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아이돌팝 발매작 중 정규앨범을 중심으로 주목할 만한 앨범을 다룬다. W24, 드림캐쳐, 베리베리 등.
예미: 유독 힘차게 달려 나가는 타이틀곡 ‘이 밤 어둠 속을 밝힐게요’를 보면 첫 정규 앨범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된 것 같지만, 여타 수록곡은 대체로 사랑을 주제로 하는 정갈한 팝과 록이다. ‘꾸준히’, ‘Missing You J’ 등 팝적인 재치가 엿보이는 산뜻한 질감의 트랙이 앨범 전반을 휘감는다. 같은 앨범에 수록된 기발매곡을 신곡과 함께 살펴보면, 앨범 전체에서 드러나는 일관된 질감이 데뷔 시점부터 쌓아온 개성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White Album”은 데뷔 이래 W24가 4년간 보여준 궤적을 한 장으로 정리한 정규작으로서의 가치를 갖는다.
마노: 팀의 두 번째 풀 렝스 발매작. 전반부는 단체곡, 후반부는 멤버들의 솔로곡으로 이루어져 있어 사실상 두 파트로 분절되어 있는 모양새인데, 자칫 유기성을 해칠 수 있는 요소를 인털루드 트랙 'Skit: The seven doors'를 중간에 수록하는 것으로 보완했다. 전반부를 마무리하고 일곱 멤버들 각각이 담당하는 세계로 떠나는 '일곱 개의 문'으로 리스너들을 안내한다는 의미일 것인데, 솔로곡들이 모두 개성이 강하고 장르적으로 다채롭기에 상당히 적절한 안배로 보인다. 경쾌한 레트로풍 디스코('Cherry'), 강렬한 트랩 힙합('No Dot'), 동양적 색채가 더해진 발라드(‘황홀경’), 쓸쓸한 분위기의 R&B('한겨울'), 재즈풍의 빈티지 팝('For'), 질주감 넘치는 팝 펑크('Beauty Full'), 천진한 표정을 담은 팝 넘버('Playgound') 등 각 멤버의 높은 참여도가 돋보이는 일곱 트랙을 성공적으로 하나로 봉합해낸다. 인털루드 직전까지의 상대적으로 유기적인 흐름을 해치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무척 영리한 전략이라 할 수 있을 듯하다.
무엇보다 이 앨범의 가장 큰 미덕은 케이팝에서 흔하게 시도되지 않은 '기후위기에 대한 경고'라는 메시지를 잘 벼려진 록 사운드에 담아냈다('MAISON')는 것이리라. 팀의 역사적인 첫 음악방송 1위를 축하하며, 상승세를 타고 펼쳐갈 앞으로를 기대해본다.
에린: 드림캐쳐는 ‘악몽’ 시리즈로 그로테스크함을 강조하며 그룹의 특성을 확고히 하였고, ‘Dystopia‘ 시리즈를 거치며 드림캐쳐의 비장함은 외부적인 악플과 모욕적 표현에 관해 거침없이 목소리를 내는 발화방식으로 작용하였다. 새로운 시리즈 “Apocalypse: Save us”는 세상의 파멸을 뜻하는 ‘Apocalypse’를 앨범의 제목으로 전면에 내세우면서 메시지의 범위를 넓혀 가창자와 청중 모두 발을 딛고 있는 현실의 문제를 노래한다. ‘Intro: Save Us’의 웅장한 오르간 소리로 포문을 열고, ‘Locked Inside A Door’로 보컬과 밴드 사운드가 서로 교차하는 전개를 사용하며 악의적인 공격에 맞서던 ‘Dystopia’ 시리즈를 겪은 인물들이 여유롭게 자신의 기준에 맞는 길을 가겠다는 자신감을 담아낸다. 이후 프랑스어로 ‘집’을 뜻하는 타이틀 곡 ‘MAISON’는 드림캐쳐의 핵심적인 특징인 록 사운드를 배경으로 기후위기에 관해 노래하며 삶의 터전이 파괴되는 현실을 경고한다. 드림캐쳐의 어두운 콘셉추얼함이 초반에는 그룹 내부적으로 응집할 수 있는 ‘악몽’으로 표현되었다면, ‘MAISON’에 이르러서는 명시적으로 현재의 위기를 전달하는 데에 사용한 것이다.
이렇듯 “Apocalypse: Save us”에서 전면적으로 현실과 관련된 메시지를 내세운 덕에 ‘Skit: The seven doors’ 이후의 솔로곡들이 현재를 살아가는 각 개인의 이야기로 읽힐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또한 각 멤버의 다양한 이미지들을 자유롭게 표현함에 따라 솔로곡들의 분절적인 배치에도 불구하고 앨범 전체의 생동감을 유지한다. 허스키하고 굵은 보컬 덕에 록 장르와 어울리던 시연은 한없이 처연하고 호소력 짙은 ‘황홀경’을 불렀고, 랩을 주로 담당하며 중후한 무게감을 담당하던 다미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Beauty Full’을 소화했으며, ‘Playground’에서는 팀의 어두운 콘셉트으로 보기 어려웠던 가현의 호기심 많고 재기발랄한 캐릭터가 담겨 있다.
이번 “Apocalypse: Save us”로 데뷔 5년 만에 1위 한 드림캐쳐의 성과는 오랫동안 일관적으로 쌓아온 그룹의 콘셉추얼함이 빛을 발할 시기임을 알린다. 그 시기와 맞아떨어지듯 “Apocalypse: Save us”는 지금까지 구축해온 이들의 비장한 그룹의 색깔을 기반으로 가장 확장적인 메시지를 담으면서도 그룹의 색깔을 구현해낸 각 멤버의 캐릭터를 함께 알아볼 수 있는 정규앨범이다.
비눈물: "Apocalypse: Save us"는 정규 앨범으로 발매되었으나 그 전반부는 드림캐쳐가 여태 발매해오던 미니 앨범의 구성을 그대로 따르고 있고 인털루드 이후의 후반부는 멤버들의 솔로곡이 쭉 이어지기에, 사실 EP 2개를 합쳐놓은 모양새에 가깝다. 또한 아포칼립스 세계관의 시작임에도 불구하고 앨범 내 세계관의 분량이 이전에 비해 크게 줄어든 것 역시 짚어봐야 할 특이점이다. 어쩌면, 정규 2집은 드림캐쳐라는 그룹이 만들어오던 오랜 음악 체계를 뒤흔드는 메타적 변화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먼저 전반부를 살펴보면, 밴드 사운드를 활용하면서 세계관과 직접 연관된 트랙은 사실상 두 곡이며 그중 한 곡인 'Locked Inside A Door'는 날 선 언어가 주는 상처, 악플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견지했던 디스토피아 세계관의 연장이자 후일담이다. 결국 타이틀곡 'MAISON'만이 새로운 세계관에 맞춰 환경 위기라는 사회적 이슈를 얘기하고 있는 셈인데, 이러한 배치에서 앞으로 세계관의 비중을 한 지점에 집중하겠다는 의도를 엿볼 수 있다. 또한 전반부의 트랙들이 신스 팝, 딥 하우스, 발라드 등 앞서 수록곡에서 꾸준히 시도해왔던 여러 장르들을 한데 모았다는 점도 변화에 대한 의지를 피력하는 듯하다.
그 뒤를 이어 멤버들의 자작곡으로만 구성된 후반부는 앨범의 세계관과 별개로 멤버들의 개성과 취향을 한껏 담은 다채로운 음악을 소개하는 데 집중한다. 정규 앨범의 절반을 솔로곡에 할애하는 것은 흔치 않은 사례인데, 동일한 프로듀서와 오랜 기간 작업하면서 굳어질 수 있는 상투성을 타파하기 위한 시도로 짐작된다. 특히 지유의 솔로곡 'Cherry (Real Miracle)'를 통해 그룹 체제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한 순도 높은 행복의 감정과 보컬의 사랑스러운 매력을 맛볼 수 있었다. 이러한 기획이 단일성으로 그치지 않고 차후에 유닛 곡 등 새로운 방향으로 확장된다면 앞으로 이어질 그룹의 변화에 더욱 힘을 실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드림캐쳐는 이번 활동을 통해 데뷔 1924일만에 첫 음악 방송 1위를 차지했는데, 이는 그룹만의 유니크한 위치를 끊임없이 확보하고 또한 그 속에서 다양한 세계관과 사운드를 연구하면서 국내외 케이팝 팬들에게 그 이름을 지속적으로 어필해왔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번 앨범을 통해 드림캐쳐가 더욱 다양한 변화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MAISON'으로 깊게 자리 잡은 그룹의 뿌리는 변함 없을 것임을 증명하기도 했다. 밴드 사운드와 독자적 세계관이라는 그룹의 고유한 MAISON[집]을 지키면서 새로운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드림캐쳐의 여정은 앞으로도 순탄하지 않을까.
조은재: 언젠가부터 베리베리의 곡이 베리베리 멤버들에게 무척 버겁다는 인상을 받고 있는데, 특히 "SERIES 'O' [ROUND 3 : WHOLE](이하 "WHOLE")"의 전반부 곡들이 그렇다. 선공개 싱글이었던 'O'를 분기점으로 하여 이후 트랙들은 멤버들의 참여도도 높고 앞서 발표했던 "FACE" 시리즈와의 개연성도 느껴져 후반부에 들어서서야 베리베리의 앨범을 들었다는 느낌이 들게 된다. 타이틀곡 'Undercover'는 하이톤으로 디렉팅된 보컬과 힙합 베이스 리듬 사이가 붕 떠 있어 하모니가 충분히 강조되지 않고 뻥 뚫려있는 듯한 인상을 주는데 이런 공허함이 타이틀곡 뿐만 아니라 "WHOLE"의 대부분의 트랙에서 느껴져 무척 신경 쓰인다. 한 가지 의문스러운 점은 데뷔 초기에 비해 최근 들어서 갈수록 보컬끼리의 톤이 균일화되고 있다는 점인데, 활동을 거듭하면서 보컬의 톤과 캐릭터를 다변화하여 음악적 레퍼토리와 아이덴티티의 확장을 꾀하는 것이 보통의 아티스트 성장 루트임을 생각했을 때 다소 우려스러운 부분이기도 하다. "WHOLE" 후반부에 배치된 'Emotion'이나 멤버들이 참여한 곡들이 '가요성'을 견지하면서도 베리베리 디스코그래피 상의 일관성을 담보하고 있어 나침반의 영점 조정만 잘 한다면 앞으로 발매될 앨범도 기대할 법하다.
에린: 베리베리는 데뷔 초 "VERI" 시리즈에서 하이틴 드라마의 주인공을 연기했고 "FACE" 시리즈를 거치면서 급격히 강렬한 이미지로 변신을 꾀했다. 쾌활했던 "VERI"에서 강렬한 이미지의 "FACE" 시리즈로의 변화는 당혹감을 불러일으킬 만했으나, "FACE" 시리즈를 거쳐 가며 베리베리만의 사운드를 찾아 "SERIES"에 이르렀다. "FACE"의 마지막 페이지 격이었던 'G.B.T.B (Strong Dragon Remix Version)'와 "SERIES ‘O’[ROUND 2: HOLE]"의 'TRIGGER'에서 전자 사운드의 정신없이 쏘아대는 형식을 "SERIES ‘O’ [ROUND:WHOLE]"의 에서도 사용하여 베리베리라는 그룹의 중요한 특성을 구축한다. "SERIES 'O'[ROUND: WHOLE]"의 '틈'은 단순히 반복하는 리듬 위에 보컬을 살포시 얹은 듯한 곡으로 간단한 베이스의 사용으로 묵직한 무게감을 덜어내고 속이 비어 있는 듯한 가벼운 구(球)와 같은 기반을 만든다. 이러한 가벼운 기반 덕분에 'Coming over'에서 비릿한 금속성으로 점철되는 부분들을 곡 안에서 첨예하게 비치한 양태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이후 앨범은 끊임없이 전환하는 전자 사운드의 운용과 보컬 간의 조화를 이루어내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 'Wish U were here'는 개인의 보컬파트에서 리듬을 빼거나 후렴구의 특징적인 드롭 외에는 전자 사운드의 운용을 자제하는 분절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각 멤버의 캐릭터가 충분히 드러날 수 있도록 한다. 또한 곡의 전자 사운드의 변용이 되는 구간에서 적극적으로 랩 파트를 붙여 급격히 빨라지는 속도감을 강조('Fallin’')하거나, 섬세한 보컬 운용이 더욱 부각될 수 있도록 서늘한 사운드를 배경으로 밝은 멜로디를 사용한다 ('Velocity'). 여러 시리즈를 거쳐 오며 다양한 방법으로 '베리베리' 하면 떠올릴 수 있는 특징들을 만들어냄으로써 "SERIES" 챕터를 정리하는 듯한 정규앨범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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