기 의상이 2013년 여름에야 비로소 논란의 도마에 올랐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건은 그들의 인지도 상승을 증명하였다.) 물론 콘셉트를 철저하게 구현하려고 애쓴 멤버 본인들의 노력도 언급되어야 마땅하다.

“나 설마 그런 말을 했을 리가” 레오의 개인 안무 파트. 손을 벌벌 떠는 연기가 인상적이다. ⓒ SBS
“미칠 것 같아” 라비의 개인 안무 파트. 프로 정신이 느껴진다. ⓒ SBS

데뷔 후 첫 지상파 1위를 달성한 ‘저주인형’은 이러한 맥락들 속에서 ‘hyde’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케이팝, 특히 아이돌의 곡이 EDM의 악곡 요소를 차용하는 역사는 아이돌 시장이 유행을 선도하기 시작했던 역사와 맞물려 있다. 포 온 더 플로어(four on the floor)의 프로그레시브 하우스를 양념으로 사용하는 작법도 상당히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다. 물론 덥스텝이나 트랩의 요소가 등장한 지도 좀 됐으나, 이는 브레이크에 삽입되는 정도이지 곡 전개의 주된 요소로 쓰이는 경우는 드물었다. 빅스도 거의 대부분의 타이틀곡에 걸쳐 워블 베이스(wobble bass)와 사이드체인(side-chain) 등을 적극 활용하는 EDM 기반의 팝 작법을 구사해 왔다. 그러니 ‘hyde’와 ‘저주인형’는 글리치합(Glitch Hop, 보도자료에서 글리치합이라는 단어를 보았을 때의 놀라움이란), 브로스텝을 전반에 끼얹은 곡으로서, 콘셉트를 명확하게 설정한 뒤 그 과격한 변동 폭에 맞추어 가장 잘 어울리는 곡을 선택한 결과라고밖에 볼 수가 없었다.

하나의 스토리가 가사, 의상, 안무, 사운드 등의 구성요소를 관통하는 기획은, 단순히 어그로를 끌어 화제를 창출하는 단계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상품에 완결성을 부여하는 결과를 낳았고, 이는 곧 자극적 마케팅에 대한 설득력으로 이어졌다. ‘저주인형’의 경우, ‘구더기까지 나왔는데 도대체 여기서 뭘 더 할 수 있을까’라는 예상이 무색하게도 “죄인”, “피눈물”, “저주” 같은 단어가 들어가는 가사와 맨살에 호치키스질을 하는 뮤직비디오로 사람들을 더 당황하게 했다. 전작 ‘hyde’가 고스 룩을 차용한 비주얼계 패션에 머물렀다면 이번에는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를 고스 문화의 핵심 요소로 점철해 버리며 결국 텔레비전에 해골 롯드를 치켜들고 나와 지상파 1위의 기쁨을 맛보는 진풍경을 연출한다.

‘저주인형’ <인기가요> 컴백 무대에서. 전 발표곡의 가사를 재활용하는 모습에서 탄탄해진 팬층과 인지도에 대한 심리적 여유가 엿보인다. ⓒ SBS

이 글을 작성하는 현재, 빅스는 새 타이틀곡 ‘기적’으로 컴백하여 <인기가요>에서 통산 두 번째 지상파 방송 1위를 차지한 상태이다. ‘저주인형’의 1위는 빅스가 일정 이상의 팬층을 갖추었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그간의 파격적인 콘셉트를 두고 빅스 팬들 사이에서도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던 상황인지라 젤리피쉬 입장에서도 인지도 상승을 명목으로 한 자극적 콘텐츠를 팬들에게 더 이상 강요하기가 어려운 시점이었다. “죄인아 피눈물 흘려라”에서 “나 사랑하지?”로, 글리치합에서 포 온 더 플로어로 회귀한 것은, 어깨의 힘을 빼도 (즉 어그로를 좀 덜 끌어도) 1위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일종의 리트머스 실험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미 ‘대.다.나.다.너’와 ‘여자는 왜’, ‘대답은 너니까’를 통해 이와 비슷한 맥락의 간 보기가 이루어진 바 있고, 전작 ‘저주인형’이 논란을 일으킨 것에 대한 부담 또한 이번 타이틀곡의 콘셉트 선정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님들아 우리가 어깨에 힘 빼도 계속 나 사랑할 거지… ⓒ SBS

‘기적’의 콘셉트를 “스팀펑크”라고 주장하며 컨셉돌에서 판타지돌로의 진화를 천명하는 젤리피쉬 측의 보도자료는 그래서 의미심장했다. 도대체 어디가 어떻게 스팀펑크인지 알 수 없는 이 상황은, ‘다칠 준비가 돼 있어’에서 뭘 두고 뱀파이어라 하는지 납득할 수 없었던 과도기적 양상과 무척 닮아 있기 때문이었다. 그와 동시에 무릎을 탁 치며 감탄했던 이유는 ‘판타지돌’이라는 용어를 통한 자체적 정의에 있었다. 이는 그간 빅스의 활동 내역을 포함, 향후 시도하게 될 콘셉트를 가장 잘 큐레이팅할 수 있는 탁월한 명칭이다. 더불어 젤리피쉬가 최대한 계획적이고 장기적인 흐름 안에서 빅스의 콘셉트를 설계해 나갈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기적’은 그룹 통산 두 번째 지상파 방송 1위를 차지하였고, 결과적으로 빅스는 아이돌치고 상당히 넓은 스펙트럼 안에서 다양한 콘셉트를 시도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받은 셈이다.

‘기적’으로 두 번째 1위와 두 번째 과도기를 맞은 빅스. 다음 곡에서 음원 차트 선전을 위해 덜 자극적인 콘셉트로 대중들과의 접점을 넓히려 할지, 아니면 또 혀를 내두를 만큼 기이한 콘셉트를 들고 나타날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빅스에게는 대중 인지도를 관리하고, 음원 차트에서의 부진을 해결해야 하는 큰 과제가 남아 있다. (‘기적’의 1위 기사에 붙어 있던 댓글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은 “얘네 누구야? 아 좀비~”였다.) 발라드 전문으로서 젤리피쉬는 항상 음원 차트 상위권을 사수해왔고, 차트 상위권이 주는 안정감을 누려왔다. 그런 입장에서 음원 차트 부진은 상당히 신경 쓰이는 구석일 것이다. 그러나 치밀한 스토리라인을 구성하여 가사와 노래, 캐릭터의 일관성을 도모하는 기획은 이제 그룹의 아이덴티티로서 고정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콘셉트를 가지고 오든 항상 일정 이상의 퀄리티를 보장해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된다. 퀄리티는 그에 합당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 빅스의 다음 행보가 기다려지는 이유다.

손이 발이라 글의 전개상 캡처가 위처럼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에 미안함을 전하며 다들 예쁘게 나온 전신 컷으로 마무리해 본다. ‘Rock Ur Body’의 소속사 공식 홍보 사진. 이렇게 사파리 공원 아르바이트 같은 발랄한 옷을 입은 적도 있다고 한다. 순서대로 혁, 엔, 라비, 홍빈, 켄, 레오. 멤버들의 평균 키가 180에 수렴하며 프로포션이 좋은 그룹이다. 빅스는 7월 19, 20 양일간 올림픽홀에서 개최되는 단독콘서트를 앞두고 있다. (필자는 예매에 실패했다.) 첫 콘서트의 성공적 개최를 기원한다.

(추신: 이 지면을 빌어 젤리피쉬에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하나 있다. 빅스가 곡이 참 좋습니다 사장님. 리믹스할 수 있게 유료로 아카펠라 좀 풀어주세요 굽신굽신.)

빅스의 ‘기적’이 수록된 “Eternity” 싱글에 관한 아이돌로지 필진들의 단평은 1st Listen : 2014.05.21~05.31에서, ‘hyde’에 참여한 프로듀서 올로프 린드스코그의 인터뷰는 [인터뷰] ‘Swing’(슈퍼주니어 M)의 프로듀서 올로프 린드스코그에서 확인할 수 있다.

김영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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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양

일본어 통번역을 하긴 하지만 다른 것도 많이 합니다.
50인치 티비와 5.1채널 스피커로 음방을 볼 수 있는 삶이 목표.

3 replies on “빅스 : 그들이 살아남는 법 (2)”

다시 봐도 너무 웃겨요ㅋㅋㅋㅋㅋ 글을 흡입력있게 정말 잘 쓰시네요 공감공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