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대 : 랩처럼 촘촘하게 배치된 보컬 어레인지는 마치 90년대 미국 R&B 걸그룹들, 그중에서도 TLC 류의 사운드를 연상시킨다. 그러니까 최근 걸그룹들이 꽉찬, 조금은 난해한 일렉트로닉 작법을 일부 포기하고 좀 더 여유롭게 끌고가는 R&B 혹은 훵키 사운드를 지속적으로 선보이는 것은, 사운드를 통한 구별짓기가 일정 부분 마무리 되고 좀 더 흡인력 있는, 여성적 이미지 메이킹에 유리한 방향으로의 전환을 꾀하는 ‘판’의 변화와도 관련이 있지 않은가 싶은 거다. 똑같이 느슨한 훵키함에 방점을 찍었지만 ‘단발머리’의 경쾌함은 용감한 형제/코끼리왕국의 전작인 ‘짧은 치마’를 압도한다. (비주얼조차도.) “거울 앞에 하루종일 / 새로운 사랑하긴”처럼 힙합스럽게 탄력적인 가사를 운용해 리듬감을 살린 것이나, 후렴구 후반에 “우우우…”로 공백을 만들어 화성적인 모멘텀을 이어나가는 것도 대단한 센스다.
미묘 : ‘짧은 치마’가 ‘흔들려’의 색조를 어느 정도 유지하여 매캐한 공기를 연출했다면, ‘단발머리’의 목표는 전작에서 받은 시선을 보다 이입하기 좋은 ‘사랑스러움’으로 연결하는 것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팬시한 테마 속에 애매한 복고풍 등이 뒤섞여 작은 물음표를 떠올리게 하는 뮤직비디오처럼, 그것이 ‘어떤 사랑스러움이냐’가 중요하다. 탬버린이 겹쳐진 산뜻한 비트와 영롱한 로즈 피아노에 다소 싼티 나는 브라스의 조합은 용감한 형제 특유의 매력을 잘 드러내고, 메이저 7th와 마이너 7th의 차이를 간혹 찌르며 움찔하게 만드는 보컬은 유쾌함을 더한다. 거기에, 용감한 형제의 게걸스러운 랩과 감탄사가 중간중간 빈자리를 메우며 들어오면, 해맑은 걸그룹의 세상 물정 모르는 인형의 집이 될 수 없는, 적당히 때 묻은 공간이 된다. 그리고 그것은 전작에서의 흐름을 해치지도, 뒤늦게나마 한없이 달콤한 콘셉트를 선보인 어느 선배 그룹의 전철을 밟지도 않는다. 마침 여름이기도 하고, 현명한 선택이다.
유제상 : ‘짧은 치마 (Miniskirt)’의 뜬금포 이래로 5개월 만에 나온 미니 앨범의 타이틀곡. 멜로디, 가사, 비트와 뮤직비디오의 분위기에 이르기 ‘짧은 치마 2’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전작의 성공 공식을 따랐다. 다만 이것이 안이하지 않게 구현된 것이 시크릿의 ‘Magic’-‘Madonna’ 시절을 연상시킨다. 이제 AOA가 모두 몇 명인 그룹인지 아는 사람이 많아지겠네요. 감축드립니다.
Draft 코너는 주목할 만한 아티스트의 타이틀곡만 빠르게 리뷰한다. ‘단발머리’가 수록된 “단발머리” 미니앨범에 관한 필진들의 단평은 1st Listen : 2014.06.11~06.20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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