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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성 1주기 : 휘성으로 돌아보는 케이팝 작사의 기준들

휘성이 하늘나라로 떠난지 1년이 지났다. 보컬리스트로서 R&B를 한국 대중음악 시장의 한 축으로 세우는 데에 크게 기여했던 그는, 작사가로도 활발히 활동하며 케이팝 업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 케이팝 작사가의 역량을 규정하고 활동 영역을 확장하던 휘성의 족적을 짚어보자.

휘성이 하늘나라로 떠난지 1년이 지났다. 보컬리스트로서 R&B를 한국 대중음악 시장의 한 축으로 세우는 데에 크게 기여했던 그는, 작사가로도 활발히 활동하며 케이팝 업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 보통 케이팝 작업에 임하는 유명 뮤지션들은 기존에 아티스트로서 쌓은 이미지를 활용하는 콜라보레이션의 형태로 작업하는 경우가 많은데, 휘성은 가수로 쌓은 이미지와 별개의 영역에서 전업 작사가에 가깝게 활동하며 여느 전업 작사가 이상의 성과를 냈다. 케이팝 작사가의 역량을 규정하고 활동 영역을 확장하던 휘성의 족적을 짚어보자.

데모곡의 어감을 살려내는 한국어

정식 가사가 붙기 전 판매를 위해 돌아다니는 데모곡 음원에는 대부분 외국어 가사가 붙어 있다. 주로 영어 혹은 일본어로 된 데모곡의 가사는 멜로디와 트랙을 매력적으로 비출 수 있는 발음을 직관적으로 선정한다. 데모곡과 정식 발표 버전을 비교해 들으면 데모곡의 특징과 매력을 살려내는 동시에 이에 걸맞는 주제의식을 한국어로 부여하는 것이 케이팝 작사가의 기술적 역량임을 엿볼 수 있는데, 휘성은 이 기술적 역량이 탁월한 작사가였다. 데모곡이 지금처럼 널리 풀려 있지 않아 작사가의 기술적 역량을 알기 어려웠던 시기에도 그의 역량을 확인할 수 있었던 작업물을 소개해 본다.

휘성 ’Insomnia (불면증)’ (2009) (원곡: Craig David)

가수 휘성의 대표곡 ‘Insomnia (불면증)’ 는 영국 가수 크레이그 데이빗의 곡을 휘성이 직접 번안하여 부른 곡이다. 원곡은 댄서블한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복잡한 리듬 활용 측면에서 케이팝을 연상케 하는데, 휘성의 번안도 데모곡의 영어 가사 어감을 한국어로 구현하는 케이팝 작사 작업처럼 접근했다. 원곡의 영어 가사와 음절 갯수 및 발음을 비슷하게 맞추어, ‘말맛’을 활용하여 다이나믹한 리듬감을 선보이는 원곡의 매력을 한국어로도 정확히 구현한 점이 특히 그렇다.

첫 대목 “Never thought that I’d fall in love” 를 정확히 동일한 8음절의 “내가 달리는 길은 love”로 바꾼 것을 시작으로, 원곡과 유사한 갯수의 음절로 문장을 채운 뒤 마지막 단어를 ‘ㅓ’ 발음의 한 글자 한국어 단어로 맞추어 1절 첫 벌스를 채운다. “내가 달리는 길은 love”로 시작한 가사를 “피할 수 없는 함정은 마음의 겁”으로 전개하여 뒤로 갈수록 동일한 구간에서 리듬을 쪼개 음절 갯수를 늘리는 원곡의 접근을 한국어 가사에서도 따른다. 12음절짜리 한국어를 군데 군데 ‘씹어서’ 발음하여 같은 구간 영어 가사와 동일한 10음절처럼 들리게 부르는 발음의 디테일도 엿보인다. 2절 벌스도 1절과 같은 접근을 취하지만 원곡이 그러하듯 1절에 비해 음절 갯수가 더 늘어난다. 원곡의 “And then you walked into my life and it was all about us” 를 같은 15음절인 한국어 “잠마저 못 들도록 너를 보다 걸려든 병”으로 바꾸어 같은 리듬으로 부르는 것이 그 백미다. 

이후 원곡과 동일한 후렴 “Feels like Insomnia”로 향하는 구간은 사랑에 빠져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남자를 그리는 주제의식을 구현한다. 1, 2절 모두 프리코러스를 온전히 한국어로 채우면서도 군데군데 모음을 맞추는 라이밍으로 (”난 작아’져’ 사라’져’ 가는 ‘얼’굴의 밝은 표’정’”, “몇 년이 몇 생’애’ 위’해’ 존 ‘재’ ‘겠’ 지“), 보다 여유로운 리듬 속에서도 긴장감을 놓지 않는 것이 돋보인다. PC통신 흑인음악 동호회 SNP 출신인 휘성은, SNP에서 정립한 다음절 라임 방법론을 체화하고 이를 섬세한 모음 배치를 통해 녹여내어 가사에 청각적 쾌감을 부여했다. 한국 대중음악에서 이러한 다음절 라이밍은 힙합 및 인접 장르에서 주로 쓰여 장르적 색채를 보여주곤 하는데, 휘성은 힙합이나 R&B가 아닌 다른 장르의 사운드 위에도 이러한 라이밍을 구사하여 청각적 긴장감을 부여하는 데에 능하다.

이처럼 휘성이 작사한 ‘Insomnia (불면증)’의 한국어 가사는 작사가 휘성의 탁월한 기술적 역량을 보여준다. 그는 이러한 역량을 청각적 쾌감이 중요한 댄스곡 작사에서 온전히 선보이며 청중의 뇌리에 여러 히트곡을 각인시켰다.

티아라 ‘너 때문에 미쳐‘ (2010)

김이나 작사가는 한 인터뷰를 통해 데모곡 영어 가사의 어감을 한국어로 훌륭하게 구현한 사례로 휘성이 작사한 ‘너 때문에 미쳐’ 가사를 들었다. 이 곡을 두고 경합했던 김이나 작사가에 따르면 ‘너 때문에 미쳐’ 후렴의 데모 버전 가사는 “shut up and shut up and shut up and listen” 이었는데, 휘성이 붙인 이 부분의 가사는 모두 알고 있듯 “철없게 철없게 살다가 미쳐” 이다.

노래는 바로 이 “철없게 철없게 살다가 미쳐”로 가기 위해 사랑에 미쳐버린 여자를 그리는데, 이 후렴에 가는 과정에서 음절 수가 철저히 계산되어 있다. “봐도 봐도 봐도 내가 봐도 봐도 보고 싶어” 처럼 부점 리듬에 따라 모든 어절을 두 음절로 맞추고는, “너 땜에 온종일 미쳐” 에서는 부점 리듬으로 힘 주어 부르는 ‘땜에’와 셋잇단음표로 흘려보내는 ‘온종일’을 교차하여 청자를 환기시킨다. 이처럼 부점 리듬에 이따금씩 셋잇단음표를 덧댄 벌스 뒤로 프리코러스가 이어지는데, 한국어 단어로 부르는 부점 리듬 사이에 정박으로 영어 단어 “sexy shadow”와 “make me crazy”를 넣어 이 부분만 유독 잘 들리게 만든다. 이후 후렴은 정박 “oh oh”와 셋잇단음표 “철없게”를 이어 붙이는데, 여기서의 “미쳐”를 셋잇단음표 2개 분량의 ‘미’와 1개 분량의 ‘쳐’로 발음하여 후렴 내에서의 정합성을 유지한다.

‘너 때문에 미쳐’에는 가창과 연주를 막론하고 2음절 정박, 2음절 부점, 셋잇단음표 외 다른 패턴의 리듬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이 단순한 구성의 리듬 패턴은 곡을 아주 직관적이면서도 에너제틱하게 만드는데, 청자가 리듬 패턴의 흐름에 맞춰 가사를 이해하도록 단어의 음절 수를 맞춰 곡의 에너지를 방해 없이 뻗어나가게 한다. 강한 발음과 직선적이면서도 섹슈얼한, 속말에 가까운 단어를 배치하고 특정 어절을 여러 차례 반복하는 것도 당대의 ‘후크송’ 기조를 따르는 동시에 저속하면서도 미칠 듯한 심상을 증폭한다. “철없게 철없게 살다가 미쳐”가 머릿속에 각인된 것은 이렇게 가사를 쌓은 결과다.

가사로 그리는 여성과 컨셉

작사가 휘성의 히트곡은 자신이 부른 곡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 여성 가수의 곡이다. 이는 아이코닉한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것이 특히 중요시되는 여성 팝 스타의 속성과, 강렬한 이미지에 어울리는 작사에 일가견이 있던 휘성의 특기가 상당 부분 맞물린 결과다. 2000년대 후반 이후 아이돌이 양적으로 팽창하며 차별화된 컨셉으로 관심을 끌려는 경쟁이 격화되었는데, 앞서 ‘너 때문에 미쳐’에서 볼 수 있듯 휘성의 가사는 돋보이는 발음 및 단어 선택으로 과포화된 시장 상황 속에서도 청자의 관심을 끌어내는 데에 탁월한 역량을 발휘했다. 그는 소위 ‘큐트’부터 ‘섹시’까지 다양한 컨셉의 여성 아이돌 곡을 작사하면서도 컨셉에 밀착된 가사로 청자에게 가수를 각인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휘성이 만들어 낸 여러 갈래의 여성 캐릭터를 작업물을 통해 살펴보자.

두 명의 섹시 스타 – 이효리 ‘Hey Mr. Big’ (2008), 아이비 ‘유혹의 소나타’ (2007)

휘성은 2000년대 후반 섹시 스타로 손꼽혔던 이효리와 아이비의 대표곡을 작사했다. 그는 ‘섹시’ 키워드를 공유했지만 서로 다른 매력으로 팬층을 확보한 두 가수에게 맞춰 서로 다른 캐릭터를 부여했다. 

이효리의 ‘Hey Mr. Big’은 곡 내내 남자들에게 매력적인 남자가 되어주기를 요구한다. 1절 첫 구절에서 “자랑만 가득한 날마다 따분한 미래가 아득한 소년들이여”로 시작하여 현재의 남성을 평가하고는, “가슴이 따뜻한 생각이 반듯한 조금은 차분한 남자”가 되어 달라고 말한다. 이 부분을 소리 내 읽어보면 라이밍이 두드러지게 귀에 들어올 텐데, 이처럼 치밀한 모음 배치가 음역대가 한정적인 벌스에 생기를 부여한다. 후렴은 벌스의 ‘요구’ 기조를 이어가는 동시에 핀업걸 포즈로 글래머러스한 몸매를 강조하는 안무에 걸맞는 구절을 삽입했다. “잘난 척 하는 입술로”에서 자신의 입술을 짚고 “훌쩍 넓어진 어깨로”에서 어깨를 양손으로 짚는 등, 가사 맥락상으로는 남성의 신체 부위를 가리키는 동시에 여성 퍼포머 자신의 신체 부위를 강조하는 안무가 눈에 들어오게 하는 기술이 돋보인다. 이렇게 ‘Hey Mr. Big’은 섹시 스타로서 당대의 능동적 여성상을 대표했던 이효리의 캐릭터를 효과적으로 보여주었다.

반면 아이비의 ‘유혹의 소나타’는 제목에 걸맞게 가사 내내 성적 암시를 담았다. 후렴 “손발을 Do it 단 둘이 둘이 이 밤을 Take it”에는 구체적 내용이 없는데, 그 앞에서 딱 붙는 블레이저, 블라우스, 바지로 몸매를 드러낸 채 도발적 표정과 몸짓으로 섹슈얼한 장면을 묘사하는 벌스 뒤에 “난 널 유혹하는 거란다”를 외치면 후렴을 듣는 청자는 한 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유혹의 소나타’는 분위기가 상이한 여러 구간을 삽입하여 가창과 퍼포먼스 양 측면에서 해석력이 뛰어났던 아이비의 기량을 보여주는데, 휘성의 가사는 이 구간별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여 곡의 구성을 뒷받침한다. “Do it”, “make it”, “take it” 과 같은 암시적 표현이나 “Baby you don’t have to worry Everything’s Alright”처럼 섹슈얼한 포인트 안무가 삽입되는 구간에서는 영어를 사용하고 마지막 후렴 진입 전 구간은 “어떤 이도 찾지 못하게 숨겨온 내 사랑” 으로 끝내며 발라드에 가까운 가창의 뉘앙스를 살린다. 이렇게 휘성의 가사는 아이비의 에너제틱하면서도 다채로운 퍼포먼스와 가창을 돋보이게 하는 동시에 섹시함이라는 내용을 채웠고, 그렇게 아이비는 2000년대를 대표하는 섹시 스타로 지금까지 기억되고 있다.

두 시대의 소녀 – 윤하 ‘비밀번호 486’ (2007), 트와이스 ‘Dance the Night Away’ (2018)

이처럼 여성 가수의 섹시 컨셉을 돋보이게 하는 곡을 썼던 휘성은, 비슷한 시기 어리고 귀여운 이미지를 내세운 윤하에게도 대표곡을 만들어 주었다. 시간이 흘러 아이돌 팝의 문법이 달라진 이후, 변화된 아이돌 시장에 적응한 휘성은 2010년대 후반을 풍미한 큐트 아이돌 트와이스에게도 대표곡을 선사했다.

윤하의 ‘비밀번호 486’은 10대 소녀의 얼굴로 ‘나를 제대로 사랑해달라’는 메시지를 파워풀하게 불러 당돌함을 표현한다. “한 시간마다 보고 싶다고 감정 없이 말하지 말아”로 시작하여 만족스럽지 않은 사랑 표현에 투정부리는 가사는, “여자는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아”와 “남자는 여자만큼 섬세하지 않아”, “바람둥이같은 남자들에게 여자들은 늘 속고 마는 걸” 처럼 군데군데 배치된 어른 흉내로 이어져 화자의 당돌함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결국 “하루에 네 번 사랑을 말하고 여덟 번 웃고 여섯 번의 키스를 해 줘”라며 더 적극적인 사랑을 원하는 후렴이 결론이라는 점에서 이 곡의 화자는 무척 귀엽다. 이렇게 휘성의 가사는 록 사운드 위에 피아노 치며 파워풀하게 노래하는 어린 소녀에게 당돌한 캐릭터를 입혀 사랑스러움을 극대화했고, ‘비밀번호 486’을 시작으로 윤하는 지금까지 록을 기반으로 하는 친근한 이미지의 여성 팝 스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트와이스의 ‘Dance the Night Away’는 바닷가에서 기쁨을 만끽하는 소녀를 비춘다. “you and me in the moonlight”로 시작하지만, ‘너(you)’와의 관계보다 바다를 즐기는 소녀에 훨씬 집중하는 가사 속에서 ‘너’의 정체는 모호하다. 이 ‘너’의 자리에 연인, 친구, 혹은 청자인 팬을 대입하여 들을 수 있는 구성은 아이돌 팝이 이성애만을 상정하던 관습을 벗어난 2018년의 흐름을 따른 결과다. 서구권 작곡가가 쓰고 글로벌 팬덤을 보유한 다국적 걸그룹이 부른 곡인 만큼 휘성의 다른 가사에 비해 영어의 비중이 높지만, “바다야 우리와 같이 ‘놀’아 / 바람아 너도 이’쪽’으’로’ 와”처럼 물 흐르는 듯 모음을 배치하고 자연에 말을 걸며 멤버들의 천진난만함을 부각하는 대목을 보면 휘성의 여전한 특기를 볼 수 있다. 귀여운 컨셉으로 절정의 기세를 달리던 트와이스에게 선사한 ‘Dance the Night Away’는 3세대 이후 아이돌에게도 휘성의 가사가 녹아들 수 있음을 알려준 히트곡이 되었다.

오렌지캬라멜 ‘마법소녀’ (2010)

‘마법소녀’의 가사는 오렌지캬라멜 특유의 과잉된 이미지 컨셉과 밀착되어 그룹을 오래도록 각인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전반적으로 마법과 큰 관련이 없어 보이는 ‘마법소녀’의 가사는 애니메이션에 나올 법한 마법소녀 옷을 입은 오렌지캬라멜 멤버들을 만나 판타지적인 이미지를 얻는다. 리듬에 따라 팔을 휘젓는 안무와 눈을 크게 뜨고 입을 크게 벌리는 표정 연기는 사랑에 빠져 호들갑 떠는 소녀의 이미지를 그리는데, 2~3음절짜리 짤막한 어절을 반복하는 가사가 이 호들갑을 극대화한다. 1, 2절 벌스 시작부터 “힐끔힐끔”, “부끄부끄”, “말랑말랑”, “살금살금” 같은 의태어를 반복하다가 “어떡해” 마다 팔을 흔들며 호들갑을 떨고, 프리코러스에서 “하늘에 뜬 별만큼 바다에 소금만큼”처럼 과장된 표현으로 정서를 쌓은 뒤에야 바로 그 “난 몰라 난 몰라 천번 만번 말해줘도 몰라 몰라”가 등장한다. 이후 휘성은 같은 기조의 후속작 ‘아잉♡’을 작사하며 오렌지캬라멜의 키치한 판타지를 오래도록 기억되게 하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작사로 시작하여 프로듀싱까지

티아라와 오렌지캬라멜이 스타덤에 오르며 작사가 휘성은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컨셉에 충실한 가사를 써서 가수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것이 작사가의 죄는 아니겠지만, ‘With Me’나 ‘불치병’으로 기억되던 가수가 ‘너 때문에 미쳐’나 ‘마법소녀’ 가사를 썼다는 사실이 쉬이 납득 가능한 일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휘성은 오랫동안 가수 활동명을 작사가 크레딧에 그대로 올리며, 작사가로서는 드물게 이름과 얼굴을 가진 아이덴티티로 기억되었다. 그는 가수 및 작사가로서의 유명세를 자신과 협업한 가수 홍보에 활용하는 것을 시작으로, 작곡, 프로듀싱, 기획사 설립에 이르기까지 활동 영역을 넓혔다. 이처럼 음악 산업계에서 다양한 일을 도맡았던 ‘업계인’ 휘성의 모습을 보여주는 곡들을 알아보자.

지나 ‘꺼져줄게 잘 살아’ (2010), ‘처음 뵙겠습니다’, ‘Top Girl’ (2011)

휘성은 ‘꺼져줄게 잘 살아’를 시작으로 지나와 여러 곡을 작업하며 신인이었던 지나를 단기간에 스타덤에 올려놓는 데에 기여했다. 지나의 데뷔곡이었던 ‘꺼져줄게 잘 살아’는 강렬한 단어가 삽입된 제목으로 관심을 유도하려는 노림수가 엿보이고, 섹시 스타로서 이름을 알린 뒤 나온 ‘Top Girl’은 당당하고 화려한 컨셉에 걸맞는 가사가 돋보인다. 휘성은 ‘꺼져줄게 잘 살아’와 ‘Top Girl’ 사이 발매된 지나의 정규 1집 “Black and White”의 선공개곡 ‘처음 뵙겠습니다’를 작사하고 듀엣 파트너로 참여한 뒤, 지나와 함께 여러 방송 매체에 출연하여 지나에게 섹시함이 아닌 발랄한 면모를 비출 기회를 제공했다.

지나와 휘성의 협업을 가능하게 한 연결고리는 이 모든 곡을 작곡한 김도훈이다. 대표곡 ‘With Me’를 시작으로 휘성과 장기간 협업을 이어가며 R&B 스타일의 가요로 이름을 얻은 김도훈은, 캐나다 출신으로 팝적인 가창을 어필하려는 지나의 곡을 도맡으며 가까운 동료인 휘성에게 작사의 기회를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꺼져줄게 잘 살아’의 작사, 작곡, 피쳐링을 그대로 두고 가수를 휘성으로 바꾸면 비슷한 시기 발표된 그의 대표곡 ‘가슴 시린 이야기’의 조합이 되는데, 여기서 휘성의 작사 활동이 가수 활동과 연관되는 지점을 살펴볼 수 있다.

에일리 ‘Heaven’ (2012), ‘노래가 늘었어’ (2014)

2010년부터 2016년까지 YMC엔터테인먼트에서 활동한 휘성은 같은 소속사의 신인이었던 에일리의 성공을 돕는다. 휘성은 2011년 MBC “가수와 연습생”에 에일리와 함께 출연하여 데뷔 전 에일리에게 주목의 기회를 제공하고, 데뷔곡 ‘Heaven’을 작사, 작곡하여 에일리를 스타덤에 올려놓았다. 이후 에일리는 휘성이 제작한 발라드 ‘노래가 늘었어’를 통해 그 파워풀한 보컬의 표현 영역을 발라드까지 확장했다.

휘성은 미국 출신에 비욘세 커버곡으로 유명세를 얻은 에일리에게 R&B 기반의 가창을 요구하면서도 한국 정서에 소구할 수 있는 곡을 주었고, 에일리의 가창은 휘성 특유의 작사 디테일을 정확히 음악으로 구현했다. 데뷔곡 ‘Heaven’은 1, 2절 벌스에서는 한국어 가사로 감정선을 쌓지만 후렴에서는 “You’re my only one way / 오직 너를 원해 / 내가 ‘네’ 곁에 ‘있’음에 감사해” 에서 볼 수 있듯 영어와 한국어를 교차하며 라이밍을 시도하고, 하이라이트 부분을 영어로 채운다. 에일리는 이 곡에서 영어와 한국어를 모두 정확하게 발음하는 동시에 라이밍을 그대로 살려내며 한국 정서에 친화적으로 활동하려는 미국 교포 가수로서의 정체성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한편, 발라드곡인 ‘노래가 늘었어’는 순수 한국어 가사이지만 ”노’래’가 늘었어 너와 ‘헤’어지고 나서”,  “나도 멋게 ‘준’해 ‘둘’게” 등지에서 볼 수 있듯 군데군데 라이밍이 선명하게 가미되어 있다. 에일리는 한국 청자에게 위화감이 없는 또렷한 발음으로 ‘노래가 늘었어’를 부르는데, 그 와중 언뜻언뜻 드러나는 영어 화자로서의 발성 디테일이 곡에 배치된 라임과 합쳐져 R&B스러운 뉘앙스가 선명해진다. 이처럼 휘성이 제작한 두 곡은 보컬리스트 에일리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바탕으로 에일리 디스코그래피의 초석을 다졌다.

케이팝 작사가의 기량을 가늠하는 기준이란

여기까지 적힌 곡들을 보면 알겠지만, 작사가 휘성의 명성은 상당 부분 악명에 가까웠다. 그의 악명은 R&B의 멋을 한국 대중에게 진지하게 전파하던 남성 보컬리스트가 컨셉추얼한 여성 가수의 가사를 썼다는 데에서 오는 괴리와, 이 여성 가수들이 부르는 원색적인 언어가 주는 충격이 합쳐진 결과였다. 그러나 휘성의 가사를 소리 내 읽어보면, 그의 가사는 가창자가 즐겁게 부르고 청자가 지루하지 않게 들으며 가창자를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는 언어로 가득하다. 그가 작사한 곡 상당수가 각 가수의 손꼽히는 히트곡이 되고, 이 곡들이 훗날 ‘숨듣명’이라는 타이틀로 재조명되어 발매 당시의 기대에 비해 긴 생명력을 얻은 것은 그 작사 기술 없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처럼 듣는 글을 통해 가수를 조명하는 가사를 요구하는 케이팝 작사의 측면에서 휘성의 역량은 분명히 우수했으며, 케이팝 작사의 기본적인 요구 사항은 휘성 사후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만큼 그의 가사를 짚어보는 것은 철저한 ‘케이팝 작사가’로서의 역량 기준을 톺아보는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By 예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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