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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에 알던 가수의 새로운 앨범을 듣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일반적으로 해당 아티스트가 이전에 선보인 음악과 디스코그래피에 대해서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동시에 그 아티스트의 새로운 모습을 같이 보고 싶어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새 앨범은 정말 온전히 그 앨범만으로 평가받지 않는다. 그 아티스트가 지나온 디스코그래피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가수와 앨범에 대한 이러한 통시적 관점에 의해서 어떤 사람은 ‘자기 복제’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과격한 변화는 ‘장르와 팬에 대한 배신’이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혹자는 엄청나게 파격적인 시도도 높은 완성도와 함께 라면 ‘훌륭한 변신’이기 때문에 이는 단지 완성도의 부속품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훌륭한 변신도 이전, 이후의 앨범과 같이 놓였을 때 변화의 방향성이 납득될 수 있어야 한다. 이 앨범이 디스코그래피에서 혼자 툭 튀어나온 낭중지추가 된다면 이는 해당 아티스트의 플루크나 소포모어 징크스의 원인 정도로 취급된다. 기존의 색깔과 새로운 측면을 만약 비율로 나타낼 수 있다고 해도 어느 정도가 신곡을 위한 황금비율인지는 정해져 있지 않다. 다만 우리가 아는 것은 새로운 앨범은 이전의 음악과 아주 느슨한 최소한의 연관성이 존재해야 하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며, 동시에 (아주 뻔한 말로) 잘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전의 앨범은 없지만 그 캐릭터를 이미 안다고 생각하는 아이돌의 솔로 앨범은 어떻게 들어야 할까.
디오의 솔로 앨범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첫 트랙, 타이틀곡을 들었을 때 ‘예상과는 좀 다르다’와 ‘하지만 이럴 줄 알았다’의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타이틀곡 ‘Rose’는 디오라는 가수가 평소에 보여준 색깔과는 약간 다르다. 엑소라는 그룹 안에서 디오는 중간 음역대에서 특유의 음색을 잘 활용하는 멤버다. 또한 여기에 리듬감과 (아마도 본인의 취향이 반영된) 기교를 더해서 R&B 장르를 잘 소화하는 보컬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R&B는 현재 우리가 주로 듣는 것보다는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에 빌보드에서 많이 들을 수 있었던 웅장한 백 사운드와 귀에 딱딱 박히는 리듬, 큰 스케일을 가진 컨템포러리 R&B에 가깝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유영진과의 듀엣 ‘Tell me (What Is Love)’이다. 시작부터 아련하게 슬로우잼을 외치는 이 곡은 2015년의 K-POP보다는 빌보드 R&B 차트에 Tyrese, Usher, 혹은 Joe 같은 가수들의 곡 사이에 있는 게 오히려 어울리는 곡이다. 이 곡이 유영진의 취향인 것은 자명하지만, 이 곡의 맛을 살려서 부르는 디오 또한 이런 장르의 음악을 많이 듣고 많이 연습한 것이 보인다. 물론 차분하고 감성적인 발라드를 포함해 다양한 노래를 잘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하지만 이 외에 다년간 보여준 커버 곡들 역시 다른 세대의 음악일지라도 디오라는 가수가 가진 컨템포러리 R&B 색깔이 나타나곤 했다.
이런 측면에서 디오의 새 앨범 “공감”은 ‘예상과는 좀 달랐다.’ 타이틀 ‘Rose’는 경쾌한 기타 리듬에 담백한 목소리로 “봄날 같은 그댄 예뻐요 좋아요”와 “모른 체하지 마요”에 이어서 마지막엔 “장미보다 그댄 예뻐요 사실은”이라고 고백한다. 매우 전형적인 문장들로 간결하게 채워진 가사는 첨삭의 여지가 없는 한국식 고백송이다. 여기에 곡과 사운드도 위에 구구절절 언급한 디오의 원래 색깔보다는 2010년대 팝의 이지-리스닝, Ed Sheeran을 떠올리게 한다. 그로 대표되는 포크, 어쿠스틱 팝도 벌써 10년 가까이 되면서 미국에선 몰개성의 상징이 되어 버렸지만, 2021년 케이팝 아이돌의 솔로 앨범 타이틀로 이렇게 노골적으로 등장하자 오히려 신선한 느낌마저 든다. 단순히 장르로만 보면 우리가 알던 디오라는 가수의 분위기에서 10년 이상 강제로 당겨진 셈이다. (첨언하자면 나는 처음 ‘Rose’를 듣고 Joe Brooks의 ‘Superman’을 떠올렸는데, 다시 듣고 천천히 생각해보니 이 시기의 어쿠스틱 팝 어떤 곡을 떠올려도 이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타이틀 ‘Rose’ 이후에 이어지는 곡들은 미묘하게 다르지만 역시 가사 면에서나 사운드 면에서나 쉬운 접근을 표방하고 있다. 원슈타인이 피처링한 ‘I’m Gonna Love You’는 둘의 좋은 목소리 합을 보여주는데, 놀랍게도 이 앨범에서 가장 긴장감을 주는 트랙이다. 이 이후의 트랙들도 좋게 말하면 따뜻한, 나쁘게 말하면 전형적인 표현의 곡들이다. 사운드적으로도 드라마틱한 변화 없이 전반적으로 절제되어 있는데, 이는 디오의 목소리가 진짜 앨범의 주체가 되어 메시지를 전달하게 하고 오롯이 가창자의 흡입력에 집중하게 되는 장점이 되었다. 아차, 이제서야 트랙의 제목들과 앨범의 제목이 다시 한번 눈에 들어온다. 타이틀에 이어서 ‘I’m Gonna Love You’, ‘다시, 사랑이야’, ‘I’m Fine’ 그리고 앨범의 제목 “공감”. 만나고 헤어지는 관계 속에서 겪는 자연스러운 과정들에 대한 담담한 표정들. 앨범의 프로듀서가 말하고자 하는 “공감”이 이런 것인가 보다. 그동안 SM의 심오함에 나도 모르게 두근거리며 기대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마지막 트랙까지 다 듣고 난 후에 든 생각은 ‘하지만 이럴 줄 알았다’이다. 나는 SM이 솔로 앨범을 참 잘 만든다고 생각한다. 아이돌 그룹에서 개개인 멤버의 개성과 역할은 한정되기 마련이다. 멤버들이 함께하는 활동에서 멤버는 회사와 프로듀서가 정해진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복잡한 세계관을 동반하며 개인 활동이 정제되고 팀의 정체성이 매우 중요해진 요즘 아이돌일수록 이런 경향은 강력하다. 점차 연차가 쌓이고 예능, 연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개성을 보여주더라도 이는 고정적인 캐릭터가 되어 그 멤버에게 다시 달라붙는다. 이런 상황에서 정교하게 기획되지 않은 아이돌의 솔로 앨범은 한정된 역할이나 재창조된 캐릭터에 함몰되어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존에 팬들과 공유하던 멤버의 특징이나 방송에서 화제가 된 캐릭터만으로 밀어붙인 솔로 활동은 팬들에게나 대중에게 ‘신선함’이라는 가치를 주지는 못한다.
반면 SM의 솔로나 유닛 앨범은 자신들이 아이돌 멤버들에게 부여한 역할에 묻히지 않는다. SM은 케이팝 시장에서 가장 매니악하고 독특한 개념을 선도하고 이를 팬과 대중에게 설득시키지만, 솔로나 유닛 앨범에서 이를 강요하지 않는다. 물론 유닛과 솔로 앨범에서도 팀 정체성과 세계관을 포함할 수 있지만, 그걸 모른다고 퍼포먼스를 즐기는데 방해가 되지 않는다. 퍼포먼스 자체에 대한 집중도가 더 높다.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SM의 기획이 어떻게 기존의 그룹에서 하지 않은 퍼포먼스를 높은 완성도로 보여줄까를 고민한 결과이다. 진정한 의미의 ‘솔로/유닛 앨범’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케이팝을 팝과 비교할 필요는 전혀 없어졌지만 아직 필요에 의해 한국 아이돌과 팝 음악의 문법적 차이가 존재하는데, SM은 아이돌의 솔로나 유닛 앨범에서 팝적인 문법을 적극적으로 차용한다. 임팩트를 만들기 위한 노골적 시도들이 자연스러우며 구성이 타이트하게 짜여진 단체곡과 달리, 조금은 느슨하되 장르 혹은 사운드 측면에서 실연자의 정체성을 놓치지 않고 꾸준히 나타낸다. 태연, 태민, 백현과 소녀시대 태티서와 레드벨벳 아이린&슬기, 그 전후의 수많은 SM의 솔로, 유닛 앨범들이 이러했다(이는 퍼포먼스 난이도가 낮다는 이야기와 전혀 다르다). 개인적으로 이런 방향성이 SM의 솔로 아이돌로 하여금 조금 더 재기발랄하게 보이도록 한다고 생각한다.
디오의 “공감”도 이렇다. 엑소 노래에서 듣던 디오의 목소리와는 다르다. 기존에 가장 잘한다고 생각했던 장르도 아니다. 하지만 제법 잘 짜여 있다. 영리한 선택이다. 이미 20년이나 지난 컨템포러리 R&B에 SM스러운 색깔을 더해서 앨범을 만들기는 어렵다. 이 장르는 촌스럽지만 아직 레트로는 아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유행을 좇기엔 디오의 캐릭터가 걸린다. Khalid나 The Weekend와 비슷한 곡을 부를 수는 있지만 소리의 결이 다르다. 결국 목소리에 집중하기로 했다. ─개인적으로 디오의 기존 개성이라고 단정지은 것과 상관없이 이전까지 그를 대표하는 트랙 하나를 꼽자면 아마 ‘괜찮아도 괜찮아’일 텐데, 재밌게도 SM 역시 여기서 힌트를 얻은 듯하다─ 이는 당연하게도 어떤 가수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과 잘 통하는 것은 다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앨범의 어쿠스틱함을 위해 SM은 장르와 메시지의 참신함은 꽤 많이 양보해야 했지만, 결국 2020년대의 이지-리스닝 흐름에 맞는 듯한 앨범이 탄생했다. 앨범의 유기성도 있고 캐릭터의 새로움도 조금 챙겼다. 코끝을 뻥 하고 뚫어주는 킥은 ‘괜찮아도 괜찮아’에 비해서 부족하지만 그렇다고 한없이 가볍지는 않다. 나름 앨범의 전체의 무게를 유지한다. 앨범보다도, 강한 개성의 그룹에서 강한 개성을 가진 멤버의 솔로 데뷔라는 어려운 시작을 잘 만든 프로듀서에게 찬사를 보내고 싶다.
글: 강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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